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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27일 토요일

흐르는 정보의 강물처럼 / 인터넷 감시


인터넷상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검찰의 감시를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기사가 발표되자 좀 당혹스러운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 지난 정부때 내 트위터계정에 조작적으로 올라오던 팔로워들의 혐오스러운 사진이 생각났다. 지난 정부때는 이념과 종교적 환상이 정국(政局)을 지배하는 상황을 많이 걱정했던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정국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창조와 미래라는 단어들과는 거리가 먼 과거지향적인 국가로의 회귀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간이란 기득권이 있고 없고를 따지지 않고 지극히 과거 지향적이고 보수적이기 쉬운듯 하다. 미래지향적인 개혁의지는 자기자신을 일깨우려는 수고를 필요로 하기 때문인듯 하다.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이 개혁을 갈망하는 환경에 놓인 이들조차 보수진영에 투표한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듯 하다.

어느 날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주의자인 어느 대학교수의 이름으로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고소할려는 시도를 했다는 내용의 글이 지유게시판에 올라왔고, 그 글이 내 이름을 검색하면 검색되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많은 의미가 담긴 복선이 깔려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생각이 진실과 가상사이를 어떻게 줄타기 할 수 있는지를 자각하기도 하고, 인터넷의 폐해를 자각하기도 하고, 한국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 이념문제는 나를 끊임없이 괴롭힐 것을 자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던 그 날에 그것도 대검찰청의 홈페이지에 마르크스주의자인 대학교수의 이름으로 내 이름을 가진 사람을 고소할려는 시도를 했다는 설상가상(내지는 금상첨화)의 복선이 깔린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많이 생각했다.

2차대전 직전에 런던 주재 미국대사인 조지프 케네디의 대사관에서 비밀전문을 담당하던 타일러 캔트가 히틀러가 유럽을 침공할 것을 대비해 처칠이 루즈벨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나치의 비밀요원인 애나 울코프에게 건네 주었다. 당시 캔트는 처칠과 루즈벨트가 소비에트 공산주의자와 유대인들을 위해서 미국인들의 희생을 요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켄트는 반역죄로 체포되고, 루즈벨트는 FBI의 후버국장에게 영장없이 도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로버트 잭슨은 도청이 위법이라고 판단해 후버국장에게 중단을 지시했다가 루즈벨트의 지시에 의해서 지시를 번복했다고 한다.

후버는 잭슨에 대한 원한을 오랫동안 가지게 되었고, 잭슨이 사망하자 잭슨이 음란하게도 개인비서였던 정부의 품에서 사망했다고 폭로했다. 훗날 잭슨은 도청에 대한 무한한 권한을 FBI에 부여한 결정을 후회했는데, 리처드 닉슨때까지 대통령들은 30여년동안 잭슨의 결정을 방패삼아 FBI를 이용해 정적들과 국가의 적들을 추적하게 했다고 한다.

- 마이클 베슐로스의 저서 [PRESDENTIAL  COURAGE]중에서 발췌요약 - 

결국 구국적(救國的)신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선례(先例)가 정적(政敵)을 물리치기 위한 술책으로 전용되어 나쁜 선례를 습관처럼 이용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최종책임을 지고, 대통령 임기를 못채우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게 된 사실이 있다.

내 자신은 대통령이나 검찰간부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서민들의 일상속에서 인격적인 모욕이나 갈등을 겪는 적이 많은데, 이념문제 같은 다소 포괄적인 문제에 골몰하다 보면 치사스런 갈등이 사람들의 특징이나 사회의 흐름으로 모니터링 되어 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듯 하다.

J.C.칼레슨이라는 어느 전직 CIA요원은 비방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은 흐름을 포착하는 활동과도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스파이가 보고하는 내용이 부정적일수록 해당요원의 경력에 훨씬 이롭다고도 한다. 그러나 기업의 세계에서는 긍정적인 데이터에만 관심을 쏟기 때문에 잠재적인 위험을 무시하게 된다고 말한다.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와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는 구별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부정적이고 심지어는 불쾌하기도 한 많은 정보들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엄청난 탄압도 유학의 발전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 정보에 대한 세계는 작위적인 방법으로 흐름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통일에 관한 독일과 영미(英美)식 사고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로부터 분리독립할려는 시도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국민의 가벼움'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물론 분리되어 통상이나 왕래가 불가능한 한반도처럼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독일처럼 같은 유럽 안에서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고 성과를 얻어낸 국가도 있는데, 이제는 크지도 않은 국가를 분리독립 시킬려는 시도를 생각하면 옛 '대영제국'의 영화가 빠르게 추억으로 자리잡는 노쇄한 국가를 보는듯 한 느낌이다.

