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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9일 토요일

공부법과 사법개혁

오래전 같은 직장 동료가 객관식시험답을 잘 찍는 방법에 관한 책을 냈다. 바른 생활을 한다기보다 어렸을때부터 메뉴얼대로 사는 방식에 익숙치 않았던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 책을 읽을 시간이면 정정당당하게 공부해서 시험점수를 올리는 것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사회에 통용되는 방식이라는 생각에 이해는 안되지만 이해는 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랫동안 메뉴얼대로 살지 않았는데, 여러가지로 매우 고달펐다.

특허관련 일이나 창업을 염두에 두고 실용적인 공부를 열심히 해볼까 하는 생각에 공부법에 관한 책을 수십권을 구입했다. 예상했던대로 자기극복에 관한 책이나 공부에 관한 책은 일본인들이 쓴 것이 많았다. 오래전 일본 젊은이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을 했을때 한국출신 무도인인 최배달(최영의)선생이라는 대답이 많았음을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은 '극의(克意)'의 마음인 사무라이정신에 대한 애정이 많은듯 하다. 공부방법에 관한 책을 쓴 저자들은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사법시험에 합격한 인재들이었는데, 일본은 독일로부터 판덱텐식 법체계를 받아들였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법체계뿐만 아니라 사회조직의 운영메뉴얼까지 받아들인 처지라서 일본인이 쓴 공부법에 관한 책이 한국의 수험문화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짐작할 수 있겠다.


항상 일본인들의 심중에 깔려있는 기계적인간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이 그런 일본의 문제를 아직 해소하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는 유감이다. 혹자는 노벨상수상자가 많은 일본이 교육이나 창조적인 과학발전에 문제가 없는듯 하다고 말하지만 일본은 창조적과학연구와 자신에게 어울리는 겸허한 위치와의 부조화가 노벨상과 실용성의 부조화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든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위치'라는 표현은 일본인들을 적나라하게 분석한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R.베네딕트 저]에 나온다. 일본인들의 기계적 계층의식과 다양성으로 가는 길을 막는 사회분위기는 일본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알려준다.

한국의 인권의식에 치명적이었던 유신헌법의 초안을 박일경이라는 법실증주의 헌법학자가 만들었다. 법실증주의라는 것은 법이 깊은 곳에 내포하고 있는 사회나 인간의 기본가치보다 법조문 자체를 중시한다는 법이념인데, 이를 따르면 '악법도 법'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독일에서는 나치정부이후에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은 반성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은 사회의식이 계몽이 안 되어있는 한계탓에 법조계가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분야로 남는데 많은 기여를 한듯하다.


몇일전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저지를 시도한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70을 바라보는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에 동조하지 않는 이유는 당연했다. 보수적인 일본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원인이 있다. 공부법서부터 사법조직의 운영이나 심지어는 재판활동중의 판례(case)까지 일본의 것을 참조해야 하는 한국의 사법현실 자체가 '적폐'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생각의 방식이 많이 다른 젊은 판사들의 개혁적인 생각은 계층제분위기가 강한 사법조직안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다. 아마 늦은 나이에 암기식, 기계적공부를 해야하는 내 자신 만큼이나 사법부는 답답한 현실에 놓여있는듯 하다. 

2017년 4월 22일 토요일

한국중소기업의 그때 그 사람들

http://v.media.daum.net/v/20170423004448933

배는 항구에 있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몇년동안 고시공부나 공무원시험을 보아서 합격한 인재들이 시험을 합격하고 나서 이제 '떠나가는 배'가 될 것인가 아니면 태풍의 피해를 입지않는 거대한 방파제가 보호하는 새로운 '정박지'로 숨어버릴 것인가는 한국사회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전한 곳을 찾지 못해 찾아간 중소기업들이 정말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였다는 사실은 크게 공감하는 면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젊은이들이 별로 없었고, 아재들이 젊었을때 그랬던것처럼 아직도 권위주의와 경쟁의 습관에 시달리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좀 신기방기한 것은 고위직관리자나 대표보다 하층관리자들이 권위를 내세우거나 해서 일터를 암흑세계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는데, 그럴때마다 성장기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젊은 시절에 무슨 일을 했는지, 건강상태가 어떤지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다음은 50대 근로자나 관리자들의 몇가지 사례인데, 왜 중소기업이 마음 편하지 못한 곳이 되었는지 잘 이해하게 해 준다.

