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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30일 금요일

신문스크랩

20대의 아주 어려운 날에 신문스크랩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신문에 유익한 부분을 오려서 일기장에 붙여놓곤 했다. 특히 지금도 자주 들춰보는 내용은 혼자서 썰매를 끌고 남극점을 다녀온 프랑스의 로랑스 드 라 페리에트라는 여성에 관한 기사였다. 당시 허약한 몸과 마음을 한 번도 극복해 본 적이 없는 내 자신을 몸시 부끄럽게 만든 기사였다. 그날 이후로 남극을 혼자 횡단한 다른 여성의 체험기나 남극을 횡단한 육십대 후반의 노익장을 과시한 탐험가의 기사를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기도 했는데, 아마 육체적인 강인함에 매료되었던 것보다 고독함을 극복한 인간승리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경구의 대가인 리히텐베르크(1742 - 1799)도 어느 해 그 해의 신문을 모아서 스크랩하여서 책처럼 읽어보려고 하였는데, 1년을 그렇게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애쓴 보람이 없다. 그 속에는 50퍼센트의 잘못된 희망과 47퍼센트의 틀린 예언과 3퍼센트의 진실밖에 없었다."

무려 1700년대에 언론의 진실성을 문제삼은 이 말이 꽤나 오랫동안 인용이 되곤 하는데, 같은 기사를 놓고서 좌파적 시각과 우파적 시각의 상반된 시각으로 신문기사를 쓴 것을 양쪽 성향의 신문을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신문기사와 진실의 정체를 알게 되는듯 하다. 가치가 담긴 기사가 진실이기는 어려운 듯 하다. 그런데 남극을 다녀왔다는 기사는 100퍼센트 진실이었다. 

충동과 의지

히틀러는 꽤나 채식에 열중하였고 동물을 사랑하였다. 처칠은 꽤나 말썽꾸러기인 학창시절을 보냈다. 폭풍전의 고요함과 폭풍후의 고요함을 경험한 두 사람의 인생행보는 역사적으로 크게 다른 결과를 보여줬다. 가끔은 선행을 이야기하고 선행을 행하고 있으나 불안한 사람이 보이고, 충동적이고 악해보이나 비련의 동정심이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되도록 깊이 간파하여 상대를 하곤 하였다.

의지력이 강한 인간은 자신을 선(善)과 악(惡)의 주체로 끌고가는 능력이 뛰어난듯 하다. 아마 에너지와 열정이라는 도구를 마음대로 휘두를수 있는 능력이 있는듯 하다. 반면에 뜻밖에 유약한 인간이 문제를 일으키고 여론의 돌을 맞는 장면은 많이 볼 수 있는듯 하다. 엘리트범죄가 심각한 결과를 불러오는데도 장기적이고 지능적이며 냉철하고 강한 의지의 콩껍질에 쌓인 악이기 때문에 평가하기 매우 어려운 면이 있는듯 하다.

2016년 9월 26일 월요일

이성과 정치적 자율성 / 칸트

언젠가 가능한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 일을 할려고 의도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엔지니어일을 할려고 노력하고 공학공부를 할려고 노력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타인과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기계나 육체적인 일과 대화하는 것보다 불합리한 인간과 대화하는 것은 다소 곤혹스러운 면이 있었던것 같다. 그런 모순이 가장 두드러진 사회가 이념문제에서 비롯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많이 놀랐던 적이 있었다. 예를들면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 이념으로 건국된 북한이 매우 불평등한 사회라는 사실, 가장 안보를 중시하는 현실에서 안보를 가장 저해하는 내부의 적, 방산비리같은 문제가 뜻밖에 일사분란하게 척결되지않는 한국사회는 건국기반과 국가의 입지가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는 점과, 그런 문제로 외세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국가임을 스스로 용인하고 있는 불합리성이 있다는 문제가 보인듯 하다. 

도대체 북한은 핵을 통하여 강성대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선후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국가존립의 최저조건에서 꺼내든 비장의 카드라는 생각, 부패를 저지르는 한국의 엘리트들은 생존조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약한 사람들이라는 불합리성이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본의아니게 관찰해본 경험에 의하면 안일함을 구하는 나약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쉴새없이 작은 이익들을 구하고 부패의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었던 것 같다. 

