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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9일 일요일

1920년대에서 지금까지 / 왓슨(Watson,John Broadus)

아래 케인즈에 관한 글을 쓰다보니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심리학자인 왓슨(Watson,John Broadus 1878 - 1958)이었다. 케인즈가 [확률론]에서 경제학의 자연과학적인 방법을 말한것처럼 왓슨 역시 인간의 심리를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할려고한 심리학자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1917년에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그리고 1929년 자본주의세계를 잠시 침묵하게 만들었던 대공황이 일어났기때문에 과학성이나 합리성은 더욱  활력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왓슨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왓슨은 심리학에서 완전히 행동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것을 당연시했다. 인간의 행동은 말초적반사작용으로 일어날뿐이라는 기계적 행태론을 말하고 있다. 인간성에 대한 뼈아픈 상처가 있던 탓일까. 결국 왓슨은 불행한 결혼생활로 댓가를 치루고 마흔 두살에 딱 절반의 나이인 조교와 재혼하고 학계를 떠났다. 이후 마케팅을 연구했고 백화점 점원으로 일했는데, 인간이 기계가 아니고 상당히 많은 생각이 있는 복잡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매우 단조로운 일자리에서 일을 할때가 있는데, 기계적인 환경을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러했다. 그 와중에 호기심과 재미를 찾아서 떠도는 영혼들은 서로에 대해 긍정적인 농담과 웃음을 선사하기 바빴다. 가끔 권위적인 연장자가 서열관계나 권력관계에 집착을 하면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가 들수록 심했던것 같다. 아마도 우리사회의 과거가 갑을 관계에 심하게 시달려 온 까닭인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젊은이들과 일을 할때면 인간성과 평등관계에 대한 신뢰감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나마 한줄기 빛인듯 하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왜 감정적이고 향락적이었을까. 어쩌면 본인이 가장 다양한 사회에 있어야 할 인간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저번에 밝힌것처럼 인민복만을 고집하며 국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의 기계적인 단일성에 자신을 맞춰볼려고 했지만 인간의 본성상 힘든 경우가 되었던것 같다. 한편으로는 김정은위원장은 어떤 방식으로 인간성의 해소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주석궁을 들랑거리는 군부인사들을 보면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꿈꾸고 있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언젠가 북한을 알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알 수 있는 곳으로 몇년을 계획하고 직업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인 이유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성'이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인 이유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간성'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빨리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사회가 희망없음도 깨달았다. 한국사회도 자본주의라는 이유로 북한사회를  닮아가고 있는듯 했다.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 케인즈(John M. Keynes)

1921년 케인즈가 [확률론]을 출간하자 케임브리지의 지식인들이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케인즈는 집필과정에서 수리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의 도움을 받았는데, 곧 17살짜리 케임브리지 대학생인 렘지에게 비판을 받았다. 렘지의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률관계를 인지하지 못하기때문에 케인즈가 중시하는 확률의 세계는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즉 과학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시대적 분위기를 타고 환영받기 시작한 케인즈의 [확률론]에 '주관성'을 중시하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램지는 알려진 천재들의 운명대로 26세에 사망했다. 

나중에 케인즈는 1929년의 대공황을 겪고 확신과 확률같은 기계적인 판단장치가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는데, 또 자신이 [확률론]을 스스로 투기등으로 임상실험을 해보고 그 경험을 토대로 [일반이론]을 집필했다.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움직여나가는 동태성(movement)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동양철학적 관념을 독일의 헌법학자인 루돌프 스멘트(R. Smend)도 국가와 헌법을 해석하는데 적용한적이 있지만 변화라는 것은 인정하고 봐야할 문제인듯 하다. 

그런 불확실한 세상에서 누구를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문제의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사람일 것이다. 결국 천재청년인 램지도 세계경제의 위대한 석학인 케인즈도 변화와 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인간의 주관성에는 무기력한 순종자(follower)였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것같다.

