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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31일 금요일

통치가 아닌 국정관리를 돕는 정보기관으로

전철을 타고 가는데 좌익분자를 국정원에 신고하라는 광고판이 보였다. 북한과의 이념적대립상황의 잔재가 남아있는 환경에서  진정한 '공산주의'를 신고해야 한다는 사실은 맞지만 그 '좌익'의 스팩트럼을 어느 정도 잡아야 하는지의 기준은 참 모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모호한 표현은 잘못된 통치를 문제삼는 행위까지도 신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기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많이 이야기 한 사실이지만 정보기관이 이념적 바탕위에서 정보활동을 해서는 성과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인간이 악한행동을 할 수 있는 배경에 조직의 심리같은 환경여건이 영향을 끼친다는 루시퍼효과(Lucifer effect)를 정치나 종교, 그리고 일터에서도 간간히 검증을 해보곤 한다. 특히 권위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통치자와 밀접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정보기관의 생리로서는 통치자의 분위기에 따라서 '나쁜짓'을 할 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다. 정치나 종교같은 추상적이거나 음성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범죄에 연루되기 쉬운데, 정보기관은 노출되지 않는 성격을 이용해 정치적 비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기 쉬운 성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듯 하다. 정보기관원 개인이 선량하다고 한들 조직의 생리는 각자를 천국으로부터 추방시킬 것이다.

러시아는 거대한 공룡같았던 KGB라는 정보기관이 있었다. 한때 미국에서도 문제가 있었지만 강력하고 집권적인 정보기관은  통치자의 약점까지도 이용하는 독자적인 조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데, 알고보면 정보기관의 내부에서도 그 '우월한 이익'의 수혜자는 관료적 형태인 정보기관의 수장만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누구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인듯 하다.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은 민주열사답게 정보기관의 파행을 막기위해 KGB를 해체하고 분산시켜 상호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유도하였는데, 권위적인 성향이 있는 푸틴대통령은 KGB에서 성장한 대통령답게 분산시킨 기관을 더욱 전문적인 기관으로 탈바꿈 시킨듯 하다. 아마 옐친과는 달리 정보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 나라 정보기관이든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게 원칙이고 분산되어 있는 정보기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 내용을 사전 합의를 거쳐 개관적이고 단일한 내용으로 통일 시켜야 하는 만큼 정보기관의 생산물이 더욱 세련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생긴듯 하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같은 동양적인 권위주의 전통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 어느 정도 베어있는 국가처럼 러시아는 푸틴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권위주의적인 성향때문에 정보기관원 각자가 국가주의, 이념주의, 권위주의에 물든 루시퍼가 될 수 있는 문제가 있는듯 하다. 한 편으로는 통치자는 정보기관을 확실하게 예속시키기 위해 정보기관원에게 자존심과 자부심을 고양시키는 교육활동을 많이 할 것이다. 좀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국민에게 충성해야 하는 정보기관원들의 내면세계를 권력자에게 충성하도록 하는 세뇌작용으로 고착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엘리트정보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원 각자가 독립적인 철학, 그것도 국민에게 촛점이 맞추어진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맹목성을 띄어서는 인텔리전트의 체면이 말이 안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몇년전부터 내 구글블러그를 방문하는 러시아의 방문자분들중에 21명 단위로 끊어서 들어오는 방문자분들이 있었다. 신경 안쓰고 있다가 어느 날 궁금해져서 '추측'을 해봤더니 러시아 정보총국(GRU)요원들이거나 러시아에 상주해 있는 북한의 정찰총국 요원들인것 같았다. KGB창설일이 10월 21일이고 러시아의 정보총국을 모태로 만들어진 북한의 정찰총국이 김신조등을 보내 한국의 청와대공격을 시도했던 날이 1월 21일이었던 것 처럼, 정보기관원의 자부심은 전통과 조직내부의 시공간에 국한되어 고착화될 수 있음이 추측되었다. 말하자면 덜 인텔리전트하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가끔 철학과 의미로 인간내면을 이야기 하고 있는 내 블러그를 방문함은 고마운 일이지만 각국의 정보기관원들이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통치자보다는 각국 국민의 복리에 집중을 하여야 나쁜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너무 나빴다. 나는 일개 시민이지만 잘못된 통치자에 인텔리전트하게 대항하다가 그야말로 '개고생'한듯 하다. 통치자들은 정보기관을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처럼 국민을 '관리'하기 쉬운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싶다. 그러니까 정보기관은 '통치'에 도움을 주지 말고 '국정관리'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의식이 고립된 세계

언젠가 박수길 전 유엔대사의 자서전 읽다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국내정치의 생리와 맞지않기 때문에 국내정치계에서 소모되기보다 세계평화와 번영이라는 더 높은 가치에 헌신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후에 박수길 대사의 우려는 현실화 되었다. 한 편으로는 젊었을때 멋지고 정의로운 법조인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정치인이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점점 멀어지는 행동을 하며, 거미줄처럼 위태롭고 끈적끈적한 정치적 인연을 보전할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박수칠때 떠나는 지혜로움'을 한 번 생각해보곤 한다.