칸트는 인간은 도덕적으로 자율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칸트는 모든 개인에게 이성이 있고, 그 이성을 토대로 도덕적인 결정을 한다고 말한다. 칸트는 국가생활에서 시민은 정치적 자율성을 발휘하게 되는데, 시민이 선출한 대표자들이 보편적 이성을 사용하여 만든 헌법이나 법률에 복종하는 자유를 정치적 자율성이라고 말한다.시민의 도덕적 자율성은 도덕적인 인간들이 제대로 된 대표자를 선출하여 국가 구성원들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하는 헌법과 법률을 만듦으로서 도덕적 자율성과 정치적 자율성이 일체화 된다고 말한다. 

만약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이상한 정치방향을 몰고간 지도자를 선출했다면 그것은 국민의 도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듯 하다. 언젠가 준법보다 경제적인 성과의 우위를 염두에 둔 국민이 대국민 사기극에 걸려들었다는 사건들을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이성적이지 못하고 철학없는 국민이 주어진 정치적 자율성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이 문제는 시민사회의 기본교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듯 하다. 이성, 철학, 절제가 많이 필요한 사회에 살고 있는듯 하다. 

2016년 9월 24일 토요일

ORIENTAL VERSUS

10여년전 김위찬교수와 르네마보안교수의 [블루오션 전략]이라는 도서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갈등보다는 조화와 화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소에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봐도 문제의 해결책을 명쾌하게 제시해주는 내용인듯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레드오션 전략은 관점을 좁히고 생리적인 우울함까지 안겨주는 악마의 전략인듯 하다.

우선 레드오션 전략과 블루오션 전략의 차이점을 김위찬교수와 르네마보안 교수의 저서를 빌어 서술하자면 1. 레드오션 전략은 기존시장안에서 경쟁, 블루오션 전략은 새공간 창출 2.레드오션전략은 경쟁에서 이기는게 목적, 블루오션전략은 경쟁을 무의미하게 만듦 3. 레드오션 전략은 기존 수요시장 공략, 블루오션 전략은 새 수요시장 창출 및 장악등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기업 경영과 관련해서 두 가지 더  비용문제와 관련해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국가나 개인의 블루오션 시장은 좀 더 경제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생략을 했다.

한 번은 연장자 두 분이 오랫동안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 사람은 매우 폭력적이었고, 한 사람은 매우 교활했다. 그런데 싸움은 폭력적인 이가 먼저 시작을 했고, 폭력으로 상대할 능력이 없는 다른 이는 술수를 사용했다. 실제로 나는 이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는데, 오래전 지인 중에 매우 교활한 이가 있어서 골머리를 앓았는데, 어느 날 보니 내가 그이를 거칠게 상대하고 있었다. 아마 상대방도 비숫한 생각, 저 사람이 거칠기 때문에 나는 좀 더 두뇌플레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근원을 생각해보니 바로 '경쟁'이 문제였다.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하는 의도나 상대방의 우위에 서고자 하는 의도가 일으킨 문제였다.

어떻게 보면 한국사회는 매우 나쁜 레드오션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 같다. 갈등론이 지배하는 과학적 사회주의국가인 북한, 그리고 국가윤리가 국제질서에 조화되지 않는 특이한 국가심리를 내면화 시킨 일본, 패권을 지향함을  직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중국등 즐겁지 않은 이웃을 두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블루오션전략이라는 분위기에 익숙치 않은 듯 하다. 항상 작은 왕이든 큰 왕이든 경쟁사회의 최후 승자인 왕을 지향하고 있는듯 하다. 시민사회의 역사가 짦은 동북아시아 각국이 국가간의 관계에서나 국내의 시민상호관계가 수직적인 권력관계에 몰입하는 이유는 환경생태론적인 결과인듯 하다. 특히 제왕적 정부형태의 북한이나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부의 통치를 받았던 한국인들이 수직적 관계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듯 하다. 크게는 국가간의 관계부터 시작하여 국내 정치관계나 개인간의 관계가 연쇄적으로 수직적인 형태로 연결이 되어 있는듯 하다.

