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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9일 토요일

평등사회의 힘/토크빌(Tocqueville)

종종 노후 대비를 위해서 특허관련 시험준비를 한다. 시험이 쉽지않고 자연계방향의 기술 과학 과목이 많아서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책을 많이 보는 입장에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영어공부겸 경제학 영문원서를 함께 읽곤 하는데, 주로 평등한 민주사회지향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인문 사회과학공부와는 달리 계급적 승부에 몰두하는 시험공부는 진지하게 장기화되면 인성(人性/ human nature)관리 축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음을 느꼈다. 어찌보면 과거 한국의 출세의 등용문이었던 '고시공부'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인물이 많았던것도 무리가 아닌듯 하다. 그 사람들도 잘못된 교육 방식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어느 날 공부법에 관한 책을 수십권을 샀다. 서구유럽에서 출판된 공부법에 관한 책과 일본에서 출판된 공부법에 관한 책은 무척 달랐다. 일본책의 공부법은 아직도 머리에 일장기를 두르고 반자이돌격을 외쳐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합리적인 사고 보다는 극의(克意/ extreme will)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반복학습을 필요로 한다. 그런 공부방법을 탈피하지 못하는 일본의 교육이 시민적 평등사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내 자신은 기술 과학 관련 공부를 하거나 경제학 공부를 하면서 인문 사회과학이나 법공부가 잘못 인도할 수 있는 길인 아집과 극단성의 길로 가지 않을 수 있음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인 토크빌(Alexis de Tocquevilie1805-1859)은 유명한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사회 내 구성원들간에는 계급의식이 전혀 없고 계급 의식속에 내면화된 남보다 낮아서 수치스러운 감정같은 것이 사회적으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미국은 분권화와 민주주의를 달성했다고 말한다.  토크빌이 생존해 있을 당시는 미국이 흑인 노예와 인디언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을 무렵인데도 토크빌은 백인들만의 미국사회는 중산층 중심의 시민적 평등사회로 생각했다. 어쩌면 노예해방과 같은 사건은 그런 평등 사상이 바탕이 되었음도 생각한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란 책을 읽고 평등주의로 개종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면에 동북아시아 사회는 남보다 더 나아져서 남을 아래에 두기 위한 저급한 의지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가 종교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또는 천민자본주의, 극단적 종교이념들이 계급사회를 지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자신들의 이상을 강요함으로써 합리적 사고를 파괴하고 시민들의 의식을 노예로 만든다. 그런 가운데 시민들의 창의적 사고가 억압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렸을때 부친에게 나를 늦게 낳아서 젊은 아버지를 갖지 못함을 탓했다. 그러자 부친은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일본의 해군 총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아버지가 56세에 낳아서 현명했으니 너도 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야마모토 이소로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한국인과 미국인에게는 전쟁범죄자로서 인식이 되지만 나름 아버지가 늦게 낳은 현명함이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억압받아서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경우가 되었다. 

Admiral Isoroku Yamamoto, Combined Fleet, which  included the main carrier force, had been considering the problem since early 1941. In principle he opposed making war on the United States, which he knew well as a former English-langage student at Harvard and naval attache in Washington; he did not believe that Japan's small industrial base could ever effectively support a war against the United States' vastly larger economy. His well-Known views had made him unpopular both with nationalist politicians and their supporters and within the armed forces; he had been sent to sea in 1939 largely to save him from assassination.

The threats were not hollow; in 1936, a group of super-nationalist army officers had killed several moderate politicians, including the finance minister and a former prime minister, occupied central Tokyo and been overcome only after three days of street fighting. Yamamoto undoubedly had reason on his side, as other naval officers saw. Confronted, however, by the reality of the - dominated government's determination to solve Japan's economic problems by aggressive measures, Yamamoto stifled his objections and proposed an alternative attack strategy. He suggested using the carrier force to destroy the American Pacific Fleet at its moorings in Pearl Harbor, Hawaii, its Central Pacific base.

주력 항공모함을 포함한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제독은 1941년 초부터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원칙적으로 미국에 대한 전쟁 도발을 반대했다. 그는 하버드에서 영어를 배우고 워싱턴에서 해군 무관을 지낸 적이 있었으므로 미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소규모 산업 기지가 미국의 방대한 대규모 경제에 맞서 전쟁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잘 알려진 자신의 이러한 견해 때문에 야마모토는 민족주의 정치인들 및 그 지지자들과 군 내부 모두에게서 인기를 상실하고 말았다. 