가끔 일터에서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볼때면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어떤 노폭같은 노인 근로자는 좀 센 군인시절에 기관총자루로 심각한 폭행을 당한적이 있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심각하게 권위적인 관리자가 과거에 강한 권위에 종속당하면서 스스로를 그 세계에 일체화시킨 사실도 알게 된다. 정신이 사회의식이나 종교적인 억압을 당하면 억눌린 의식은 변성이 되어 이상한 방법으로 발산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의 좀 '특별한'의식세계나 이념화된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돌발적이고 격렬하게 처신하는 이유도 해석이 된다. 이슬람세계가 다소 폭력적인 이유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계율같은 종교적 억압이 강력한데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지하거나 의식이 약한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는 카리스마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태나 환경의 피해자와 피의자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많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국제정치에 익숙한 인물이 국내정치의 생리를 알지 못하며, 정의를 위하여 애쓰는 전력을 가진 인물이 자신이 그 정의로움을 평가받는 대상이 되었을때 자아상(自我狀)에 어떤 혼란이 오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지난 10여년간 정치지도자(편의상 그냥 지도자라고 표현함)의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정신바탕에 대한 우려와 참견을 많이 하였던 것 같다. 블러그에 올려왔던 대중적이지 않은 특별한 글들의 중심내용에는 그런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냐하면, 국가정책의 근본문제를 바라보는 시발점이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이라는 사실은 증거를 내 놓으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고 근본적이지만, 세월호사건이나 최순실사건의 배후에 어떤 종교적인 인연이 실마리가 되었음이 입증된 사실만 봐도 의식을 억압하고 다양성을 흐트리는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듯 하다. 그래서 항상 인문철학이나 역사의식등의 교육, 그리고 자율적인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중이다.

형법에는 피의자가 사건을 일으키게 된 동기와 인연을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문제삼는 이론이 있다. 예를들면 범죄자를 낳은 부모, 그 부모를 낳은 부모, 그리고 그 조부모를 낳은 증조부모까지 피의혐의와 인관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인과관계설'이 등장을 하게 된다. 피의자의 범죄와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문제만 심판의 자료에 개입시키자는 이론이다.

종교나 이념적 억압이 어떤 실체를 드러내거나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듯 하다. 법을 잘 아는 지인이 깐죽거리고 나서 증거 있으면 이야기해보고 돈 벌어놓았으면 자기를 치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이념과 종교에 고립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것 같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교육적인 문제로 좀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교육시킬 일이다. 나도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이념이나 종교는 불완전한 사람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잊게하여 완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데 문제가 있는듯 하다. 

2017년 3월 24일 금요일

철학이야기 / 시몬느베이유와 알랭

남재준 전 국정원장이 대선후보로 나선다고 한다. 이슈는 역시 이념적이다. 언론에는 종북척결이라는 대중적인 단어가 표현된다. 이념세계의 첨병에 있는 남북한의 정보기관의 문제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했지만 이해는 되고 문제는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북한보다 한국쪽에서 먼저 이념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고 그저 과하지 않게 흘러가라는 기원만 할 뿐이다.   


학창시절 시몬느베이유를 무척 좋아했는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시몬느베이유가 본능적으로 약자편에 서듯이 그저 이념문제가 국민의 고달픈 삶속에 너무 깊숙이 간섭해 들어와 본질을 흐트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은 시몬느에게는 어떤 철학적인 신념에 앞선 일종의 본능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분명히 나타나 있듯이 시몬느는 불의를 미워하고 진실한 유대감으로 맺어진 참다운 인간관계를 열망했다. 여기에 끈질긴 인내심과 용기를 겸비한 명석하고 확고한 의지가 합쳐져 시몬느는 자기 시대의 근본 문제를 궤뚫어볼 수 있었고 그 구체적인 해결책을 체계적으로 세워나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시몬느에게는 근본 문제에 자신의 힘을 집중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에 결심했듯이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을 수 있었다. 

