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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1일 토요일

레이건이 북한에 대해서 잘못한 일 / 개인과 국가

글 제목이 좀 뜬금없긴 하다. 하지만 북한의 이미지 정치의 폐해에 대해서 인과문제를 억지스럽게 짚어보고자 한다.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연속성의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이다. 유명배우는 아니었다. 어느 날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 레이건이 대통령역을 지원 했다. 그러나 대통령다운 풍모가 없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세월이 흘러 레이건은 반공주의자로 이념성향을 띄고 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소련의 팽창주의정책이 한참 고조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지미카터는 평화주의정책을 취함으로서 군축협상에 솔선수범하여 나서고, 소련은 미국의 군축협상에 비협조적이었던 것 같다.

지미카터와 레이건대통령 시절에 내 나이는 어렸고, 시골에서 새벽열차로 전달되는 J신문을 구독했다. 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만화를 먼저 보는 습관으로 신문 만평을 보았는데, 땅콩장수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꼬고 있었다. 지미카터가 땅콩농장을 하였던 것을 비판하고 있었는데, 국민학생의 생각에도 그게 무슨 비난거리가 되는지 우스웠다. 아마 이념대립이 첨예한 한국에서 카터는 한국정서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카터대통령은실제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는데, 아마 서로 처한 현실의 무게가 다른 탓일 것이다.

그리고 레이건대통령이 당선되자 지금은 없어진 리더스 다이제스트(그 당시 친척이 정기구독을 했는데, 지난호를 모아서 가져와 읽곤했다)에 지미카터때 솔선수범한 군축협상에 소련이 얼마나 부응을 하지 않았는지 통계가 나와 있었다. 미국의 핵무기 군축량에 비해서 소련의 군축량이 부족했고, 소련은 빨갱이 답게 약속을 어겼다. 그리고 얼마후 아프칸을 침공했다.

미국민들은 분노했고, 냉전시대에 세계의 패권이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으로 넘어가는 것에 매우 분개했다. 얼마후 레이건은 적극적인 반공주의자로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지미카터의 '이념적 실정'에 미국민들이 등을 돌린 탓이기도 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영화배우를 하면서 갈고 닦은 이미지전략이 좋은 효과를 거둔 탓이기도 하였다. 이건 내 추측인데, 레이건이 영화배우시절 대통령역을 맡으려다 실패한 이후 대통령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배역을 못 얻었느니 한 번 진짜 대통령을 해볼까 하는 결심 같은 거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배우로서 그리고 갈고 닦은 이미지정치의 선구자로서 레이건 대통령시대는 소련에 대해서 강경한 정책을 취했다. 양쪽 진영은 미친듯이 체제경쟁을 했고, 그 최전방의 한국과 북한은 한층 더 심했다. 레이건 대통령때는 람보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공산진영의 빨갱이 적도를 때려잡는 통쾌감을 국민에게 선사했는데, 레이건의 반공정책을 반대파들은 레이건을 레이감보라고 비난함으로써 비꼬았다. 그 당시 레이거노믹스라는 별명이 붙은 신자유주의정책을 취함으로서 경제정책도 냉전논리의 영향을 받았다. 어차피 대립각을 세운 양진영의 성격상 이념적 성향을 띈 군사정책이나 경제정책들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환경과 국내환경이 많이 바뀐 시점에도 타성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김정은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하기 시작했을때 그래도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고, 젊은 패기가 있어서 어느 정도 개혁적인 성향이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후 감성적이고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선왕인 김정일위원장처럼 이미지 정치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누가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체중을 불리고 할아버지인 김일성주석과 같은 이미지를 갖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은 어쨌거나 북한이란 국가를 창조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가나 기업을 만든 1세대에 비해서 2세대나 3세대는 닦아놓은 길위에서 안주하다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이 북한이나 한국, 그리고 한국의 재벌기업에서도 발생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목표를 잃어버린 정치지도자의 파행은 국민들의 고통으로 귀착되는 점에 있어서는 유감이다. 한국의 하층시민으로 냉전의 고통과 국가경제의 퇴락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더욱 유감이다.

게다가 정치지도자의 건강문제까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미지관리를 위해서 쾌적한 심신상태를 희생했다면 일인집권체제의 국가가 파행을 겪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하다. 남북한이 협력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점에 한국에서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정치지도자가 나서서 양국관계를 퇴행시키는 사건을 보고 정말 가망없는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참으로 그 상황은 오래갔다. 국가의 본질적인 목적, 공리적 사고, 논리, 철학,이성,이상 모두가 상실된 한반도라고 말하지만 그 근원은 남북한의 개인들과 관련된 문제가 시발점이다.

어쨌든 한국은 한 고비를 넘겼는데, 북한도 한 고비를 넘겨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집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집권자 자신이 변하면 된다. 변하지 않으면 이제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조금 더 젊었을때 그래도 힘이 있었다. 힘의 근원은 탈이념을 이야기하다 안되면 탈조선할려고 하는 패기가 있었다. 이건 핑계같지만 퇴락적인 분위기에 함께 물려들어갔다. 이미 퇴행화된 정치와 퇴행하된 이웃들을 보면서 분노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만큼은 살아있지만 안그래도 될 일을 참으로 힘들게 끌고간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10월 24일 토요일

이것이냐 저것이냐 / 국정교과서와 이념의 선택

요즘 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뜻밖에 이슈가 커지면서 아직도 이념의 족쇄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의식에 대해서 참으로 신기한 면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친공(親共)과 친일(親日)이 모두 좋지않고, 혹시 이면에 있을 수 있는 사적(私的)인 이해관계나 사상적인 견해는 공적(共的)인 관점에 매몰되어 논의되어야 옳다는 생각이다. 해결책까지 이야기하자면 국정화를 시도할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검정과정에서 친일이나 친공적인 내용은 명확하게 배제해야 할 일인듯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의 사상적인 이슈는 일본의 침략과 공산주의 침략중 어느 한 가지가 선택되어 비난받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30여년전 미국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지에서 레이건대통령이 유럽여행중 나찌 친위대 전몰자 묘지에 참배하는 스케쥴이 대서특필된 적이 있었다. 당시 유태인 수용소를 겪은 노벨상 수상작가 엘리위젤은 "당신이 갈 곳은 그곳이 아니고 희생당한 자의 옆입니다."라고 비평하며 2차대전에 독일과 적대적인 입장에 있었던 미국의 여론도 들끓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레이건은 나찌 친위대의 젊은이들도 희생자라며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변명을 했었다.