변화할려고 하는 움직임을 물고 늘어지는 이들은 더 큰 불확실성에 시달리게 될 것같다. 그나마 꿈틀거리는게 그중에 확실한 길인듯 하다.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동화 (assimilation)

어렸을때 잠간 잘 되던 부모님의 사업이 실패하자 깊은 산골 옹달샘에서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먹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산골로 간다는 것이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마콘도와 같은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곳은 광산촌이자 밭농사를 주로 하는 시골이었는데, 부친은 그곳에서 제무시 한대로 자동차품을 팔았다. 광산경기가 나빠지자 많은 가정들의 이합집산과 흥망성쇄가 있었다. 훗날 책을 좋아하던 누이는 항상 냉소적으로 그곳을 마콘도였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우리집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흥망성쇄를 비롯한 별일의 일대기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곳이었던것 같다. 아마도 흘러들어와서 원주민들과 섞이지 못한 원인인지 모친은 항상 바깥세상을 생각했고, 부친은 한가해지자 과거의 일에 발목을 잡혀 항상 술과함께 같이산다면 했다. 이후로 그곳을 떠난 후에도 이곳 저곳 학교도 옮겨다니며 이사를 다니곤 했는데 안정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상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독자적인 생각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더구나 나이에 비해 소화하기 힘든 책들을 가까이 했는데,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음은 더욱 생각을 독립시켰던것 같다. 그러니 이념이나 종교에 동화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어느 날 안정되고 좋은 직장을 가진 지인이 조언을 구했다. 승진을 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아웃사이더로 보일 수 있는 독창적인 길을 갈것인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내생각이야 당연히 남의 인생을 살지말라는 조언밖에 안나왔다. 안정된 조직에 오랫동안 갇혀있으면 몸과 마음이 함께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예고했다. 특히 나쁜것은 지위나 권력이 있는 사람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는 인생을 살기 쉽다는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런것 같다. 세월이 흘러 다른 세상을 보지못한 많은 지인들이 정신은 보수반동이 되고, 몸은 급진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독서나 자율성이 깃든 교육이 우리세대에 얼마나 부족했는지 이해가 갔다. 

아웃사이더라고 해서 바보같은 것이 아닌듯 하다. 내 자신도 자주 소속되어 있는 곳과 나를 동질화시키지 않고 분석하거나 관찰하기를 즐기는데, 오랜 훈련의 탓이기도 하고, 다분히 의도적인 부분도 있는듯 하다. 내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내생각이 많이 맞는듯 하다. 평생을 노동자로 살았던 철학자 에릭 호퍼(Eric Hoffer)를 좋아하던 아이젠하워대통령을 지식인들이 저급한 독서생활을 한다고 조롱하자 에릭호퍼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평생 만나 본 지식인은 대여섯 명 정도일 것이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하지만 늘 자신에게 말했다. '노동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평생동안 품이라고는 팔아 본 적도 없는 마르크스가 노동자에 관해 썼는데, 내가 지식인에 대해 쓰면 안 되는 빌어먹을 이유가 있을까? 

2016년 5월 23일 월요일

가묘야묘론(家猫野猫論) / 조선소의 구조조정

사흘전 들고양이 새끼를 구제했다. 다리를 다친 새끼고양이를 어미가 물고 친한집의 대문앞에 놓아두고 갔다. 고양이 어미는 감당못할 새끼들은 인간에게 구제요청을 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것 같았다. 금방 죽을것 같이 조용하더니 안아올리자 표정이 밝아지고 울음소리가 맑았다. 돌봐줄 여건이 못되어 동물보호센터에 연락을 했다. 집고양인지 들고양인지 물었다. 물론 상관없이 구제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더구나 새끼인 경우는....... 들고양이라고 하면 구제해주지 않을것 같아서 집고양이라고 했다. 들고양이와 집고양이에 대한 공정한 대우가 떠 올랐다. 그리고 대접받는 환경에 대해서 생각했고, 특히 이번 조선소구조조정때 버려진 최하계층의 하청노동자인 물량팀에 대한 생각이 났다.

