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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5일 목요일

석회석광산과 텅스텐광산 / 코라파스


서술상 좀 엉뚱한 비약이 있긴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있어서 한 부분의 개발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데,  북한의 경제성장에 지하자원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것 같다.

혼돈이론(나비효과이론)의 창시자인 코라파스(Dimitris Chorafas 1961 - )는 어떤 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반드시 비례관계나 정규분포적 질서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코라파스는 아주 사소하게 발생한 문제가 나중에 커다란 문제로 변환되는 경우를 이론화 시켜서 많은 저서를 내놓고 많은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면서 세상의 질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아 센세이션을 일으킨적이 있다.

그러나 정규분포적 질서를 찾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어떤 대규모적 사건이나 추세는 명확히 규명할 수 있는 이유가 발단이 됨을 알수도 있는데, 한국이 건설업이나 중공업으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이유를 지하자원의 성질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심지어는 어떤 전직 대통령이 옛날 한국의 1970년대 건설업의 부흥시대를 잊지 못하고 건설업에 대해 심각한 집착을 하다가 국고를 낭비한 사건까지도 아주 오랜 옛날 고생대 지층이 한반도에서 형성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 사건으로 인연이 맺어질듯 하다. 고생대에 형성된 조선계지층에서 풍부한 석회석이 한국의 건설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

몇일전 일터를 옮기면서 잠깐 머리도 식힐겸 한국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이란 곳을 다녀왔다. 어렸을때 부친이 제무시(GMC)트럭이나 일본제트럭이나 소련제트럭을 개조한 4발이 또는 쓰리쿼터트럭을 가지고 석회석 광산이나 상동의 텅스텐 광산에서 트럭품을 판적이 있어서 어릴때의 추억이 있는곳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 상동의 텅스텐은 한국수출액의 60퍼센트를 점유하는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광물의 품위도 높고 매장량도 엄청났다. 하지만 1990년대 저렴한 중국산 텅스텐원광이 개발되고나서 상동의 텅스텐광산은 폐광되고 상동은 상주인구 2만명의 지방도시에서 일천명의 마을로 전락을 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어느 지역이 다시 부흥했으리라 생각한다.

상동의 광산이 한창때는 광산 고용인원이 이천여명정도 되었는데, 그 인원과 맺어진 상주인구가 열배인 이만명까지 되었던던 점과 한국 수출액의 60퍼센트까지 점유했음을 생각하면 있는 지하자원을 개발해서 경제성장과 연계시키는 일이 매우 유용하고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8년 1월 19일 금요일

현실주의 이상주의 / 김일성과 황장엽

어느 날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민들의 생활에서는 얄팍한 이익을 가지고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제때 식사도 못하고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모든 조건이 나쁘게 결합되어 있는 처지라서 팍팍한 현실이 여유있는 통찰력을 몰아낸지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었다. 이념문제에 대한 오해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같이 살았던 그 시절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애증(愛憎)이 가득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 애(愛)는 얼마냐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를 살펴본 만큼 나도 저쪽을 살펴보았던 전력이 있는 처지라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치인이 서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의 스케일이 크고 그릇이 커서 여유가 있고, 그 여유와 상상력이 결합하여 통찰력이나 직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사소한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서민의 스케일을 가지고 감당못할 일을 떠맡는 처지가 되어서 아주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한국의 보수가 괴멸 된다고 하면 이런 문제일 것이다. 보수가 살려면 헌신적인 마음으로 여유와 통찰력을 가지고 개혁을 위해 힘써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공익적 지위를 사용했으니 직관이 발휘될리가 없던 것이다. 나는 해봐서 아는데, 이런 문제도 나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 안다.

북한과의 이념전쟁의 일선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썼던 영웅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의 부친이 그랬으며 구월산유격대장과 그 대원들이 그랬으며 북파공작원들이 그랬으며, 참전용사들이 그랬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좀 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소중한 분들이 한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상황이 될까봐, 말하자면 내 자신이 사회주의 성향을 띌까봐 우려하곤 했는데, 항상 맑은 머리로 직관을 발휘해야 냉철한 입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 나를 나이에 비해 염소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 번은 국립현충원에서 구월산 유격대 김종벽대장의 아드님, 황장엽 북한외무상을 망명시킨 이연길 선생과 식사를 하고 있다가 이연길 선생이 부친과 비숫한 점이 많아서 부친이 생각났다. 한 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었던 황장엽 선생의 전력과 황장엽 선생을 신뢰하던 김일성 주석의 마음도 짚어보곤 했는데, 현실주의자였던 김일성 주석이 이상주의자였던 황장엽 선생을 많이 신뢰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을 퍼뜨리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모두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자진월북을 한 황장엽 선생의 이상주의적인 성격은 한 술 더 뜬 면이 있다.