1. A씨는 학교를 다닌 형편이 안되어 직업학교를 다녔는데, 기숙사담요로 가로막힌 옥상에서 매일 군기교육과 몽둥이질로 방과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의탁할 곳이 없어서 찾아간 직업학교는 무서운 곳이었고, 입사한 회사에서 실무기술을 배우는 동안 욕과 구타를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A씨가 말하기를 유명한 H공대 출신의 젊은이가 같은 회사에 입사를 했는데, 그 젊은이에게 A씨가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는지는 듣지 못했는데, 아마 그만두었어도 문제가 되는 것이고  견디고 함께 간들 비숫한 기계적 인간으로서의 모조품이 만들어졌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2. B씨는 꽤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대표인데, 크게 성공한 사례이다. 어렸을때 부친이 시골 부자집의 마름(머슴,하인 / A farmhand)으로 천대를 받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신분이 없어진 시대였지만 고착화된 시골의 분위기는 떠나지 않으면 머슴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여서 B씨는 분노의 젊은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고학으로 대학교를 마치고 회사를 설립했는데, 가망이 없어보여서 동업자들이 모두 떠났고,  혼자 고군분투를 하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회사가 크게 성장하였다고 한다. 고생이 뭔지를 아는 B씨는 직원들의 처우를 구글(Google) 못지 않게 해주는 것이 목표지만 새로 시작한 사업에서 대기업과 경쟁하느라 역시 미래가 안보인다고 한다. 대규모경제의 법칙에서 대기업에 밀린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B씨는 성공하자마자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에 전망이 좋은 거대한 자택을 마련해서 그때 그 사람들이 다 올려다보도록 했다는데, 그때 그 사람들이 많이 잘못했던 것 같다.

3. C씨는 선량하고 마음이 약해보이는데, 늘 눈에 살기(殺氣 / A thirst for blood)가 있었다. 항상 신앙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C씨는 군출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복종적이다. 하지만 그 참는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동료들에게 섭섭한 일을 많이 해서 동료들이 안 좋아하는듯 하다. 자신이 군에 있는동안 구타와 욕설을 당하면서 하급자생활을 보냈는데, 상급자가 되니 구타와 욕설이 없는 군대가 되었다고 몹시 섭섭해(?)했다. 그 때 그 시절의 고통을 해소할 기회가 없어진듯 했다.

4. D씨는 중간관리자인데, 직원들에게 매몰차게 대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본결과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항상 열등감에 쌓여 있었다. 그 열등감을 권위를 내세워 회복하고자 했다. 그래서 권위주의정부시절의 박정희전대통령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비숫한 사람이 되고자 마인드 컨트롤을 했는데, 3천만이 아닌 30명만 자신의 밑에 있어도 30명의 카리스마있는 지도자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하고 있었다.

5. E씨는 고객을 응대하는 회사의 중간관리자다. 항상 고객에게 비굴한 웃음을 띄며 응대하는 것에 대해서 굴욕감을 느꼈다. 새로 들어 오는 신입사원들에게 그런 마음을 해소할려고 하니 신입사원들에게 고객만족을 핑계삼아 매우 권위적으로 군림하였다. 직원이 마음 편하고 자연히 웃는 얼굴이 되어야지 고객도 편안함을 느낀다고 충고했다. 이해는 하지만 뭔가 말 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답답한 느낌이었다. 아마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는듯 했다. 하지만 '내가 당한 것 만큼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심정을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6. F씨는 60대인데, 매우 부자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특수한 부대에 입대를 했다고 한다. 그때 많은 구타를 당했는데, 그 트라우마때문인지 항상 마음이 온전치 못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폐인취급을 했지만 그다지 인격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서 근근히 일자리를 놓지않고 있었다. 역시 신입이 오면 F씨와의 싸움을 한차례씩 거쳤는데, F씨는 이것이 일상화되었지만 신입들은 색다른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것이다.

