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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신을 믿는 신들

간혹 한국이나 외국의 거물정치인들이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듯 하면서도 이념이나 종교 아니면 자신이 살아왔던 경험에서 얻어낸 어떤 신념들을 맹목적으로 고수하는 것을 본다. 상황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자기 중심의 생각으로 국민을 응집시키기 위해서 폭압적이거나 교활한 수단도 심심치 않게 사용한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는 자아가 약한 정치지도자가 국민과 일체감을 가지지 못하고 국민과 자신을 갈등관계로 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몇일전 박전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읽는 [바람의 파이터]까지 문제삼았지만 과거부터 주욱 자신의 주관과 생각의 유연함을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교양보다도 무엇인가 자꾸 의존할려는 속성에 강한 불만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편이 어느쪽이냐를 문제삼기 이전에 나는 꾸준히 공리적인 남북한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을 기원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정치를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고  남북한을 협력하게 하거나 새로운 도약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강한 사람일까. 국민들이 신처럼 숭배하는 자격을 갖춘 사람일까. 하는 의문에 북한민들 말고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간간히 얻어내는 자료를 종합해볼때 신처럼 숭배받을 수 있는 어떤 경험이나 자질을 만들어 오지 않은 이유로 쉴새없이 인간적인 고뇌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 있어서는 대칭적이면서도 비숫한 처지에 있었던 한국의 박전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원래 인간이란 누구나 약하다.

신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나 각종 미신, 전기를 꾸며내는 사람은 인간의 약점을 너무 잘 아는거물급 사기꾼이거나 남은 물론 자신까지 속이는 정신이상자다. 그렇기 때문에 기형적인 자기암시와 타인암시를 행한다. 신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신'에게 통제, 조종당하고자 하는 사람은 병적 심리상태를 가진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 이 양자가 만나면 각종 미신이 만연하고 불건전한 부정적 암시가 활개를 치게 된다.

- 바이판의 [Clever Psychology]중에서 -

아마 국민이 정치지도자를 신으로 믿고 그 정치지도자들은 종교와 이념을 신으로 믿는 정신적 먹이사슬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편으로 여러기지 상황에서 민중들의 심리상태를 관찰해보는데, 대중은 상대적 박탈감, 욕망, 제대로 된 철학교육의 부재로 인한 열등감, 환상등과 친밀한듯 하다.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일본무도 중국무도 / 바람의 파이터

http://news.joins.com/article/22239116

박전대통령이 구치소에서 [바람의 파이터]란 책을 읽고 있다는 기사가 났다. 어릴때 방학기작가의 [타임머신]이란 만화를 재미있게 읽은적이 있고, 한국출신의 일본무도인 최배달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비림의 파이터]란 만화를 재미있게 읽었던적이 있다. 나중에 방학기작가는 소설로 [바람의 파이터]를 구성해 내놓았는데, 간간히 명상적인 내용을 삽입시켜 책의 내용이 좀 맘에 안들게 되었지만 재미는 있었다.

한때 일본 젊은이들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최배달(최영의)선생이라는 대답을 많이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인 출신인 최배달선생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민족적 편견을 이기고 남는 자기극복의지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한때 일본 첩보원학교의 지옥훈련과정과 그 과정을 겪은 인재들이 일본 정계의 주요인사들이 된 일본의 성향이 부러워 모방해보기도 한 경험이 있는데, 극의(克意)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유별난듯 하다. 아마 사무라이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는듯 하다.

[바람의 파이터]의 내용중에 최배달 선생이 태극권의 대가인 중국의 진노인이랑 겨루는 장면이 나온다. 태극권은 기(energy)를 사용하는 무술의 일종인데, 중국인들에게는 선도(禪道 또는 仙道)의 한 방편이자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서 사랑받는 무술이기도 하다. 한때 검도를 하면서 태극권을 잠시 수련해봤는데, 곡선을 사용하는 부드러운 무술의 특성은 좋지만 가장 싫어하는 부분, 종교적 몽상과 결부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 위험이 있는듯 해서 그만두었다.

