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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5일 목요일

북한의 내면세계와 개혁노력


과거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전 세계가 역설적인 '기적'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시절을 맞아 수백만의 인민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북한체제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당시에 한국으로 탈북한 북한민들을 만나보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무슨 일이라도 해서 얼마간의 달러를 중국 브로커를 통해서 북한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보내는 달러의 60퍼센트를 중국 브로커들에게 지불하였는데, 북한의 가족들에게 잘 전달되리라는 보장이 없었지만 그래도 보낼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북한민들의 삶은 그럭 저럭 또 한 고비를 넘기는 '처참함'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 당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과 그 권력을 합리적으로 사용 못하고 퇴락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 많은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많이 다른듯 하다. 

개인적으로 결핍상황으로 내 자신을 내 몰아 본적이 있는데, 이유 있으면 익숙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하물며 북한 사회의 어려움이 외세의 간섭때문이라고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사상적으로도 해결한 북한이 또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운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이 즈음에서 국제사회는 북한을 취급(deal with)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북한이 개혁 개방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자존심'은 버리지 않을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래전 한국의 인디밴드가 생방송에서 성기를 꺼내는 방송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다음날 북한 방송에서 천하의 개x놈들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있었다. 북한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정신을 풀어해친 '무방비 상태'를 의미할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는 북한 인민들을 외세로부터 보호하고 결속시키는 수단으로서 사용된 일면이 있다. 그런 북한 체제를 하루 아침에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은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잘 모른 탓일수도 있다. 결국 푸틴 대통령에게서 미국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빅딜(big deal)전략을 꼬집는 표현이 나온 것은 당연한듯 하다. 다음 협상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연착륙으로 유도할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항상 느끼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처럼 아(我/ego)에 빠져있지는 않는것 같다.

그리고 북한이 곤란에 빠지는 문제는 정치제도와 더불어 국제환경, 지리조건, 기후조건등이 만들어낸 종합적 결과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북한은 이런 문제를 천천히 수순을 밟아 해결할려는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Obviously, part of the answer depends on differences in human institutions. The clearest evidence for the view comes from parts of countries that divide essentially the same environment but have very different institutions and, associated with those institutions, different per-capita GNPs. Four flagrant examples are the comparison of South Korea with North Korea, the former West Germany with the former East Germany, the Dominican Republic of Haiti, and Israel with its Arap neighbors. Among the many "good institutions" often invoked to explain the greater wealth of the firstnamed country of each of these pairs are effective rule of law, enforcement of contracts, protection of private property rights, lack of corruption, low frequency of assassinations, oppeness to trade and to flow of capital, incentives for investment, and so on.

-omit-

But there is increasing recognition that this good-instituions view is incomplete - not wrong, just incomplete - and that other important factors need addressing if poor conuntries are to become rich. This recognition has its own policy implications. One cannot just introduce good institutions to poor countries like Paraguay and Mali and expect those countries to adopt the instittuions and achieve the per-capita GNPs of the United States and Switzerland. The criticism of the good-institutions view are of two main types. One type recognizes the importance of other proximate variables besides good institutions, such as public health , soil-and climate-imposed limits on agricultural productivity, and environmental fragility. The other type concerns the origin of good institutions.

확실한 답 하나는 그러한 경제적 불균등이 부분적으로 인간제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가장 명확한 증거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른 제도 때문에 1인당 국민 총생산이 차이 나게된 네 쌍의 나라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남한과 북한, 서독과 동독, 도미니카 공화국과 아이티, 이스라엘과 아랍 주변국들인데, 비교를 통해 명백한 예를 들 수  있다. 각 쌍에서 먼저 예시한 부유한 나라들을 설명할 때는 자주 거론 되는 여러 '훌륭한 제도들'이 있는데, 효과적인 법률 체계와 계약 집행, 사유 재산권의 보호, 부패의 부재, 낮은 암살 빈도, 무역과 자본 흐름의 개방성, 투자를 위한 장려 등이다. 