7. G씨는 70대의 대표인데, 나름 지혜롭게 회사를 운영할려고 노력한다. 신입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단 회사의 마당을 청소한다. 그리고 신입이 마당을 가로질러올때 서로 인사하고 대화를 한다. 이 신입사원이 청소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 보면서 신입의 인격을 평가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이 노인이기때문에 늙으신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드리는지 집중해서 질문해본다. 혹시나 회사를 가부장적으로 운영해나가는게 아닌가 해서 살펴보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참 좋은 대표분같았는데, 문제는 50대의 중간관리자가 자신이 '휘어잡을 수 없는'신입이 오면 퇴사시켜버린다는 전통이 있었다.

8. H씨는 어떤 업계에서  이를 갈며 성장했다. 나중에 나도 이런 업체를 만들어서 인생의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각오로 회사를 차렸다. 역시 항상 박정희전대통령의 카리스마를 자신에게 투영시킨 세대였다. 매우 권위적이고 부하직원들을 무시했다. 그 문제를 지적하자 자신의 마음을 송곳처럼 찌른다고 나를 너무 싫어하였다. 마음이 아픈 것은 부하직원들이 대부분 배신하였는데, 본인도 본인에게 배신당하여 사업이 실패하고 길을 걷다가 나를 만나면 다른 길로 피해서 돌아가기 일쑤였다.

9. I씨는 조그만 생산업체의 대표인데, 수출도 한다. 영어를 전공했었기때문에 무역에 유리하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시절 자신의 특기인 영어를 이용해서 작은 제조회사를 차렸다. 대기업이 손대지 못하는 틈새시장을 찾아서 성공했다. 이제 회사를 혁신을 하고 성장시킬려고 노력하는데, 창업맴버로 함께 한 50대들이 그 길을 막고 있다. 권위와 밥그릇싸움에 몰입하여 똑똑한 신입이 오면 내쫒고 복종하는 하인만 신입으로 받아들인다. 창업맴버에 대한 동지의식과 회사의 미래사이에서 항상 갈등이다.  

언젠가 창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유심히 살펴보는 문제인데, 한국사회의 지나간 역사가 주는 트라우마는 매우 큰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이 정경유착이란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 권력이 기업에  대해 자율성을 억압하는 전통이 컸기 때문이다. 성장할려면 유착해야 하거나 초인간적인 정신으로 독립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유한킴벌리같은 회사는 초인적인 윤리의식으로 떳떳한 회사를 유지해나가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더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는 무엇인가 플러스알파가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공기업이 최순실의 기부금요구에 떳떳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착이 필요없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착한 회사는 그래와서 성장을 한 것이고.

한국의 쓸모없는 정치적 정실주의, 패거리문화는 내 자신을 온전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정신적인 억압을 하였지만 항상 그렇듯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항상 스포츠에 특기를 가지게 만든 점에 대해서,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공부하게 해 준 지난 정치지도자들에게 역설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인간을 좀 더 인간답게 여길 필요가 있다. 몇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는데, 원인과 결과는 시차를 두고서 반드시 연계가 되어 있다. 일본사회가 일몰국가(Sunset nation)가 되어가는 이유는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전통때문이다. 어떻게보면 한국사회보다 일본사회는 그런 적폐가 더 심한듯 하다. 한국에서는 보수가 무너졌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역병처럼 국가의 주요세력으로서 창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적인 사회통합과 협동의식을 주제로 한 내면적인 사회통합의 결과는 다르다.

한국의 다음 정부부터는 인간에 중심을 둔 정치를 해야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을것 같다.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Sub enemey of Korea / 부적(副敵) 북한

오래전 뜻하지 않게 물려들어간 이념문제로 인한 오해때문에 힘들어지자 문제와 인과의 근원을 찾아다니다 결국 대통령에 관심이 귀착되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과 종교적 성향으로 발생한 정책의 오류를 직관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많이 유익했다. 그것은 북한의 김위원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집권적 권한을 가진 정부수장일수록 책임의 원인은 크게 마련이다. 국민의 지지를 못 받아서 그렇지 내 생각이 남북한의 정치지도자들보다 못할게 뭐 있겠느냐 하는 배짱으로 밀고 나갔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끌려 들어간 것이다.