일본무도는 당기는 성질의 굴근(詘筋)을 많이 사용하고 중국무술은 내뻗는 성질의 신근(伸筋)을 많이 사용한다. 한때 이어령 교수의 [축소지향형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지만 일본무도는 검도와 유도에서 보듯이 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고된 자기단련으로 두려움이 없는 무심(無心)의 세계를 지향한다. 한 편 중국무술은 매우 확산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듯 하다. 한때 [동방불패]라는 중국 문학의 대가인 김용의 무협소설에는 거세하여 초인적인 힘을 얻는다는 내용이 설정되어 있는데, 그냥 금욕하여 무공을 높인다는 내용이 그렇게까지 처절한 방법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몸은 약하고 헬스장 다닐 여건도 안되는 처지에 책만 읽고서 이것 저것 잠시 경험해봤는데, 그냥 수많은 사람사는 세상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2017년 12월 15일 금요일

군사문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武)를 이해해야 하고, 무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격훈련등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때로는 한국에서도 군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연장자들이 많은 집단에서 젊은 사람들의 충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군사문화가 주는 심리적인 부담감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군사문화는 집단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양보하는 대신 편리성이 있기 때문에 쉽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다른 방향의 생각을 막아버리는 불통의 도구가 되는 문제점이 있는듯 하다.


브라질 리우올림픽무렵 북한의 체육정책에 참견을 했다가 내 구글블러그를 김정은 위원장의 별장이 있는 북한의 원산에서 방문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스케이트나 사격은 국방체육으로서 북한에서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있고, 나는 그 분야에 출중한 실력을 갖출 자세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지옥훈련이나 무인(武人)의 자세같은 경직된 생활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생활현장에서 그냥 부드럽게 움직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북한은 항일 유격전 국가의 정신적 전통을 이어받았다는 하루키교수의 말이 있었지만  같은 한민족으로서 항일무장투쟁의 정신적인 구속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음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근로시간단축문제

몇년전에 꽤 알려진 중기업의 생산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입사할때 장비기사(지게차)로 들어갔는데, 지게차기사들이 열흘을 못 버틴다는 악명높은 복잡하고 위험한 현장이라서 나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몸을 움직이지 않고 정신작용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 체질에 맞지않는다고 생각해 생산현장에 자원을 해서 일개미가 되었다.

야간수당 연장수당등이 겹치는 근로의 임금은 괜찮았지만 내가 일을 그만둔 이후 그 회사는 근로자를 구할 수 없어 파견근로회사에 근로자모집대행을 의뢰했다. 수당이 빠진 훨씬 적은 임금과 파견근로회사에 수수료까지 떼어주는 조건으로  8시간 낮근무를 할 근로자를 모집했는데, 금방 근로자가 충원이 되었다. 요즘 근로자들은 임금의 액수보다 근로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추측이 사실임이 판명되었다.


현정부는 근로시간단축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데, 꽤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휴일근로에서 수당이 겹치는 문제를 어느 정도 양보하는 입법을 제안한 것은 어느 정도의 교환조건을 내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조건을 내세우던지 근로시간단축은 시급한 문제인듯 하다. 기업은 단순한 계량적인 계산을 하겠지만 근로현장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들은 대체로 근로시간이 과도한탓인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이 길면 근로자들은 비생산적인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신체적인 피로나 자괴감등으로 이직률이 높아진다. 새로 충원된 근로자들을 숙련된 인력으로 교육을 시키는 비용도 계산을 해야하며 생산물인 재화와 용역의 품질문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생산물의 품질에 클레임이 걸려오는 경우 대부분 피로에 지친 근로자들의 실수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때문에 여유로운 집중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예외가 아닌듯 하다.

