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아주 어려운 날에 신문스크랩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신문에 유익한 부분을 오려서 일기장에 붙여놓곤 했다. 특히 지금도 자주 들춰보는 내용은 혼자서 썰매를 끌고 남극점을 다녀온 프랑스의 로랑스 드 라 페리에트라는 여성에 관한 기사였다. 당시 허약한 몸과 마음을 한 번도 극복해 본 적이 없는 내 자신을 몸시 부끄럽게 만든 기사였다. 그날 이후로 남극을 혼자 횡단한 다른 여성의 체험기나 남극을 횡단한 육십대 후반의 노익장을 과시한 탐험가의 기사를 보면서 마음을 추스리기도 했는데, 아마 육체적인 강인함에 매료되었던 것보다 고독함을 극복한 인간승리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경구의 대가인 리히텐베르크(1742 - 1799)도 어느 해 그 해의 신문을 모아서 스크랩하여서 책처럼 읽어보려고 하였는데, 1년을 그렇게 하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 애쓴 보람이 없다. 그 속에는 50퍼센트의 잘못된 희망과 47퍼센트의 틀린 예언과 3퍼센트의 진실밖에 없었다."
무려 1700년대에 언론의 진실성을 문제삼은 이 말이 꽤나 오랫동안 인용이 되곤 하는데, 같은 기사를 놓고서 좌파적 시각과 우파적 시각의 상반된 시각으로 신문기사를 쓴 것을 양쪽 성향의 신문을 비교해가면서 읽으면 신문기사와 진실의 정체를 알게 되는듯 하다. 가치가 담긴 기사가 진실이기는 어려운 듯 하다. 그런데 남극을 다녀왔다는 기사는 100퍼센트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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