1939년 그는 암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해상으로 파견 되었다. 암살 위협은 괜한 염려가 아니었다. 1936년 극단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한 육군 장교 집단이 재무장관과 전 수상을 포함한 온건파 정치인들 몇몇을 살해하고 도쿄 중심부를 점령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3일간의 시가전 끝에 겨우 진압되었다. 야마모토는 다른 해군 장교들이 본대로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문제를 공격적인 조치를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육군 주도의 정부가 내린 결정에 맞서 야마모토는 자신의 반대 의사를 억누르고 대안적인 공격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항공모함을 이용해서 미국의 중태평양 기지인 하와이의 진주만 항에 위치한 미국 태평양 함대를 괴멸시키자는 안을 제시했다. 

- [INTELLIGENCE IN WAR] BY JOHN KEEGAN -


문화혁명의 극단적 선동정치의 폐단을 경험했던 등소평이 오랜 전통의 팽창적 중화주의와 선동정치가 결합하여 가장 큰 비중화외부세력인 미국과 섣부른 충돌을 할것을 세심하게 예언했을 것이다. 첩보전략의 관점으로 보면 미국은 여러 정보를 종합하여 이런 사태를 예측했고, 손해보지 않는 전략을 내세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가끔 일본은 아직도 극우주의 사상이나 민족주의 사상을 국난극복의 이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민주화가 덜 된 부작용이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민주적 평등사회의 힘이라는 것이다.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이념정부와 공급중시경제학

큰 정부를 지지하는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이치에 맞지 않게 흘러가는 정치적 성향에 의아해하는 경향이 많은데, 국민을 먹여살리는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와 일단 정권을 잡고 보겠다는 정치인들 사이의 시각차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간격이 있는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로 알고 있는 미국 정부는 정말 작은 정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의 정부는 이념적인 이상과 현실 사이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런 문제는 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서든 진보주의 정부가 들어서든 마찬가지인듯 하다. 어쨌든지 경제적 상황을 이념적 갈등관계의 바탕위에서 풀어나갈 일은 아닌듯 하다. 미국의 보수주의 정부는 이념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고나서는 현실을 인식하고 큰 정부로 변했고, 한국의 보수주의 정부는 이념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고나서는  감당못할 혼돈에 빠져있었던듯 하다.     

For many Keynesian, Reaganomics was little more than a thimblerig, a political gimmick that , behind the macho Hayekian rhetoric about slashing the size of the government, set off a public spending spree on defence that boosted aggregate demand and economic growth. Accordingto the Nobel Prize- winning MIT economist Robert Solow, 'The boom that lasted from from 1982 to 1990 was engineerd by the Reagan administration in a straightforward Keynesian way by rising spending and lowered taxes, a classic case of an expansionary budget deficit.

Galbraith agreed. "[Reagan] came into the presidency as the country was experiening a rather disagreeble recession and [implemented] lots of strong Keynesian policy," he said. "one of the results was an improving economy in the Eighties under Ronald Reagan. An one of the amusing facts of that was that this was done by people who didn't really understand Keynes and who were critical of him. We had involuntary anonymous Keynesianism.

케인즈주의자가 보기에 레이거노믹스는 그저 협잡이고 정치적 술수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정부의 크기를 줄이자는 하이에크식의 거센 수사를 동원해 눈길을 끌었지만, 뒤로는 국방비 정부 지출을 마구 늘려감으로써 총수요와 경제 성장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로버트 솔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2~1990년의 호황은 레이건 행정부가 순전히 케인즈적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지출을 늘리고 세율을 낮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적자의 고전적 유형이다."

길브레이스도 솔로와 생각이 같았다. "레이건은 미국이 상당히 어려운 불황을 맞았을 때 대통령이 됐고 강력한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했다." 갤브레이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그 정책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 중 하나가 레이건 치하의 1980년대에 경제가 향상됐다는 것이다. 그처럼 경제가 향상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바로 케인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경제 향상을 이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 우리는 '비자발적인 익명의 케인즈주의'를 경험했던 것이다."

- [KEYNES HAYEK] by Nicholas Wapshott -


The Statistical Abstract makes it quite easy to get a realistic picture of where your tax dollar goes. For example, here is a list of ten major federal programs. The number after the colon indicates each program's percentage of fiscal 1994 spending.