그런데 레이건대통령의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돌출행위의 이면에는 철저하게 반공주의자였던 성향과 제국주의(여기서는 극우주의라고 표현해야 이해가 쉬울듯 하다)에 대한 입장이 택일관계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레이건의 생각속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력하게 터잡고 있어서 침략적인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택일관계같은 관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해보는 내 관점으로는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공산주의와 역시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제국주의는 둘 다 배척되어야 하는 이념이라는 생각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일본에 대해서는 국민은 잘못이 없는데 위정자들의 잘못된 판단이 문제가 되었다거나 한국은 일본의 침략을 긍정적으로 해석해봐야 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이상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돌출발언이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침략행위의 주체는 소수의 위정자가 아니라 국민을 포함한 국가공동체끼리의 관점으로 논의되어야 하는데, 레이건의 친위대원들도 피해자라는 발상은 기상천외한듯 하다. 그런 판단은 레이건이 독일국민이었을때 할 소리인듯 하다.

국사교과서에서 친공이나 친일적인 내용은 둘 다 확실히 배제되어야 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문제가 아닌듯 하다. 

2014년 6월 12일 목요일

공공의 가치와 일본에 대한 인식


1985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유럽여행중 비트부르크의 나찌 친위대의 전몰자 무덤에 헌화하는 스케줄이 있었다. 이때 유태인으로서 강제노동수용소를 경험했던 엘리위젤은 "그곳은 당신이 갈 곳이 아닙니다. 당신이 갈 곳은 놈들에게 희생당한 자들의 옆입니다. "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 문제는 유럽 전역을 흔들었는데, 그 당시 레이건은 국민의 정서를 뛰어넘은 판단을 한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졌고, 적어도 나찌 친위대 젊은이들도 히틀러의 희생양으로 여기는 폭 넒은 관점을 유감없이 과시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미국은 2차대전중 나찌의 직접적인 영토침략의 피해를 입지 않은 승전국이고, 유럽은 나찌의 지배하에서 참혹한 시간을 보낸것과 비교하면 레이건과 유럽인들의 정서는 같을 수가 없는데, 레이건의 이런 돌출 행동은 두고 두고 유럽에서 비난을 받았던것 같다.

한국에선 유명인이나 정치인이 일제치하의 문제에 대해서 레이건과 비숫한 관대한 관점을 보이다가 비난을 당하는 장면을 종종 본다. 당사자들은 극일(克日)의 관점을 가진것으로 폭 넓은 심사(心思)를 표현할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한국민의 대부분은 일제치하를 '아주 나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잊는것 같다.

공익을 위한 자리에 있으면 공익적인 가치를 지니는 것이 옳은듯 하다. 국민은 공익적인 가치를 지닌 이를 존중하는것 같다. 큰 잘못이 없는데도 미움을 받는 이의 2% 부족한 점은 '공공의 가치'를 함께 하지 못한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이념과 공급중시경제학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은 반공주의자였다. 많은 나이에 대통령이 된 것도 반공주의자인 이데올로기성향이 크게 기여하였다. 비둘기파였던 지미카터대통령의 평화주의 군축정책같은 것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소련의 팽창주의에 뒷통수를 맞은터라 그에 대한 반동으로 레이건이 대통령이 된것은 상대적인 것이 교대로 주도권을 잡는 사이클상 당연했던 것 같다. 한국은 북한이 존재하는 탓으로 이데올리기문제를 이슈의 전면에 끌어올리면 다른 정책이나 재능등을 무시해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쉬운 여건을 가졌는데, 그동안 위정자들은 그런 상황의 수혜자가 되었다. 이런 면은 우파와 좌파가 적대적인 공생관계의 헤택을 입은듯이 말도 안되는 편향성을 가지고도 국회의석수를 차지하는 결과가 되었는데, 어쩌면 북한, 우파진영, 좌파진영이 물고 물리면서 시대적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마이너스앙상블을 이룬듯 했다.

마국의 경제학자인 래퍼(Arthur Laffer 1940 - )는 세율을 인하하면 기업의 생산활동이 촉진되고 근로자의 근로의욕이 증진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정부가 세금으로 돈을 빼앗지 않으면 개인이 일할 의욕이 더 생겨난다는 것인데, 특히 고소득층일수록 그런 효과가 더 커서 부자감세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하였다. 레이건 정부는 이 학설을 현실 경제에 적극 받아들였고 효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시 군비확장이나 대외정책등으로 재정적자를 누적시키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주친 반대편 손바닥이었던 소련의 아프칸 침공이나 여러가지 팽창주의 정책등으로 레이건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피치못할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래퍼의 부자감세학설같은 것은 레이건의 이념성향의 기반위에서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수용되었던듯 하다. 그럴듯 하지 않은가. 복지를 후퇴시키고 재정규모를 줄이면서 세금도 덜 받고, 기쁜 마음으로 그 돈을 투자하여 더욱더 노력하여 더 많은 돈을 벌어서 세금을 더 내면 결과적으로 재정이 풍족해지고, 복지도 더 증대될 수 있으며 나중엔 모두 부우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느 천년에

결국 멍청한 한국의 전 정부에서는 이 학설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부자감세정책같은 것을 취했는데, 문제는 경제활동의 기반은 중산층이거나 그 이하의 경제적계층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은것이다. 이념과 학설에 얽매여 잠간 한 눈을 파는 사이 수요측면이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듯 했다. 기업의 물건은 누가 사 줄 것이며 애초부터 서민은 기쁜 마음으로 미래에 투자를 할 자본같은 것을 형성하기는 커녕 그냥 숨쉬기도 바쁜 현실을 잊어버린듯 했다. 부자감세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전에 부자든지 빈자든지 기업이든지 소비자든지 서로 연결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했다. 그런 사실은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봐도 마찬가지인데, 수요측면을 무시하고 공급측면을 중시하는 사이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불경기가 오고, 동방의 아시아 국가들은 이상한 정치지도자들이 등장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것 같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복지를 강화시키고, 경제적인 관점을 통합적이고 연결된 것으로 이해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념과 정치와 학자가 트리오로 전 세계 경제를 침체시킨 사실을 빨리 인지해야 할 듯 하다.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카터와 레이건

카터는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고,  다음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은 매파로 알려져 있다. 카터는 구소련과의 군사력균형을 포기하고 핵무기를 비롯한 군사력 감축을 시도하며 평화주의 정책을 고집하였다. 그 정책속에는 주한미군감축에 관한 내용도 있어서, 당시 국력이 대등한 북한을 상대해야 했던 박정희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정책을 강화시키면서 중거리탄도미사일 실험을 하기도 했다.