황장엽 북한 전 외무상을 망명시킨 한국 공작원인 고 이연길선생을 만난 자리에서도 도대체 황장엽씨가 왜 망명 결정을 했을까.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과 황장엽씨가 고난의 행군시기에 대한 책임문제로 갈등관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인과를 계속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수직관계의 정점(the top)에 관심을 가지다보면 그 아래서 일어나는 일이 별것 아닌것 처럼 느껴지는 성향이 있는 법이다.

북한은 한국의 주적(主敵 / main enemy)일까?

이번 대선에서도 이념문제의 표상인 북한에 대한 주적논쟁이 어김없이 이슈화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북한은 한국의 주된 적이 될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실용적인 해석으로도 그렇지만 곤란한 처지에 있는 국가를 상대적, 적대적 목표치로 삼아서는 안될 것 같다. 한국민들의 경계심섞인 관점을 북한에 묶어두면 더 큰 문제에 대한 관심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종교문제를 계속 거론하는 이유는 이념이나 종교가 단순히 나쁘다는 문제가 아니다. 발전적 사고를 억제하는 관념이라는 생각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이 과거지향적이듯 한국 보수진영의 정신은 대북문제(versus North korea)에만 얽매여 있는듯 하다.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가 대북문제를 포함해야 옳다는 생각이다. 70년을 한결 같은 말을 해서 국민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 혁신과 멀어진 북한이 그런 고민을 가장 크게 안고 있고, 동북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다. 

2017년 4월 18일 화요일

마법사 에르도안(A Wizard Erdoan)

드디어 터키대통령 에르도안이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한 한국의 유신체제와 같은 신(新)대통령제 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개헌을 성공시켰다. 더구나 이슬람국가에서 종교가 도와주고 있으니 에르도안의 독재는 이제부터 부작용을 나타내기 시작할 것이다.

에르도안이 총리로 있은 지난 10여년동안  터키가 경제적으로 성장한 이유가 의원내각제 정부체제와 총리 에르도안이 비교적 합리적인 정치를 시도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터키 국민들은 알리가 없다. 종교적 분위기가 익숙한 나라답게 공과(供誇)를 체제보다 신과 같은 개인에게 돌리는 패착을 두었으니 터키의 미래는 이제부터 내리막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르도안의 권력욕구는 이제 물을 만난 물고기와 같을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신격화를 무너뜨려버린 한국에 비해서 터키는 분명히 동생이다. 형제의 나라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러시아의  푸틴은 이 사태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러시아와 터키가 진정 형제의 나라가 되었다고 할 것인지. 때늦은 개발독재의 개노답(답이 안나오는)형제의 끈끈한 인연이 시작 되었다고 할른지는 모르겠다. 이슬람국가가 대부분 그렇듯이 터키는 신정일치(神政一致)가 쉬운 나라다. 비합리성이 지배하기 좋은 나라라는 의미다. 배교자(renegade)에게 냉혹한 종교적 특성과 민주적 요구나 저항세력에 냉혹한 정치적 독재가 합체(into one)되었으니 많이 혼돈스러운 시대가 시작 되리라.(나도 무슨 예언자 같은데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니 그렇다)

2017년 4월 16일 일요일

대 국민공작 / 알파

국정원이 알파팀이라는 민간여론조작팀을 운영했던 사실이 공개되었다.


10여년전 이념과 통일문제를 언급하면서 내 다음 블러그의 닉네임을 알파맨이라고 표현했는데, 알파라는 어휘가 국정원의 공작활동에 사용된 것을 보면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이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실용적 사상의 세계를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알파맨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던것 같다. 이념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 만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상대와 골아픈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면 정치적 결정에 패거리와 이익집단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한국에서 특별한 조직도 없이 하물며 대중에게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은채로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응하는 것이 참으로 고달펐던 것 같다. 

