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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14일 목요일

남북한의 합리적 장기경제계획


아직 이념적인 한반도의 관점으로 생각하면 매우 타당할 수 있는 두가지 대칭적 기사가 보였다.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두 기사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상은 크지만 항상 일자리와 적은 월급으로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처럼 국가도 성장의 고통을 안고 가야할 과제가 있는듯 하다. 한편으로는 지난 보수정부때 4대강 토목건설 사업과 평창올림픽 유치에 무리하게 집중을 한 이유가 생각났다. 단기적 내수확장을 추진한 것 같다. 그리고 찾아오는 침체의 사이클을 다음 정부가 떠맡게 된 것 같다.

저번 글에서도 여러 번 밝혔지만 이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정책은 국민의 현실적 생활을 가치규범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것 같다. 혹 어떤 경제학자는 민간부문에 맡겨놓아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을 불러오고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 즈음에서 반드시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위주 경제구조의 문제점이 나올 것 같다. 고용의 대부분을 중소기업이 떠맡고 법인세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낸다면 답은 간단히 나오는 것 같다. 장하준교수의 생각처럼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려 사회보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제국가이고, 이념적인 대칭성이 강한 정부가 교차하기도 한다. 정첵의 장기성이나 일관성이 쉽게 훼손될 위험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의 경제개발정책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장기적 집권으로 일관된 장기경제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다는 것같다. 만약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개발을 추진한다면 장기개발이 가능한 최적의 여건이 일관된 1인 집권체제에서 나올 수도 있겠다. 물론 과거 한국국민이나 지금의 북한민들이 비합리적이고, 합리성에 대한 과제는 지도자 혼자 떠맡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어깨가 무거을 것 같다. 그런데 반대로 일인의 장기집권체제에서 지도자가 비합리적이고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잊어버리면 매우 나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부말기가 그랬었고, 훗날 그 이념적 적통을 잇는다는 한국의 보수정부에서 그랬다. 이념이라는 것이 소용없다는 증명을 해보인 셈이다.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만약 엄청난 복권이 당첨된 실직자처럼 복지가 주어진다면 국민이 열심히 일을할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감히 나따위가 그런 망령된 생각을 할만큼 국민은 어리석지 않은 시대가 온 것 같다. 과거 대통령이 되겠다는 야망을 가진 어느 보수인사가 국민은 복지가 주어지면 일을 안 할것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일하는 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건달처럼 살 것이라는 자신의 각오가 투영된 말인듯 하다. 실제로 일터가 즐겁고 적절한 휴식이 있으면 그렇게 즐거운 삶도 없을 것 같다.

경제개발이나 경제개혁은 장기적이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소득주도의 경제정책의 필요성에 관하여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 학리적인(theoretical)생각이 많으면 가치규범적인 생각이 부족할 수 있을것 같다. 맨큐교수는 별로 동의하지 않겠지만서도.


다음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교수의 [The Accidental Theorist]에 나오는 일부분이다.

But there is a catch : The democratic process, the only decent way we know for deciding how that coercive power should be used, is itself subject to extremely severe free-rider problems. Ratchoice theorist Samuel Popkin writes(in his 1991 book, THE REASONING VOTER):"Everybody's business is nobody's business. If everyone spends an additional hour evaluating the candidates, we all benefit from a better-informed electorate. If everyone but me spends the hour evaluating the candidates and I spend it choosing where to invest my savings, I will get a better return on my investments as well as a better government."As a result, the public at large is, entirely rationally, remarkably ill-informed about politics and policy. And that leaves the field open for special interests---which means people with a large stake in small issues --- to buy policies that suit them.

-an omission-

So what is the solution? One answer is to try to change the incentives of politicians, by making it more difficult for special interests to buy influence.

-an omission-

Another anser is to promote civic virtue. There are those who believe that if only the media would trear the public with proper respect, people would respond by acting responsibly---that they would turn away from salacious stories about celebrities and read earnest articles about the flat-panel-display initiative instead. Well, never mind. But it is probably true that the quality of politics in America has suffered from the erosion of public trust in institutions that used to act, to at least some digree, as watshdogs.

Once upon a time a politician had to worry about the reactions of unions, churches, newspaper editors, even local political bosses, all of whom had the time and inclination to pay attention to politics beyond the sound bites. Now we have become an atomized society of individuals who get their news---if they get it at all---from TV. If anyone has a good idea about how to bring back the opinion leaders of yore, I am all for it.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민주적 과정, 즉 정부의 강제력이 어덯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있어 우리가 알고 있는 괜찮은 유일한 방법이 그 자체가 극히 심각한 무임승차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선택의 이론가인 새뮤얼 포프킨은 1991년의 [이성적인 유권자]라는 책에서 "모두의 일은 아무의 일도 아니다"라고 썼다. "모든 사람이 후보자 평가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우리 모두는 후보자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선거구민 덕분에 혜택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나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후보자 평가에 시간을 들이고 나는 나의 절약분을 투자할 곳을 고르는데 시간을 들인다면, 나는 더 나은 정부도 얻고 나의 투자처로부터 더 나은 수익을 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전체 대중은 합리적이면 합리적일수록 정치와 정책에 관해서는 더욱 나 몰라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정치는 특수한---이해에 적합한 정책을 사들이는 특수한 이해의 당사자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이다. 