독일과 영미(英美)식 국가분위기는 많이 다른듯 하다. 구태여 표현하면 이성이 강한 국가와 감성이 강한 국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다. 물론 어느 쪽이 바람직 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듯 하다. 감성이 우세한 국가에서 더욱 개인주의적이거나 민주적인 시민의식은 자연스럽게 발달하기 때문에 '성향의 차이가 있다'는 표현이 적절한듯 하다.

성문법이 발달한 독일식 법체계와 불문법이 발달한 영미식법체계도 차이가 있는데, 확실하고 실증적인 잣대를 표방하는 독일과 상황에 따른 개인과 환경의 유동적인 흐름을 중시하는 영미식 사고의 차이인듯 하다. 또 철학도 독일철학은 감각을 넘어선 '진리나 의무'를 가정하는 절대주의적인 성향이 강한듯 한데, 영국과 미국은 감각이나 현상, 이익의 범위 안에서 철학적인 시도를 하는 상대주의적인 성향이 있는듯 하다.

위와같은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봤다. 어쩌면 대륙의 한쪽 귀퉁이에서 열려있지않은 지리적 조건, 좋지않은 자연환경, 결핍된 자원등과 싸워온 독일인들의 억제된 사고를 반영하는듯 하고, 해양으로 열려있어 일찍이 식민지 건설을 통한 풍요로움을 경험한 영국과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통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호사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호기(浩氣)를 반영하는듯 하다.

한국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으로서 자연스럽게 영미식 사고를 닮아가는듯 하다. 과거 독일과 우방이었던 일본식 사고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나쁜 환경으로 벗어나 민주적인 요구나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 감각적으로 변해가는 대중들의 성향은 그런것을 반영하는듯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문제나 사회복지시스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영미식 분위기를 닮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한계'인듯 하다. 이유는 그만한 번영을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달리 표현하자면 정부주도의 복지시스템 외에는 국민의 생존권을 지켜줘야 하는 안전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복지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의 상관관계는 북유럽이나 독일의 모델을 지향하면 될 듯 하다.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요구는 작은 국가들이 모여서 유럽연합(EU)과 같은 결속체를 아루고 있는 유럽의 국제적 환경을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는듯 하다. 분리된다고 해도 고립국이나 적대국으로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확신이 위안이 되고 있는듯 하다. 미국도 역시 주정부가 반독립적인 국가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외부에 대한 스트레스나 여유있는 경제적 환경이 전체국가의 결속력을 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인듯 하다. 반면에 결속을 위한 국제적인 환경이나 문화적, 경제적인 환경이 빈곤하고 오직 정치적 통합에만 의존했던 구 소련은 쉽게 분리되어 때로는 서로 적대적인 갈등을 보이기도 하는듯 하다.

통일과 분리에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지리적 환경등이 크게 '연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4년 9월 13일 토요일

경제학의 이념과 가치관


오래전 직장 동료들 사이에 양편으로 나뉘어 분쟁이 깊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해할려고 애쓰면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는데,  많은 식구들의 생계가 달린 곳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니까 어느 한 쪽에 기대어 개인의 이익을 취할려는, 흔히 기회주의자라고 불리는 수동적인 위치가 아닌 ,끝까지 직장을 살리고 유지해 나가야하는 능동적인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르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다수의 분란과 논쟁은 개인의 고뇌를 극(克)하고도 남았던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개인적인 일로 이념문제의 최전선(最戰線)에서 내가 좌파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좌파의 위치에 있는듯 하고, 우파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우파의 입장에 있는듯 한 그 때 그 곤란한 상황을 좀 더 크게 경험하는 아주 나쁜 기회를 얻었는데,지금까지도 어린 마음에 겪은 작은 일이나 큰 일이 두고 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는것 같다. 

그 때 그 직장에서 중립적인 위치에서 꼿꼿하게 입장을 들이미는 나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동료 한 명이  "당신 왕따 아니냐 아니면 당신이 양쪽 모두를 왕따 시키는거 아니냐"하고 일갈(一喝)하는 취중행패를 부리고 퇴사를 했다.      