카터의 정책이 미국민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다음 대통령으로 강력한 반공주의자이고 영화배우였던 고령의 레이건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레이거노믹스란 신자유주의 정책과 강력한 군사력을 재건하는 정책으로 호평을 받고 2선을 하였다.  하지만 많은 재정적자를 남기기도 하였다.

레이건이 중년때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통령배역으로 지원을 했던적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다운 풍모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미국의 재정적자

레이건대통령때 람보라는 영화가 등장했다. 월남전에서의 패배와 카터대통령의 평화정책으로 인하여 구소련에 비해서  군사력이 위축된 시절에 국민에너지의 상실을 우려한 레이건의 강력한 반공정책과 부합된 의지를 가진 영화였다. 신비한 특수전능력으로 람보는 공산권의 적대적인 세력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나갔고, 레이건대통령은 반대파들에 의해서 레이감보라는 별명이 붙었다.

레이건대통령의 군비증강과 부시대통령의 대외전쟁참여와 부유층감세정책때문에 늘어난 국가부채가 곧 국가부도를 선언해야 할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것이라고 한다. 급기야는 사회복지시스템이 붕괴되고 주택담보대출이자율이 올라가 주택시장도 붕괴될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국가부도 상태는 세계의 부도상태를 뜻한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그 당시 국민들이 카터에게서 가장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유약함'에 집중하고 반대의 정책노선을 선택했을 것 같다. 미국의 세계적인 역할을 중시하는 아버지부시의 대외군사정책은 이제 미국이 세계적인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결론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원칙과 철학이 없는 포퓰리즘의 정책이 가져오는 결과는 국민이 떠맡을 수 밖에 없고,이성적인 유럽과는 달리  쉽게 감정적으로 선동되는 대중적인 성격의 국민이 많기 때문에 정치인의 정책도 그에 부응해야 하는 미국에서 피할 수 없는 결론일것 같다. 

2019년 6월 22일 토요일

이념정부와 공급중시경제학

큰 정부를 지지하는 진보성향의 경제학자들은 이치에 맞지 않게 흘러가는 정치적 성향에 의아해하는 경향이 많은데, 국민을 먹여살리는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와 일단 정권을 잡고 보겠다는 정치인들 사이의 시각차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간격이 있는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자'로 알고 있는 미국 정부는 정말 작은 정부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의 정부는 이념적인 이상과 현실 사이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런 문제는 보수주의 정부가 들어서든 진보주의 정부가 들어서든 마찬가지인듯 하다. 어쨌든지 경제적 상황을 이념적 갈등관계의 바탕위에서 풀어나갈 일은 아닌듯 하다. 미국의 보수주의 정부는 이념을 이용하여 정권을 잡고나서는 현실을 인식하고 큰 정부로 변했고, 한국의 보수주의 정부는 이념을 이용해서 정권을 잡고나서는  감당못할 혼돈에 빠져있었던듯 하다.     

For many Keynesian, Reaganomics was little more than a thimblerig, a political gimmick that , behind the macho Hayekian rhetoric about slashing the size of the government, set off a public spending spree on defence that boosted aggregate demand and economic growth. Accordingto the Nobel Prize- winning MIT economist Robert Solow, 'The boom that lasted from from 1982 to 1990 was engineerd by the Reagan administration in a straightforward Keynesian way by rising spending and lowered taxes, a classic case of an expansionary budget deficit.

Galbraith agreed. "[Reagan] came into the presidency as the country was experiening a rather disagreeble recession and [implemented] lots of strong Keynesian policy," he said. "one of the results was an improving economy in the Eighties under Ronald Reagan. An one of the amusing facts of that was that this was done by people who didn't really understand Keynes and who were critical of him. We had involuntary anonymous Keynesianism.

케인즈주의자가 보기에 레이거노믹스는 그저 협잡이고 정치적 술수에 불과했다. 겉으로는 정부의 크기를 줄이자는 하이에크식의 거센 수사를 동원해 눈길을 끌었지만, 뒤로는 국방비 정부 지출을 마구 늘려감으로써 총수요와 경제 성장을 촉진했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MIT의 로버트 솔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82~1990년의 호황은 레이건 행정부가 순전히 케인즈적 방식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지출을 늘리고 세율을 낮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적자의 고전적 유형이다."

길브레이스도 솔로와 생각이 같았다. "레이건은 미국이 상당히 어려운 불황을 맞았을 때 대통령이 됐고 강력한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행했다." 갤브레이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그 정책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 중 하나가 레이건 치하의 1980년대에 경제가 향상됐다는 것이다. 그처럼 경제가 향상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바로 케인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경제 향상을 이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 우리는 '비자발적인 익명의 케인즈주의'를 경험했던 것이다."

- [KEYNES HAYEK] by Nicholas Wapshott -


The Statistical Abstract makes it quite easy to get a realistic picture of where your tax dollar goes. For example, here is a list of ten major federal programs. The number after the colon indicates each program's percentage of fiscal 1994 spending.

Social Security : 21.6 %
Defence : 18.9 %
Interest on the debt : 13.7%
Medicare : 9.7%
Medicaid : 5.8%
Pensions for federal workers  ; 4.2%
Veterans' benefits : 2.6%
Transportation (mainly highways, air traffic, etc.) : 2.6%
Unemployment insurance : 2.0%
Administration of Justice ( courts, law enforcement, etc.) : 1.1%

There are three important things to say about this list. The first is that it encompasses the bulk of government spending - 82.2 percent, to be precise Anyone who proposes a radical downsizing of the federal government must mean to slash this list. The second is that with one possible exception, these are programs that thepublic likes - they are not at all what people object to when they rail against Big Government.

[통계]는 우리가 세금으로 낸 돈이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대단히 잘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예를 들어 여기 연방 정부의 10가지 주요 지출 사업 목록이 있다. 콜른 다음에 나오는 숫자는 1994 회계연도에서 각 사업에 지출된 예산 비율을 표시한다. 