- 시몬느 베이유의 친구 시몬느 빼뜨르망이 지은 시몬느 베이유 평전중에서 -  

시몬느베이유가 존경했던 스승인 알랭의 철학은 한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알랭 자신이 요약하기를 경멸했으며 사상가의 진정한 능력은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는 솜씨에서 비로소 나타난다고 믿었다는 시몬느 뻬뜨르망의 서술이 있었다.

알랭의 철학은 실용적이고 상대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 같다. 알랭이 담화(propos)라는 짤막한 글 수천개를 신문에 연재했듯이 생각은 수없이 발생하고 진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생각때문에 나도 알랭처럼 꾸준히 생각을 내어놓는 중인듯 하다. 한 편으로는 요즘 프랑스분들이 내 블러그를 많이 방문해주시곤 하는데, 프랑스 대선후보인 중도 실용주의자인 마크롱과 우파후보인 르펜의 싸움에 관심이 가곤 한다. 물론 중도실용주의자인 마크롱이 이념적인 르펜을 이길것을 기원하고 있다. 시몬느베이유의 나라에서 이념적 패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고, 중도실용의 모범국가가 탄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철학이야기 / 동양철학의 절대성

어느 고속도로휴게소 화장실 유리에 이런 글귀가 써 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새해 첫 날에 도착했다

빠르던 느리던 절대적인 성격을 가진 시간앞에선 모두 똑같은 존재라는 표현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자연의 잎장에서 인간의 욕망으로 발생하는 모든 노력은 부질없다는 해석을 할 수도 있겠고, 나처럼 느리거나 부족한 인간에게 현실을 합리화시켜주는 위안이 되는 글귀이기도 하다.

시간은 절대적이고 사람은 상대적인 관념속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에너지를 얻는다. 동양철학에서는 자연의 입장에서 삶을 이해하는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미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 즉 이젠 더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간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그래서 도가(道家)나 그 영향을 받은 불교의 선(禪)사상과 같은 동양철학은 매우 절대적이다. 분명히 궁극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각의 과정을 생략하는 오류를 범하고 무조건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정(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생각을 강권(强勸)하는 종교적이거나 교조주의적인 분위기에 익숙해진다. 사실 종교는 본질적으로 보수성과 결합된다. 진리를 내놓고 믿기만 하면 된다.

동양철학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사람과 사회를 인식하는 습관이 매우 보수적으로 고정되는듯 하다. 서양으로부터 받아들인 이념이 점점 현실적인 실용성을 벗어나 국수주의(國守主義)나 제왕적 권위주의, 패권주의등으로 고착화되거나 변성되는 이유도 생각하기를 멈춘 동양철학의 절대성에 근본을 두고 있는듯 하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 북한의 절대권력, 일본의 국수주의, 한국의 보수성등은 생각하지 않는 동양철학 세계의 분위기에 물려들어간 비철학적 종교적 맹신에서 비롯된 오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동북아시아의 사무라이들

작년 브라질올림픽무렵에 내 구글블러그에 북한의 함경남도 원산에서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원산항입구의 휴양시설인지 원산과 통천사이 시중호역근처의 별장시설인지 모르지만 중대사안과 연루되어 있음이 분명했다. 내가 난수방송에 대한 언급을 해서 그런지, 금메달획득에 실패한 북한선수단장을 질타하는 최용해의 불합리함을 생각하며 스포츠강국의 꿈을 접으라는 오지랍 넓은 참견을 해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상당히 진지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얽혀있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오래전 사격훈련과 스케이팅훈련을 시작하면서 일본의 영향으로 북한과 한국사회를 오염시킨 사무라이방식을 도입해보았다. 일본 첩보원학교인 나까노학교의 지옥훈련방식을 모델로 뛰어보았는데, 별 실익이 없었던것 같다. 무엇보다 그렇게 훈련해서 금메달을 딴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복지를 희생해서 타인의 복지까지 희생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 타인의 복지까지 함께 챙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상이 발전해가면서 지옥훈련은 덧없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사격훈련은 조금 , 스케이팅훈련은 음악을 들어가면서 하였다. 