미국의 철학자 퍼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 - 1914)는 인간의 정신은 태어날때부터 형성된 지식, 관습, 신념등에 의해서 성립되며 현재의 모든 인식들은 과거의 인식들의 제한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문제의 근원이 되는 과거의 인식들을 찾는 작업을 해 왔는데, 개인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기도 하고,거국적으로 문제는 계속되고 있는 상황때문에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비애를 느끼기도 하는듯 하다.

다음은 장하준 교수의 [경제학 강의]에 담겨 있는 구절이다.

다양한 경제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힘 있는 사람들이 "대안은 없다."라고 할 때(마거릿 대처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정책을 실행하면서 말했듯)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른 바 '적대적 분파들' 사이에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 지를 알게 되면,모든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에 근거하기 때문임을 이해하고 나면, 경제학을 제대로 알게 되고, 다시 말해서 옳고 그름이 확실한 '과학'이 아닌 정치적 논쟁으로서 경제학을 토론할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이런 문제에 관한 의식을 확실히 드러낼 때에야 비로소 젊은 경제학자들이 과학적 진리의 수호자를 자청 하면서 지적인 으름장을 놀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음은 과학적 진리를 주장하며 '으름장'을 놓는다고  나름대로 맨큐교수를 비평했던 내용이다.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이란 무엇일까. 그것도 역시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대립과 관계된 가치관일까. 아니면 직장을 페쇄시키고 모두 흩어져서 경제적인 곤란을 겪는 상황을 막기위한 노력처럼, 국가와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지켜나가기 위한 '유기적인 통합성'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가치관일까.하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아마도 한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수많은 경제학도들은 '서로 다른'이란 의미를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퍼스의 말대로 확고한 과거의 인식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논리같은 것이나 위에서 인용한 피케티교수를 옹호하는 입장은 좌파 우파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기 보다 좀 더 발전적이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한국사회의 경제적인 구조가 흘러가기를 기대하는 입장인데, '개선을 위한 노력'과  '어느 편에 서기 위한 시도'는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공리(共利)를 위해서라면 이념적인 왕따나 학문적인 왕따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인듯 하다. 그만큼 이념의 골이 깊은듯 하다. 인용한 장하준 교수의 글 속에 담긴 '서로 다른 도덕적 정치적 가치관'이란 단어들을 보자마자 이념논쟁을 떠올리지 않는 한국사람은 없을 것 같다.   

2014년 9월 10일 수요일

나로부터 시작된 관점 / 이기적인 이념의 세계


서점에서 이책 저책 읽다가 동류(同類)의 책들이 모두 다른 의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옳다고 느껴지는 현상이 있어서 좀 놀랐던적이 있다. 한 편으로는 사물에 대한 판단이나 인간에 대한 판단이 내 자신이 형성한 관점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오랜 시간을 광사(狂士 : 박지원선생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소피스트같은 미친 선비)와 같이 방황했던 적이 있었다.

다년간 이념의 성질을 탐구할려고 애쓰는 척 하지만 그 정체를 미리 알고 있음을 나타내지 않고 이런 저런 말을 질질 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듯 하다. 사실 이념의 발생은 창조적인 사고에 근거하고 있지만 그것이 일으킨 결과는 이기심이 가득한 관점들이 야합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선두주자인 막스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는 나치즘을 '이성과 자연의 악마적 통합'이라고 말한다. 즉 사회의 합리화가 개인의 비이성(감성이나 탐욕같은 자연적인 것)과 결부되어 보다 강력한 사회의 합리화를 추구하고 문명파괴의 선두에 섰다고 말한다.

이념이라는 것은 상당히 과학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이념은 문명에 대해서 어떻게든 창조적인 공헌을 하기위해 마음 먹었던것 같은데, 권력을 탐하는 소수의 인간, 더 나은 세상을 탐하는 다수의 인간에 의해서 문명파괴의 길, 특히 한반도 파괴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듯 하다. 호르크하이머가 이 시간 이장소에 있었다면 나치즘 보다 한반도에서 횡행하는 역병과 같은 이념논란을 '이성과 자연의 악마적 통합'에 대한 실증적인 예로 연구 발표했을듯 싶다.