- 중략 -

하지만 좋은 제도에 대한 관점이 틀리지는 않지만 불충분하다는 것과, 빈곤한 나라들이 부유해지려고 한다면 다른 중요한 요소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이 인식은 그 자체로 정책적 시사를 내포한다. 파라과이나 말리와 같은 빈곤한 나라가 단지 좋은 제도를 채택하는 것만으로 이들 나라들이 미국과 스위스의 1인당 국민 총생산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좋은 제도를 둘러싼 관점에 대한 비평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좋은 제도 외에도 공중위생이나 농업 생산성에 영향을 끼칠 토양과 기후적인 제한과 환경적 민감성과 같은 다른 직접적 가변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형은 좋은 제도의 기원과 관계가 있다. 


- JARED DIAMOND의 [GUNS, GERMS, AND STEEL]중에서 -

2019년 4월 22일 월요일

에피스테몰로지 / 콩 심은데 콩

1798년 영국의 지도제작자 제임스 레넬(James Rennell)은 지도를 제작하면서 서아프리카 중앙을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산맥 하나를 만들어 넣었다. 거기다가 나이저강이 남쪽 기니만까지 다다르지 못하는 근거까지 보충을 시켜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계를 부지런히 창조해내고 있었다. 이 산맥은 멍고 파크(Mungo Park)라는 사람이 만든 공식적인 아프리카 지도에 등장했는데, 파크는 원주민들에게 '콩'왕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데서 영감을 얻어 '콩'산맥이라고 명명 하였다.

나중에 있지도 않은 콩 산맥은 지도제작자들의 손에 의해 점점 높아지고, 눈으로 뒤덮힌, 시작은 미약했으되 장대한 산맥으로 변해갔다. 지리학자(지도제작자)들이 서로 부지런히 베껴가면서 부지런히 산맥을 창조해나갔다. 콩 산맥은 유럽인들의 인식속에 100년 가까이 존재하다가 1889년 프랑스장교 루이 구스타프 빙어의 탐사에 의해 원래 없던 산맥임이 밝혀졌다. 

How did the mountains remain standing for so long - at once both falsifiable and unverifiable? The American scholars Thomas Bassett and Philip Porter have identified forty maps which show the Mountains of Kong in various stages of development from 1798 to 1892, eventually forming a range the size of a small African state. Faced with a lack of evidence to the contrary, cartographers copy each other - we know that.

But the fact that some of the most convincing representations of the Mountains of Kong appeared on maps many years after the Lander brothers confirmed that the Niger flowed into the Gulf of Guinea quite undermined the theory that we had enterd a new scientific age. As Bassett and Porter found, cartographic knowledge in the nineteenth century was still 'partly based on non - logical factors such as aesthetics, habit, [and]the urge to fill in blank spaces...'

 - SIMON GARFIELD의 [ON THE MAP] -        

실험정신이 한참 투철했던 청년시절에 종교단체나 유사한 성질을 가진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없던 일을 만들어가며 세상을 형성할려고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념이나 종교에 심취하면 행동보다 말이 많아진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가능한 관념보다는 행동에 친해질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다. 아직도 이념이나 종교에 친한 정치인들이 막말을 하거나 있지도 않은 일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좀 일찍 '깨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인문 사회과학의 인재들이 이념이나 종교와 친해지면 콩산맥보다 더한 이상한 창조를 하겠구나 싶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판타지만 가득한 세상에 국민들을 몰아넣을려고 한다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역사의 비연속성을 주창함으로써 그때 그때의 역사적인 조건을 탐색하여 더욱 본질적인 탐색을 할려는 시도를 하였다. 예를 들면 과학사는 갈릴레오와 뉴튼을 거쳐서 아인쉬타인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의 흐름을 중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단절 시키고 좀 더 해당 영역의 본질적인 부분을 보자고 하였다. 이런 인식 태도를 바슐라르는 에피스테몰로지(에피스테메와 로고스의 함성어)라고 하였다. 