사회보장 : 21.6%
방위 : 18.9%
국제 이자 :13.7%
의료 보험 :9 .7%  
의료 보장 : 5.8%
연방 노동 연금 : 4.2%
원호 : 2.6%교통(주로 고속도로와 항공 운송 등) : 2.6%
실업 보험 : 2.0%
법무(법원 및 법 집행 등) : 1.1%

이 목록과 관련하여 지적되어야 할 중요 사항이 세 가지있다. 첫째로 이 목록은 정부 지출의 대부분 - 정확하게는 82.2% - 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연방 정부의 대대적인 축소를 제안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목록을 대폭 삭감할 작정이어야만 한다. 둘째로 한 가지 예외를 적용할 수 있는 항목이 있지만, 여기 제시된 목록은 대체로 일반 대중이 선호하는 사업들이란 점이다. - 일반 대중은 큰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경우에도 이런 사업들만큼은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 [THE ACCIDENTAL THEORIST ] by Paul Krugman -

그러니까 레이건대통령을 비롯한 공급주의 경제학을 채택한 정부는 시작은 미약했으되 점차 끝은 장대한 케인즈정부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주효했는지 재선에 성공하고 부시행정부 역시 비숫한 경험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한 편으로는 대통령의 임기가 짧다면 제대로 일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될 것 같은데 레이건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8년이란 기간동안 전쟁수요, 큰정부, 성공적인 경제등을 순환해가며 나름 성공한 케인즈정부가 되었던 것이다.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인 한국에서 내수확장을 통한 경제정책의 성공은 오랜 노력과 기다림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부의 정책조정의 범위를 벗어닌 재벌 중심의 경제는 복잡한 딜레마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2018년 11월 3일 토요일

랜드연구소의 남북한 관계 전망


어렸을때 미국대통령이 레이건대통령이었는데,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레이건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대통령의 주변에 새롭게 생겨나거나 포진해있는 연구소 조직이나 참모조직(taskforce team)에 관한 기사였다.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냉전시대에 대통령의 결정을 외롭지 않게 도움을 주는 조직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보니 레이건대통령에게는 피라미드형의 계선조직말고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정당성과 힘을 실어줘야했던 조직들의 존재이유가 속속들이 생각났다.


레이건대통령은 냉전시대에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소련과 체제경쟁을 해야하는 짐을 지고 있었으며 영국발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방지해야하는 강력한 시장경제정책을 시도해야했던 짐도 지고 있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대안으로서 시도해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절충의 근거가 없이 반대방향의 길로 가야만 했던 인간사 사이클의 특성상 복지주의와 반대되거나 정부의 시장개입과 반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나 공급중시경제이론이 실천되야 하는 시대적요구는 부정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든다.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연구소조직들은 항상 가치중립적이었을까. 분명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에 필요한 자료들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연구수집해왔을 것이다. 방향과 지침을 정해놓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을 거라는 의미다. 연구소도 주군을 위해 봉사하는 가치형성기능을 한다.


한국정부도 김정은 위원장을 평화로운 협상가라고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의 통일문제나 경제협력문제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엮여있는 두 국가의 정상들이 주변국에서 원하는 속도 이상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은 피치못할 이유로 생각된다. 랜드연구소는 한국과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이상으로 관계가 진행되는 것을 원치않는듯 하다. 한반도의 민중들에게는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전쟁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에 김정은 위원장이상으로 개혁을 추구할만한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랜드연구소의 공신력(public trust)을 구실삼아 미국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형성해나가자는 의도가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 감정은 전혀 아니고 냉정과 열정사이의 폭을 생각해볼때 비교적 영리하거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향이 한반도 경제협력에 우려할만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정부 10년동안에 항상 나태하고 지엽적인 대통령들의 성향이 김위원장의 고집을 감당못핳까봐 걱정되었던 점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은 위원장을 경계하면서도 협력해야 할 대통령의 그릇이 필요했던 것 같다. 70년을 호전적인 전시국가로서 존재하는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다만 믿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짐이 지워진 것이 현재 한국 대통령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2월 14일 토요일

한계소비성향과 낙수효과 / 한국경제의 수요자


오래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어느 대그룹의 왕회장이 양복은 한 벌만 있고, 구두는 뒷굽이 닳으면 다시 갈아 신기를 10년이상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아껴쓰는건 나와 같은데 돈버는 스케일에 있어서는 극과 극이며, 두 사람이 내수경제(內需經濟)에 전혀 도움을 못주는 비애국행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기도 했다.

한계소비성향(marginal propensity to consume)은 추가소득 중에서 저축되지 않고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한다. 개인적인 소득의 한계소비성향을 말하자면 왕회장께서는 극히 낮고 나에게는 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소비는 내수를 창출하지만 소비하고 남은 저축은 다시 투자가 되어 국민의 한계소비성향이 높던 시절에는 절대적으로 저축이 곧 애국행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매우 저렴한 삶을 사는 밑바닥의 현실경제를 보면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낙수효과랑 관련해서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배우 출신이자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마거릿 대처보다 한술 더 뜨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레이건 정부는 고소득자들에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깎으면서 이 조치로 부자들이 투자 이익 중 더 많은 부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투자의욕을 촉진해서 부의 창출을 독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자들이 부를 더 많이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할 것이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더 늘어나 더 많은 사람들의 수입이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것을 낙수효과이론trickle-down theory이라고 부른다.

부자들의 세금을 깎는 동시에 레이건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특히 주택 보조 부문에서)하고 최소임금을 동결하면서,그것이 더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 이해가 되든 안되는 이 논리는 공급 경제학 supply-side economics이라고 불리며 향후 30년 동안, 아니 그 이후까지도 미국 경제정책의 기본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 장하준[경제학강의] -

반공주의자였던 레이건대통령의 정치적인 이념과 공급경제학자들의 이념이 결합하여 미국의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던, 그래서 오바마행정부에서 수정되고 있는, 경제정책이 한국에서는 더 강한 이념적인 성향과 결부되어 꽤 오래 여운을 남기는듯 하다. 심지어 어떤 유명정치인은 복지는 한국인들을 게을르게 만들어서 그리스와 같은 파국을 만든다는 한국인들의 심성에 대한 지극한 오해심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사실 그리스는 농업과 관광업을 주된 산업으로 하고 있는 국가라서 제조업과 첨단산업 위주로 경제가 운영되는 한국과는 다르게 국민들이 낙천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의 특성상 그렇지 그리스국민의 게으름과는 상관없는 일인듯 하다. 그리스에서 관광을 하고 있을때 업소마다 딱딱하고 경직된 기계적 능률성으로 고객을 대하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아니면 올리브밭에서 천삽뜨고 허리 안펴기 운동을 하고 있는 그리스 농부를 생각하면 얼마나 우스울 것인지를 생각해봐도 그렇다.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해보면 그리스의 문제는 해결책을 공급경제학적으로 해결하여, 문제가 발생했을때 재정지원같은 것이 일반수요자들인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촛점이 맞춰져 있지 않고, 금융분야 같은 '영향력은 크나 대단히 소수의 이기적인'분야에 집중되어 있음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사실 복지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류의 목적임을 인식한다면 게으른 국민성을 바꿔서라도 복지정책을 달성해야 하는데, 정치적인 전문가와 경제적인 전문가들이 대다수의 서민들과 함께 생활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감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는듯 하다.