문제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에 있고, 그래서 인간을 더 탐구하는 것이 인위적 장치인 이념을 탐구하는 것보다 더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한반도에서 이념이란 한반도 구성원들의 지나친 부지런함이나 과도한 작위적 행태와 결부되어 이미 절반의 문명을 파괴했고, 나머지 절반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듯 하다.   

이념적인 말과 행위로 죄를 짓는 것은 내탓이오. 내 자신이 형성한 관점의 탓인듯 하다.   

2014년 9월 8일 월요일

한국형 노인과 젊은이를 보는 애상(哀想)


어느 집에 키다리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마당에는 과일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꽃나무에는 꽃이 피어있으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와 새소리에 묻혀서 함께 재잘거리고, 꽃더미에 묻혀서 웃고 있었다. 어느 날 키다리 할아버지는 심술이 나서 아이들을 쫓아버렸다. 그러자 꽃도 지고, 과일은 떨어졌으며, 새는 떠나고, 쓸쓸한 바람만 불었다. 키다리 할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때 국어교재에 나온 이야기였는데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연세 있으신 지인이 오랫동안 같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데,방음도 제대로 안되는 연립주택에서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치고 적막함만 감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비해 먹어버린 나이와 더불어 스러져가는 인생과 쇠락해 가는 시간의 여운도 함께 느낀다고 말한다.

어느 날 유명 정치인이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 일이나 하지 않을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아무일이나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꿈이나 희망을 포기하고 '연명'을 위해서 근로현장에 선다면 모를까 한국에서 삼년 돈을 모아 고향에 가면 여기서부터 저기 지평선까지 땅을 살 수 있다는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희망에 비하면 한국 젊은이들의 자화상은 초라하기 이를바 없는듯 하다.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해보면, 노인과 젊은이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인듯 하다. 기력(氣力)과 패기(覇氣)의 있고 없음은 사려(思慮)와 심지(心智)의 있고 없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과 발전에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이끌어 온 공과(供誇)를 생각하면 갖은 시련을 겪은 세대들의 어려움은 보상받지 못하는 슬픈 전설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것도 아닌듯 하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경제적인 것과 정신적인 정성의 모든 것을 바친 노인들의 완고한 고집, 그래서 변할 수 없는 습관, 쇠락해 가는 심신(心身)은 이해하면서도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 하다.

일찌기 한국이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변신하기 위한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근본적으로 국정(國政)과 관련된 논의에서 이념논리를 일찌감치 지워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한 편으로는 경쟁과 이익, 감각적인 현실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통일이란' 나눠줘야 하는 부담'으로 보수적인 인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른들이 극복하지 못한 단기적인 사고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해 나가는 비극을 보는듯 하다.

백년대계가 서 있으면 희망이 생기는데, 그 희망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생각이 든다

2014년 9월 6일 토요일

niladmirari(허무적 무감동) / 로마의 쇠퇴


로마문화가 우아하면서도 타성에 빠져서 더 이상의 역동성을 잃어버릴때의 지식인들의 정신건강상태를 로마시인 호라티우스는 niladmirari(허무적 무감동)이라고 표현하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문제의 근원속에 도사리고 있는 의식구조의 결함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현실속에서 헤메는 한국사회를 보면 성장과 쇠퇴의 분수령을 넘는 로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더구나 세계 자살률 3위인 한국, 자살률 2위인 북한사회를 생각하면 한반도의 문화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꽃의 전조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물론 문제의 근원에는 문제점이나 합의점을 찾아가는 길을 이념과 같은 정신적인 편견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듯 하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속주지사(proconsul)와 같은 관료집단이나 징세청부인(publicani), 원로원의원, 기사(equites)와 같은 특권층이 발전해 나갔다. 반면에 장기간 중장보병으로 종군한 자영농민들은 관리할 수 없는 농지를 버리고 몰락해 갔으며 그 농지는 정복한 속주로부터 유입된 노예노동에 의존하는 대농장(latifundium)에 합병되어 나갔다. 로마의 주축을 이루던 중소지주층들은 막대한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몰락해가면서 로마의 사회질서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귀족은 호화생활을 하며, 빈민들은 더러운 고층아파트의 비위생적인 환경에 기거하면서 빵과 서커스, 공중목욕탕, 원형극장(Colosseum)의 환상과 고된 현실을 바꾸어 나갔다. 로마의 정치권에서도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벌족파(Optimates)와  민회를 중심으로 한 평민파(Populares)로 나뉘어 서로 도시빈민을 매수하면서 자기편을 만드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국 시저의 종신독재권 획득의 노력과 시저의 죽음, 혼란기, 옥타비아누스의 황제즉위등을 거치면서 로마의 공화정은 전제정으로 변했다.