사실 사기성이 있거나 기묘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럴듯한 말을 창조하여 현실을 구체화시키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에 있어서 나비효과와 같은 역사적인 연관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슐라르의 의도는 '그때 그때 다른 것을 봐야 한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좀 더 실증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도학자는 없는 콩 산맥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으며 만들어가고 있고, 프랑스 장교는 직접 탐험하여 없음을 확인하는 관념과 행동의 스타일 차이는 '이상한 인연'을 배척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북한과 알 카에다 / 점진적 변화

버스운전을 하면서 눈 여겨 보았던 것은 군중심리였다. 삶이 각박한 대중은 감정표현을 어떻게 집단적으로 하게 되는지 생각도 해보고, 그런 대중의 심리에 자극을 주는 선동적인 정치모델도 생각을 해봤다. 감정을 끌어내어 폭발시키는데는 이념이나 종교만큼 훌륭한 수단이 없을 것이고, 실제로 정치적 야망과 결합하여 그릇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지식과 교양이 있거나 희망이란게 엿보여 온건한 감정으로 추스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선동 정치가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사회적 불만이 있는 사람이나 소외계층, 노인들은 뜻밖에 군중심리에 잘 휘둘리게 될 것이다. 

저번 글에서 북한은 핵무장이 내부결속에 도움을 주는 면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지만 실제로 그렇다. 핵무장이 소외당한 국가의 신앙으로서 국민들의 의식세계와 자긍심등을 지탱해주고 있었다면 급하게 핵을 포기했을 경우 북한 사회가 개혁과 개방으로의 연착륙을 하지 못하고 급격한 붕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신앙의 힘이라는게 그런거 아닌가 한다. 실제로 확인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북한 군부는 핵무장을 급하게 포기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진정한 개혁과 개방을 위해서는 북한 내부에서 핵을 포기해도 되겠다는 '사회의 내면적 합의'가 필요한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이 핵과 경제를 함께 더 안고 가겠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수순을 기다리고 있는듯 하다.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 문제가 급하게 해결이 안된다고 비판을 하지만 한국에서도 '신앙'의 세계에 함께 물려 들어가서는 안되는 일이다. 정권을 얻고자 하는 욕망, 공산주의에 대립되는 종교적 감정이 개입이 되었다면, 그리고 북한에 대한 영원한 갈등관계를 기대하는 의도가 있다면 좀 차분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F.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는 "최고의 지성을 시험하는 척도는 상반되는 두 가지 사고를 한꺼번에 의식에 담고 꾸준한 작동을 유지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했다는데, 한국과 북한 문제에 대해서 단기적이거나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군중심리나 그것을 이용할려는 심리 이상으로는 해석을 할 수 없다. 남북협력이나 통일 문제는 한국의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뿐만 아니라 한반도민들과 세계평화를 바라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의무로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911테러가 있고나서 미국이 알카에다와 전쟁을 할 때는 공격적이며 변하지 않을려는 테러집단에 대응한 국민적 합의와 미국대통령의 결단이 있었다. 실제로 미국대통령은 결정을 내리기전에 개신교성직자의 조언을 구할 정도로 이면에 종교문화적 충돌, 즉 '믿음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북한은 많이 다르다. 북한 지도자에게는 그런 종교적 신념이 없는듯 하다. 심지어는(내 느낌인지는 모르지만) 이념적인 고집도 크게 없는듯 하다.  

He explained to me, at great length, how his global infrastructure platform benefited CIA operations. The assistance included cover for specific operational act, access to foreign targets both human and technical, and administrative support for specific operations. Was there anything this guy was not doing?

He happily, proudly answered my many questions. He talked and I took notes.

After we concluded our operational review, he wanted to stay and chat.

"What about al Qaeda? Why do they hate us?" he asked.

"They are afraid of us, afraid of globalization and what it means to their perverted, reactionary view of what their society should be. They fear that globalization and the free-market principles and liberal values that come with it will bury them. They should be afraid. Globalization is accelerating. There is no stopping it. Of course, they disagree with our policies, especially in the Middle East."

But globalization is driven mostly by the private sector," he noted. 

