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S사의 냉장고의 문을 열다 모서리부분이 각이 져서 머리를 찧었다. 세번을 반복해서 찧으면서 세번을 모두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다. "이것은 제안이다. 모서리부분을 둥글게 만들면 어떻겠느냐." 세번째 돌아온 대답은 방어적인 표현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내가 속이 상한 나머지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문득 옛날 서비스센터가 아니라는 생각이 났다. 한참 경제성장기에 그 회사의 서비스센터는 정말 극진했던것 같다. 미안하게도 경제적 사정으로 컴퓨터등은 그 회사것을 못쓴다. 사정이 있어서 컴퓨터를 자주 바꾸는데, 애프터가 안되도 저렴한 중국산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늘 뉴스에 S사는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동안 성능이 아주 조금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스마트폰이 국내에 들어와 팔리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요즘 마이크로버스와 대형버스의 중간크기인 귀가 양쪽으로 나온 중국산버스가 눈에 자주 띄기 시작하여서 한국의 대형버스시장과 마이크로버스시장이 모두 잠식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시장도 그리될 것 같았다. 품격과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욕망만을 끌어내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속성이 '실용성'에 제압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그런것 같다. 한국사회가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경쟁적이고 차별적인 트렌드가 공산주의에서 시작하여 실용적인 트렌드로 바뀌는 중국에 제압당하는 뼈아픈 순간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3년간 사회의 밑바닥에서 이일 저일을 해보면서 일터를 그만두고 나올때는 회사에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주고 나오곤 했다. 요즘 많이 지쳤다. 내가 좌파인지 모르지만 중소기업도 그렇고 그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세계는 차별적인 욕망과는 거리가 멀었고, 스마트폰의 특별한 기능을 알지도 못하고 사용할 시간도 없는 여유없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 좋은 스마트폰을 누가 사줄 것 같은가. 한 번은 어느 재벌이 운영하는 스키장에서 청소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고객과 회사의 행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만두고 나오면서 두가지를 지적해주고 나왔다. 진입로 입구에 표지판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지 못하고 근처에 다른 스키장으로 가버린다는 사실과 스키를 타러 오는 젊은이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스키장에서 사는 젊은이들이 아니고 가끔 조금 별러서 겨울낭만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스키장의 주고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집에 S사에 관한 책이 몇권있다. [S사가 두렵다] [S사의 몰락] [S비전 2020]등인데, 창의성보다는 모방을 기본으로 한 일본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인 면을 간과함으로써 한국보다 먼저 무너진듯 하다. 그 실용성이란 내수(內需)의 근본은 평범한, 아니면 그 이하의 시민이고 수출을 많이 할려면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의 소비자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야 했다. 고비용구조로 그것이 실패하면 일본의 내수시장을 활성화시켜야 했다. 사회의 경제적구조는 부동산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내수도 망가뜨리고 나중에 부동산 거품까지 일으킨 차별적 사회구조를 가진 국가가 계속 발전할리는 없을 것 같다.그래서 [S사가 두렵다]는 책을 쓴 저자는 일본인인데, 두려워 할 것 없다. 한국도 따라하고 있으니까.
S사가 몰락하던지 비젼을 갖던지 그것은 소비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S사가 몰락해서는 안되지만 잠재적 소비자들의 특성을 간과하는 아니면 적어도 소비자들과의 내실(內實)있는 연결구조를 전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영은 문제가 있는듯 하다. 한국경제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상층부와 하층부가 텔레토비와같이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있다. 아마 근본적으로 우파와 좌파가 섞일수없는 이데올로기세계를 가진 한반도의 특성상 순화된 표현으로는 '분배', 모진 표현으로는 '뺏을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을려는 자'의 관계로 재벌과 시민의 관계를 오해하고 있는듯 하다. 시민은 모두 잠재적 소비자이다. 경제학적으로 '수요자'라는 단어의 의미는 구입하거나 구입할 의도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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