공화정말기부터 시작된 '로마의 역동성의 감소현상'은 제정시대에 들어와 정복전쟁이 정지되자 페달을 밟지않는 자전거처럼 로마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군인은 게르만 용병으로 메워지기 시작했고, 근위대(scholac)를 장악한 군벌이 황제권 획득을 위해서 투쟁하는 시대를 겪고나서 동서로마로 분리된 후 서로마는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었다.  

머나먼 과거의 지구 저편에 있었던 찬란한 문화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서술해 보았는데, 자꾸 뭔가 현실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기이한 느낌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닌듯 하다.위기를 느끼면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감정 그런것 같은데, 호라티우스는 그런 감정을  niladmirari(허무적 무감동)이라고 표현한듯 하다.

자영업자의 몰락, 젊은 세대들의 감소, 좌파와 우파의 대립,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대중정치 성향, 가계부채,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건 로마처럼 피어보지도 못한 한국의 이야기다.

2014년 9월 5일 금요일

Homo swindler swindler (사기 사기 사람)과 불확실성


어떤 부자가 악어를 키우고 있는 연못이 있는 정원에서 파티를 하다가 손님들에게 연못을 헤엄쳐 건너는 사람에게 많은 재산을 줄것을 제의했다. (원래 딸을 줄 것을 제의했다는 우화인데,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불쌍한 딸의 입장과 양성평등의 구현을 위해서 그냥 재산으로 바꿔봤다.)

순간 어떤 젊은이가 연못에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건너갔다. 사람들은 그 젊은이의 용기를 칭찬하며 부자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며 물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올 수 있나?" 그러자 젊은이가 외쳤다. "누가 나를 밀었소?"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확실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경제학자 나이트가  한 말이다. 나이트는 측정이 불가능한 불확실성(An unmeasurable uncertainty)의 위험은 이윤발생의 원천이며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불확실한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판단력이 있는 관리자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말한다. 물론 관리자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누군가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고, 그 창의력이 작게는 개인, 기업과 크게는 국가와 인류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불확실성이 큰 사회일수록 창의력과 판단력, 예측력을 더욱 필요로 하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놓인 기업일수록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가능한 상황으로 제압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듯 하다.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 저축을 한다.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을려고 노력하고,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데, 역시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전후(戰後)의 혼란속에서 재벌이 탄생할 수 있는 것도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나간 공로에 대한 댓가로 많은 사람들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인류역사에서 반드시 과학문명이나 물질문명의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일 수록 정신적인 확실성을 지향하는 노력이 있게 마련인데, 춘추전국시대 혼란기에 발달한 중국의 여러가지 철학사상이나 불확실한 개인의 운명이나 사회적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등장하는 종교사상, 이데올로기 사상등도 모두 불확실성을 관리가능한 확실성으로 바꿀려는 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불확실성을 이겨나갈려는 자세조차도 불확실할때는 문제가 되는듯 하다. 불확실한 상황은 실증(實證)과 비증(非證)의 틈새시장을 발달시키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듯 하다. 불확실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간절한 요구는 쓸모없는 창의력과 판단력, 직관력도 함께 불러들이는 문제도 생기는듯 하다. 불확실한 처지에 있는 개인은 사기범죄에 노출되기 쉽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국가는 이념이나 종교에 집착하기 쉬운 성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듯 하다. 간절한 소망이 노력을 동반하지 않을때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보이지 않는 투쟁'이 심각한듯 하다.

한국이 다른 범죄율은 낮은데, 사기나 횡령과 같은 범죄율은 세계최고라는 통계를 보고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성공하는 법'에 관한 실용서적을 읽다가 어떤 창의적인 노력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서 있는 돈을 내놓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기술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머나먼 미래를 예측해 보았다. 누구나가 그런 기술을 배워서 서로의 주머니를 노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만들어진다면 창의성은 누가 발휘하며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머나먼 미래의 예측이 아닌 지금의 상황인듯 하다.내 자신은 이렇게 예측력이 없어서 초라하게 사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