한국사람은 게을르지도 않을뿐더러, 일은 기계적 능률성에 쫓기지 말고 행복하게 해야 하며, 정부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줘야 하는 사명이 있는듯 하다.

과연 부자감세를 해서 부자들의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 봤는데,한계소비성향을 생각해보면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예를 들면 이렇다. 월 소득이 100만원인 빈돌이가 소득중 90만원을 소비에 지출할때 월 소득이 1000만원인 부순이가 900만원을 소비에 지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순이와 같은 고소득자가 절대적으로 많지 않다는 현실을 볼때 한계소비성향이 큰 빈돌이에 가까운 국민들이 내수경제를 살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부순이의 한계소비성향이 높아져서 고가의 사치품소비나 고급주택과 같은 건축물이 빈돌이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결국 빈돌이의 소비수요가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표현이기도 하다. 부순이가 소비하고 남은 잉여소득을 투자한다고 했을때 투자는 공급에 의존하고, 공급은 수요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면 전체적인 경제시스템안에서 대다수인 빈돌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야 한다. 모든 수요의 저점에는 부자가 아닌 대다수의 일반 수요자들이 있으며 그들이 경제의 바탕이 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부자들의 소비를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논리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는 장하준 교수의 표현도 공감하지만 한계소비성향과 국민경제시스템의 바탕을 생각해보면 다수의 평범한 국민들에게 맞춰져 있지 않은 경제정책은 국가경제를 곤란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2012년 5월 8일 화요일

정세가 변하면 정책도 변한다

ㅡ자유민주주의 승리를 이야기했지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모델을 비판했다. 생각에 변화가 있었나?

"나는 미국식 모델을 역사의 종언 모델이라고 한 적이 없다. 1980년대 레이건 시기 이후 경제 자유화가 전개되면서 너무 나갔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랬다. 스스로 규제하도록 내버려뒀다. 내가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한 것은 미국의 특정 경제정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를 가리켰을 뿐이다."

ㅡ당신은 레이건 지지자로 알려졌는데.

"레이건은 당대에 중요한 일들을 했다. 1980년대 서구의 복지국가는 너무 비대해졌고 국가는 과대팽창했다. 시장과 정부간에 적정한 균형관계가 아니었다. 조정이 필요했다. 지금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프리스턴대 교수인 프랜시스후쿠야마교수의 인터뷰내용중 일부이다. 정세가 변화하면 그에 대응하는 정책도 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중 하나인 레이거노믹스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상황이 변한 지금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라는것도 이야기하고있다

2016년 8월 12일 금요일

이미지정치와 올림픽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의 부장이었던 다간은 그 분야의 뛰어난 인물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뛰어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신체적인 장애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고 사격의 명수로도 알려져 있다. 관련 서적을 보면서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간은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마음을 좀 더 온건하고 예리하게 세우기 위해 채식위주의 생활을 15년정도 하다보니 뭔가 좀 달라지는 경험을 나도 한 적이 있는듯 하다. 그런데 좀 특별한 것은 만화주인공 심슨의 말처럼 종이에 포장했을때 기름이 묻어 나오는 육류로 만든 음식들은 여전히 입맛을 당기게 한다.그러니 먹고 싶은 것을 참는 노력도 한 일인듯 하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스포츠를 잘 한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인듯 하다. 그런데 국가나 공동체가 그 싸움의 배후에서 나를 조정한다면 그때부터 타성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은 내 자신만의 오버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조금이라도 권력, 부, 명예등에 대한 야심을 가지게 되면 그걸로 나를 조정하려는 이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대체로 알면서도 묻어들어가는게 인간사의 모습이지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국가에너지가 상실되거나 저하된 국가는 엘리트체육에 신경을 쓴다. 선수의 싸움과 승리를 전국민의 그것으로 이입시켜 함께 영광을 누리고, 에너지를 상승시켜 역동성을 얻어낼려고 한다. 과거 소련이나 동구권국가들도 그렇지만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이 소치올림픽에서 보여준 스포츠에 대한 지나친 애국적 관심은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반증인듯 하다. 한 편으로는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등 모든 면에서 탄탄한 길을 가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를 좀 더 관찰하고 분석하여 개선하는 대신 국민의 이미지세계를 바꿔놓는 미봉책을 쓰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이미지정치를 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공주의자인 레이건대통령은 스포츠를 통한 이미지정치에 힘쓴 당시 공산국가들과 상당히 유사한 정치를 했던것 같다. 결국 이념같은 관념이 정치와 스포츠까지도 추상적인 이미지로 흐려놓은 만행을 경험한듯 하다. 레이건대통령이 영화배우로서의 경험을 이미지정치에 잘 이용했던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서 한반도의 북쪽에서 철 지난 스포츠강국을 위하여 힘쓰고,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정치인들이 수염을 기르고 서민들의 생활현장을 '바람처럼'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실용성과 합리성은 안드로메다에 보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그게 다 '이념'때문인듯 하다. 추상적인 사고의 습관은 성조기처럼 영원하면 안되는듯 하다.

푸틴대통령이 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총으로 호랑이를 사냥한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면에는 '나는 강하다. 그러니 국민은 나를 따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듯 하다. 거기까지면 좋지만 더 심하면 "나는 위협적이다. 그러니 국민은 까불지 마라."까지 가면 문제가 있는듯 하다.  

사격을 하면서도 간혹 느꼈지만 건강이 매우 안좋은 시절에  저렴한 비용을 들여 목검 한자루와 무술에 관련된 책을 몇권 보면서 잠간 몰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보는 너와 하는  내가 불편해지는 것 같아서 스케이트와 수영등의 종목으로 얼른 바꾼적이 있었다. 어떤 무술인이 그렇게 숨어서 하느냐고 시비를 걸기에(중국영화에서 처럼 자웅/雌雄을 가리자고 할까봐 엄청 당황했다.) 관점이 비숫한 사람끼리 만나는 법이라고 반론하고 검도 연습을 그만두었던 기억도 있다. 그러니 사격이나 무술을 할려면 일반인보다 선량함과 부드러움을 훨씬 더 갖추어야지 성공적인 이미지관리가 된다는 생각도 해본다.

평화로운 이미지를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할것 같다. 

2024년 3월 23일 토요일

점진적 변화의 유용성 /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지금 끝내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를 위해서도 종전이 중요하다. 러시아는 전쟁을 치르는 동안 소모된 비용뿐만 아니라 장래에 발전할 기회비용까지 소모시켰다.

 

서방측의 자본주의 경제구조는 우크라이나의 전쟁후 회복을 위해서 많은 투자가 있을 것이다. 마치 2차대전후 미국의 마샬계획에 의해서 서방측이 회복된 것과 같은 회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 될수록 러시아의 경제는 장기적인 고립을 예상하게 될 것이다.