"You bet, and that,s why the private sector, irrespective of what country, has a critical role to play. The private sector, like al Qaeda and their affiliates, is a network of nonstate actors. This network can often respond to a threat better than a government."  

"What do you mean? Give me an example."

"Well, consider our response to 9/11. The only effective countermeasure that day didn't come from U.S. fighter jets but from a handful of private citizens on United Flight 93. They collected intelligence from friends and family via their cell phones. They learned about the other aircraft being used as suicide attack vehicles. So they overpowered the hijackers and stopped the plane from smacking into Washington, D.C. Those patriots transformed themselves from passive passengers into a self-organized network of none state actors. They saved hundreds, maybe thousands of lives. The U.S. government didn't save anybody that day.

"Another example is Afghanistan. Our allies were networks of nonstate actor, tribal militia scattered all over he country. Clergy and businessmen also played an important role.

그는 세계 전역에 걸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사회기반시설 플랫폼이 CIA의 공작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지원내용에는 특정 공작활동을  위한 위장, 외국인 표적에 대한 인적-기술적 접근, 특정 공작에 대한 관리적 지원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친구가 하지 않는 일이 있기는 할까?

나는 그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는 자랑스러운 태도로 기꺼이 대답을 했다. 나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기록했다. 우리가 공작에 대한 검토를 끝낸 후에도 그는 계속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했다. 

"알 카에다는 어때요? 그들은 왜 우리를 증오하는 겁니까?" 그가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우리를 두려워해요. 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모습 즉, 도착적이고 반동적인 그들의 사회관에 세계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두려워하지요. 그들은 세계화와 그에 다른 자유시장 원리와 진보적 가치들로 인해 자기들이 매장당하게 될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당연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세계화는 점점 가속되고 있으니까요. 결코 멈추는 일도 없을테고요. 물론 그들이 우리의 정책, 특히 중동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지요." "하지만 세계화는 거의 민간분야에서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가 언급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민간분야가 국가에 관계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민간분야는 알카에다나 그들의 하부조직처럼, 비국가활동단체의 네트워크입니다. 이 네트워크가 가끔은 위협에 정부보다 더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예를 들어 주시죠."

"그러면 911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생각해 보세요. 그날 유일하게 효과적이었던 대응은 긴급 출격하여 나라 전체를 감시하던 미국 전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에 타고 있던 소수의 민간인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각각의 휴대전화를 사용해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했죠. 그렇게 다른 항공기가 자살공격차량처럼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납치범들을 제압하여 그 비행기가 워싱턴 D.C.에 충돌하는 사태를 막았습니다. 그 애국자들은 수동적 탑승객에서 자체 조직한 비국가 행위자 네트워크로 탈바꿈한 것이죠. 그들은 어쩌면 수천의 인명을 구했습니다. 그날 미국 정부는 단 한사람도 살리지 못했어요."

"또 다른 사례가 아프카니스탄입니다. 우리 동맹들은 그 나라 전역에 흩어져 있는 부족 민병대, 비국가 활동세력의 네트워크였습니다. 성직자와 사업가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요.

- Henry A.Crumpton의 [The Art of Intelligence]-         



북한은 세계화에 대한 점진적 시도를 하려고 하고 있고, 그런 시도를 현실화시키기 위해서는 주변국들의 협조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9년 4월 5일 금요일

국가의 행복과 다양한 쾌락

언젠가 객지에서 직장을 다닐때 숙소를 유흥가의 중심에 잡은 적이 있었다. 가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주차장이 있는 숙소만 찾은 결과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숙소가 있는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유흥업소종업원들속에서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내모습이 부조화했다. 때때로 내가 빌딩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가 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좀 '다른' 환경이 매우 즐거웠다. 소방시설점검을 위해 내 숙소를 출입한 빌딩관리소는 여러가지 스포츠용구, 간편한 웨이트기구, 책이 빼곡히 들어찬 숙소의 모습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업소용과 숙소용으로 구분해주기도 했는데, 좀 섭섭했다.