[블루오션 전략]에서는 블루오션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속적으로 창조된다고 말한다. 지리적 영토만 영토가 아니고, 경제적 기술적 영토도 창출되고, 경제적 부유함을 넘어서 삶의 질문제를 중시하게 되는 추세에 동북아시아가 미래 희망이 보일 수는 없는듯 하다. 이런 정세에 한국과 북한은 서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심하게는 북한, 어느 정도의 한국의 동양적인 고질병은 크게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듯 하다. 독재, 민주화 기타 식상한 단어로 표현되어 있지만 꼭 그런 관점 말고, 개선의 가능성이 없도록 시야를 협소하게 만드는 관점에 집중을 해보면 바쁘고 할 일 많은 세상에서 '이상한 짓'만 하다가 시간과 경제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형국이 된 듯 하다. 

2016년 9월 16일 금요일

실사구시(實事求是)

SBS 방송프로에 대기업의 고액연봉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견디지 못해서 사표를 쓴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20여년전 어느 일본계제조회사에 현장직에서 일하다가 관리직으로 옮겨준다는 제안에 놀래서 회사를 그만둔 기억이 났다. 조직에 몰입하는 순간 생각이 끝이라는, 형편에 비해서 만용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는데,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지금 후회는 없는듯 하다. 한 번 살다가는 인생인데, 후회없으면 모두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조직문화가 가장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재들의 관점으로는 세상을 특이하게 산다는 생각도 할 법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고서야 세상이 발전을 하겠나 싶다.

한 번은 네덜란드의 200킬로미터 스케이트 마라톤대회에 나가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체격이나 체력을 만드는데 한계가 보였다. 그래서 체드 헤드릭(Ched Hedrick)이라는 더블푸쉬(Duble push)라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서 세계인라인 챔피언을 독점했던 선수의 기술을 빙상에 접목시켜 보았다. 물론 이 선수도 그런 방식으로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장거리스케이팅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습을 해보니 중심이동간격이 작아서 에너지소모가 덜 했다. 전통적인 방식보다 스피드는 안나지만 남들이 보기에 긴 시간을 설렁설렁 쉽게 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름 초장거리에서는'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런 기술을 만드는데는 사격훈련을 위해서 스케이트균형훈련을 한게 큰 도움이 되었던것 같다. 사격과 스케이트를 다 잘하는 방법을 찾다가 결국은 찾게되는듯 싶었다.

가끔은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모든 일은 실사구시에 맞게 안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저우언라이는 언제나 이렇게 주장했다. 1953년에 시작된 중국의 제 1차 5개년 게획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민들도 이 5개년 계획으로 경제가 성장하면서 생활의 질이 향상되자 모두 기뻐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국가전체는 활력이 넘쳐났다. 당시 정부의 모든 사업계획은 실사구시의 원칙에 따라 계획 추진되었다. 실사구시란 경제건설 분야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56년 1월에 열린 전국정치협상회의에서 저우언라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현실성 없는 일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지고 불가능한 일을 추구하면 조급증이 발동하고 이 조급증은 일을 그르칠 수밖에 없습니다.

저우언라이는 부강한 중국을 만들기 위해 그의 장년기를 모두 쏟아 부었다. 나라가 부강해져야만 이제 생겨난 신생 중국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며 급진적인 모험을 하려고 하였다.

그래서 당시 저우언라이는 '많이, 빨리, 좋게, 그리고 절약하는 것이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관념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둬야 한다고 했으며 가장 좋은 방법은 실사구시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우언라의 뜻대로 일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 김상문 저 [유엔이 감동한 위대한 지도자 저우언라이]중에서-  

저우언라이의 생각은 우경화를 반대한 마오쩌뚱에 의해서 배척되었는데, 마오쩌뚱의 카리스마적인 제왕적 권력은 중국발전에 많은 한계를 가져다 주었다. 중국을 대기근으로 몰아넣은 그 유명한 참새박멸사건이나 목표량에만 신경쓰다가 쓸모없는 철강제품을 대량 생산한 사건들은 이미 이념적으로 고착화된 생각들이 어떻게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던것 같다. 만약 마오쩌뚱이 말년에도 권력을 놓지 않고 계속 꼰대성을 발휘하고 있었으면 오늘 날 중국의 방향은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북한에 대해서는 갑작스런 붕괴나 통일같은 비현실적인 몽상을 하는것 보다는 일단 북한내부의 개혁과 개방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엘리트들의 혁신적인 변화가 중요하고,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 시장경제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든다. 배척이 아닌 세수(稅需)의 원천으로서 시장경제를 제도적으로 받아들이고 법이나 징세제도를 마련한다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실사구시의 방편이 마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우언라이와 같은 개혁주의자는 과거 청나라에서도 있었는데, 강희제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젊은 시절 환관정치를 극복하고 황제가 되어 실사구시의 정신을 발휘하여 청나라를 내실(內實)있고 부강한 국가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는데, 국사(國事)에 매진하느라 제대로 된 수면도 취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훗날 저우언라이 총리의 모습으로 재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6년 9월 9일 금요일