몇일전 여론조사를 명분으로 한 전화가 걸려왔다. 투표를 할 것이냐, 어느 대선후보에게 투표를 할 것이냐, 이념적 성향은 어떻게 되느냐, 박전대통령의 사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이었다. 박전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얼마되지 않아서도 이상한 여론조사전화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데다가 대통령이나 이념과 관련된 문제는 내 의견이 그냥 흘러가는 오천만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문제는 오래 남길 수 있는 글이 아니면 대답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도 이상한 습관이 들은게 상대방의 심중을 알려고 노력하고 거기에 맞게 대답하는 자기 검열의 습관이 생긴듯 하다.


지금은 국가를 말아먹은 세력들이 되었지만 한 때 홀로 떠돌아다니며 할 말을 하는 내 자신에게는 대통령,여당의원들,정보기관이 대응하기 벅찬 상대였던 것 같다. 내가 글로써 언급했던 동독공작기관인 슈타치에 관한 도서가 의원들이나 정보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때도 상대가 너무 복잡하게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자리를 얻을려고 찾아간 고용안전센터의 컴퓨터나 지방 도서관의 컴퓨터에서조차 내 블러그가 유해블러그로 접근차단되어 있다는 사실에 좀 놀랬다. 두 번 놀랬다. 세 번 놀랬다. 증거물을 체취하여놓고 생각해보니  내 자신에게는 신념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한 편으로는 왜 사람들이 이념이나 종교에 목숨을 거는지가 이해되기도 했던것 같다. 한 편으로는 확실하게 상대를 모르면 확실하게 대응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가원칙같은 것도 지키는 편이라서 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또 한 편으로는 전체를 위해서는 대외적으로는 도와줘야 할 부분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현실을 말아먹고나니 그 생각도 참으로 순진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공작이라는 것이 상대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아도 상대의 에너지를 분산 시킴으로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일도 하는 법이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시진핑 주석이 북한에 대해서 강경한 태도를 취할 것을 예고한 후에 김정은 위원장의 마음이 형인 김정남의 암살까지 이르게 한 것처럼 경제학에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만큼이나 공작분야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다만 보이지 않는 손을 누구에게 사용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정보기관에 관해서는 많이 언급했지만 대통령이나 정보기관은 국내정치나 이념에 너무 민감하지 말아야 한다. 이념이 문제가 된다면 좀 더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대응해볼 문제다. 조금 좌편향적인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복지문제나 정경유착문제,반부패문제의 척결을 주장하는 국민여론은 이념과는 전혀 무관하고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생각이라고 이해하여야 한다. 정보기관은 이념을 빙자한 대통령의 사리사욕에 이용 당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정보기관원들의 자부심의 한계이기도 하다. 중도적 실용주의를 내세우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서인지  야당쪽의 누군가도 나에게 엉뚱한 공작전 비숫한 시비를 건적이 있다. 특히 박 전대통령의 문제에 관해서 그랬는데, 내 입장은 그렇다 대통령은 추대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을 내세워서 국가를 개인적인 이익을 창출하는 원천으로 사용한 패거리나 이익집단을 척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다. 이념문제도 아니고 어느 한 편의 문제도 아닌 부패문제와 비합리성을 척결하고 국가를 안정화 시키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정보기관이나 대통령이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2017년 4월 15일 토요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을 것 같다

일은 적당히 즐거워야 한다. 일이 노역이 되면 일하는 삶은 의미가 없어진다. 일하는 순간도 의미가 있고, 성취한 결과도 의미가 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Fromm, Errich, 1900.3.23 - 1980.3.18)은 건강한 사람은 충분히 사랑을 하고, 창조적이고, 발달된 이성의 힘을 가지며, 세상과 관련을 맺고, 안정적으로 정착해서 살며, 자아와 운명의 주체 또는 행위자라고 말한다. 프롬은 건강한 성격은 생산적인 지향성을 띈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가능성을 실현하려고 하며,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노력함으로서 자아를 실현한다고 말한다.

