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들에 충실하다." 오랫동안 북한문제나 이념문제에 관한 언급을 하면서 한국사회에 대해서 느낀 점이다. 많은 것이 그랬다. 근로의 현장에서는 열심히 근로해도 경제적인 여유를 얻을 수 없는 현실이 그랬고, 창업의 길을 모색해봐도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삶의 태도가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할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알려지지 않는 범죄가 많고 부정부패가 만연되어 있다. 국정감사현장을 보면 과연 공부를 한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안알려져 있다가 밝혀진 사실들, 미성년자 운동선수성폭행 같은 사건들을 보면 한층 더 그렇다.
이런 한계에 부딪히게 된 이유는 한국사회가 합리성에 대해서 소홀히 한 결과인듯 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자 노력한 바가 없었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이념과 종교가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 바탕이 되어왔기때문에 급변하는 세계에 좀 당황하는 면이 있는듯 하다. 북한은 아예 폐쇄시스템을 고수하기로 작정을 했다. 두렵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사회시스템 자체가 개방적이고 합리적으로 자정(自定)해가는 과정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념에만 충실했던 탓이다.
사회는 불합리한 점을 사회구성원들이 생각하고 개선의지를 가지고 협동적으로 애써 노력할때 발전을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뛰어넘었다. 기도하면 뭐든지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이념을 신앙삼아 기도하기는 북한은 한층 더 지독했다.
그러나 중국의 연결성은 불이익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어느 한 폭군의 결정은 당장 혁신을 중단시킬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럽의 지리적 분할상태는 서로 경쟁하는 수십 또는 수백개의 독립 소국과 혁신의 중심지들을 만들어냈다. 그 중에 어떤 국가가 특정 혁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또 다른 국가가 그 일을 했고, 따라서 이웃 국가들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에게 정복당하거나 경제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장애물들은 정치적 통일을 막기에는 충분한 것이었지만 기술과 아이디어의 전파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중국에서처럼 유럽 전역의 유통망을 한꺼번에 차단할 수 있는 폭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 Jared Diamond의 [GUNS,GERMS AND STEEL]중에서 -
중국의 과학기술이 유럽에 뒤쳐진 이유를 설명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분석이다. 한반도에도 이념이라는 폭군이 존재하고 있었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는 또 그 이념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합리적인 개선의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개선하고자 하면 이념논리로 귀착된다. 개선이란 명목으로 이념을 내세우는 일도 빈번했다. 실사구시의 정신을 갖고자 스포츠에 열중하고 공학공부를 하며 근로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실소를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가 처해 있는 특수성때문에 전선없는 싸움을 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때가 한 두번이 아닌듯 하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먼저 실용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 국가는 어떤 형태로도 정복당한다. 제래드 다이아몬드는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반도에서는 어떻게 하면 협동과 권리와 의무를 국민과 정치인에게 합리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을까 하는 큰 과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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