주은래에서 흥남부두까지

UN도 감동한 중국지도자 주은래는 공산혁명군지도자였지만 모택동보다 훨씬 지혜롭게 중국을 개혁시킨 지도자로서 자유진영을 비롯한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는듯 하다. 사실 모택동에 대해서는 혁명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적인 자질이, 욕망이 강한 다혈질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혁명지도자로서는 적합하나 혁명이후의 중국사회를 안정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자질을 갖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더구나 모택동의 통치권아래서 한반도가 통일될 기회를 놓친것을 생각하면 모택동의 이념적 아집에 대해서는 감정적으로도 좋지않은 생각이 든다. 모택동의 집권을 또 다른 왕조의 탄생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아닌듯 하다. 개인적인 욕망과 이념적인 정당성을 교묘히 결합하여 중국민들을 홀린 인물로 평가받아도 될듯 하다.




반면에 주은래는 중국인민해방군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냉철하고 지성적인 태도로 목적을 잊지않는 인물이었다. 인민해방군창군기념일인 난창봉기때 주은래의 지도력에 대해서 평전에서는 부하병사들의 이야기를 빌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행군을 하면서 잠깐씩 휴식시간이 주어졌을 때 심한 피로로 모두 곯아떨어지곤했다. 가끔씩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면 저우언라이 동지께서 등불을 밝혀놓고 일을 하거나 서성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계신 것이 보였다. 우리는 저우언라이 동지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 이는 저우언라이 동지가 부하들에게 매우 엄격하기도 했지만 그 자신에게는 그보다 엄격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때 장진호전투에 참가했던 미군조종사의 체험소설인 [FROM THE COCKPIT]을 뒤적거리다가 장진호전투에서 흥남철수까지의 과정들을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나의 외조모는 장진호 서쪽이 고향이었고,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서 남바위를 쓰고 솜옷을 입고 종종걸음으로 피난하는 기록영화속의 어린 소녀가 함흥근처의 정평으로부터 피난 온 내 모친의 어린시절 사진과 닮아서 더욱 감정스러운 사건이었다. 국민당군을 대륙에서 몰아내고나서 갑자기 커진 인민해방군을 소모시키기도 할겸, 동아시아에서의 이념적 패권도 얻어낼겸해서 참전시킨 중공군들이 겨울 장진호의 혹한속에서 열배넘는 병력으로 미군을 포위하게 되는데,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미군과 포위한 중공군의 많은 수가 영하 40도 가까이 되는 혹한속에서 희생되었음을 생각하면 어느나라 국민이든지 정치의 본질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듯 하다.




혹한속의 장진호전투에서 속옷 위에 동복 하나만 걸치고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싸운 중공군 포로는 한쪽 발이 얼음 덩어리로 변한 경우도 있었고 동상으로 귀와 코가 없어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방한준비를 제대로 갖춘 미군도 동상으로 죽은 인원이 엄청난데 인원파악이 제대로 안되는 중공군이야 오죽 많았을까 생각된다.




몇년전 어느 날 밤 11시쯤, 동해안에서 양구를 거쳐 배후령을 넘어오고 있는데, 한 노인이 차를 세웠다. 인가도 없는 배후령 중턱에서 차를 세운 기괴한 노인을 태웠는데, 산속에서 기도를 하고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 위를 가리키는데, 촛불이 일렁거리는게 보였다. 노인은 뭘 좀 보는게 있어서 기도를 할 때 많은 중공군손님이 찾아와서 시끌벅적하게 놀다 간다는 것이다. 이국땅에서 떠도는 원혼들을 위해서 눈물로 평안을 빌어보곤 한다는 것이다.




한이 맺힌 개인의 삶은 상당히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명분을 가진 핑계를 기반으로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의 개인적인 과거사도 그랬지만 누구나 깊고 냉철한 생각을 하지 않고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리라고는 보장할 수 없는듯 하다.