아마 인간의 감정적 내면을 생각하지 않고 노력과 깡으로 뭐든지 될 일이면 북한은 세계적 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일본도 그런 성향이 있고, 부작용이 서서히 어떤 결과를 얻어가는 중인듯 하다. 물론 한국도 그렇다. 일본의 인권의식은 경제적 선진국이라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후진적이다. 위안부문제같은 과거사문제를 생각하는 수준을 봐서도 그렇다. 그 이면에는 인간을 기계적으로 보는 사무라이정신이 사회의식의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년동안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나 노인분들이 많은 일터에서 일해보았는데, 기계적 인간관은 여전했다. 과거 군사문화의 영향인지 성마른 노인분들의 체질상의 문제점인지 모르지만 근로현장의 유연한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젊은이들이 일하지 않을려는 이유는 당연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문제가 아니라 경직된 지옥같은 세계가 두려운 것이다. 간혹 선지자같은 최고관리자나 동료연장자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전통과 습관이 그렇게 쉽사리 개선되는 것은 아닌듯 하다.

우리가 왜 열심히 운동연습을 해야 하는지, 우리가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근본을 탐구해봐야 한다. 언젠가 마윈의 평전속에 세상은 게으른 사람이 발전시킨다는 어구가 있었다. 물론 게으르게 살라는 의미가 아니고 생각으로서 쓸데없는 수고를 덜라는 의미인듯 하다. 

2017년 3월 17일 금요일

형제나라들의 카리스마 / 프레임워크(framework)

오래전 부동산자격증시험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어줍잖은 지식을 판매하고있었다. 생각해보면 내 자신에게는 참으로 흑역사였던것 같다. 학원강사라는 것이 원래 연예인같긴 하지만 사회의 많은 경험(?)이 있으신 연장자분들을 상대하는 부동산수업은 특히 그랬다. 학구열 보다는 나이 어려 보이는 강사를 혼돈시키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 

한 번은 고급승용차를 타고 온 풍채좋은 50대의 '학생'이 느닷없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내가 공인중개사자격증을 취득하여 사무실을 개설하면 자네를 본인의 수하로 두고 싶네"  나는 속으로 킥킥 웃으며 겉으로는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왕처럼 모시겠으니 꼭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즐겨 취하던 사진속의 강력한 카리스마자세인 옆으로 삐딱한 자세를 취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강의했다. 그때 수강생중에 똑똑한 대학후배가 있었는데, 그 후배에게는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는 중임을 시사했다.

대체로 한국중장년층 머리속의 프레임워크속에는 권위주의 정부시대의 제왕적대통령의 카리스마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요즘 열린 세대들의 생각으로는 머리속에 우동사리가 들어있다고 비난할 일이지만 실제로 연장자들의 세계에서는 너무 깊게 인식이 되어 자기세계화된 문제가 있었다. 고시공부하던 지식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시생들과 합격한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많은 문제가 있음을 느낀지 얼마 안되는 시절이라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훗날 북파공작원보상문제가 시발점이 되어 여기 저기 집단이나 조그맣던 커다랗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카리스마를 엇가는 일을 꾸준히 한 것 같은데,단순한 심술은 아니었고, 협동과 공리를 그르치는 인간의 나쁜 습성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였던것 같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자료를 통합적 프레임워크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프레임워크는 뒤죽박죽인 자료에 질서를 부여하고, 자질구레한 기록이나 사건, 결과물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주는데, 이런 프레임워크를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훌륭한 프레임워크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첫째, 모든 중요한 자료들이 일제히 입증해 보여주는 하나의 커다란 진실을 알려준다. 

둘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행동을 분석한다.

셋째, 다양한 인간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행동을 잘 포착하면서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고려하되 지나치게 일반화시키지는 않는다. 

넷째, 인과관계들에 살을 붙여 어떤 가상적 상황에도 타당한 가정을 할 수 있다. 누구든지 그것을 한 번 훑어봤을때 최소한의 설명만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자기 세계관에 접목해서 새로운 시나리오를 고려하는데 반영할 수 있다면 이는 프레임워크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 [HIDDEN IN PLAIN SIGHT]by Jan Chipchase and Simon Steinhardt 중에서 -

요즘 들어 한 시름 놓았다고 할 수 있는 일중의 하나는 연장자들의 프레임워크로 작동했던, 그리고 세계적으로 수출되었던 박정희 전대통령의 카리스마가 많이 손상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훗날의 사회발전에 역기능(특히 남북협력을 비롯하여)으로 작용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나름 많이 고민했던 문제였던 것 같다.

터키의 에르도안대통령은 예측대로 실용주의 군부의 쿠데타를 진압하고 나서는 서구사회와 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데타군의 정보를 알려준 러시아와 밀착하기 시작했다.


