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문화가 우아하면서도 타성에 빠져서 더 이상의 역동성을 잃어버릴때의 지식인들의 정신건강상태를 로마시인 호라티우스는 niladmirari(허무적 무감동)이라고 표현하였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유기적 연관성이나 문제의 근원속에 도사리고 있는 의식구조의 결함등을 인지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현실속에서 헤메는 한국사회를 보면 성장과 쇠퇴의 분수령을 넘는 로마의 모습이 생각난다. 더구나 세계 자살률 3위인 한국, 자살률 2위인 북한사회를 생각하면 한반도의 문화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꽃의 전조를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있다. 물론 문제의 근원에는 문제점이나 합의점을 찾아가는 길을 이념과 같은 정신적인 편견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듯 하다.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속주지사(proconsul)와 같은 관료집단이나 징세청부인(publicani), 원로원의원, 기사(equites)와 같은 특권층이 발전해 나갔다. 반면에 장기간 중장보병으로 종군한 자영농민들은 관리할 수 없는 농지를 버리고 몰락해 갔으며 그 농지는 정복한 속주로부터 유입된 노예노동에 의존하는 대농장(latifundium)에 합병되어 나갔다. 로마의 주축을 이루던 중소지주층들은 막대한 가계부채를 짊어지고 몰락해가면서 로마의 사회질서는 붕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로마의 귀족은 호화생활을 하며, 빈민들은 더러운 고층아파트의 비위생적인 환경에 기거하면서 빵과 서커스, 공중목욕탕, 원형극장(Colosseum)의 환상과 고된 현실을 바꾸어 나갔다. 로마의 정치권에서도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벌족파(Optimates)와 민회를 중심으로 한 평민파(Populares)로 나뉘어 서로 도시빈민을 매수하면서 자기편을 만드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국 시저의 종신독재권 획득의 노력과 시저의 죽음, 혼란기, 옥타비아누스의 황제즉위등을 거치면서 로마의 공화정은 전제정으로 변했다.
공화정말기부터 시작된 '로마의 역동성의 감소현상'은 제정시대에 들어와 정복전쟁이 정지되자 페달을 밟지않는 자전거처럼 로마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부족한 군인은 게르만 용병으로 메워지기 시작했고, 근위대(scholac)를 장악한 군벌이 황제권 획득을 위해서 투쟁하는 시대를 겪고나서 동서로마로 분리된 후 서로마는 게르만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멸망하게 되었다.
머나먼 과거의 지구 저편에 있었던 찬란한 문화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서술해 보았는데, 자꾸 뭔가 현실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기이한 느낌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닌듯 하다.위기를 느끼면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감정 그런것 같은데, 호라티우스는 그런 감정을 niladmirari(허무적 무감동)이라고 표현한듯 하다.
자영업자의 몰락, 젊은 세대들의 감소, 좌파와 우파의 대립,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대중정치 성향, 가계부채,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건 로마처럼 피어보지도 못한 한국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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