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전기요금에 포함된 시청료때문에 한국전력에 연락을 했다. 15년동안 티브이를 안봤는데, 몇개월전부터 시청료가 다시 부과되기 시작했다. 무심코 전기요금을 납부하다가 살펴봤더니 모르고 시청료를 꽤 납부했다. 시청료를 반환받았는데, 꽤나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티브이를 볼 시간이 없었다. 항상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못했고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여러가지를 잊고 살지만 항상 바빴다. 무엇인가를 항상 생각하면서 살았다. 내가 '덕후'였기 때문이다.
쉬는게 나쁘다는 소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긴장을 풀고 시시껄렁한 소설을 읽고 소파에 기대앉아서 허공을 쳐다보거나 티브이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적정선에 머물 수 있느냐이다. 수동적 여가가 문제로 부각되는 것은 그것이 자유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방편으로 쓰이는 순간부터다. 그런 습성이 뿌리내리면 생활 전반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 중략 - 티브이를 남달이 많이 보는 사람은 좋은 직장에도 못 다니고 인간 관계도 원만치 못한 경향을 보인다. 이 문제를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조사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몰입경향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티브이를 많이 보는 사람은 몰입 경험을 적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Mihaly Csikszentmihalyi의 [Finding Flow]중에서 -
한국에서는 어떤 일에 열정을 넘어서 광(狂)적으로 열중하는 사람을 덕후라고 한다. 주로 취미생활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말인데, 화성인 바이러스라는 티브이프로그램에 인형을 사람처럼 사랑하는 인물이 소개되고 나서부터 덕후라는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http://zum.com/#!/v=2&tab=home&p=0&cm=newsbox&news=0682016100133354636
시간이 나면 운동에 열중하곤 하는데, 하는 짓을 누군가가 보면 거의 덕후수준이라고 할 만하다. 건강과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 즉 진짜 덕후질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을 덕후질 하듯이 열중한다. 나는 이념문제나 남북한 문제에 관해서 덕후다. 수십년동안 생각이 떠나 있다가도 돌아오는 문제이며 그 문제가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얻어지는 것이 없어도 항상 바쁘다. 희생과 고민이라기 보다는 몰입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과제를 가졌다는 생각도 들기 때문에 목적 자체도 실용적이지만 개인적인 계산속도 실용적인 면이 있는듯 하다. 그래서 갈등보다는 조화와 협력을 많이 이야기 하곤한다.
여가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공동체의 붕괴를 모면하려는 현상은 로마 제국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서양 최초의 역사가인 그리스의 헤로도투스는 [페르시아전쟁사]에서 소아시아의 리디아 왕인 아티스가 잇따른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백성의 관심을 호도하기 위해 이미 삼천 년 전에 구기(球技)를 도입했다고 전한다. "기근에 대처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은 하루 종일 경기에 몰두하게 하여 식욕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먹을 것은 시합이 없는 그 다음날에야 나왔다. 이런 식으로 십팔년을 끌었다."
- Mihaly Csikszentmihalyi의 [Finding Flow]중에서 -
북한정부는 이런 식으로 60년을 끌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철 지난 스포츠강국 운운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많이 했던것 같다. 언젠가 북한의 사격선수와 스스로 여가시간에 몰입하여 연습하는 나와 사격경기가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다면 북한의 집단 논리는 내 자신의 개인 논리를 극복할 수 없는 사태가 올 수 있는듯 하다. 그래서 자발적인 몰입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그래서 북한은 내 구글 블러그를 방문했을듯 하다.
사실 덕후의 길은 어렵다. 몰입의 즐거움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포기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면 됬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도 덕후들의 몰입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시템으로 빨리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