캐말파샤를 쿠데타와  개발독재의 정당화모델로 인식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전대통령을 개발독재의 모델로 인식했던 러시아의 푸틴대통령, 캐말파샤의 쿠데타땜에 익숙해진 터키의 쿠데타사랑,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카리스마, 카리스마를 갖고자 노력했던 푸틴, 이 세사람의 공작정치, 동조적 성향이 강한 세나라 국민의식의 후진성등은 하나의 프레임워크로 얽혀있는듯 하다.   

생각해보면 터키는 서방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 에르도안 정부에서 성향이 더 강해졌지만 종교적 관념이 사회적 프레임워크로 자리잡은 이슬람 세계가 다양성과 민주성이 자리잡은 서방사회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듯 하다. 잘 나가다 삼천포(한국의 사천이란 곳인데,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로 빠진 이유는 종교국가로서 관념에 동조가 잘되는 성격을 잘 이용한 에르도안의 어두운 지혜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또 그런 상황을 잘 이용하는 푸틴의 어두운 지혜에도 근본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북한과 같은 국가의 맹주로서 패권을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가 다시 한 번 패권주의정책을 시도하면서 터키의 에르도안정부에게 "내가  패권을 잡으면 자네를 내 수하에 두고 싶네"하고 밀착할 일인듯 하다. 그리고 국내 사정으로나 국외사정으로 다시 한 번 어둠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터키의 운명에 대해서는 북한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형제의 나라임은 확실한 듯 하다. 의식이 얽혀있는데다가 한국의 소시민이 터키를 걱정하고 있으니.......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레이건이 북한에 대해서 잘못한 일 / 개인과 국가

글 제목이 좀 뜬금없긴 하다. 하지만 북한의 이미지 정치의 폐해에 대해서 인과문제를 억지스럽게 짚어보고자 한다.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연속성의 관점으로 살펴보았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영화배우 출신이다. 유명배우는 아니었다. 어느 날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 레이건이 대통령역을 지원 했다. 그러나 대통령다운 풍모가 없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세월이 흘러 레이건은 반공주의자로 이념성향을 띄고 사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소련의 팽창주의정책이 한참 고조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지미카터는 평화주의정책을 취함으로서 군축협상에 솔선수범하여 나서고, 소련은 미국의 군축협상에 비협조적이었던 것 같다.

지미카터와 레이건대통령 시절에 내 나이는 어렸고, 시골에서 새벽열차로 전달되는 J신문을 구독했다. 지미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만화를 먼저 보는 습관으로 신문 만평을 보았는데, 땅콩장수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비꼬고 있었다. 지미카터가 땅콩농장을 하였던 것을 비판하고 있었는데, 국민학생의 생각에도 그게 무슨 비난거리가 되는지 우스웠다. 아마 이념대립이 첨예한 한국에서 카터는 한국정서와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카터대통령은실제로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는데, 아마 서로 처한 현실의 무게가 다른 탓일 것이다.

그리고 레이건대통령이 당선되자 지금은 없어진 리더스 다이제스트(그 당시 친척이 정기구독을 했는데, 지난호를 모아서 가져와 읽곤했다)에 지미카터때 솔선수범한 군축협상에 소련이 얼마나 부응을 하지 않았는지 통계가 나와 있었다. 미국의 핵무기 군축량에 비해서 소련의 군축량이 부족했고, 소련은 빨갱이 답게 약속을 어겼다. 그리고 얼마후 아프칸을 침공했다.