조선소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10여년전 이민을 가서 외국조선소에서 일해볼려고 강릉의 수중용접학교에 입학할려고 하다가 경쟁이 심해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덕소의 한강변에 있는 직업학교에서 배울려고 했는데, 산업기사자격증을 얻어도 경력이 없는 초보자가 일거리를 얻기가 쉽지않다는 소문이 있어 비싼 비용대비 얻어지는 이익을 생각해서 포기하고 그 때문에 수영실력만 짱짱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중용접을 제외하곤 용접이란 용접종류는 다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직업은 그게 아니라도 운동신경이 있어서 그런지 예리한 손기술을 보여주곤 했다.

용접학원원장은 조선소에서 몇년 일하면 상당한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아닌걸 알고 있었다. 오래전 고압선을 타는 활선에 관심이 있어서 알아봤는데, 위험한 일이라고 사람들이 꺼리는 것이 아니었다. 일할 자리만 있으면 목숨이라도 바칠 사람이 많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니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생각하면 많은 연봉이 주어지는 조건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금수저출신의 정치인이 철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몇 번 블러그상으로 타박한 적이 있지만 세상은 넓고 험한 일이라도 할려고 하는 이는 너무 많다. 복지나 사회안전망시스템이 갖추어진다고 국민이 게을러진다는 기묘한 이야기는 어떤 발상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정치인이 될려면 고생을 해봐야 한다.

그런 발상으로 정치를 하는 사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이번 조선소의 구조조정에서도 최하층의 먹이사슬에 있는 물량팀의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 되었다고 한다. 고용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들고양이같은 노동자들이다. 들고양이든 집고양이든 기본적인 권리는 공정하게 주어져야할듯 하다. 물론 이념문제가 아니고 공정성문제다.

Don,t go / 물귀신의 긴장

이상과 야망, 특히 혁신적인 사람이 직장생활을 잘 할수 있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건 그사람의 탓이 아니다. 실제로 혁신적인 사람이나 이상이 있는 사람은 더 큰 능력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설령 능력이 없다해도 더 큰 세계로 나아갈 능력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으니 결국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일터를 잡으면 초반에 마치 그 세계에서 영원히 살지 않을 사람처럼 말을 해보곤 한다. 중요한 시험공부를 한다거나 굉장히 미래지향적인 청사진을 언급해보곤 하는데, 주변 사람들의 눈이 곱지않음을 느끼거나 실제로 타박을 받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보다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인지 윗 사람들의 적극적인 통제를 받는 경우가 실제로 많았다. 그런 불편함이 당연히 내가 만든 가시밭길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집단의 희망을 점쳐보기 위한 간 큰 시도를 해보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이 왜 보수적 정치인을 지지하게 되는지도 어렴풋이 이해할것 같다.

백인학생의 경우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주변사회로부터의 도피 수단이 되지 않는다. 그의 부모,가족 친구들이 교육을 통해 얻은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민가 출신의 흑인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면 가난, 범죄, 상실, 그리고 친지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얻게 된다. 이는 주변의 호응을 받을만한 일이 못될 것이다. 사람들은 내 친구나 가족이 도피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도피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 Tim Harford 의 [The LOGIC of LIFE ]중에서  -  

그러니까 더 큰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긴장하여 그 가능성에 도전해야 하는 부담감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무사안일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상 사촌이 땅 사는 것을 방해해야 나도 편안하다는 결론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하물며 어느 정도의 권력이나 지위 또는 명예등이 충족된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과 사회의 본질적 속성상 변하지 않으면 퇴보한다는 진리를 잊고 있는지 모른다. 단기이익은 장기이익을 구축(驅逐)한다. 구성원들이 무지할수록 그런 현상은 심해지는 것 같다.