아마도 종교적인 부패에 대해서 아주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이유는 '차라리 참을려면 적절히 개방하는 것이 좋다'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일어난 버닝썬클럽 사건등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클럽의 존재가 아닌 그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조직폭력과 연계된 마약이나 강간같은 범죄행위가 발생한것이 문제였다.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다양성의 명분으로 쾌락의 세계에 몰입해버린 결과는 결국 범죄행위로 끝을 보았다.

과거 이란의 팔레비왕조때 다양성의 선을 넘어버린 이란 정부를 응징한다는 이슬람 세력들이 종교지도자인 호메이니를 앞장세워 단조롭고 어두운 종교국가를 만들어서 이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퇴보시킨 사건은 현대인류역사에서 종교의 부정적인 발자취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현대사에서 객관성과 개방성, 다양성을 잃어버린 이념의 폐해가 극심했지만 중동지방의 종교는 이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갈등, 터키의 내부갈등, 특히 중동지역 주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사라진 이슬람국가(IS)는 인간의 행복과 다양성을 생각해보지 않은 종교적 완고함의 폐해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저번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이나 서구유럽의 민주주의적인 사고는 인간의 행복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도를 넘지 않는 다양성과 객관성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 지속적인 번영을 이룰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다양성'에서 행복과 쾌락을 얻는다. 다양성을 위한 '변화'에서도 행복감을 얻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며, 기업은 왜 이윤추구를 위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해야 하며, 왜 국가는 역동적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이유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다양성을 추구하여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검증되지 않는 결론에 과정을 묶어버린 이념이나 종교가 어둠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 것은 그런 만족감을 무시한 까닭이다.  

한때 이념때문에 발전의 가능성이 묶여버린 북한이나 종교적인 편향성이 사회일면에서 국가를 흔드는 한국이 서구유럽식 민주주의 발전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유는 더 크고 영속적인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습관을 가져다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길을 무시한 중국과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는 저번 글에서 서술한 바 있다.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행동경제학자로 알려진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THE UPSIDE OF IRRATIONALITY]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Now that you, dear reader, have a general understanding of how physical adaptation works (as in your visual system) and how adaptation to pain operates, let's examine more general cases of hedonic adaptation - the process of getting used to the places we live, our homes, our romantic partners,and almost everything else.

When we move into a new house, we may be delighted with the gleaming hardwood floors or upset about the garish lime green kitchen cabinets. After a few weeks, those factors fade into the background. A few months later we aren't as annoyed by the color of the cabinets, but at the same time, we don't derive as much pleasure from the handsome floors. This type of emotional leveling out - when initial positive and negative perceptions fade - is a proces we call hedonic adaptation.

Just as our eyes adjust to changes in expectation and experience. For example, Andrew Clark showed that job satisfaction among British workers was strongly correlated with changes in workers'pay rather than the level of pay itself. In other words, people generally grow accustomed to their current pay level, however low or high. A raise is great and a pay cut is very upsetting, regardless of the actual amount of the base salary.

지금까지 눈의 기능을 통해 우리의 신체 적응력과 고통에 대한 적응력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쾌락에 대한 적응을 알아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우리 집, 배우자나 연인, 그밖에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새집을 사서 이사를 가면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거실의 마루를 보면서 기쁨에 젖기도 하고, 라임색으로 꾸며져 있는 주방가구가 마음에 안들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지나면 이러한 감정은 익숙함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나면 더 이상 주방가구의 색에 화가 나는 일도 없고, 마루의 색에 기뻐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감정의 평형화, 즉 처음에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인식과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쾌락에 대한 적응'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눈이 빛이나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처럼 우리는 뭔가에 대한 기대치나 경험의 변화에도 바르게 적응할수 있다. 일례로 앤드류 클라크는 영국 근로자들의 직업만족도가 임금의 수준보다 임금의 변화에 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임금 수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존의 임금이 얼마인가는 상관없이 임금이 오르면 행복해하고 임금이 내리면 분노한다. 



- DAN ARIELY 의 [THE UPSIDE OF IRRATIONALITY]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