 

한국 친화적인 푸틴 대통령은 예상되는 러시아의 경제적 고립을 타개하기 위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나는 현상처럼 동북아시아, 특히 한국과 북한은 냉전 이데올로기의 종속변수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정확하게 쓰인다.

 

냉전 시절의 이념 감각과 습관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푸틴 대통령(실상은 러시아 민중들)만큼이나 한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실상은 한반도 민중들)도 이념감각과 습관을 가지고 있다. - 나는 20년 동안 주의 깊게 살펴보았지만 이념이란 망념은 습관과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생존하는 정신적인 생물이다.

 

잔인한 투쟁을 거쳐 출세한 고르바초프는 우월하다고 여겼던 소련 이념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겠다고 결심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각각 자신이 속한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이 두 협력자간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레이건은 미국 사회의 주된 동적 요인을 이해했던 반면, 고르바초프는 소련 사회에 대한 현실 감각이 전혀 없었다. 두 지도자 다 각자 자신의 체제에서 최선의 것이라고 간주했던 것에 호소했다. 레이건은 진취적 기상과 자신감이 가득차 있는 저장고를 건드리면서 미국인들의 영혼을 해방했던 반면, 고르바초프는 소련이 감당할 수 없는 개혁을 요구함으로써 자신이 대표하는 소련 체제의 종말을 앞당겼다.

 

- [ DIPLOMACY ] BY HENRY KISSINGER -

 

지금은 지도자들의 유연하고 평화적인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급격한 통일보다 평화로운 협력의 태도가 훨씬 유용할 것이다. 한국과 북한도 마찬가지다.  

2024년 8월 2일 금요일

루카스를 비판(2)

 이형춘(Hyeong Chun Lee): 루카스에 대한 검색결과 (hyeong-chun.blogspot.com)


경제학자 루카스는 합리적 기대이론을 내세우며 정부의 경제정책이 무용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루카스는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지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통화량을 늘리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을 예상해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은 무용지물이 된다는 논리다. 1990년대 후반의 인터뷰에서 루카스는 케인즈는 경제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통화론자 프리드먼 학파나 하바드 대학의 맨큐 교수는 루카스를 참으로 비중있게 평가한다. 맨큐 교수는 루카스를 20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가장 영향력이 컸던 거시경제학자라고 말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루카스의 이론이나 프리드먼의 이론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를 실행했다. 당시 영국의 대처정부의 대처리즘과 함께 신자유주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소련과의 군비경쟁을 위해서 결국 큰 정부로 돌아서게 된다. 결국 문제는 이념이었던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는 공급중시경제학이라는 경제이론을 내세워 부자 감세 정책을 취했지만 결국 세수의 부족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민생도 모르고 경제학도 모르는 아주 지엽적인 사고를 가진 한국 정부가 공급중시경제학을 모방하여 보았는데, 역시 세수 부족과 그에 따른 외화 부족으로 시달리게 되었던 것이다.

 

뭐가 잘못 되었을까? 버스 기사이자 기술 인력으로 사회의 저변을 떠도는 내 입장으로는 경제학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이성적인 시민을 보는 것은 어려웠다. 요즘은 몇 차례 풍파를 겪고 나서 정치적으로 세련된 시민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방향으로는 근로를 하는 다수의 시민들은 경제 순환 시스템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는 실물 경제 부문과 금융 경제 부문이 완전히 분리되어 금융 경제 부문은 실물 경제 부문의 근로자들이 전혀 가담을 못하기 때문에 기반이 취약하다. 그래서 미국과는 달리 한국의 금융 경제 부문은 사행성의 모습을 띄게 된다. 한 편으로 법조인 출신들(특히 검찰 출신들)이 정권을 잡은 한국 정부는 더욱 금융 경제 부문만 집중을 하면서 경제정책을 사행성 있게 몰고 갔다.

 

우리가 조금만 넓은 시야를 가지면 근로자는 일에 집중하지, 경제 시스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경제의 바탕은 실물 경제를 구성하는 근로자들이다. 이들이 흔들리면 경제 구조가 폰지 사기 시스템으로 변화되어 한국의 미래가 없어진다.

 

루카스의 경제 이론과 그 영향력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경제나 정치를 알려면 사회의 기반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정책은 실용적으로 접근을 해야지 이념적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9년 5월 24일 금요일

독특한 왕국(peculiar kingdoms)과 공급중시경제(1)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야당대표가 '독특한' 행동으로 일이 커진 사건이 있었다. 통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자세는 분명히 아님을 인정해야 할 것같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고질적인 '독특한' 병폐인것 같다. 청년기에 세상구경을 한다는 핑계로 막노동이나 외판원등을 이것 저것 하면서 사고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일은 독특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 멍청하게 한가했던 내 태도는 문제지만 인간과 사회, 특히 한반도문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 독특한 개신교회(한국의 개신교회는 종파나 지역, 성직자의 성향에 따라 개성이 무척 강하다)나 무예인들과 만나기도 했고, 훗날에는 물려들어간 정보기관 관련된 일로 독특한 세계에 발을 디뎠으며 심지어는 버스운전을 하면서 독특한 대기업문화를 보기도 하였다. 대체로 나는 좀 부실하게 생겼고, 독특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방심을 했던 탓에 거친 기싸움으로 관계를 마감하곤 했는데, 결국 독특한 사람들이 패하게 되 있었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무예인에게 미친 놈이라고 한바탕 욕을 하고 나서 돌아서니 사회에 섞일 주변머리(living ability)도 없고, 현대사회에 살면서 무예에 독특한 몰입을 하도록 만든 원인을 제공한 과거가 있겠지 하는 마음에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북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대하는 태도도 그 마음일 것이다.   

정치인이 독특하면 이상한 나라가 된다. 정치인은 보편적이기도 하고 공감능력을 가지고 국민의 편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독특한 행위와 말을 사용해 아직도 보편적으로 민주화가 덜 된 시민들을 선동하여 표를 얻어낼려는 단기처방은 결국 독특한 정치로 결실을 맺을 것이며 결국 독특한 나라를 만들 것이다. 독특하다고 표현하지만 이상하다고 읽는 것이 좋겠다. 그 이상함(grotesque)에 그렇게 시달리고도 계속 표를 찍어줄 시민들을 생각하면 망각과 욕망은 이상한 세계로 가게 만드는 이상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좀 합리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

한국은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하고 북한은 미국이나 서구유럽같은 자본주의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서로 발전단계의 보편적 수순을 지향할 뿐이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제도적 원인이라기 보다는 국민의 자율적 성향에 원인이 있다. 자본과 자원과 기술이 풍부한 나라에서 가난할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좀 더 선택적인 의미다.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핀란드나 스웨덴같은 생산적 복지를 지향해서 공존(prosperous coexistence)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빈부격차가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이 덜 이상하다. 그 상태를 빨갱이라고 모욕할 것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 빨갱이 운운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독특한 사람들이다.존재하지도 않고 지향해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닌 이데올로기를 입에 담는 사람들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일 것이다.