가끔 북한의 군장성들이 훈장을 주렁주렁 단 우스꽝스러운 군복을 위용(?)있게 갖추어입고 도열해서 웃고있는 장면을 보면 공포심이 들때가 있다. 영혼이 없는 인간에 대한 공포, 언젠가 자주 느꼈던 내 발목을 붙잡던 사람들에 대한 진저리나는 혐오감, 그러면서도 어쩔수 없는 내 자신의 무력함의 감정등이 겹쳐서 괴로운적이 많았던것 같다. 한 때는 '윗선'의 지시를 받아서 나를 통제할려는 사람들이 하잘것 없어 보인적도 있다.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변해야 한다. 높으신 분들이 건강하고 희망있는 삶을 살아야 나같은 밑바닥 인생들의 미래도 희망적인 것이다. 

2016년 5월 21일 토요일

이념과 발달장애 / 장 피아제

가끔 고생 안해보고 좋은 직장을 다니며 가정을 열심히 꾸려나가는 지인들이 행복하면 좋겠건만 의외로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본다. 고통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 험한 세상 다리아래서 살았던 사람들이 보면 말도 안되는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고통을 받곤한다. 고민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든가 어떤 사람도 고민이 있는것은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상식적인 결론들이 나와 있긴 하지만 정확히 보고 깨달아보건데 지나치게 이익을 찾아서 헤매다가 욕망에 붙들린 경우가 대부분인것 같다. 특히 나이 들면서 당연히 생긴다는 공감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것을 느끼는데, 단기적 이익에만 빠르게 반응하는듯 하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 1896 - 1980)는 취학전의 아동은 형태가 변하더라도 대상이 바뀌지 않는 한 무게, 부피, 수와 같은 속성은 유지 된다는 보존의 개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길고 좁은 컵에 담긴 우유를 넓은 그릇에 옮겨서 우유의 수면이 낮아지게 되면 우유의 양도 줄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타인의 관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보인다는 것이다.   

사회집단의 인지능력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이념같은 획일적인 관념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는 사회집단이 인지능력이 부족하여 장기적인 이익보다는 단기적인 이익에 치중을 하거나 사회전체나 사회내외부를 연결된 구조로 생각하지 않고 집단이익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보곤한다. 이런 현상이 지나치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이익의 개체로 보는 극단적인 현상까지 나타나는데, 권력이나 부의 획득을 위하여 인간을 사람취급하지 않는 현상을 보이게 되는듯 하다. 사실 공산주의나 자본주의가 어떤 문제점을 보이게 된다는 사실은 결국 인간을 중시하지 않았다는 의미고 구성원들의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며 인지발달이 늦다는 사실로 보인다.

강남역에서 일어난 묻지마 살인범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리속에 상대에 대한 이성적인 공감적개념이 없고 자신만의 생각과 상상에만 몰두하다가 그것이 증폭되어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고착화된듯 한데, 한국의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서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은 심각해지는듯 하다. 물론 유물론을 기반으로한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은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전제를 깔고 들어간 국가라서 말할 필요도 없긴 하다. 