간혹 일터에서 노인분들과 갈등을 겪는 일이 있었다. 이해를 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애증섞인 충돌이 있곤 하는데, 요즘같은 노인분들이 많아지는 시대에 노인과 관련된 문제는 많은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듯 하다. 간혹 대선후보들이 노인분들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여서 역풍을 맞기도 하는데, 노인이 많아지는 한국사회는 이제 당위문제이기 이전에 현실문제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노인문제는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 현실적인 국민인 노인분들이 앞으로 어떻게 국가와 사회에 참여하여 당신들의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노인이라서 문제가 있다." 아니면 "젊고 경험이 없어서 문제가 있다." 는 사고와 비평은 사회의 또 다른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간혹 노인보다 40,50대가 노인문제를 일으키는 당사자인 경우도 본다. 아마도 이상과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연령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분기점이기도 하는듯 하다. 내 경험으로는 꼰대심은 이미 마음 한 구석이 붕괴되거나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한 노인분들보다 중장년층이나 자신이 아직 젊다고 착각하는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노인분들이 심했던 것 같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라는 표현이 아니고 순리를 지나치게 거스르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과거는 참 나쁜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공리적(共利的) 사고나 협동적 사고를 갖기에는 정치현실이나 사회현실이 많이 나빴다. 노인분들과 충돌을 할때 노인분들이 항상 하는 말씀이 있다. 우리 세대가 경제발전을 이루어 왔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는 '더욱' 발전하기를 원한다. 그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민주적 정치일수도 있고, 더욱 지고하고 다양한 자아실현의 가치일 수도 있다. 노인분들이 이루어 놓은 경제적 바탕위에서 젊은이들과 노인분들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해 나갈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가장 정상적인 것인 것이다. 이제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한 대접이나 받아야 겠다고 생각할때가 진짜 노인이 된 때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노역'이 아닌 '노력'으로 노년의 삶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일이다.

이제 서서히 노인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근로의사가 있는 노인은 일을 하는 것이 몸과 마음의 건강에 이로울 것이다. 옛날 노인분들은 호환(虎患)이나 마마보다 무서운 '노역'에 시달려 온 이유로 쉬어야 할 때를 찾는다. 만약 예를들면 요즘같이 연장근로를 포함하여 근로시간이 많은 일자리, 그래서 근로자를 구할 수 없는 현실을 노인근로자를 6시간 정도의 무리하지 않는 단시간 근로자로 고용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인분들과 기업과 국가가 모두 이로울 것 같다. 일터는 노역이 아닌 자아실현의 장소가 될 것이다.

한국사회는 젊은이들과 노인분들에게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듯 하다. 항상 언급하지만 철학이 없고 경쟁만 있는 사회의 결말은 퇴보다.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지 행복을 추구할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그것들이 왜곡되어 전쟁이나 인간발 재앙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건 지혜롭지 못한 실패인듯 하다. 언젠가 막연하게 "이 시련이 지나면 행복해지겠지"하면서 자신의 현실을 쥐어짜는 사회가 한국사회고 한국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사회의 모습인듯 하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퇴보하는 현실은 경쟁적 교육이 만든 아니면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더 철학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2017년 4월 14일 금요일

피기도 전에 늙는 꽃 / 통일전망대

시간날때 지인들의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성공과 실패에 관한 관점이 돈과 출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중 불행한 것이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정치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누군가 어느 곳에서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치적 출세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0여년동안 많은 중요한 정책적인 논제들이 개인적인 판단이나 이기적인 판단으로 엄청난 재앙으로 변한 결과를 보아왔었기 때문에 공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훈련되어 있지 않은 인물은 절대 책임을 질만한 위치에 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몇일전 동해안의 통일전망대를 다녀오다 굳게 닫힌 금강산으로 가는 길의 게이트를 바라보니 한숨만 나왔다. 반드시 통일이란 거국적인 관점이 아니더라도 꿈에 그리던 부친의 고향(통천군 방포리)이 매우 가까운 곳이라는 점, 경제협력이 성숙해지면 북한에 조그만 업체를 차릴 것을 구상하고 있는 점, 그리고 최고의 관광명소가 눈앞에 있는 점등이 마음을 쓰리게 했다. 그러니 이념이나 종교적인 관점으로 남북한의 대립을 선도하는 양편의 정치지도자들이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의혹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적어도 나는, 나도 좋고 국가와 사회도 좋고, 남북한이 모두 이로운 윈윈게임의 실용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가장 정상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인물이 정치지도자가되어 남북한의 관계를 경직시키는데 놀랬고, 특히 개성공단 철수라는 결정이 나왔을때 놀랬고, 나중에 최순실의 결정이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에 더욱 놀랬다. 두 번 놀랬다. 세 번 놀랬다.