케인즈(Keynes) 와 하이예크(Hayek)의 경제정책 대결에 관한 책(Nicholas Wapshott가 쓴 KEYNES HAYEK)을 읽다가 신자유주의 이념을 퍼뜨린 영국의 대처수상이나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개한다.

Thatcher's philosophy was based on convictions learned at the knee of her shopkeeper father, but she had also searched for an intellectual justification for her views. At Oxford, where she studied chemistry, she had read the Road to Serfdom, and in 1974 she found the book newly relevant. Soon after assuming the Conservative leadership, when meeting the party's left-leaning research department, she reached into her bag and slammed a copy of Hayek's Constitution of Liberty on the table. "This is what we believe!" she cried.  

- omit -

There was also general skepticism about Reagan's economic experiment among Keynesians. John Kenneth Galbraith, in his usual droll drawl, caricatured the argument of supply-siders as, 'The poor do not work because they have to much income; the rich do not work because they do not have enough income. You expand and revitalize the economy by giving the poor less, the rich more."He dismissed 'trickle down" as 'the horse- and-soarrow theory; If you feed the horse enough oats, some will pass through to the road for the sparrows," But he conceded that a tightening of the mony supply "will work against inflation, in its own grim fashion." Walter Mondale, Reagan's Democratic opponent in the 1984 presidential election, made "trickle down" a social class issue, scoffing that "the idea behind Reaganomics is this; a rising tide lifts all yachts."

- omit -

But that was not the whole story, Despite the Laffer curve, the income tax cuts took a sharp toll on revenue. In 1982, Reagan, alarmed by the fast-increasing budget deficit, recinded various tax breaks on high earners, increasing taxation by a postwar record of $37 billion, or 0.8 percent of GDP.


보수주의 자체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영국의 복지정책이 절정에 이르고 재정적자가 심해지며 영국병이 심각해질 끝무렵에 {애이드리언 모올의 비밀일기}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었다. 그 책속에는 내 나이 비숫한 영국소년 애이드리언이 부모의 이혼과 복지에 무임승차(free riding)하면서 퇴락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회화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있었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그 책을 읽고나서 하이예크의 책을 보고 "바로 이것이다"라고 외쳤던 것 처럼 눈물을 흘리며 영국의 현실을 각성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국가의 현실을 걱정하며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대처수상의 자세는 본받을만하다. 개인적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리성을 잃어버리고 꿈속을 헤매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정치인이 아님은 생각해봐야 한다.

레이건 대통령역시 공급중시 경제학을 시도하여 경제학자들의 의견을 참조하면서 국가의 공리적 이익을 위해서 힘썼는데, 요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산만하긴 하지만 미국의 실속을 정확히 챙기는 성향이 있어 대통령의 그릇이라는 건 공리성이란 공간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위 인용문에서 '낙수효과' 즉 부자들을 잘 살게 만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온다는 이론을 처참하게 표현한 말이 나온다, 말에게 충분한 먹이를 주면 (길에 떨어진 배설물이) 참새에게 혜택을 줄 것이라는 표현이다. 받아먹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함께 존중받아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지배욕구나 작은 이익을 구하다보면 이상한 일에 물려들어가게 되는데, 갖을려고 노력하면 이상해지고 안 갖은 자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는데 시기적 결말이 발생한다. 그러고 보니 모두 이상해지는 것이다.

나중에 대처수상의 경제정책이나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이 오류를 일으키는 점을 서술하겠지만 결국 공리성을 지향하는 보편된 상태로 경제정책을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아니면 다음 정부가 교정의 짐을 떠맡는 수고가 발생하게 되는데, 한국에서 정상적이지 못한 정부가 저질러놓은 문제를 다음 정부가 해결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이라든가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국가시스템을 김정은 위원장이 일으켜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공리성을 위한 노력'이 참으로 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은 이상하거나 적어도 '독특한' 말과 행동으로 국민들을 힘들게 만들어서는 안될 일이다.



2015년 2월 28일 토요일

일본 정보기관의 변화


일본이 IS 인질사태에 대한 대처미흡을 구실로 일본판 CIA를 만든다는 기사다. 극우성향이 강한 산케이신문발 기사여서 그런지 기사자체가  정보기관을 강화하기 위한 여론조성목적도 겸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9.11 테러이후 정보기관이 방만하게 퍼져있어 제대로 된 조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문제점과 중앙정보부(CIA)가 관료집단화되어 융통성있는 정보활동을 하지 못하는 문제점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온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정부조직부터 경제조직까지 또는 일본인들의 개인과 사회의식서부터 구조까지 관료화되기 쉬운 바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중앙정보부 형태의 집권화 된 정보기관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의문점이 있는듯 하다. 혹시나 정보기관의 효율성에 중점을 둔 개혁이 아니라 효율성과 협력,조정을 구실로 일본의 대외 군사적 영향력을 확보할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중앙정보부는 신자유주의 이념과 결합하여 레이건대통령때와 부시대통령때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조직의 효율성과 기능강화의 의지는 별로 상관이 없고 이념적 의지가 정보기관의 확대 강화를 위한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듯 하다.

일본은 정보기관을 분산시켜서 집권적인 정보기관을 만들지 않는 전통을 취해 왔는데, 이는 과거 군국주의 성향이 있던 시절에 있었던 정보기관의 부작용을 방지할 뿐더러 군사정보가 아닌 경제정보등이 필요했던 일본의 시대적 특성을 반영해 온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일본은 다른 국가에 없는 '경제부'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잘은 모르지만 오사카 대지진과 북한 미사일발사등에 자극받아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때부터 총리관저실에 정보상황실과 통제실을 마련하여 총리의 국정위기대처능력을 강화시키고,정보기관은  이때문에 미국보다 대응능력이 강력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번 산케이 신문의 기사는 뭔가 이제는 필요한 것이 '다른 것'이라는 일본 극우정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는듯 하다.  