2016년 5월 13일 금요일

세상에 그런 (공부)법이 어디 있느냐

법조브로커사건이 크게 터졌다. 애초부터 전관예우를 비롯하여 법조계는 나름 사법부독립의 권리를 이상한 방법으로 누리고 있었던것 같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삶과는 매우 다른 영역같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과 대화중 '우리 법조계'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것을 듣고는 지인의 내집단 의식에 놀랬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지위와 권력을 위해,사실 여러가지 상황에서 내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다년간 법조문과 씨름하고 꽤 오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흑역사가 있긴했다.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수험생활이라는게 시간과 반복의 투자만 있으면 성공적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는 바 있어 아직도 한 방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그리고 그후 2년 가까운 동안 법서만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의 청춘시기에 법조문으로 경화(硬化)된 생각을 가졌던 경험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로 남는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법조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감동적이고 이상적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우울해지곤 한다. 하물며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법조인이 된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법조문제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법공부 초기에 건강, 경제력, 학벌 모든 여건이 불리하자 딱 한가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상쇄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정신력은 사명감과 이상이 없으면 절대 발생하지 않는 요소였던 것 같다. 엉뚱하게도 북한이나 이념문제와 관련해서 더 다급하고 긴박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니까 초인적인 힘이 나오곤 했다. 초기에 최종고교수가 지은 김홍섭판사의 전기를 읽고 감명받아서 생긴 힘이, 어렵고 지루한 수험생활과 좋지않은 모습으로 만난, 같은 길을 갔던 사람들과의 관계로 빛을 바래고 말았던것 같다. 도대체 학벌과 지식은 있는데, 생각이 없어 보였던 사람들, 그 중에 특히 내 자신은 국가와 사회에 별로 쓸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다른 쪽의 삶을 누리게 되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순수한 젊은이들의 활기, 스포츠, 여행, 다방면의 독서등 치열한 법조인생을 살았다면 전혀 보지못할 세계를 보며 공부에 손을 놔버린 내 자신을 후회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동안 읽은 역사,철학,경제,교육,사상,정치,사회과학,지리,인류학관련 서적을 생각하면 사법시험 몇 번을 합격하고 남는 양일수도 있을것 같다. 요즘은 공학관련공부를 하고 있는데, 다시 법서를 잡게 될지 아닐지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평생공부는 인간으로서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야 늙지 않고 열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탐욕을 덜 부리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몇 번 밝혔지만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놀이와 여유로운 정신으로 학습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 해주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학습해서 자기 머리에 집어넣는 작업이 좋은 사람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은 착각인듯 하다. 근원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자율성이나 창의성을 도외시하고 정신의 승리나 초인적인 의지력만 강조하는 일본식교육은 북한의 과도한 이념에 대한 집착이나 군사교육, 한국의 수험문화등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듯 하다. 지금도 책장속에 꽃혀있는 버케블러리33000이라는 단어책을 보면 실소가 나오곤 한다. 스마트폰 사전을 뒤지면 나오는 단어들을 왜 저렇게 많이 외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2016년 5월 9일 월요일

루소와 칸트의 교육관과 북한교육

가끔 지적호기심이 전혀 충족되지 않거나 개방성이 없는 일을 할때면 북한사회를 너무 잘 이해하는 시간이 되곤한다. 정신적인 근본부터 이념에 갇힌 체제에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의 억압, 단순한 경제와 문화구조속에서 북한 인민들이 어떤 변화를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지지 않는 것이 좋을것 같다. 획일적 교육의 무익함은 오래전부터 서양의 교육학자들로부터 주장되어온 바 있기 때문이다. 북한사회의 교육은 이념적인 문제로 아주 실패했고, 한국의 교육은 자유시장교육에서 단기적 이익추구의 문제때문에 어느 정도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교육도 사회체제나 규범의 단순성때문에 실패한 결과 경제적인 성장에서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생각되고, 모택동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과거의 고전에 치중한 독서로 등소평과 주은래에게 제대로 된 개혁의 과제를 넘겨준 것으로 생각된다. 교육은 참으로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인듯 하다.

어렸을때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학교를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공부하라고 하는 어른이 없어 이책 저책 가져다 읽고, 나중에는 이일 저일을 했다. 그러다보니 내 자신은 타율적인 교육에 익숙치 않았던것 같다. 그러다보니 이런 저런 모습으로 환경에 동화되며 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확실한 것은 발전을 할려면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타율적인 교육이 무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완전한 자율적인 교육을 중시하는 루소와는 달리 칸트가 말하는 의무를 강조하고 도덕적인 훈육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은 사실인듯 하다. 칸트는 인간의 내면속에서 자연성과 도덕성,감성과 이성이 항상 대립하며 싸우기 때문에 악한 본능인 자연성과 감성을 선한 도덕성과 이성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교육은 자율적으로 그런 선한 성질을 배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루소의 저서 [에밀]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에밀은 나이가 더 많고 키가 더 큰 아이들이 힘도 더 세고 지식도 더 많다는 사실을 안다. 에밀은 언젠가 그 자신도 그렇게 힘도 세지고 키도 크게 되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느긋하게 이를 기다릴 줄 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은 교사에 의해 장려된다. 교사도 그래서 모든 교육에 있어서 결코 조급해하지 않는다. 시간은 있다. "시간을 낭비하라."