Social Security : 21.6 %
Defence : 18.9 %
Interest on the debt : 13.7%
Medicare : 9.7%
Medicaid : 5.8%
Pensions for federal workers  ; 4.2%
Veterans' benefits : 2.6%
Transportation (mainly highways, air traffic, etc.) : 2.6%
Unemployment insurance : 2.0%
Administration of Justice ( courts, law enforcement, etc.) : 1.1%

There are three important things to say about this list. The first is that it encompasses the bulk of government spending - 82.2 percent, to be precise Anyone who proposes a radical downsizing of the federal government must mean to slash this list. The second is that with one possible exception, these are programs that thepublic likes - they are not at all what people object to when they rail against Big Government.

[통계]는 우리가 세금으로 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대단히 잘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여기 연방 정부의 10가지 주요 지출 사업 목록이 있다. 콜른 다음에 나오는 숫자는 1994 회계연도에서 각 사업에 지출된 예산 비율을 표시한다. 

사회보장 : 21.6%
방위 : 18.9%
국제 이자 :13.7%
의료 보험 :9 .7%  
의료 보장 : 5.8%
연방 노동 연금 : 4.2%
원호 : 2.6%교통(주로 고속도로와 항공 운송 등) : 2.6%
실업 보험 : 2.0%
법무(법원 및 법 집행 등) : 1.1%

이 목록과 관련하여 지적되어야 할 중요 사항이 세 가지있다. 첫째로 이 목록은 정부 지출의 대부분 - 정확하게는 82.2% - 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연방 정부의 대대적인 축소를 제안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목록을 대폭 삭감할 작정이어야만 한다. 둘째로 한 가지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항목이 있지만, 여기 제시된 목록은 대체로 일반 대중이 선호하는 사업들이란 점이다. - 일반 대중은 큰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경우에도 이런 사업들만큼은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 [THE ACCIDENTAL THEORIST ] by Paul Krugman -

그러니까 레이건대통령을 비롯한 공급주의 경제학을 채택한 정부는 시작은 미약했으되 점차 끝은 장대한 케인즈정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주효했는지 재선에 성공하고 부시행정부 역시 비숫한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 편으로는 대통령의 임기가 짧다면 제대로 일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될 것 같은데 레이건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8년이란 기간동안 전쟁수요, 큰정부, 성공적인 경제등을 순환해가며 나름 성공한 케인즈정부가 되었던 것이다.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서 내수확장을 통한 경제정책의 성공은 오랜 노력과 기다림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부의 정책조정의 범위를 벗어닌 재벌 중심의 경제는 복잡한 딜레마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후발국가의 경제발전 / 하이예크(HAYEK)

자유주의 국가인 미국과 공산당의 일당집권국가인 중국의 경제전쟁을 보면서 그동안 중국은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과실을 많이 취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경제발전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창조성'에 의하여 성장했고, 중국은 선발주자인 미국과 같은 서구국가들의 기술이 국가간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이전을 한 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창조성'과 '발전성'은 경제발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후발국가들은 창의성 보다는 모방을 중심으로 선발국가들의 기술력에 근접하며 더 우월해질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 한계는 선발국가들의 기술력에서 한정되기 마련이다. 창의성 보다 모방을 중심으로 한 경제가 어떤 결말을 갖게 되는지는 일본과 중국의 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중국과 일본은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형태를 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가의 내면적 의식세계는 매우 계급적이고 팽창주의적인 면이 있다. 그렇다보니 미국을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힌다. 반대로 북한과 같은 저개발국가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서  그 한계까지는 성장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다. 인간과 사회는 권력지향적이고 계급지향적인 구조내에서 창의성의 한계를 보인다. 더 지고한 욕망의 목표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기적 모방에 몰두하면 태양계 저 편에 우주 탐사선을 보낼 필요도 없다.  계급적 사회(자유주의 사회가 아닌)는 극복해야 할 대상인 내 위만 협소하게 보인다.  

정부가 가지는 경제적 권한에 관하여 케인즈(KEYNES)의 견해에 상반된 견해를 가진 하이예크(HAYEK)는 후발국가들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보수주의자들을 사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He argued that it was inevitable for the progress of civilization that some nations draw ahead of others. If today some nations can in a few decades acquire a level of material comfort that took the West hundreds of thousands of years to achieve, is it not evident that their path has been made easier by the fact that the West was not forced to share its material achievement with the rest?" he argued.   

- omit -

He went on, "The conservative position rests on the belief that in any society there are recognizably superior persons whose inherited standards and values and position ought to be protected and who should have a greater influence on public affairs than others. The liberal, of course, does not deny that there are some superior people - he is not an egalitarian - but he denies that anyone has authority to decide who these superior people are.

