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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9일 월요일

By bus / 장하준(1)

앞이 안 보일정도로 짙은 눈이 내리는 날 새벽에 버스를 몰고 신도시의 임대아파트에서 손님을 태웠다. 젊은 기사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고 꺼리는 노선이었지만  생각할게 있다는 이유로 혼쾌히 노선운행을 수락했다.

버스기사로 일하던 친구가 힘든 근로환경에 지쳐 그만두었고, 여기 저기 아픈데가 많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버스기사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노선견습을 위해 조수석에 앉아 있었는데, 그날 유난히 차가 울컥거렸다. 나쁜 근로환경에 뚜렷한 증상없이 망가진 근로자의 몸처럼 오래된 대형버스는 뚜렷한 증상없이 울컥거림을 반복했다. 잠시후 손님중 누군가가 기사에게 차가 고장이 있는건지 기사님이 험하게 운전을 하는건지 조심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뒤에서 여기저기 동조하는 볼맨소리가 둘려왔다. 급기야 한 중년의 여자승객이 "기사가 싸가지가 없어!" 하고 외치고 다른 승객들은 군중심리로 감정이 격해지고 있었다. 참다못해 내가 일어났다. 나는 사회현상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승객들에게 소개하고 나서, 이 문제는 기사님의 문제가 이닌것 같다라는 말만 했다. 그러자 중년의 남자 승객이 "말씀 잘 하셨소. 이건 우리 B시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요."하고 해석하기 힘든 말을 하였다. 뚜렷한 증상없이 마음의 병을 얻은 승객들을 보면서 이 지역을 버스로 운행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고, 실제로 별일이 다 있었다. 사회병리현상을 갖가지 경험할 수가 있었다. 요즘도 그 지역은 버스기사 구하기 힘들정도로 버스기사 지원자가 없다고 한다.


그 도시는 서울 근교의 위성도시인데 도시가 불규칙적으로 확장되어가는 현상인 sprawl 형태로 확장이 되어간 도시여서 무질서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일부인 신시가지는 신도시 건설에 따른 미래형 건물이 들어서서 밤이면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야경을 보여주었다. 마치 공중택시가 초고층빌딩사이를 날아다닐듯 했다. 신시가지를 벗어나면 공장들이 많았고, 개발이 안된 시골마을도 많아 노령인구도 많았다. 119 출동 횟수가 전국 1위라고 한다. 나는 이해가 갔다. 내 차도 크게 들이 받혀서 대형 119차가 세대나 출동하고 밀려들어온 차 앞부분에 끼인 내 몸을 젊은 구조대원이 놀래서 허둥대며 기계로 구조하는 과정에서 "난 괜찮으니 서두르지 마세요."하고 이순신 장군같은 영웅적인 참견을 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 날 다리 한쪽이 잘라진 줄 알았다.

버스운행을 하는 동안 보상금을 노리고 넘어져서 생떼를 쓰는 노인,  히터가 약해서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며 슬픈 표정을 짓는 일용직 노동자, 차가 늦어 환승이 안되어 귀중한 천원을 낭비했다고 악을 쓰는 할머니,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길 한가운데로 끌고가며 비켜주지 않아 버스를 지체시키고 기사의 점심을 굶긴 할아버지, 앞 질러갔다고 할아버지뻘의 동료기사에게 차를 세우고 욕을 하는 젊은 트럭기사, 눈 오는 날 스노우 타이어를 교환하지 못해 버스가 5분 늦었는데, 어떤 승객은 출근 시간이 늦는다고 욕을 하였다. 오늘같은 날은 회사에서도 이해를 할테니 침착하게 조금만 참으라고 부탁을 하였는데, 그 승객의 표정은 초조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버스기사가 승객의 '을'인것 처럼 저 승객도 회사의 '을'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근로는 여유로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들 있었다. 그리고 수평폭력 현상도 보였다.


한편으로는 신도시개발을 하면서 보상을 받은 주민들은 외제차를 구입하여 그 도시는 유난히 외제차가 많았다. 그걸 생각하면 버스승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충분히 이해되었다. 나는 비교적 승객들에게 친절했고, 내 버스를 기다렸다가 먹거리를 넣어주고 가는 승객들도 꽤 있었다. 하루는 살인적인 근로시간에 지쳐서 졸면서 운행을 했던것 같다. 뒷자리의 여자승객이 앞으로 와서  이것 저것 질문을 했다. 별 걸 다 물어 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승객은 살며시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고, 오랫동안 짝사랑 하면서 다시 보고 싶은 승객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서울의 위성도시에서 운행을 했는데, 전통적이고 밀집된 형태의 도시였고, 대학교도 있어서 승객들은 온건하고 신사적이었다. 무엇보다 합리적인 설득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말하자면 '이상한 사람'이 없었다.