마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말한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떠나는 것과 같다. 어차피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서두를 필요 없다."라는 명언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한 번은 나의 부친과 연루된 일에 화가 나자 부친을 체험할겸, 좋지않은 상황에 방어도 할겸해서 일본 스파이학교의 훈련체계를 기반으로 자율적인 훈련을 몇개월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건강등을 비롯하여 효과는 좋은 것 같았다. 그런데 칸트가 말한 의무와 도덕적 성향에 있어서 조금 부족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양지에서 양지를 추구하고자 스케이팅과 수영등의 운동과 독서를 많이 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적이 있었다. 이것 저것 시도하거나 여기 저기 관찰하고 경험한 것으로 생각하면 분명히 자율적인 것이 좋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린듯 하다.

루소는 소년기의 호기심이 학문에 관한 열정이나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 노화가 늦추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어렴풋이 경험도 하는듯 하다. 어느 일을 하든지 어느 장소에 있던지 내 자신은 소년같은 호기심이 왕성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환경에 억압받으면 동화되지 않을려는 노력으로 여가시간을 애써 챙기곤 하는데,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고, 에너지가 충족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많다.

전투, 강성, 속도등의 단어가 지배하는 사회임에도 발전을 하지 못하는 북한사회의 문제를 이쯤 되면 이해할 것 같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다. 좀 더 여유로운 시간속에서 자신을 스스로 발전시켜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악한 본능과 싸워 선한 도덕성을 가질려는 노력조차도 국가가 챙겨주는 것이 아닌 개인이 노력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 시급한듯 하다.  

2016년 5월 7일 토요일

김정은의 양복과 사상의 힘

북한노동당 7차대회에서 김정은 제 1비서는 양복을 입고 참석을 했다. 그것을 두고 한국언론에서는 할아버지 김일성과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한 변화라고 해석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것 같다. 핵, 경제병진노선에 대해서는 일관성있는 길을 갈 것이지만 적어도 변화에 대한 내면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 제 1비서의 양복은 어쩌면 좀 더 서구화에 대한,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 문화적인 변화에 대한 욕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군 인사가 아닌 김영남 상임위 위원장은 양복을 입는 상황에 김정은의 양복복장에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자 하는 의지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의문이다. 김일성주석은 양복이 어울렸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감정적인 산만함을 단조롭게 정리하기 위해서 인민복을 선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 편으로는 아직도 거대행사의 카드섹션에서 '사상의 힘으로'라는 구호가 보이는데, 현실과 비교하면 별로 힘이 없는 사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종교적 믿음이 모든 것인 사람에게 종교를 비난하는 것이 모욕감을 주는 것처럼 북한 사상의 무력함을 비난하면 모욕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냉철하게 판단하면 사상이든 종교든 맹목적인 집중은 무기력한 의타심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상적인 무장을 구호로 표현하며 다그친다고 문제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침에 변화에 대한 내면적인 갈망을 하면서 양복을 차려입고 나오는 실용적인 성실함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논리학자인 콰인(Willard van Orman Quine 1908 ~ )은 외적세계에 대한 우리의 설명은 독립적인 것이 아닌 집합으로서 감각적 경험의 판단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명제에 관해서는 결국 참과 거짓의 구분이 아닌 유용한가 아닌가 하는 실용주의적 구분으로 귀결이 된다고 말한다.

원래 인간의 논리로부터 탄생한 사상이나 이념등이 검증이 되든 안되는 실용적인 관점으로 판단이 되기  마련인데, 전혀 안좋은 것으로 검증이 된 사상체계를 이용해서 힘을 낼 수가 있는지 하는 것이 의문이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이념에 매달리는 태도를 생각하면 집단지성의 힘이 무력하다는 생각도 든다. 북한인민들이 전체적으로 지식수준이 높지 않은 문제와 그렇게 교육시키는 교육방식은 상호 불용(不用)과 퇴보의 뒷걸음질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제 1비서가 양복을 입는 작은 변화에서 세상속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느끼는 것은 많은 한반도민들의 기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