미국민들은 분노했고, 냉전시대에 세계의 패권이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으로 넘어가는 것에 매우 분개했다. 얼마후 레이건은 적극적인 반공주의자로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지미카터의 '이념적 실정'에 미국민들이 등을 돌린 탓이기도 하고, 레이건 대통령이 영화배우를 하면서 갈고 닦은 이미지전략이 좋은 효과를 거둔 탓이기도 하였다. 이건 내 추측인데, 레이건이 영화배우시절 대통령역을 맡으려다 실패한 이후 대통령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많은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영화에서 배역을 못 얻었느니 한 번 진짜 대통령을 해볼까 하는 결심 같은 거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배우로서 그리고 갈고 닦은 이미지정치의 선구자로서 레이건 대통령시대는 소련에 대해서 강경한 정책을 취했다. 양쪽 진영은 미친듯이 체제경쟁을 했고, 그 최전방의 한국과 북한은 한층 더 심했다. 레이건 대통령때는 람보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공산진영의 빨갱이 적도를 때려잡는 통쾌감을 국민에게 선사했는데, 레이건의 반공정책을 반대파들은 레이건을 레이감보라고 비난함으로써 비꼬았다. 그 당시 레이거노믹스라는 별명이 붙은 신자유주의정책을 취함으로서 경제정책도 냉전논리의 영향을 받았다. 어차피 대립각을 세운 양진영의 성격상 이념적 성향을 띈 군사정책이나 경제정책들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환경과 국내환경이 많이 바뀐 시점에도 타성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김정은위원장이 북한을 통치하기 시작했을때 그래도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고, 젊은 패기가 있어서 어느 정도 개혁적인 성향이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얼마후 감성적이고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선왕인 김정일위원장처럼 이미지 정치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누가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체중을 불리고 할아버지인 김일성주석과 같은 이미지를 갖기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주석은 어쨌거나 북한이란 국가를 창조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가나 기업을 만든 1세대에 비해서 2세대나 3세대는 닦아놓은 길위에서 안주하다가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이 북한이나 한국, 그리고 한국의 재벌기업에서도 발생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목표를 잃어버린 정치지도자의 파행은 국민들의 고통으로 귀착되는 점에 있어서는 유감이다. 한국의 하층시민으로 냉전의 고통과 국가경제의 퇴락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더욱 유감이다.

게다가 정치지도자의 건강문제까지 생각해봐야 하는데, 이미지관리를 위해서 쾌적한 심신상태를 희생했다면 일인집권체제의 국가가 파행을 겪을 것이라는 추측은 당연하다. 남북한이 협력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점에 한국에서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정치지도자가 나서서 양국관계를 퇴행시키는 사건을 보고 정말 가망없는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참으로 그 상황은 오래갔다. 국가의 본질적인 목적, 공리적 사고, 논리, 철학,이성,이상 모두가 상실된 한반도라고 말하지만 그 근원은 남북한의 개인들과 관련된 문제가 시발점이다.

어쨌든 한국은 한 고비를 넘겼는데, 북한도 한 고비를 넘겨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집권자가 바뀌지 않으면 집권자 자신이 변하면 된다. 변하지 않으면 이제 미래는 더욱 암담해질 것이다.

조금 더 젊었을때 그래도 힘이 있었다. 힘의 근원은 탈이념을 이야기하다 안되면 탈조선할려고 하는 패기가 있었다. 이건 핑계같지만 퇴락적인 분위기에 함께 물려들어갔다. 이미 퇴행화된 정치와 퇴행하된 이웃들을 보면서 분노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만큼은 살아있지만 안그래도 될 일을 참으로 힘들게 끌고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정치 / 촛불과 태극기

대체로 우리는 보고 듣는 것에 쉽게 학습된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본질적인 목표에 집중하지만 역량이 부족한 정치지도자는 대중을 학습시키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대중정치시대에 이미지정치는 정치를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최순실 사건이 발생한 초기에 촛불 민심의 위세에 눌려 태극기 민심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정치인의 선동과 문제를 장기적으로 끌고가는 청와대측과 시간이 만든 권태에 힘을 얻은 태극기 민심이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하고, 티브이에 촛불민심과 동등한 대립관계로 비추어지더니 점점 증폭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면에 신념처럼 고착화 되어왔던 권력자에 대한 숭배심이 이념성향과 결부되어 외부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만약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더 지연되어 태극기 민심이 더 증폭된다면 촛불민심도 더 강렬하게 증폭될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부정의에 대한 판단요구라는 본질적인 목적은 점차 태극기민심에 대한 대칭적인 목적으로 이념적 성향을 띌 수가 있었을것 같다. 우리사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을때라는 것은 그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사과의 식물 생장조절제로 쓰이는 에일라가 검출되었다. 미리 말하자면 에일라가 섞인 사과주스를 매일 2만리터씩 마시면 암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티브이매거진과 유명한 영화배우 메릴스트립은 이 문제를 크게 거론하였고 미국민들은 에일라때문에 큰 고민에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사과주스를 개수대에 버려도 되는지, 아니면 유독물 쓰레기 수거함에 버려야 되는지 문의할 정도였다.

아무 생각 없이 남의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정보폭포라고 부른다. 정보폭포에 대해서는 메사추세츠대학의 데이비드 허시라이퍼(David Hirshleifer)교수의 연구가 있다. 역설적으로 정보폭포는 모든 참여자가 사실과 반대로 생각했을때 발생한다. 