한달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에서 내 구글블러그를 찾아왔기에 북한의 함경도에서 인터넷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구글어스로 찾아보았다. 한군데는 원산항근처 비행장과 호텔등 휴앙시설이 있는곳, 한 군데는 통천에 있는 나의 부친고향근처 해변가의 휴양지(시중호역앞바다근처)로 추측되는 곳이다. 매우 대칭적인 인연인것 같다. 마음이 우울할때는 북한과 가까운 화진포의 이승만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의 별장을 가보곤 하는데, 내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으로 봐도 그렇고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적 공존이라는 관점으로 봐도 이건 옳지 않은 역사인것 같다. 문득 덧없고 짦은 인간의 삶속에서 별 일이 다 있다는 뭘 아는듯한 생각이 아주 잠시 지나쳤다. 

2016년 9월 7일 수요일

S사와 한국의 소비자

언젠가 S사의 냉장고의 문을 열다 모서리부분이 각이 져서 머리를 찧었다. 세번을 반복해서 찧으면서 세번을 모두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다. "이것은 제안이다. 모서리부분을 둥글게 만들면 어떻겠느냐." 세번째 돌아온 대답은 방어적인 표현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내가 속이 상한 나머지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문득 옛날 서비스센터가 아니라는 생각이 났다. 한참 경제성장기에 그 회사의 서비스센터는 정말 극진했던것 같다. 미안하게도 경제적 사정으로 컴퓨터등은 그 회사것을 못쓴다. 사정이 있어서 컴퓨터를 자주 바꾸는데, 애프터가 안되도 저렴한 중국산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늘 뉴스에 S사는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동안 성능이 아주 조금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스마트폰이 국내에 들어와 팔리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요즘  마이크로버스와 대형버스의 중간크기인 귀가 양쪽으로 나온 중국산버스가 눈에 자주 띄기 시작하여서 한국의 대형버스시장과 마이크로버스시장이 모두 잠식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시장도 그리될 것 같았다. 품격과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욕망만을 끌어내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속성이 '실용성'에 제압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그런것 같다.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경쟁적이고 차별적인 트렌드가 공산주의에서 시작하여 실용적인 트렌드로 바뀌는 중국에 제압당하는 뼈아픈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3년간 사회의 밑바닥에서 이일 저일을 해보면서 일터를 그만두고 나올때는 회사에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주고 나오곤 했다. 요즘 많이 지쳤다. 내가 좌파인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도 그렇고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세계는 차별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마트폰의 특별한 기능을 알지도 못하고 사용할 시간도 없는 여유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 좋은 스마트폰을 누가 사줄 것 같은가. 한 번은 어느 재벌이 운영하는 스키장에서 청소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고객과 회사의 행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만두고 나오면서 두가지를 지적해주고 나왔다. 진입로 입구에 표지판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근처에 다른 스키장으로 가버린다는 사실과 스키를 타러 오는 젊은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스키장에서 사는 젊은이들이 아니고 가끔 조금 별러서 겨울낭만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스키장의 주고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집에 S사에 관한 책이 몇권있다. [S사가 두렵다] [S사의 몰락] [S비전 2020]등인데, 창의성보다는 모방을 기본으로 한 일본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면을 간과함으로써 한국보다 먼저 무너진듯 하다. 그 실용성이란 내수(內需)의 근본은 평범한, 아니면 그 이하의 시민이고 수출을 많이 할려면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의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야 했다. 고비용구조로 그것이 실패하면 일본의 내수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했다. 사회의 경제적구조는 부동산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내수도 망가뜨리고 나중에 부동산 거품까지 일으킨 차별적 사회구조를 가진 국가가 계속 발전할리는 없을 것 같다.그래서 [S사가 두렵다]는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인인데, 두려워 할 것 없다. 한국도 따라하고 있으니까.  

S사가 몰락하던지 비젼을 갖던지 그것은 소비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사가 몰락해서는 안되지만 잠재적 소비자들의 특성을 간과하는 아니면 적어도 소비자들과의 내실(內實)있는 연결구조를 전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영은 문제가 있는듯 하다. 한국경제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층부와 하층부가 텔레토비와같이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아마 근본적으로 우파와 좌파가 섞일수없는 이데올로기세계를 가진 한반도의 특성상 순화된 표현으로는 '분배', 모진 표현으로는 '뺏을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을려는 자'의 관계로 재벌과 시민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듯 하다. 시민은 모두 잠재적 소비자이다. 경제학적으로 '수요자'라는 단어의 의미는 구입하거나 구입할 의도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2016년 9월 6일 화요일

