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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3일 금요일

세상에 그런 (공부)법이 어디 있느냐

법조브로커사건이 크게 터졌다. 애초부터 전관예우를 비롯하여 법조계는 나름 사법부독립의 권리를 이상한 방법으로 누리고 있었던것 같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삶과는 매우 다른 영역같은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느 날 법조계에서 일하는 지인과 대화중 '우리 법조계'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 것을 듣고는 지인의 내집단 의식에 놀랬던 기억이 있다. 나 역시 지위와 권력을 위해,사실 여러가지 상황에서 내 자신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다년간 법조문과 씨름하고 꽤 오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흑역사가 있긴했다. 지금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수험생활이라는게 시간과 반복의 투자만 있으면 성공적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는 바 있어 아직도 한 방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학창시절 내내 그리고 그후 2년 가까운 동안 법서만 읽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의 청춘시기에 법조문으로 경화(硬化)된 생각을 가졌던 경험은 되돌릴 수 없는 후회로 남는다. 국민들이 바라보는 법조계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감동적이고 이상적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우울해지곤 한다. 하물며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법조인이 된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법조문제도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법공부 초기에 건강, 경제력, 학벌 모든 여건이 불리하자 딱 한가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상쇄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정신력은 사명감과 이상이 없으면 절대 발생하지 않는 요소였던 것 같다. 엉뚱하게도 북한이나 이념문제와 관련해서 더 다급하고 긴박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니까 초인적인 힘이 나오곤 했다. 초기에 최종고교수가 지은 김홍섭판사의 전기를 읽고 감명받아서 생긴 힘이, 어렵고 지루한 수험생활과 좋지않은 모습으로 만난, 같은 길을 갔던 사람들과의 관계로 빛을 바래고 말았던것 같다. 도대체 학벌과 지식은 있는데, 생각이 없어 보였던 사람들, 그 중에 특히 내 자신은 국가와 사회에 별로 쓸모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다른 쪽의 삶을 누리게 되었던 것 같다.

살다보면 아름다운 것이 참 많은 것 같다. 순수한 젊은이들의 활기, 스포츠, 여행, 다방면의 독서등 치열한 법조인생을 살았다면 전혀 보지못할 세계를 보며 공부에 손을 놔버린 내 자신을 후회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동안 읽은 역사,철학,경제,교육,사상,정치,사회과학,지리,인류학관련 서적을 생각하면 사법시험 몇 번을 합격하고 남는 양일수도 있을것 같다. 요즘은 공학관련공부를 하고 있는데, 다시 법서를 잡게 될지 아닐지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평생공부는 인간으로서의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야 늙지 않고 열정과 젊음을 유지할 수 있으며, 탐욕을 덜 부리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몇 번 밝혔지만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는 놀이와 여유로운 정신으로 학습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나 컴퓨터가 대신 해주는 일들을 반복적으로 학습해서 자기 머리에 집어넣는 작업이 좋은 사람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은 착각인듯 하다. 근원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자율성이나 창의성을 도외시하고 정신의 승리나 초인적인 의지력만 강조하는 일본식교육은 북한의 과도한 이념에 대한 집착이나 군사교육, 한국의 수험문화등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듯 하다. 지금도 책장속에 꽃혀있는 버케블러리33000이라는 단어책을 보면 실소가 나오곤 한다. 스마트폰 사전을 뒤지면 나오는 단어들을 왜 저렇게 많이 외우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 시간에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라는 책을 읽었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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