Despite its overwhelming presence in our lives, work is a relatively minor subject in economics. The only minor mention of work is, somewhat curiously, in terms of its absence - unemploy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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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for most people, work is a lot more than simply a means to earn income. When we spend so much time on it, what happens in the workplace affects our physiological and psychological well-being. It may even shape our very 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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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many people, work is about  basic human history, huge numbers of people were deprived of the most basic humanright of 'self-ownership' and were bought and sold as commodities - that is, as sl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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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ost rich countries, people work around thirty-five hours per week, although the working week is considerably longer in the East Asian countries (Japan, Forty-two hours; Korea, forty-four hours; Singapore, forty-six hours). People in those countries are working half, the length of the tlme that their great-grandparents or great-great-grandparents worked (seventy to eighty hours per week).

- [Economics : The User's Guide] by Ha-Joon Chang -


장하준 교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경제학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경제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후에 한 번 더 언급하겠지만 장하준 교수는 제조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재벌의 불필요함을 말하고 있지도 않다. 좀 더 혁신적인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한 재벌을 탓하고 있는듯 하다. 왜 중소기업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의 중소기업은 일찌감치 정부의 경제정책으로부터 '버려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과격하지만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내가 지난 6년동안 구경한 중소기업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갈아넣어 한올밖에 안되는 이윤을 근근히 얻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IT회사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자마자 함께 뛰어든 거대재벌과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 것을 보았다.

재벌- 중소기업- 근로자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은 어떤 경제정책도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념문제때문에 가중적으로 방해받는 어려움도 있는 것이 한국의 경제정책일 것이다. 근로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분배의 문제가 아니다. 수직적 불평등의 문제, 인간적 근로환경과 관련된 문제, 근로가 대우받는 사회분위기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2018년 10월 5일 금요일

특수이익집단의 역설 / 토드부크홀츠

한국에서 보수는 부패때문에 망하고 진보는 분열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 타성에 빠져서 대충가는 부류들과 과욕과 열정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부류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번글에서 전쟁후 수요증대와 집권적 정치문화를 가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집권적인 정치문화가 신생국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안정된 국가들에 비해서 특수 이익집단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인듯 하다. 총리집권체제로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룬 싱가포르나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중국, 집권적 정치문화가 내면화된 반민주주의(half-democracy) 국가인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한 원인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마 보수가 부패하기 쉽다고 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의미로 곡해(misinterpretation)한 까닭이고 사적이익의 추구라는 명분으로 특수이익집단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졌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이번에 한국에서  전직대통령에 대해 뇌물수수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린 이면에 아직도 사실관계만을 다루어야 하는 법리(法理)상 못다루는 부분이 있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바로 많은 사람들이 '무리'들이라고 표현하는 대통령의 정책에 영향을 끼쳐온 이익집단들인데 '조직'과 같이 공식적인 결속력이 없는 '집단'이나 정치적 성향같이 내면적 연대감으로 뭉쳐진 '군집'형태의 이익집단들이 국가운영에 마이너스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마 북한이 경제개발을 시도한다면 이미 해왔던 국가들이 보여준 신뢰할만한 실증적인 사례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의 경우는 전체주의 이념이나 공산주의 이념들과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념이 좀 더 내면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앞으로 상당기간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는 진보진영의 정부는 자칫하면 패거리 정치문화의 행태를 보여줄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방지해야 할 것이다. 한 때 문제가 되었던 전 도지사의 성추문 사건의 기승전결이 모두 이익집단의 문제점으로 보일 수 있음으로서 진보진영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되었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고 양성불평등의 문화가 이율배반적으로 뿌리깊게 내려 왔음을 보여줌으로써 진보진영조차도 폐쇄적인 패거리 정치문화의 전통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을 상징한 사건으로 비추어지고 있는듯 하다.    

Everyone in New York City and Boston recognizes that there's shortage of taxi cabs. These cities actually limit the number of licensed cabs, which drives up the income of drivers and drives down the morale of the cities. Still, the city governments refuse to support the grumbling of the general public over the ranting of taxi owners. The Public choice school does not symply point out that the "squeaky wheel gets the grease." More important, Olson and his colleagues teach us why tight coalitions make a much more powerful noise than a diffuse, unorganized public.

Olson takes his arguments into far more controversial territory by drawing broad historical laws. He assumes that stable socities are more susceptible to special interests. He then claims that "long-stable" societies wlii grow more slowly than relatively new societies. As time passes, leechees multiply and suck the lifeblood from a nation. If so, revolutions and wars can invigorate economies, since special interest groups lose their stranglehold. He cities Great Britain as a stable, retarded nation and postwar Japan as an economic miracle.

Few economists follow Olson all the way to his conclusion about the rise and fall of nations. Even so, the arithmetic of special interest groups makes sense.

The special interest paradox seems hopeless. Is it? Not necessarily. After all, each group suffers when Congress awards favors to the others. If a president or congressional leader could get a mandate for across-the-board budget cuts or broad policies against subsidies, price supports,and protection schemes, the increased efficiency in the economy could offset for these groups the elimination of special favors. Sadly, historical examples are few. And it seems more likely that the politicians will continue to deliver tough-sounding rhetoric,while special interests spout words of magnanimity-but nothing really happens.

- TODD G. BUCHHOLZ의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