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일반선택과목으로 전공과는 다른 경제학과 4학년의 한국경제론을 수강했다. 20년도 훨씬 더 되었는데, 당시 소위 '운동권'의 논리와는 다르게 중소기업을 무시한 재벌위주의 경제성장정책을 비판하는 기말고사답안지를 제출하여 A플러스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우연히 이내영씨가 지은 급진 좌파적인 시각에서 해석한 한국경제의 종속성이라든가 신식민지경제주의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서술한 [한국경제의 관점]이란 책을 보았는데, 내 입장은 한국경제의 문제는 종속성문제는 아니고 포토폴리오 배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숙하게도 연결과 소통이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던것 같다. 얼마후 신문기사를 보니 해외로 나가서 노동자와 외판원 생활을 하면서 나중에 영국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통일연구회회장을 맡았던 장민웅씨의 기사가 나왔다. 장민웅씨는 '"회전과 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실패와 성공사이, 국경과 국경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는데, 그런 배짱있는 자세가 매우 부러웠고, 사람의 인생이나 국가의 생명활동도 그런것이 옳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그것은 경제적 정치적 민주화와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운영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식민지주의나 종속성을 두려워해서 독립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은 경제의 성장뿐만이 아니고 최소한 현실유지를 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성이나 무역과 같은 '경제적인 소통'이 기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이념적인 관점으로 경제활동을 해석하기 때문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서 종속이론이나 식민지주의 경제현실이 맞을 수도 있지만 회피할 문제는 아니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이익을 추구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아주 오래전 기말고사 답안지에 일본과 대만의 중소기업본위의 경제정책을 본받지 않으면 언젠가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답안을 제출했다. 얼마후 대학총장까지 지내신 낙천적이고 익살스러운 경제학과 교수님이 한국의 성씨를 있는데로 다 쓰라는 작은 문제까지 내서 천방지축마골피까지 일사불란하게 쓴 덕에 학문적인 진의는 의심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당시 개인적인 소통이 안되어 건강과 가정환경이 모두 최악이었던 만큼 한국경제도 소통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 지금 삼성전자와 현대조선소등 재벌기업이 흔들리자 한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지나친 성과위주의 기업운영방식과 관료주의 행태를 자성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동양적인 종특(종족의 특성)인 만큼 사회전체가 수직적 관점이나 물량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것 같다. 중소기업들을 여러군데 돌아보았는데, 혁신적인 모습이나 스마트한 생각은 없고, 기업과 종업원은 근근히 살아나가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SERI(삼성경제연구소)에 가입을 하여 종종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어느 날 가입해제가 되더니 새로운 연구결과나 내용이 개시되지 않았다. 도대체 SERI는 왜 입을 다물었을까. 경제정책전망을 함에 있어서 허구에 찬 장미빛 예상을 한 정부의 경제전망과는 달리 냉철한 저성장전망을 해서 정부의 미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혹시나 어두운 경제전망의 미래가 연구소의 모태기업인 삼성과 같은 재벌기업의 불안한 미래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에 자승자박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서 입을 다물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덧붙여서 생각이 드는 것은 경영주의 2세승계문제와 관련해서인데, 국가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지만 성장과 혁신요구에 시달리면서 창업을 한 시니어와는 다르게 국가와 기업을 승계받은 주니어의 능력은 시니어를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다른 생각'들을 수용하여 다시 혁신의 길을 가야 하는데, 특히 중요하게 생각할 일은 국가시스템이나 기업시스템은 독자적인 것이 아니고 시민이나 소비자들 또는 하청업체들과 같은 그동안 소홀히 했던 모든 것들과 연결된 구조라는 것을 빨리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개혁적인 자세나 소통과 관련된 태도가 이념이나 종교, 아니면 개별적 이익에 억압되어 순환이 멈추고 활력도 잃어서는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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