Hayek declared that conservatives were like socialists, and that both held detestable, undemocratic views. "The conservative does not object to coercion or arbitrary power so long as it is used for what he regards as the right purposes. He believes that if government is in the hands of decent man, it ought not to be too much restricted by rigid rules. . . . [L]Ike the socialist, he regards himself as entitled to force the value he holds on other people," he wrote. "It is not democracy but unlimited government that is objectionable, and I do not see why the people should not learn to limit the scope of majority rule as well as that of any other from of government."

그는 일부 나라가 앞서 가게 되는 것은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서구가 수십만 년이나 걸려 성취한 물질적 안락을 오늘 날 몇 몇 나라가 수십년만에 달성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보면 서구가 자신의 물질적 성취를 다른 나라들과 나눠 가지도록 강제 당하지 않았다는 점(즉 서구가 방해를 받지않고 다른 곳들 보다 훨씬 앞서 갈 수 있었다는 점) 덕분에 이들 후발 국가들의 발전 경로가 더 용이해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 중략 - 

하이예크는 자기 주장을 이어 나갔다. "보수주의적 태도는 어느 사회든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우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그들이 물려받은 규범과 가치와 위상을 지켜야 하며 공적인 문제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커야 한다고 보는 인식이다. 물론 자유주의자들도 우월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는 평등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자유주의자는 그 우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결정할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이예크는 보수주의자는 사회주의자와 비숫하며, 보수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견해는 둘 다 가증스럽고 비민주적이라고 힘 줘 말했다. "보수주의자는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목적이기만 하면 강압이나 자의적인 권한이 사용되더라도 반대하지 않는다. 또 괜찮은 사람들이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면 엄격한 법률로 정부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수주의자는 사회주의자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이 주장하는 가치를 타인에게 강요할 권한이 있다고 여긴다." 하이예크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가 못 마땅한 것이 아니라 아무 제한을 받지 않는 정부가 못 마땅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다수결 규칙의 범위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정부의 범위를 제한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 [KEYNES HAYEK] by Nicholas Wapshott -    

하이예크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자면 서구사회가 수십만년에 걸쳐 물질적 성취를 이룩하는 동안 동양사회는 원시상태였던 것은 아니다. 서구사회가 물질적 성취를 이룬 계기는 중세의 종교적인 전 근대적 문화를 자유주의 사상과 과학적 발견이 대체한 결과이다. 물론 그 이전에는 동양문화와 서구문회는 물질적 성취에서 서로 평행을 달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문화는 하이예크가 윗글에서 비판한 '보수성'에 의해 억압받음으로써 근대화가 늦어진 일이 있다. 

어쨌거나 오늘날까지도 미개발국가들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요한 문제는 내전(inner war)이나 정치적인 실수같은 것인데 이런 문제들은 이면에 하이예크가 매우 싫어하는 극단적인 사회주의나 보수주의같은 정치적 이념의 분란 아니면 종교적인 분란이 내재해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극복한 개발 도상국들은 앞서간 창조적 서구기술문화를 받아들여 급속하게 성장해 나갔는데, 그 이면에는 극단적 프레임이 없는 자유주의 사상이  바탕이 된  면이 있다.  북한의 발전과 미래는 정치적인 안정에 달려 있고, 단기적으로는 서구기술문명을 받아들여 어느 시기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한 다음에 창조적 자유주의국가로 변하는 과정이 최선일 것이다. 가끔 한국에서 문명을 되돌릴려는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흔히 사람들이 경제학자로서 보수주의라고 착각하는 하이예크도 그런 사람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듯 하다. 

하이예크는 극단적이어서 발전을 저해하는 이상한 이념들을 싫어했던것 같다.     

2019년 6월 3일 월요일

기본소득(Basic income)과 종교적 평화

청년기에 법공부를 했던 적이 있다. 열정이 지나쳤을때였는데, 수백편의 합격기를 읽으면서  시험의 정체를 파악했다. 훗날 어떤 합격기의 주인공은 대통령이 되기도 했고, 어떤 합격기의 주인공은 경제범죄를 저지르기도 했고, 어떤 합격기의 주인공은 누군가의 사랑과 도움으로 합격을 하고 나서 성마르고 야박한 출세주의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대체로 합격기를 회고해보건데 합격기 끝머리에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라고 썼다가 다시 개정판을 낸 사람이 있는 만큼 고시공부를 통한 인생의 반전은 공통적이지만 걸어간 길은 천차만별이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내 자신이 빨리 공부에서 손을 뗐는데, '출세의 상대성'을 일찌감치 간파한 까닭이 있었다.

