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이상한 나라의 민간인 사찰

근처에 간계가 발달한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왈가불가 한 적이 없다.  그 친구의 가족환경이라든가  직장의 환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길래 마음가는대로 이해하고 넘어간지 몇년만에 딱 한 번 "그만 좀 해라."하는 말로 둘 사이를 정리하곤 했다.

사실 믿고 의지하고 싶었던 기대가 있는 친구에게 그런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더하기 마련이다. 한 편으로는 초라하게 무너져버린 친구의 내면세계에 대한 측은함이 생길정도로 원래 내마음 한 구석에 내재해 있는 찌질함이 우월감으로 대변신을 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같은 나라에 비해서 공동체주의가 발달한 유럽은 치사스러운 정치적행위에 대한 나쁜 소문이 덜 한 편이다.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가 개인의 의식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도 되겠다. 민간인 사찰에 포착된 피해자의 불륜과 같은 찌질함도 문제지만 그런 문제들에 거대한 공권력을 찌질하게 사용하는 왜소한 의식도 문제다.

나같은 하찮은 시민은 국가나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비공식적이지만 깔끔하고 거국적인 의식을 갖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보수정부나 진보정부나 민간인 사찰의 혐의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는데 시민은 그들만의 정치적 간계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이런 문제는 미시적인 사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리더쉽이 무너지므로 국가와 사회의 도덕적인 구심점 자체를 무너뜨린 일이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곳도 없을 뿐더러 배울곳이 없는 시민들은 외롭다.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FAIRY TALE(동화)

There once was a child
living every day
expecting tomorrow
to be different from today.

- G.Vanderbilt -

옛날 한 어린이가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 글로리아 밴더빌트 -


즐거운 주말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이 짧은 시가 생각나더이다.

2012년 3월 14일 수요일

중국의 정치개혁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20314142817359

윈자바오는 중국의 정치가 개혁을 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중국내의 개혁을 원하는 진보적 인사들과 공산당일당독재를 계속 지속시키고자 하는 보수적 인사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는듯 하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일당독재,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의 모습이 융합되어 '개발독재'의 모습으로 경제를 팽창시켜 왔지만 커지는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내수시장의 위축이 중국의 미래를 막을것이고 근본적으로는 공산당의 이념적인 정치성향이 정부와 국민의 쌍방향소통을 계속 막을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듯 하다.

윈자바오는 서구식 발전과정이 중국이 따라야할 교범같은거라는 진화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고, 정치는 폐쇄적이고 경제는 개방된 중국특유의 불균형적인 발전모델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일본인의 수치심과 전체주의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20314135625107

경제대국 일본에서 여러사람이 굶어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것이 수치스러워 그대로 앉아서 굶어죽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생존보다 수치심을 중히 여기는 일본의 문화가 일본군국주의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예가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극단적인 '축소지향적 결단'으로 끝장을 내는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질 수 없는 감정인것 같다.

오래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을 겪은적 있다. 물론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을 참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나 자존감의 상실을 맛보기 보다는 "세상은 넓고 별일도 많고 별 사람도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 특히 일본인들과는 다른 기질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어려움을 겪은 부모를 보며 성장한 배짱이기도 한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느낀것은 큰 도움이 된것 같다.

일본인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자중하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하는데 베네딕트여사는 자신의 저서인 [국화와 칼]에서 "부모가 자식을 향하여 [너는 자중하는 인간으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식이 예법대로 행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이며 자식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하여 일어설 용기를 잃은 것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방침을 정한다."고 베네딕트여사는 일본인의 수치심을 이야기 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으로 다양성을 인정받기 보다 서로 엮여 있는 타인의 판단기준들이 일본인들을 쉽게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엮어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대국적으로 생각하면 수치심이라는 것은 좀 더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댓가없는 타인의 도움은 '약진의 발판'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호방함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대지진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도움을 주었을때 그들의 자존심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도 추측을 해볼 수 있다고 하겠다.    

2012년 3월 9일 금요일

추악한 동맹

런던 정경대학 유럽사상교수였던 John N.Gray의 저서제목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또 하나의 신념체계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를 확산 시키겠다는 미국의 신념이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모두 기독교적 종말론에서 비롯된 망상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이세상에 완전한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으며 세계를 뒤흔드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성취되는 선(善)이 지배하는 완전무결한 세상은 있을 수 없는 꿈이라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동태적(動態的)인 노력을 해야하는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간파한 책인것 같다. 인간이란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밀어 올리고 또 굴러 내려오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한듯 하다.

기독교의 종말론을 비롯한 서양사상들의 기본 바탕은 정지된 시작과 끝이라는 결단론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존재에서 창조되며 결국에는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사고이다. 반대로 동양사상의 근원에는 인간을 시작과 끝의 존재로 보지않고 우주속에 생성되어가거나 소멸되어가는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연속성상의 한 작은 개체로 보고 있다. 저자는 그런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듯 하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에너지 전쟁

눈에 보이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게 여기지만 에너지전쟁은 인간의 삶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빈번하고 중요한 사건이다. 기분나쁜 모욕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붕괴시키면 끝내 복수라는 반응으로 돌아오고, 국가간의 전쟁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에너지가 저하되어 있는 사람은 그걸 보충하기 위해 타인을 공격한다. 타인을 시기, 또는 질투하거나 이죽거리며 타인의 에너지를 붕괴 시킬려고 한다. 물론 붕괴된 타인의 에너지는 승리감이란 이름으로 공격한 쪽으로 옮겨온다. 혹시 에너지공격자가 있거나 내 자신이 그런 공격자라면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본다. 지금 무척 힘든 시기가 아닌지........희망없고 불안한 삶을 살고있지 않은지........

긍정심이나 회피등으로 방어하긴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주 치룰수 밖에 없는 전쟁이다. 싸워야할 상대는 결국 자기자신이란 메뉴얼은 가장 훌륭한 전투교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