법조계의 봄 / 홍남순변호사

白玉堂前一枝梅
今朝忽見數花開
我家門戶重重閉
春色緣何入得來

백옥당앞 한그루 매화나무
오늘 아침 문득 두어송이 꽃피었네
내가 대문을 굳게 닫아놨는데
봄빛은 어디로 파고들어오는고

어느 당나라 시인의 시인데, 홍남순변호사가 생전에 좋아하던 시라고 한다.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항의하면서 곤란을 겪은 청렴하고 곧은 변호사로서 법조계에 알려져 있다. 돈 버는 일에 관심이 없어서 1980년 계엄법위반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1년 크리스마스특사로 출감했는데, 모아논 돈이 없어 끼니걱정을 했다고 한다. 옳은 일은 옳은 결과를 낳는다는 순리를 신념으로 간직한 법조인의 예측과는 다르게 요즘 거대한 비리는 법조인이 모두 일으키는듯 하다. 법조계의 봄은 멀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느끼지만 잠재의식속에 출세라는 단어를 굳건하게 새겨온 법조인이라면 비리와 친근할 수밖에 없는듯 하다. 지식과 권력이 있는데, 소망을 이루어봐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자신과의 대화도 있음직 하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을 할래도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원성이 정치인들에게만 향하는 이유가 있는듯 하다. 정치인은 투표로 통제가능하다는 전제를 인식하고들 있어서 정치인과 서민들의 관계는 좋든지 싫든지 항상 시끄럽다. 그러나 법조계는 고요하다. 제 3의 영역이다. 사법부는 헌법상 독립되어 있고 검찰은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권력체이다. 음지에서 싹트는 비리를 감지해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듯 하다. 대법원장이 참담한 심정을 토로할 정도로 법조비리의 심각성은 크지만 행정부도 간섭할 수 없고, 입법부도 간섭할 수 없고, 더구나 시민들이 선거를 통하여 통제가 불가능한 집단구성원들의 비리를 막는 길은 불가능할 것 같다.

내부자정노력이 있다한들 자칫하면 이념적 편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런 노력도 쉽지 않을듯 하다. 예를들면 홍남순변호사의 고향이 광주고 권위주의정부에 항의했다는 이유로 좌파라는 평가를 받아 청렴함이 반감되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법조인들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때부터 지역감정에 물린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법조계에 봄이 오기는 쉽지 않을듯 하다. 

2016년 9월 5일 월요일

Lost in memory / 북한의 이념과 종교

가끔 직장을 옮길때 이력서란에 무엇을 써야할지 갈등을 겪을때가 있다. 부지런하고 패기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할지는 한국민들이 짜장면과 잠뽕을 선택해야 하는 숙제처럼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듯 하다. 갈등하다보면 내가 기업주였으면 어떤 인물을 원할 것인가 하는 결론을 보여주기 마련인듯 하다. 언젠가 창업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므로 내가 운영하고자 하는 기업의 성격에 맞는 종업원이 되고자 노력해보곤 한다.

금수저냐 흙수저냐 하는 문제가 또한 한국사회의 출신성분분류의 풀리지 않는 난제인듯 한데, 누가 같은 민족이 아니랄까봐 백두산혈통 운운하는 북한처럼 사회적평등을 이루지 못하는 점에 있어서 매우 유감인듯 하다. 내 자신은 흙수저보다 못한 가시수저에 속하는 가족력을 갖고 있어서 그런 문제에 예민한것은 아니다.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남북한 문제에 대해서 이해함도 있고, 해결해야 하는 점도 많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 때문인듯 하다. 내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궁극적인 문제에 매달린 것은 당연한듯 싶다.