출세해보니 자기 위에 누군가가 있고, 힘들게 올라가보니 또 누군가가 있었던거다. 그래서 한국에서 고시로 출세한 이들의 대부분이 한국내의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을 위해서 내달렸던 것같다. 그 중에서도 대체로 계급사회인 검사출신들은 상승욕구가 강하고 평등의식이 내면화 되어있지 않은 까닭에 보수진영에 가담하여 '대통령의 꿈'을 이루려고 무던히도 노력했을 것이다. 게다가 법률가의 경직된 이미지를 종교적인 이미지와 결합시켜 나갔는데, 악의의 의도는 자꾸 막말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법률가 출신들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들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떠들고 본다.

한 편으로는 이런 문제를 깨닫고 진보성향을 띄는 이들도 있는데, 한국내에 만연해 있는 이념적 프레임은 순수하게 해석을 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어떤 진보성향의 정치인이 '기본소득'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제대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서민으로서 기본소득 실시는 인간으로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데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차별이 심한 사회에서 누군가는 이를 갈며 출세를 꿈꾸고, 누군가는 자멸해가고, 누군가는 불만을 품고 범죄인이 된다. 공통적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나쁜 열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나쁜 열정에 대해서 부연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어떤 종교단체가 널리 자신들의 진리를 알리려고 적극적인 노력을 한다고 생각하면 차츰  진리인 진짜 목적 보다는 나쁜 열정 즉 욕심이 본질을 대체해 나갈 것이다. 곧 그 열정은 상대성의 덫에 걸리게 되는데, 아마도 분명히 다른 열정과 충돌을 하게 될 것이다. 차별이 있는 사회란 나쁜 열정이 만연한 사회다. 사회가 좀 더 평화롭고 고귀해지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주어져 경제적으로 나쁜 열정들을 없애야 한다.  삶의 고통을 벗어나고픈 시민들이 종교적 맹목성에 휘말려 거리를 방황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해주면 이상한 열정의 종교가 창궐하여 시민들을 또 다른 욕망의 희생물로 만드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생존에 가장 필요한 복지는 국가가 챙겨야 할 것 같다. 

Succinct Christian rationales for basic income have been presented by Malcolm Torry and by Torstern Meireis, who takes a Lutheran view in seeing a basic income as enabling people to pursue their 'calling'. The Christian perspective is that, to be faithful to the doctrine preached by Jesus, every Christian should try to shape society to reflect what would be desired in the kingdom of God, thereby creating societies that are expressions of hope for the Kingdom's coming.

In that contrxt, a basic income would be a reflection of God's grace, which is universal. Malcolm Torry draws an analogy with giving blood, done freely in Britain and many other countries, without the donor and recipient knowing each other. It is gift without reciprocity or judgement of the worthiness of eather party. The Christian view also holds that all wealth is God's gift and should be intended for the common good, not for enriching a few to the exculsion of the majority. Recognizing the reality that the gift is not shared as God intended, a basic income would entail the fortunate sharing with the majority.

- omit -

Basic income is also a matter of state altruism. Altruism fosters altruism in those who benefit from it, whereas mean-spiritedness by the state acting in our name forsters mean-spiritedness in its citizens. We collectively want to be fair. The state acting justly will tend to induce its citizens to behave in like manner.

기본소득에 대한 간결한 기독교적 근거는 맬컴 토리와 톨스텐 마이라이스가 제시했는데, 이들은 기본소득이 '소명'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는 루터파의 견해를 견지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모든 기독교인이 예수의 교회에 충실하여 신의 왕국에서 바라는 바가 사회에 반영되게끔 노력해야 하며, 이를 통해 신의 왕국이 도래하리라는 희망을 표현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은 신의 은총을 반영한 보편적인 것이다. 맬컴 토리는 기본 소득을 헌혈에 빗대는데,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헌혈은 기증자와 피 기증자가 서로 알지 못한 채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헌혈은 호혜나 상대방에 대한 가치판단 없이 이루어지는 선물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모든 부가 신의 선물이며 공동선을 위한 것이지, 다수를 배제하고 소수를 부유하게 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중략 - 

기본소득은 국가 이타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타주의는 이타주의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타주의를 촉진하며, 우리의 이름을 걸고 국가가 비열한 행동을 할 경우 시민들 사이에서 비열함이 자라난다. 우리는 집단적으로 공정하기를 원한다. 정의롭게 행동하는 국가는 시민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 

- Guy Standing 의 [Basic Incom : And How We Can Make It Happen]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