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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토요일

사회시스템의 건강

꽤 오랜 기간동안 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많이 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한때 사람들을 잘 모르는 정치인이 말했던 것처럼 사회안전망을 갖춘 복지국가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까 하는 문제를 항상 화두삼아 보았다. 그런데 현실을 그렇지 않았다. 내 자신만해도 안일한 삶을 싫어하기에 격한 일터로 다니는걸 좋아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많은 재산과 학벌을 가지고도 험한 일터를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데로 근로의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았다. 언젠가 창업을 하더라도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병들지 않은 다른 세계가 있다는 신뢰감을 주었다. 그리고 내수진작으로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것도 물론이다,

이제 즐거운 이야기는 그만하고, 근로하다가 힘들면 지난 시간을 회고해보곤 한다. 아련히 떠오르는 불운한 기억들은 주로 종교와 이념에 관한 아주 불쾌한 기억들이다. 직관이라는 명분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제압당하여 갈길을 헤메고 다닌 많은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것들과 맞대응하느라고 허비한 시간이 안타까웠다는 의미다. 사회의 어느 한 부분이 골병이 들거나 정신이 골병든 정치지도자가 등장을 해도 사회시스템이 굳건하면 단기간에는 별로 문제 삼을 것이 없어보인다. 이런 굳건한 사회시스템은 사회시스템 자체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형성된 것이어야 하고, 민주화가 제대로 되고 다양성을 인정 받아야 만들어지는 시스템이다. 권력이 한 부분에 집중되면 액튼의 말처럼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험을 하게되는데, 그 이유는 시스템의 치유기능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한 때 어느 종교단체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성직자의 카리스마가 신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신자들의 다양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이 부족할수록 카리스마 있는 성직자의 정신에 포획 당하는 현상을 보았다. 아마 국가도 그러할 것이다. 보수든지 진보든지 '추종자'나 '빠'같은 맹목적인 신뢰가 있는 국가는 골병이 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자주 언급했지만 이념과 종교가 지배하는 한국사회는 교육개혁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사회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부정적인 사회교육의 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미 망가져 버린 젊은이들의 정신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정신이 지배하는 사회시스템 안에서 이상의 날개를 펴는 일은 가당치도 않다.

불교나 기독교에서의 오랜 논쟁중의 하나는 구제나 은총을 받는 길이 '남의 힘을 빌어 이루느냐'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이루느냐'하는 문제인데, 아마 기독교에서 전자의 입장은 캘빈(Calvin)이나 루터(Luther)의 입장이고 후자의 입장은 카톨릭의 예수회입장으로 전해져 오고 있는듯 하다. 역사적인 종교사상가였던 파스칼은 프로테스탄트에 좀 가까우면서 구제받을 예정인 인간은 미리 신에 의해 정해져 있고 그 예정자가 정말로 구제받기 위한다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만약 종교적인 입장에 있으면서도 노력이 없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하는 답은 이미 한반도에서 종교나 이념이 보여주는 현상으로 정확한 답이 나오는 듯 하다. 생각이 없는 맹목적인 종교적 세뇌속에서 사회시템 자체가 골병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경험하고 있는듯 하다. 무조건 기도하면 될 일이 아니다. 특히 정치지도자는 홀로 설 수 있는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추종자가 있는 것은 비극이다. '빠'가 있는 곳에 '까'가 있다. 담백하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균형이 필요한데, 많은 의지가 있어야 할 듯하다. 모범이 되는 정치지도자와 시민들, 그리고 건강한 사회시스템이 갖춰질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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