한때 불운한 과거와 관련된 기억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수면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비용편익계산을 해보니 일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것이 좋았으므로 그 시점에서 나의 주어진 팔자려니 했다. 그 당시 특정 종교들을 대단히 싫어했는데, 자발적의지를 잃어버리고 성직자들의 완전하지 못한 의지에 억압되어있는 교인들을 매우 경멸했다. 그렇다고 내가 비종교적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후배의 말처럼 좋아하든 싫어하든 관심이 있다는 것은 내가 마음을 둔 곳이라는 표현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심리상태는 종교를 극도로 경멸하는 북한 같았다. 북한과 다른점이 있다면 내 자신은 이념과 종교를 다 경시하고 내 본질로 돌아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고, 북한은 이념이 종교가 없는 자리를 대신하며 같은 하늘아래 이념과 종교가 공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맹목적 믿음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비숫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 젊을때 누군가 종교를 강요할려는 의도가 있으면 장난스럽게 "나는 무사도를 믿는다."라고 말했고, 교조화된 강인함을 보여주는 사람들, 무술인들이나 지나치게 남성성을 강조하는 마초같은 성격을 가진이들에게는 '나는 은총과 사랑이 필요해요."하면서 엇갈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천리마운동이나 고난의 행군, 선군정치, 100일전투같은 강한의지를 보여주는 표현이 많은 선군정치하의 북한은 역사적인 트라우마의 산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강대국사이에서 생존해야 하는 한민족의 불우한 과거에 반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트라우마에 지배자의 권력적의지가 개입하여 한층 더 문제가 심각해진듯 하다. 한국사회도 여러가지 사회심리학적 반응을 보여주는듯 한데, 수직적관계에 예민하여 누구나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점이 그런것 같다. 강자에게 숙여야 하고 약자위에 군림하고 싶은 열망, 어쩌면 그것은 한민족이 이겨나가야 할 역사적 트라우마인지 모른다.

아직은 여건이 안되지만 가끔 창업을 꿈꾸곤 한다. 그리고 실험을 해보고 싶은 열망이 있긴하다. 구글이나 일본의 미라이 공업, 한국의 제니퍼소프트같은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을 운영하는 일, 기업을 운영하는 일, 국가를 운영하는 일이 유사한 점이 있는듯 한데, 권위의식이 없는 정치지도자들, 핀란드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이나 우루구아이 전 대통령 호세무히카등은 어떤 '심리적인 불편사항'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성숙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념이나 종교에 몰입하여 정신적으로 변하지 않는 고정된 영역을 구축한 사람들이나 변하지 않을 의지가 확고한 사람들을 보면 울화가 치미는 이유는 내 자신이 아직도 과거사의 불편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어서 그런것 같다.

2016년 9월 2일 금요일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 룰라의 정책

라틴아메리카, 특히 브라질 좌파정부의 몰락을 '원유에 기댄 퍼주기 정책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기사제목을 뽑은 모일간지의 기사제목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저널리즘까지도 이념의 덫에 걸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사의 내용은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정부들이 우향우하고 있는 이유를 복지포퓰리즘에 책임을 묻고 있는듯 하다. 전통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했던 라틴아메리카에 룰라같은 정치지도자가 등장해서 뿌리깊은 문제를 해결하니 때맞춰 원유가격이 하락하고 원자재수출이 국가의 주요 산업이던 라틴아메리카는 국부감소의 직격탄을 맞게 되었는데, 이유가 복지정책때문이라는 기사는 매우 뒤틀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복지문제를 분배의 관점으로만 생각을 할 것이 아니고 생산과 성장을 위한 기반이라는 관점이 통용되었다면 룰라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흔히 우파정부라고 불리는 한국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이 멈추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자원이 없는 국가라서 그 한계를 보인다고 말할 것인가? 그러면 브라질의 문제도 자원이 가져다 준 부의 여력이 원자재값 하락으로 동반하락한 것이라는 논리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라틴아메리카의 문제는 복지정책때문이 아니고 러시아와 같이 원자재의 수출이 국가산업의 주된 기반이었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불경기가 총수요 감소, 특히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아시아의 많은 인구들이 소비보다는 '생산'과 '수출'에만 주력하고 있었던 문제가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지구촌에는 만들어 팔려고만 하는 사람만 살지 구매할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한계에 도달했다는 문제가 있다. 일본과 같은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도 그 한계에 부딪혔고, 그 길을 따르던 중국도 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했다는게 문제다.

아시아에서 수요가 살아나지 않는 한은 원자재가격이 오를리 없고 그런 저발전적인 경제구조를 빨리 개선하지 않는 한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라틴아메리카는 경제적인 혼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우파정부는 경제성장도 멈췄는데, 빈부격차의 혼란까지 떠맡아야 되는 곤란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권위주의적 정부가 탄생하는 순서를 밟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룰라 대통령의 정책은 좌파적 시도가 아닌 '안정화 시도'였다는 해석이 나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