정치지도자들이  반사회적인 성격을 갖는 이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이다. 몹시 화난 마음은 그렇게서 달래는 방법도 있는듯 하다.


북한경제에 관해서도 오랫동안 참견을 하고 있지만 젊고 패기 넘치는 기분일때와 좌절과 절망의 기분으로 의기소침해졌을때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 어리석은 정치지도자는 국민을 오랫동안 지치게 만든다. 어리석다고 표현하지 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이유는 많은 개인적인 환경들, 가정환경,노화,종교, 건강,교육등을 생각해보면 이해되고도 남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도 국민도, 특히 남북한은 피기도 전에 늙으면 안되는 것이다. 

남북협력으로 다시 젊어질 수 있는 활력을 얻어낼 수 있는 길이 있다. 50여년전 한국은 2차산업과 수출주도형 산업을 활성화시켜 빠른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했는데, 북한도 이와같은 과정을 거치면 된다. 한국은 북한의 자원을 수입하고 소비시장이 되어주며 북한도 자국의 2차산업의 소비시장이 되며, 북한은 한국의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생산품의 소비시장도 되어 줄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활력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가 사회적인 공감대를 빨리 형성하지 않으면 사회적 관점은 다시 국내적(局內的)으로 협소해질 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생각, 특히 정치지도자의 생각이 옆집 아이보다 내가 출세했다거나 더 돈이 많으므로 성공했다는 찌질한 철학으로 뭉개질 수 있을 것 같다.

전의 정치지도자(지도자라고 부르기도 챙피함)의 생각때문에 뒷목을 잡았던 적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자신이 믿는 종교가 공산주의를 싫어함으로 북한을 적대시해야 한다는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좀 괴랄했다. 다음 정치지도자는 좀 대국적(大局的)인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난 정치지도자가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어 무력화시키는 광경을 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심하게 당한듯 하다.

2017년 4월 13일 목요일

가보지 않은 곳 /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군인이 대통령이 되면 군인을 우대하고 국가정책이 군사적인 집권성을 띈다. 이념적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정책은 기업이나 노동자 어느 한 편으로 집중한 경제정책을 편다. 건설업을 하던 기업가가 대통령이 되어 토목건설로 나라를 뒤집어 놓은 사건도 있었고, 궁내부(宮內府)를 벗어나지 못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내치(內治)와 외치(外治)를 모두 비공익(非公益)적으로 운영한 사례도 생겼다.

인간이라는 것이 자신이 보고 들은 세계에서 살수밖에 없는 한계를 생각해볼때 한국정치에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이 소외받는 이유는 간단했다. 비정규직의 실상이나 중소기업의 실상을 진하게 겪어 본 후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 정부때 나 자신이라도 겪어보고 와서 할 말을 다시 하자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비참했고, 대통령은 남은 여력마져 다 엎어버리고 떠났다.  

비정규직이나 중소기업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 번 밝혔지만 수요창출과 바탕경제의 활성화로 인한 국력신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가의 안정과 국민통합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지니계수가 커지는 등 통계학적으로 봐도 그렇고 직접 본 현실은 국민소득 30000불 가까운 나라가 아니었다. 이념문제로 모든 개혁시도를 억눌러버린 효과가 국가기반이 흔들리는 효과로 귀착되었음을 현장에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어쩌면 앞으로 일어날 인구감소현상은 장기적으로 스스로 죽여가는 민중들의 자멸적 시도일 수도 있다.

