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늦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서민들의 생활에서는 얄팍한 이익을 가지고 서로
충돌하는 경우도 있고,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낮과 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시간에 맞추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제때 식사도 못하고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모든 조건이 나쁘게 결합되어 있는 처지라서 팍팍한 현실이 여유있는 통찰력을 몰아낸지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는데, 전직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었다. 이념문제에 대한 오해로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 같이 살았던 그 시절의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애증(愛憎)이 가득 담긴
눈으로 보고 있었다. 뭐 애(愛)는 얼마냐 있겠냐만은 그래도 나를 살펴본 만큼 나도 저쪽을 살펴보았던 전력이 있는 처지라서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정치인이 서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생각의 스케일이 크고 그릇이 커서 여유가 있고,
그 여유와 상상력이 결합하여 통찰력이나 직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 사소한 이익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서민의 스케일을
가지고 감당못할 일을 떠맡는 처지가 되어서 아주 나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한국의 보수가 괴멸 된다고 하면 이런 문제일 것이다. 보수가
살려면 헌신적인 마음으로 여유와 통찰력을 가지고 개혁을 위해 힘써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공익적 지위를 사용했으니 직관이 발휘될리가
없던 것이다. 나는 해봐서 아는데, 이런 문제도 나처럼 밑바닥 인생을 살아보면 안다.
북한과의 이념전쟁의 일선에서 자유주의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힘썼던 영웅들을 많이 알고
있다. 나의 부친이 그랬으며 구월산유격대장과 그 대원들이 그랬으며 북파공작원들이 그랬으며, 참전용사들이 그랬다. 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좀 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소중한 분들이 한 일의 가치를 폄하하는 상황이 될까봐, 말하자면 내 자신이 사회주의 성향을 띌까봐 우려하곤
했는데, 항상 맑은 머리로 직관을 발휘해야 냉철한 입지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 나를 나이에 비해 염소같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 번은 국립현충원에서 구월산 유격대 김종벽대장의 아드님, 황장엽 북한외무상을
망명시킨 이연길 선생과 식사를 하고 있다가 이연길 선생이 부친과 비숫한 점이 많아서 부친이 생각났다. 한 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었던 황장엽
선생의 전력과 황장엽 선생을 신뢰하던 김일성 주석의 마음도 짚어보곤 했는데, 현실주의자였던 김일성 주석이 이상주의자였던 황장엽 선생을 많이
신뢰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을 퍼뜨리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모두 이상주의자이긴
하지만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으로 있다가 자진월북을 한 황장엽 선생의 이상주의적인 성격은 한 술 더 뜬 면이 있다.
1990년대 황장엽 선생이 망명할 무렵 한국의 한 잡지에서 황장엽 선생의 이야기가
특집으로 나왔다. 한국의 상업고등학교 선생시절 학생들에게 인기는 없었으며 점심시간에 생쌀과 솔잎으로 식사를 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인물이 북한에서 외무상을 하면서 김일성 주석의 신뢰를 받아서 북한의 정신적 바이블인 김일성 주체사상을 만들었으니 권력과 사람보는 눈이
있는 김일성 주석도 특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현실주의자가 이상주의적인 눈으로 이상주의자를 영입해서 균형을 얻을려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적인 이익에 집착하지 않아서 마음의 여유가 있다. 그 마음은 직관을
낳는다. 인민군 장교학교로 이송되다가 남쪽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아서 기차역에서 탈출한 나의 부친은 모친을 남겨두고 온 것을 후회했는데, 황장엽
선생은 모든 사적(私的)인 인연을 끊고서 월북했다가 다시 모든 사적인 인연을 끊고서 망명해서 북한에 관련 인물들 2000여명이 숙청되었다고
한다. 이연길 선생은 전 재산을 들여서 황장엽 선생을 망명시키고, 구월산유격대장과 대원들은 이념을 수호했다는 자부심외에는 어떤 현실적인 이익도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이상주의자들의 바다에서 떠 다니는 눈으로 본 현실은 매우 못 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시절 북한이 고난의 행군시절을 맞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산
앞바다로 추정되는 휴양지에서 국사(國事)는 멀리하고 술판을 벌리고, 영화에 몰두하고 여성편력에 힘쓰는 현실적인 생활을 했으니 미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북한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런 부친의 모습을 싫어했던 것으로 아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 같으니 매우 현실적인 해명을 하는 전직 대통령을 보면서
정말 큰 일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살이가 힘든 서민이 하는 말이지만 이 말은 들어야 한다. 정치인이 개인적 이익을 탐하는 그릇을 가지면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어려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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