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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0일 수요일

The cow and parliamentary cabinet system.

A farmer was climbing a mountain path in a truck when he saw a precious old lady coming down quickly in a luxury car. The farmer shouted loudly. Cow! Then the lady responded. Pig! And as soon as she turned the corner of the mountain, her car collided with a giant cow.

 

It is a humor I saw in a foreign magazine when I was a student, and it contains ideological misunderstandings and biases.

 

A few years ago, there was an article introducing a Korean haunted house on the Internet. The article introduced Cheong Wa Dae, where the president lives, as a haunted house. It was also true that the fate of Korean presidents was often tragic. This is all due to ideological problems.

 

South Korea's presidential system has a tradition of a new and powerful presidential system after a long military government. Some presidents take advantage of their strong authority to take care of their personal interests, and some presidents were unexpectedly promoted and unintentionally thought of themselves as kings, which broke down. Behind it was the prejudice and exaggeration of the people who sprinted into ideology.

 

It is possible to have an objective view because I have long observed the negative effects of ideological problems, but most people exaggerate and leap the issue by linking it to ideology if the president's policy failure, the people's health is bad, or the people have social discontent. Looking at people at the bottom of society and Internet comments are full of hatred from ideological thinking. The reason why the Korean-style presidential system is intertwined with the unreasonable word of political retaliation, not policy issues, is because the unreasonable word of ideology is based on collective thinking

 

These days, someone has come up with an opinion on reforming the presidential system into a parliamentary cabinet. A strong presidential system was needed in an era when civic awareness was lacking, but it seems that it is time to reform the ruling presidential system into a parliamentary cabinet system in the era when the generation with civic awareness slowly emerges as the mainstream of society. Or it would be better to introduce a two-way government system like Finland. The dual-government system is to operate state affairs under the parliamentary cabinet system in ordinary times, and to operate state affairs under the presidential system in case of an emergency.

 

The reality is that behind the confrontation between progressives and conservatives, there is a struggle for royal rights, and ideology was becoming a means of struggle for royal power.

2021년 1월 19일 화요일

암소와 의원내각제

어떤 농부가 트럭을 타고 산길을 오르다가 귀부인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빠르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농부는 큰소리로 외쳤다. 암소! 그러자 귀부인도 맞받아쳤다. 돼지! 그리고 잠시 후에 산모퉁이를 돌자마자 귀부인의 승용차는 거대한 암소와 충돌했다.

 

학창시절 외국잡지에서 본 유머인데, 이념적 오해와 편견이 담겨 있다.

 

몇 년 전에 인터넷에 한국의 흉가를 소개하는 글이 있었는데, 대통령이 거주하는 청와대를 흉가라고 소개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대통령들의 운명은 비극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모두 이념 탓이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오랜 군사정부를 거치면서 강력한 권한을 가진 신(/New) 대통령제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어떤 대통령은 강력한 권한을 이용해서 개인의 이익을 챙기기도 하고 어떤 대통령은 얼떨결에 추대되어 의도하지 않게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다가 파탄이 나기도 하였다. 그 이면에는 이념으로 비약된 국민들의 편견과 과장이 바탕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이념문제의 부작용을 관찰하는 내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관점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통령의 정책실패, 국민 개개인의 건강상태, 사회적 불만 등의 문제를 이념과 결부시켜 과장하고 비약시킨다. 사회의 저변에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인터넷 댓글 등을 보면 이념적 사고에서 비롯된 증오심이 가득하다. 한국형 대통령제가 정책문제가 아닌 정치보복이란 비합리적인 단어와 엮이는 이유는 이념이라는 비합리적인 단어가 집단사고의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요즘 누군가가 의원내각제 개혁에 관한 의견을 내놓았다. 시민의식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 했지만 서서히 시민의식을 갖춘 세대가 사회의 주류로 떠오르는 시대를 맞아 집권적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로 개혁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니면 핀란드처럼 평시에는 의원내각제로 국정을 운영하다가 국가 비상시에는 집권적인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는 이원집정부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이면에는 왕권투쟁이 있고, 이념은 왕권투쟁의 수단이 되고 있던 것이 현실이다.  

2021년 1월 6일 수요일

South Korea and North Korea’s domestic market and manufacturing industry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A0%9C%EC%A1%B0%EC%97%85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A4%91%EC%86%8C%EA%B8%B0%EC%97%85 

 

Nowadays, the 52-hour workweek system has been legislated in Korea. However, 10 years ago, when I made a full-fledged job tour in the manufacturing sector, it was awkward to say that Korea had a per capita income of $30,000. At that time, I used to look around the National Assembly building and the stock market in Yeouid, Seoul, for various reasons. In the meantime, I was wondering if there would be a future for Korea by treating the real economy (including manufacturing, small business, transportation, etc.).

 

The point is that, however deftly you may pool, structure and derive your financial products. it is in the end the same subprime mortgage borrower in Florida, the same small company in Nagoya and the same guy who borrowed money to buy his car in Nantes who have to pay back the loans that underlie all does new financial products. And by creating all sorts of financial products that link different bits of the system, you actually increase the intensity with which the failure by these people to repay their loans affects the system.

 

- [Economics The User’s Guide] by Ha-Joon Chang -

 

This is the opinion of Professor Jang Ha-joon of Cambridge University that the Financial economy, which has become too bloated and complex compared to real economy, is causing confusion in the recession. Tat’s true. In the language of the common people, it is an economy in which a number of non-producers nibble on the produce produced by a small number of producers. Considering the fact that Korea’s exports are doing well to prop up its economy despite the corona crisis, it proves that a strong real economy is the foundation of a strong nation.