2013년 4월 23일 화요일

삼성경제연구소와 이념정치



삼성경제연구소가 국가정책의 의식구조를 적극적으로 지배한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재벌의 국가정책형성기능을 경계하는 목소리기도 하다. 의외로  우파정부에서는 정부와 삼성의 이익이 합치되기때문에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좌파정부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많은 참고가 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면서 정부의 정책에 도움이 될만한 많은 자문연구소를 만들어서 도움을 크게 받기도 할 정도로 '연구소'의 중요성은 큰 것 같다. 한국에서 좌파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념으로 탄생한 정부의 특성상 전문가집단이 부족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전문가집단이란 개인적인 기득권을 확보한 두뇌이기 때문에 우파정부랑 결합되는 현상이 생기는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아니더라도 우파정부에서는 나름 전문적인 브레인을 확보하는 길이 쉽다는게 중립적인 경제정책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인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정부가 우파정부의 경제정책에 비해서 그다지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은 것은 현실적인 측면이 전문적인 측면의 미비점을 보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강한 우파적인 스팩트럼을 가지고 있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좌파정부에서 참조했다는 내용은 현실감이 있어 보인다. 정부의 정책방향이나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역할이 그만큼 컸을테니 국가적인 관점으로서는 우려될만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우파던지 좌파던지 이념적색체가 있는 정부가 한 번 바뀌면은 모든 전문가집단의 정책프레임이 뒤집혀야하는 한국정치의 현실로서는 수십년동안 거대재벌이 변함없이 가꾸어 온 정책정보들을 참조하지 않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재벌의 국가정책 간섭으로부터 독립되고, 이념적 프레임이 간섭하지 않는 상설연구소의 중요성을 제시하면 또 하나의 이념적인 의견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우려가 드는 면이 있는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인것 같다.

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북미협상 / 각인효과 낙인효과

북미협상에 있어서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는 미국이나 북한에 좋은 시절이었다. 원래 사업가 출신 대통령은 원칙보다 실리를 중시하며, 변덕스러움으로 주변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각인이나 상대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로의 관계를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구축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주변엔 편견에 빠지지 않는 국무장관과 국무부장관이 있었다.

 

트럼프 팀의 강경파였던 볼턴은 냉전시대의 인물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각인되어 있고, 북한을 매우 적대적인 상대로 낙인찍었다. 베트남 전쟁과 레이건 대통령 시절을 지냈으면 그럴만 했다.

 

김정일 위원장 시대의 북한은 개혁의지가 전혀 없었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외부 지향성을 가져야 하는데, 점점 내부로 응집되어 갔다. 김정일 위원장의 교육이나 사고의 세계는 기반이 협소했다. 냉전시대에서 세계화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적 상황을 감당할 수 없었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한을 둘러싼 세계는 전시적인(전쟁중인 시기)세계로 각인되어 있었고, 김정일 위원장 시절에 북한은 테러국가로 낙인 찍혔다.

 

곧 미국에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의 성격에 대해서는 궁금했다. 그래서는 안되지만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을 맹목적인 내각이 구성될 가능성이 생각났다. 실제로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에 대해서 매우 강경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온다.

 

극렬한 냉전 시대를 살지 않고 서구식 교육을 받은 김정은 위원장은 각인 효과나 낙인 효과에 의해 개혁의지를 어지럽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2023년 3월 6일 월요일

한국의 보수정부 정책의 오류

신 냉전이 격화 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보수적인 정치심리가 팽창하는 중이다. 인간의 심리는 경로 의존성이 있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는 상대성이 있어서 보수적인 정치심리는 점점 깊어지는 중이다. 필요에 의해서 멈출 날이 있겠지만 많은 희생을 치루고 난 후의 일일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서 반공 이슈를 다시 꺼내들고 북한 역시 사상무장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특히 한국의 집권당은 깊은 고려 없이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현 시점에 맞지 않는 맹목적이고 이념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1) 부자감세 정책에 대해서

 

우선 이런 주장은 고용주가 여유가 있으면 노동자를 추가 고용할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무언가를 할 여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여유가 된다고 해서 싫어하는 가수의 CD를 구매하지는 않는다.

 

- [The Darwin Economy] by Robert Frank -

 

혹자는 내가 좌파적인 책을 인용했다고 나의 이념 편향성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고를 갖지 않았으면 안 좋은 미래에 자동조정이 되도록 방관했을 것이다.

 

나는 부자 감세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래 전에 기술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반공이념과 한 세트로 묶어서 시행했다가 실패한 사실과 그 이유도 언급한 적이 있었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의 한계소비성향이 더 크기 때문에 국가경제 전체로 생각하면 빈자 부양정책이 훨씬 더 큰 성장효과가 있다.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B%A0%88%EC%9D%B4%EA%B1%B4


2) 근로시간 문제

 

오래전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해서 컬러티브이도 구입하고 냉장고도 구입하고 싶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수입과 근로의 고통을 비교형량해서 근로의 고통을 감내했다. 요즘 사람들은(요즘 근로조건은)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하거나 아니면 그런 일을 하지 않는데, 아무래도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이 적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정치적인 반향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차후에 보수 정부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나타낼 주범이 될 것 같다.

 

장시간 근로로 가장 효과를 볼 분야는 제조업 분야인데, 이미 제조업 분야는 가혹한 근로조건과 낮은 임금의 장기적인 영향으로 구인난이 심각해진지 오래다. 52 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제한 한 것은 이직률을 낮춰서 기업에는 장기적으로 이익이 있었다. 내 자신이 제조업에서 일하면서 보니 근로자들은 대부분 장시간 근로를 기피하였다.

 

제조업은 아니지만 다른 분야에 비해서 보수적이었던 버스 업계가 장시간 근로와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들의 기피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장기간 버스기사 구인 대란이 일어날 예정이다. 한국의 버스는 공공재임에도 불구하고 민영화 되어있어서 경영주도 수익이 나지 않는 구조이다 보니 수익에 대한 부담이 버스기사에게 전가되어 근로조건이 매우 참혹했다.

 

3) 저 출산 문제

 

많은 선진국들이 저 출산 문제를 겪었지만 한국은 저 출산 현상이 이르고 더욱 가파르다. 여기에는 사회구조가 수직적이고, 경쟁적이며, 건강하지 못하다는 원인이 있다.

 

환언하면 한국사회는 출세 지향적이며 이웃과 학우들은 경쟁 상대이고, 근로자는 천대받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부우자로 살아야 사람대접 받는 지옥도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적극 권장할 사회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남북분단의 긴장상태도 아이들 키우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남북분단 문제는 내 자신이 혼쭐이 나봤기 때문에 잘 안다. 남북한 국민들의 의식의 저층에서 가장 괴롭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보수와 진보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번영을 위해서 힘써야 한다. 이념과 정쟁은 많은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