그 전에 하루 8시간 주 5일근로가 확실하게 지켜지나 임금은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한 근로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누구나 꽤 오래 일했던것 같다. 그리고 분위기도 좋았고, 무엇보다 근로자들은 일은 충실하게 하고 여가활동이나 가정생활에 충실했던 것 같다. 아마 통계를 내보면 적은 근로시간으로 장기간 근로하는 근로자의 재직시간(在職時間)이 많은 근로시간으로 금방 이직하는 근로자의 재직시간보다 월등하게 많을듯 하다.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인간적 가치와 시장 / 마이클 센델

몇년전 뭔가 그래도 사회에서 대접받는 일들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던것 같다. 반골기질이 있어서 그런지 젊음이 감당해낼 수 있는 여력이 있을때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가보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 곳을 돌아보겠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기업을 운영하고자 하나 한국사회에서는 침묵을 지키는 비주류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을 생각하건데, 한국은 죽을 힘을 다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죽일 힘을 다해서 우월적 지위를 찾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는것 같았다. 구세대들, 종교적인 사람들, 이념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도덕성을 초월한 신념으로 순종과 권위의 세계를 언제든지 오고갈 수 있는 수직적 삶에 익숙해 있었다.

저번글에서 아웃사이더가 된 부친을 따라서 아웃사이더가 되어가는 내 자신을 서술한 적이 있는데, 부친이 세상을 떠날 무렵 근처에 비숫한 처지의 노인분이 있었다. 자식을 세명이나 두고서 혼자서 투병생활을 하다가 얼마 안되어 세상을 떠났다. 아직도 그 노인분이 하신 말씀이 생생이 기억 나는데, 자식들이 생업에 바빠서 아무도 오지 않으니 내가 직장을 안다니고 있는 것이 내 부친에게 복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삶에 있어서 옳은 것을 한꺼번에 선택하기란 힘겨운 것이다. 트럭운전을 하고 있다는 그 노인분의 귀여운 막내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신의 바쁜 처지를 평생 비관하며 살 것 같았다.

시장경제가 냉정하게 지켜진다면 도덕성이 지켜질 수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내가 겪은 근로의 현장에서 시장논리에 의해서 인간의 가치는 기계적 장치 이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이 힘든 삶들을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우월성을 타인을 지배하는데 성의껏 사용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지금의 고통을 벗어나리라는 생각을 한다면 분명히 벗어나고 나서부터는 타인의 삶을 지배할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의 가치는 그런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권력지향성, 부패등은 자율적인 인간들이 가진 속성이 아니고 노예들이 가진 습성이었던 것이다. 아마 얼마전 고위 교육 관료가 국민을 개, 돼지로 비유한 것은 그런 속성들을 비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한 개 돼지로서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악의에 찬 정치판이 도덕적 신념이 범람한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기 신념을 지나치게 굳건하고 요란하게 믿으며 타인에게 그 신념을 강요하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가 맞이한 곤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현대 정치는 도덕적 논쟁이 지나치게 많아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적어서 문제다. 오늘날 정치판은 도덕적 정신적 내용이 거의 비어 있기 때문에 과열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현대 정치에서 도덕적 부재를 나타내는 증거는 많다. 한 가지는 공적 담론에서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을 추방할려는 시도다. 우리는 종종 당파분쟁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민이 공공의 장에 들어오면 자신의 도덕적, 정신적 신념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도가 좋더라도 좋은 삶에 관한 논의를 정치 영역에서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면, 시장지상주의로 향하는 동시에 시장논리를 계속 유지하는 길을 닦는 셈이다.

- Michael, j, Sandel 의 [What money can,t buy]중에서 -

특히 한국에서는 인간적 가치에 관한 문제나 도덕적인 문제들이 이념논리의 방해를 받아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지 않는 동안에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비정규직 차별이 심해졌으며, 하마터면 보수정부가 집권할 당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까지도 무너질뻔한 위기를 겪은듯 하다.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이다. 내 글에서는 북한이 항상 등장을 하지만 인간적 가치를 잃어버린 국가가 북한화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듯 하다.

오래전 버스 운전을 하다가 겪은 재미없는 일이 있어 다시 생각해보았다. 한 술취한 노인분이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출발하니 잡고 있던 손을 놓치고 넘어졌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넘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축하여 일으키니 2초도 안되어 "합의를 보자"고 하였다. 결국 조금 있다가 나타난 가족들로부터 별일 아니니 걱정말고 기사님 갈 길을 가시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 노인분의 반응 속도가 신기했다. 그냥 습성이 오래가서 본능으로 자리잡은듯 싶었다.

습성이 오래되어 본능으로 자리잡기전에 인간적 가치에 관한 논의는 이념이나 종교,특히 '돈'에 앞서서 논의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