 

 On the other hand, North Korea, which is geographically and politically isolated, is expected to make some breakthroughs if it uses the domestic market, which is neither big nor small, as the basis for economic development. And this will create political stability and position.

 

There was little manufacturing in Canada and seemingly little prospect that any would arise Agricultural expansion was proceeding westward into the prairies, much as it was in the United States, but as in the United States it was not pulling manufacturing and urbanization west with it.

 

- omission -

 

What happened instead, of course, was a deliberate policy of delinking from the U.S. economy. In 1878 Canada introduced the so-called National Policy, which had to main elements a tariff wall that in effect forced the Canadian agricultural sector to turn to domestic producers rather than established U.S. suppliers, and a national railway that in effect subsidized East-West traffic in opposition to the natural North-South direction.

 

- omission -

 

But what that means is that Canadian import substitution could do something that similar policies elsewhere cannot by protecting the domestic market,, they could also enlarge it. Because Canadian farmers were forced to buy Canadian, there were more Canadians than there would otherwise have been and hence a larger Canadian market.


- omission -

 

Was this policy a success? Presumably that depends on one’s objectives. What seems clear is that the policy did more than create a hothouse industrial sector that would die off as soon as it was exposed to the winds of international competition. Canada now is strong enough industrially to accept free trade with the United States without fearing that it will be peripheralized.

 

- [Geography and Trade] by Paul Krugman -

 

Of course, the two Koreas should view economic issues as economic issues and not interpret them as ideological issues using short-term and individual desires. Both Koreas should recognize this.    

2021년 1월 5일 화요일

한국과 북한의 내수시장과 제조업

https://hyeong-chun.blogspot.com/search?q=%EC%A0%9C%EC%A1%B0%EC%9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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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등이 법률로서 강제되기 시작했지만 10년 전에 본격적인 제조업부문으로 직업여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정도 되는 국가라는 점이 의아했다. 정기적으로 여러 가지 구실로 여의도에 들려 국회의사당과 증권가를 들려보곤 했는데, 이런 식으로 실물 경제(제조업과 소상공인, 운수업 등을 포함한)를 천대해서 과연 한국의 미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교묘하게 상품을 묶고 구조화하고 파생상품을 디자인해도 결국은 플로리다에 사는 서브프라임 주택 담보 대출자나 나고야의 중소기업, 자동차를 사려고 대출받은 낭트의 젊은이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전제가 이 모든 새로운 금융상품의 근저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시스템 안의 서로 다른 부분을 긴밀하게 연결한 금융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최초로 돈을 빌린 사람이나 중소기업이 돈을 갚지 못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시스템 전체로 훨씬 격렬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 [Economics The User’s Guide] by Ha-Joon Chang -

 

실물경제에 비해서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복잡해진 금융경제가 불황의 혼란을 일으킨다는 캠브리지 대학교 장하준 교수의 의견인데 사실 그렇다. 좀 알기 쉽게 서민의 언어로 표현하면 소수의 사람들이 일을 해서 생산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산된 소량의 생산물을 뜯어먹고 사는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이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선방하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점만 봐도 튼튼한 실물 경제는 튼튼한 국가기반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반면에 지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로 계속 고립된 북한은 크지 않은(그렇지만 작지도 않은) 내수시장이라도 경제발전의 기반으로 삼으면 어느 정도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경제 발전이 정치적 안정과 입지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캐나다에는 제조업이 거의 없었고 어떤 제조업이라도 번성할 전망이 거의 없었다. 농업 확대는 미국에서와 거의 마찬가지로 평원을 향해 서쪽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미국에서처럼 제조업을 유치하고 그를 통해 서부를 도시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 중략 -

 

물론 그 대신 나타난 것은 미국 경제로부터 연결을 끊는 의도적 정책이었다. 1878년 캐나다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로 구성된 소위 국가정책(National Policy)을 도입 하였다.

 

하나는 캐나다 농업 부문을 이미 자리를 잡은 미국 공급자들보다는 국내 생산자들에게로 전환하도록 실효적으로 강제하는 관세장벽이었고, 다른 하나는 북미 대륙의 산맥이 이어진 방향이자 당시 경제적 교류가 활발했던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남북 방향과 반대로 캐나다의 제조업 발전이 가능한 동부 지역과 농업 지역인 서부를 연결하여 국내 수송비 하락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하여 캐나다 동부의 공산품이 수요처인 서부에 저렴하게 공급되도록 함으로써 캐나다 공산품의 수요 시장 확보, 경쟁력 강화 및 수입 대체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도록 동서 교통을 실효적으로 보조하는 국가철도였다.

 

- 중략 -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캐나다의 수입 대체가 타국의 유사한 정책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캐나다의 정책들은 내수시장을 보호함으로써 그것을 또한 확대할 수 있었다. 캐나다 농부는 캐나다인들로부터 공산품을 구매해해야 되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면 캐나다에 살았을 캐나다인들보다 더 많은 캐나다인들이 있게 되었고 따라서 보다 큰 캐나다 시장이 존재하게 되었다.

 

- 중략 -

 

이 정책은 성공적이었나? 아마도 그것은 자체 목표들에 따라 다르다. 명백하게 보이는 것은 이 정책이 국가경쟁의 바람에 노출되자마자 죽어 버리게 되는 온실산업 부문을 창출하는 것 이상을 했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이제 주변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 없이 미국과 자유무역을 받아들일 만큼 산업적으로 충분히 강하다.

 

- [Geography and Trade] by Paul Krugman -

 

물론 경제문제를 경제문제로 보지 못하고 단기적이거나 개인적인 욕망들과 관련해서 이념문제로 해석한다면 개선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는 점은 남북한이 모두 인식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