Powered By Blogger

2016년 7월 26일 화요일

한국제조업의 딜레마 / 여섯시간근로제

한 국가의 산업이나 경제의 근간은 제조업이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내수(內需)인데 한국경제는 이 두가지를 모두 박탈당해가는 느낌이다. 기술혁신과 같은 문제는 국내기술의 성장이나 국외기술의 도입등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기때문에 기술의 문제는 아닌듯 하다. 이면을 깊게 따지고 들어가보면 인간과 관련된 문제가 있다.

언젠가 가혹한 근로환경에서 일한적이 있었다. 근로자들은 수시로 잠시 사라졌다.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서 쉬러간거였다. 생긴것 답지않게 건강한데다 회사내규를 착실히 지켜주는 내 자신은 꾸역꾸역 일을 했는데, 많지 않은 젊은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서 모범이 될만했다. 얼마후 기업주는 한국에서는 노동임금이 비싼데다 과거에는 안그랬는데,요즘은 근로자들이 배가 불렀다는 불평을 하며 중국에 공장을 차렸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중국인들은 더욱 더 자주 사라졌다. 더구나 그 회사의 생산품과 비숫한 수준의 중국산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무너졌다. 중국에 있는 회사가 무너짐으로서 한국의 본사도 무너졌다. 살기위해 잠시 쉬러다니던 동료 근로자는 임금이 체불되자 공장굴뚝에 올라가서 자살소동을 벌여서 티브이스타가 되었다. 그 장면을 티브이로 보고 충격이 컸다. 그 당시 기술혁신이나 생산시설의 정비 특히 생산품의 품질을 개선할 생각을 안하고 근로자들의 노동력만 이윤추구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고용주가 무척 어리석어 보였다. 먼 훗날 어떻게든 인간에 대해 신뢰할만한 자신이 서는때, 그리고 창업환경이 좋아지면 절대 저렇게 회사를 운영하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제조업의 근로현장에 와보니 변한게 없다. 회사가 외국으로 나가는 대신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와 있었다. 근로환경은 여전히 안좋았다. 외국인 노동자는 적당히 임금을 체불하거나 지연시켜도 잘 참았다. 임금을 안준다고 밤에 사무실밖에서 서성대는 모습을 보고 늦게까지 경리를 보는 여직원은 무섭다고 했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는 좋은 사람도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태국이나 스리랑카출신의 노동자들인데 예의바르고 한국인인 내가 신입으로 왔는데 알뜰살뜰 보살펴 주었다. 물론 어떤 외국인 노동자들은 눈빛이 사고칠 것 같아서 항상 거칠게 충돌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외노자들도 있었다. 아마 그들도 험한 세상에 와서 부딪힌 삶이 모질다는걸 빨리 깨쳤을 것 같다.

제조업의 근로현장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젊은 사람이 일을 안할려고 하는게 아니라 근로환경이 일할 동기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인간을 기계취급하는 근로현장에 있는것 보다 자신만의 여유가 있는 피씨방이나 호프집 알바가 낫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점차 무너져가는 한국제조업의 사정상 훗날 일을 할려고 해도 일을 할 곳이 없어질 위기가 왔다. 한 번은 연세드신 근로자 한 분이 대단히 권위적이고 사나웠다. 오는 신입마다 이상한 방식으로 내쫓았다. 이제는 체력이 바쳐주지 않아서 화가 나있는데, 그 일터마져 보전할 수 없으니 무척 힘들어했다. 자신은 일을 배울때 인간대접을 못 받고 배웠는데도 잘 견뎠으니 신입들도 그래야 된다는 것이다. 그 아둔함은 그 근로자분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제조업 전체의 문제인듯 하다. 제조업현장 어디서든지 국민소득 삼만불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찾아 본 회사가 중소기업들이지만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하청생산으로 이윤을 보고 있는 처지에 뭐 가릴 것이 있겠나 싶다.

회사를 그만둘때마다 고용주들에게 인간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부탁하지만 당장 단기적이윤이 급한 고용주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어 보였다. 특성상 IT회사등은 인간의 여유로운 창의성과 생산능률이 쉽게 연결이 되지만 그 밖의 기업들은 그게 쉽지않은듯 하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여섯시간근로제를 활성화시키고 최저임금을 조금 높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제조업에서는 6시간근로제로 2교대, 3교대, 4교대까지 가능하고, 근로자들은 건강이나 일에 대한 즐거움을 보존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앞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없는 노인인력들을 수용할 수 있고, 젊은이들의 제조업유입도 가능해질것 같다. 여섯시간을 근로하고 남는 시간에는 각자가 자기 계발에 힘쓴다면 국가의 부담도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에게도 느껴보고, 많은 사람들을 보아왔지만 인간은 그렇게 기계적이고 부정적인 존재가 아닌듯 하다. 여유롭고 즐거운 근로환경에서 집중력이나 창의성은 훨씬 상승하는 예를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에 대한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근로의 최종목적은 '행복한 삶'이다. 과거에는 지금 힘들면 행복한 시절이 온다는 희망으로 어려운 근로를 참고 견뎠지만 빈부격차가 커져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는 요즘은 희망이 없어보인다. 더구나 스리랑카출신 근로자는 한국에서 삼년만 일을 하면 여기서부터 저어어기 지평선까지 땅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한국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일하지만 한국근로자에게는 그런 희망이 없다.

제조업의 근로현장뿐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 심지어는 공무원이나 대기업근로자들까지도 행복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을 찾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찾았을뿐이지 인간으로서 필요한 근로의 행복함을 찾지는 못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자꾸 개돼지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지만 인간은 기계나 개돼지가 아니고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내 글에서 빠질 수 없는 이념이나 종교 이야기를 하자면 근로의 즐거움이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못 찾게 되면 이념이나 종교의 광기(狂氣)가 스며들어오는 것은 당연한듯 싶다. 희망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특성상 피안의 저 너머 확실히 검증되지 못한 것이더라도 몸과 마음을 맡기고 싶은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