- Patrick Bernau와 Winand von Petersdorff외 9인이 공동집필한 [DENKFEHLER,DIE UNS GELD KOSTEN]에서 발췌요약 -

합리적 사고를 하는 습관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은 쉽게 선동되고, 정치인은 그것을 쉽게 이용한다. 그래서 철학과 이성과 논리가 함께하는 교육이 부족함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으래 그렇게 정치를 해야 하는 것으로 학습해 온 정치인도 잘못된 습관의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누가 그 정치지도자에게 제대로 된 정치행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매한 정치인은 우매한 대중이 만드는 것이다. 

2017년 3월 10일 금요일

가치 / 왕멍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신념이나 철학, 선량한 목적이 없는 정치가 한 장을 끝낸듯 하다. 촛불민심은 무게와 힘이 있었다. 특히 이 재판은 이념문제가 아니라는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희망과 보람을 선사했다.

한 번은 무게없는 지인들때문에 곤혹스러운 일을 당한적이 있었다. 여차 여차해서 여러가지 어려움에 빠진 내 주변을 맴돌면서 평안하고 안온한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처지가 어려워지면 굳센 마음을 얻기위해서 또 내 주변을 맴돌았다. 상황에 따라서 흔들리는 마음의 주기가 짧아 버들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럴때마다 표정없이 한참을 바라보다가 운동을 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리고 장기적이거나 이타적인 마음의 목표를 설정하라고 권고하였는데, 호의호식하지 못하는 내 삶은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듯 하였다. 그 지인들이 바라는 가치의 이면에는 지위나 권력,경제적인 것에 관한 잣대가 너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사회가 문제가 있다면 그런거였다. 신념이 없고 철학이 없으며, 있다 한들 지위,명예,권력,돈과 결부되어 부차적으로 취급될 뿐이었던것 같다.

그러나 절대적 가치는 죽지 않는다. 그것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된다. 더욱이 개인의 가치나 취향을 천하의 법이라 자처해서도 안되며, 그것으로 세상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의 평화와 선량, 건강과 정직을 중시해야 한다. 절대로 이념으로 평범한 것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일종의 아낌이며 사랑이며 그리움이며 지향이다. 너무나 많은 투쟁을 겪고 큰 대가를 치렀기에, 우리는 더 새롭고 현대적이고 우수한 것을 계승하여 빛나는 가치 체계와 정신적 유산을 건립해야 한다. 이러한 이상 없이 조소와 상호 불신에 빠져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중에서 -

지난 정부의 대통령은  교활함에 화가 났지만 이 번 정부의 대통령은 무능함에 화가 났다. 그리고 그런 대통령의 뒤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던 온갖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신선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7년 3월 8일 수요일

아담스미스가 북한에 잘못한 것

언젠가 일의 성질이나 종사하는 근로자의 연령대로 봐서 매우 침착(沈着/가라앉아 붙어버림)되어 있을 법한 모둠(group)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 만남의 시간은 절망에서 시작되었다. 마키아벨리즘의 전통이 뿌리깊은 북한과 한국사회에서 출세를 하였건 출세를 못했건 모든 모둠안에서의 인간관계는 갈등과 경계로부터 시작된다.

한번은 인권상의 문제가 있을 법할 정도로 관리자와 근로자, 근로자 상호간에 심각한 갈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오래 있다보면 보이지 않던 이면의 인간의 선하고 바른 모습들이 새록 새록 발견되었다. 문제는 활력을 끌어낼 수 있는 근거가 없었던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모두가 힘을 합쳤다. 심지어 나 자신도 몸의 컨디션이 안좋아 어두운 낮빛을 보일것 같으면 내가 어두우면 주변도 어두워지므로 조퇴를 하고 습관처럼 화진포 앞바다로 떠났다. 

겨울의 바닷가, 바로 지척에 어두운 삶들이 대치하고 있지만 쌍쌍이 찾아 온 연인들, 혼자서 꽃을 들고 셀카를 찍고 있는 젊은이, 이런 활력들이 어떤 정치지도자의 우둔한 판단에 의해서 모두 무너져 버린다면 하는 비감한 생각도 들곤 했었다. 김일성 주석의 별장이었다가 이승만 전대통령의 별장으로 바뀐 화진포의 성을 보고 있자면 정치지도자의 판단이라는 것이 한올 한올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추측하게 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정치지도자들의 공이나 과실이 활력으로 척도 삼음을 알 수 있는듯 하다.  