1990년대 황장엽 선생이 망명할 무렵 한국의 한 잡지에서 황장엽 선생의 이야기가 특집으로 나왔다.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시절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었으며 점심시간에 생쌀과 솔잎으로 식사를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인물이 북한에서 외무상을 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신뢰를 받아서 북한의 정신적 바이블인 김일성 주체사상을 만들었으니 권력과 사람보는 눈이 있는 김일성 주석도 특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적인 눈으로 이상주의자를 영입해서 균형을 얻을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이익에 집착하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 마음은 직관을 낳는다. 인민군 장교학교로 이송되다가 남쪽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기차역에서 탈출한 나의 부친은 모친을 남겨두고 온 것을 후회했는데, 황장엽 선생은 모든 사적(私的)인 인연을 끊고서 월북했다가 다시 모든 사적인 인연을 끊고서 망명해서 북한에 관련 인물들 2000여명이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연길 선생은 전 재산을 들여서 황장엽 선생을 망명시키고, 구월산유격대장과 대원들은 이념을 수호했다는 자부심외에는 어떤 현실적인 이익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이상주의자들의 바다에서 떠 다니는 눈으로 본 현실은 매우 못 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시절 북한이 고난의 행군시절을 맞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산 앞바다로 추정되는 휴양지에서 국사(國事)는 멀리하고 술판을 벌리고, 영화에 몰두하고 여성편력에 힘쓰는 현실적인 생활을 했으니 미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북한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부친의 모습을 싫어했던 것으로 아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 같으니 매우 현실적인 해명을 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정말 큰 일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살이가 힘든 서민이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들어야 한다. 정치인이 개인적 이익을 탐하는 그릇을 가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다

2018년 1월 12일 금요일

트라우마의 해결

한달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과속으로 달리던 차가 내 차의 옆구리를 들이받은 사고인데, 사고의 규모에 비해서 크게 다친데는 없었고, 사고직후 침착하고 의연하게 대처한 점도 있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천천히 무너졌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생각을 하게끔 내 자신을 잃어버렸다. 이제 지금 이 시점의 현실이 내 생각의 바탕이 되어가고 있었다. 현실에 길들여진다는 점을 체험했다는 의미다. 이래저래 고통을 겪다가 남극이나 7대룩 최고봉을 등반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으며 정신을 모으려고 애를 썼다. 

사람은 방황하면 돌아올 곳이 필요하다. 그곳은 고향일 수도 있고, 종교일 수도 있고, 이념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다. 만약 한 국가의 구성원들 전체가 식민지 치하나 전쟁등을 겪었다면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와 같은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이념이나 종교에 집착하는 이유를 트라우마를 극복할려는 시도로 해석해도 될 듯 싶었다.


원래 이념이나 종교가 나쁜 것은 아닌데, 왜 그것에 지나치게 매달리게 되었는지, 북한이나 한국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듯 하다. 일제식민지의 경험, 625전쟁등 편치않은 역사는 맹목적인 믿음을 만들것같다.

북한의 공업화전략

북한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와 일인당 GDP가 비숫하다고 해서 북한의 공업화전략을 아프리카의 미개발국가들과 비숫한 방식을 취할 것이 아니다. 북한은 국가규모대비 엄청난 부존자원을 가지고 있고, 군수산업과 관련된 기계공업이나 IT산업, 심지어는 핵개발능력까지 어떤 부문에 있어서는 첨단을 달리고 있는 국가다. 만약 미국의 군수산업기술이 민간기술을 이끌었던 방식으로 공업발전을 시도한다면 짧은 시간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립된 지정학적 위치와 이념적인 전통은 후진국이 취할 수 있는 공업화전략인 수출 주도형전략을 취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듯 하다. 이 전략은 활발한 국제관계와 무역활동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자립경제만을 외치고 있는 북한은 수출 주도형 경제성장을 전혀 시도하지 않는다. 적성국가와 적성국가들에 협력하는 국가들에 둘러싸인 운명을 개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은 북한의 유일한 희망이 될 수 있다. 한국은 북한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북한은 한국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한때 한국의 중공업지대와 경공업지대에서 생활했던적이 있는데, 비교적 한국의 70년대나 80년대의 문화적 정신적 생활형태를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며 한국과 북한의 경제적 문화의 접변에 그다지 큰 어려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북한은 군수산업을 기반으로한 2차산업 위주로 특화하고, 한국은 3차산업이나 4차산업 위주로 특화하여 서로 비교우위에 있는 상품으로 활발한 무역활동을 시작하자는 의미다. 정치적인 신뢰감문제는 구상무역같은 형태로 해결하면 될 것 같다.

2018년 1월 6일 토요일

정치지도자의 정신건강

스코틀랜드의 정신의학자 R.D.라잉은 [분열된 자아와 경험정치학]이란 저서를 통해 인간의 정신분열 증세는 병든 사회가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정신분열 증세는 약물로 억제할 것이 아니고 널리 알리고 탐구하여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 번은 북한과 한국의 정치지도자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이나 외국의 정치인들의 분열적이거나 과장된 행태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었는데, 핵단추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의 정신건강이 미국사회의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원래 정치인, 종교인, 사기꾼, 사업가는 도덕성문제와는 별개로 형이상학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것이 때로는 인간사회에 필요한 것일수도 있고, 문제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사회처럼 대중사회의 성향이 강한 곳에서는 좀 과해도 문제가 안되는듯 한 현상이 나타나서 다소 우려가 되는 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것 같다.

대중정치나 선동정치가 국민에게 무리없이 용인된다면 그 사회의 정신건강부터 고려해봐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