새로운 대선후보들이 아직도 이념적 편향성을 띄거나 근로조건이나 중소기업의 입지에 관한 정책에 대해서 별로 말하지 않음을 탓하고 싶다. 외교, 국방, 문화같은 국가의 거대한 세계들이 대선후보의 원대한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바탕에는 많은 국민들의 최소한의 생존이 필요조건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절한 삶을 사는 국민이 보이는 나라에서 원대한 미래는 없다. 북한처럼 국민현실과 국가이상이 괴리되는 현상이 한국에서도 발생하고 있음은 심각한 문제다. 

케말파샤의 버리기

이념과 종교를 양성적이고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닌듯 하다. 무엇을 믿던지 자신이 일단 자신의 주인이 되고 볼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 못하고 '의존'하게 되면 나약한 속성을 비집고 들어오는 음성적인 생각이나 이권(利權)이 개입된 부정함이 있게 마련인데, 실상은 그것들이 문제인듯 하다. 인생의 어려움에서 중심을 잡을려고 돌아오는 곳, 그것들이 '믿음'의 커다란 이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처지에 빠졌을때부터 새벽에 빈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겼을때 총구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질려는 습관이 생겼는데, 이념이나 종교로 돌아오는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곤 했다.  

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 케말 아타튀르크(1881 - 1938 터키의 군인, 개혁가,정치가,초대대통령)은 자식을 두지 않고, 이혼을 하였으며 먹는 음식이라고는 볶은 이집트콩과 락키라는 알콜이 많은 터키 술이 전부였다고 한다. 아마 할 일은 많은데, 이것 저것 신경써야하는 신변에 대한 정리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케말파샤랑 자신을 동일시하던 지도자들이 자식때문에, 아니면 애착과 욕망때문에 케말파샤를 넘지 못한것을 보면 터키 국민들의 케말파샤에 대한 애정은 이해할 것 같다. 그러니까 케말파샤는 '애국애족(愛國愛族)'의 마음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버린 것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2017년 4월 12일 수요일

꽃을 들고서라도 때려야 하는

지난 정치적 행위들이 매우 저열했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험도 시간 지나면 잊혀질까 두려운 점이 있다. 나쁜 과거에 대한 반성을 막는 가장 우려할 사건들은 새로운 정치후보들이 네거티브(-)공세에 빠지는 일이다. 특히 실용주의라는 명분으로 아(我)를 버리지 못하고, 하물며 목적도 잊어버리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여 공약(空約)을 남발하면 안될 일이다. 5년이란 시간은 짧고, 그 댓가는 명확함을 확인하면서도 상대성에 빠져들어 쉽게 청산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듯 하다.

원래 인간은 경쟁적이다. 그것은 천성인듯 하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에 이런 속성을 순화시키지 못하면 어느 정도 인격이 성숙할 나이에 오히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저감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 더욱 경쟁적으로 변할 우려가 있는듯 하다. 사회의 저변에서 중년 이상의 세대가 꼰대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하여 눈물나는 점이 있다. 누구의 탓이라고 말하기 전에 오랫동안 받아온 사회교육이나 관습등의 족쇄에 물려있는 탓이다. 노예들이 서로의 족쇄를 자랑하듯이 저열한 경쟁에 빠져드는 것은 사회의 엘리트층이나 사회적인 대접을 못받는 계층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어설픈 위치에 있느니 차라리 일반 노무자들의 속성은 훨씬 순수한듯 했다. 그나마 수직적인 관점중에서 위는 있으되 아래가 없는 사람들은 마음 한구석이 비어있는, 그래서 좀 더 행복한 점이 있다.  

하느님이 온화한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말했다.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그 전에 알아둘 것이 한 가지 있다. 네가 갖고 싶은 것을 얻게 되면 네 경쟁자도 그것을 두배로 얻게 될 것이다. 자 이제 소원을 말해보거라."
그가 소원을 말하기 시작했다.
"제 첫 번째 소원은 거액의 돈이고, 두 번째 소원도 거액의 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소원은 저를 반죽음이 되도록 때려 주십시오!"

지난 시간의 문제점을 청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재앙은 깊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