-중략-

그러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 하나는 특수 이해의 당사자가 영향력을 사 들이는 일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듦으로서 정치가들의 동기에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중략-

또 다른 답안은 시민의 도덕성을 향상시키는 일이다. 매스미디어가 대중을 적절하게 존중해 줄 때라야만 사람들이 책임 있게 행동하는 반응을 보일 것---유명인들의 스캔들 기사에서 눈을 돌려 공개 토론회의 주제가 되는 현안에 대한 진지한 기사를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 걱정할 필요없다. 하지만 미국의 정치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회 감시 기능을 해 온 기관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침식됨에 따라 질적으로 하락해 온 것이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 한 정치인은 노조와 교회,신문편집인, 그리고 심지어 지방 정계 유지들의 태도에 개탄한 적이 있었다. 그들 모두 선거 슬로건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정치에 대해 알려고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TV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뉴스를 얻는 원자화된 개인들의 사회에 살고 있다. 혹시 어떻게 하면 그 옛날과 같은 여론주도자들을 오늘날에 불러올 수 있는지 좋은 생각이 있다면, 나는 그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Paul Krugman의 [The Accidental Theorist]중에서 -

결국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는 누명(?)을 쓰고 있는 경제학자들은 특수이익집단이나 시민의 도덕성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건 아마 이와같은 시민의 태도가 정책의 공리성(public or utility)을 저해한다는 관점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념적인 관점 때문에 정부정책의 공적인 성질이 심각하게 손상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장래의 북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렇다. "특수이익집단을 위한 단기적 경제정책 "  을 극복하는 일이 한국정부의 큰 과제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이 시장경제화가 되면 일찌감치 경계하여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이기도 하다.    

2019년 2월 4일 월요일

장기적 개혁의 지도자 등소평


중국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던 등소평은 대단한 사람이다. 열정과 의지와 차분함이 넘쳤다. 이 점은 지식과 열정이 넘쳤던 모택동보다 우월하고 지식과 이성이 넘쳤던 주은래보다 우월했다. 민중의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주의의 기본과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기본을 잘 포착해서 정책을 지도했다. 쇄신을 하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착실히 앞으로 나갔다.

등소평은 중국이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실하게 하기 전까지는 미국에 대항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요즘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을 보면 등소평이 선견지명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선견지명보다는 등소평의 기질이 중국정치에 투영된 표현일수도 있다.

1945년 7월.8월.9월. 3개월동안 아버지는 정말로 바빴다.

- 중략 -

8월에 아버지는 전면적으로 기업을 쇄신해야 한다고 제의했고, 국방공업 중점기업화에서 <국방기업에 관한 쇄신>을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담화 첫 머리에 요지를 밝히고 몇 가지 분명히 내세워야 할 기치를 말했다.

첫째,
용감함을 우선 신조로 하는 지도자 그룹을 반드시 조직하여 파발성과 단연코 투쟁하여야만 하고, 필요한 규칙과 제도를 확립해야만 한다.
둘째, 
반드시 품질제일주의를 유지해야 한디. 필요한 책임제도가 없으면 품질을 보증하기가 어렵다. 또한 기술자의 적극성을 발휘해야만 한다. 과학기술자를 '지식인'(저자주 ; 문화대혁명 기간에 4인방이 지식인을 지주,부농,반혁명자,파괴론자,우파,반역자,간첩,주자파등의 8가지 부류와 같이 취급하였고, 지식인이 '타도대상이 된 후'에 '냄새나는 지식인'이라고 무고하게 비방당했다) 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모주석은 '지식인은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즉 과학기술자는 마땅히 중시되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셋째.
반드시 군중의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 문제는 한마디 말로 해결할 수 없으므로 착실하게 작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철강 노동자가 그렇게 힘든 노동을 하는데 채소와 고기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본조건이 보장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힘든 노동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는 반드시 구체적으로 연구해 해결해야 한다.   

- 등용의 [불멸의 지도자 등소평]중에서 -  

1970년대 캄보디아의 사회주의 정권은 "앙카는 지식인을 싫어한다."며 지식인을 학살하여 영화로도 유명한 '킬링필드'를 만들었지만 장기개혁을 추진했던 등소평은 지식인을 중시했다. 그 효과는 수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확실한 성과를 보고 있는 중이다. 지도층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한 파벌타파, 노동자에 대한 대우개선등은 우리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는 국가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점이라는 사실을 통찰하며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이미지 정치와 선동정치, 수직적 권력추구에 친한 한국정치가 지도층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다져온 하부 시스템의 확고한 메카니즘에 얹혀서 움직여 나가고 있거나 김정일 위원장 시절의 북한이 끝이 안보이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철저한 장기계획이 없었던 까닭이다. 미국도 확고하게 확립된 하부구조의 메카니즘(오랜 민주주의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이 있는 이유로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나 선동정치는 또 다른 '능력'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는 국민에게 험난한 여정을 선사하게 될 것은 확실하다.

미국보다 작지만 안정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독일이나 핀란드를 비롯한 스칸다니비아3국은 대중정치가 없다. 치밀하고 내성적이며 강력한  장기개혁이 형성되어가며 협동적 개혁과 발전에 대한 국민의 장기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지도자가 되서, 또는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서 권력위에 경제적 부수입이나 심지어는 성적인 부수입까지 올리려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등소평의 지도력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