마르크스의 과학적사회주의는 원래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관계를 전제로 한 이념이기 때문에 지구촌을 전란(戰亂)으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이념인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는 자본주의 이념역시 만만치 않은 갈등요소를 지니고 있는듯 하다. 아담스미스는 경쟁들이 맞물려서 경제적세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경제적 원동력을 만드는 주된 힘은 활력이다. 아마 활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경쟁이 필요하다고 한 것이 경쟁에 촛점이 맞춰지는 후세인들의 오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체제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던듯 하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아비규환으로 자본주의 세계를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오랫동안 사회주의는 떳떳했다. 그런데 북한도 그렇지만 한국도 자본주의의 진면목을 활력으로 보지 않고 경쟁으로 보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이나 한국이나 활력에 촛점을 두어야 개혁의 답이 나올것 같다. 이념이 죽은 세계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향을 잃고 헤매는 것 같은데, 활력에 방향의 지표를 설정해야 할 듯 하다. 

2017년 3월 3일 금요일

꼰대가 되지 않는 법

1.가능한 과거보다 미래를 지향하라. 사정이 안좋으면 안좋은데로 가면된다. 몸과 마음이 꺾인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능력껏 가면 된다.

2. 가르치기보다 생각하라.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나이 상관없이 경험과 지혜가 있다.  

3. 평등과 협동을 생각하라. 무슨일을 더하기 위해서는 연령을 초월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필요하다. 당신 옆에 어린 스승이 있을지도 모른다.

4. 독서와 생각을 많이 하라. 나이 들수록 습관과 본능에 의존하게 된다. 독서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여 습관으로부터 자신을 탈출하게 한다. 대한민국에 꼰대가 많은 것은 다방면의 독서를 하지 않은 탓이다.

5. 활력을 얻기 위해서 운동하라. 활력이 있는 만큼 너그러워진다. 나이가 들수록 남에게 가혹한 이유는 자신의 상태가 안좋기 때문이다.

6. 욕심을 제어하라. 나이가 들수록 노욕(老慾)이 생긴다. 이유는 한 세상 살면서 자신이 무엇인가 이루었거나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이루는 것 대신 가지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 지나보면 모든 것이 부질 없다는게 죽어가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나마 무엇인가 남기는 것은 자신에 대한 타인들의 좋은 기억들이다.

우리들의 세계

최순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기부금을 내지 않은 기업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래도 소신과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 요구를 받았을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 기부금을 낸 기업은 무엇인가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익숙해진 습관이 결정을 지배한 탓이다.

마음에 있는 인간이 종교적인 전도에 말려들어가듯이 자신들이 행한 습관을 반복하도록 허를 찌른 기술은 대단하다. 그들끼리의 리그를 아는 탓이다. 다시는 그들만의 부조리한 리그가 없도록 이참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 물론 다른 부분에 있는 정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부조리한 리그를 확실하게 단절시켜야 한다. 부조리의 문제는 정의의 문제지 정치적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수직적 권력세계의 종말

이번 한국의 최순실 사태에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수직적 권력체계속에 서있던 사람들, 예를 들면 상명하복의 지휘체계에 익숙한 공안검사출신의 인물들처럼 보수적인 인재들이 끝까지 국민의 전체적인 정서와 어긋난 길을 걷고 있는데 대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역설적인 표현이기도 하고, 사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표면적으로 일이 드러나지 않고서 어떻게 개혁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수직권력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은 윗 사람의 카리스마에 쉽게 복종하도록 길들여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권력관계에 희생된 자신의 자율적 본성을 아랫사람을 지배함으로써 보충하게 된다. 그래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형태의 인간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만약 자신의 정신세계를 장악하고 있던 상위의 카리스마가 붕괴된다면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신앙에 몰입하는 사람에게 종교적 숭배를 멈추라는 의미와 같게 받아들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지배할 사람이 계속 필요하고 자신에게 지배받아야 할 사람이 계속 필요하다. 그래서 수직관계에 익숙한 사람은 개혁을 원하지도 않을뿐더러 평등을 언급하는 사람들을 간편하게 극단적 평등주의자인 속칭'빨갱이'로 몰아붙인다.

이런 보수적 상황에 대해서는 제사장의 권위가 지배하던 고대의 역사를 연구해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이성과 논리가 전혀 통용되지 않는 사회가 이념을 핑계로 오래 오래 가다가 큰 문제를 들어낸 사건이 최순실 사건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