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미국대통령이 레이건대통령이었는데, 리더스다이제스트에 레이건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나왔다. 대통령의 주변에 새롭게 생겨나거나 포진해있는 연구소 조직이나 참모조직(taskforce team)에 관한 기사였다. 그 당시에는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냉전시대에 대통령의 결정을 외롭지 않게 도움을 주는 조직으로만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보니 레이건대통령에게는 피라미드형의 계선조직말고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정당성과 힘을 실어줘야했던 조직들의 존재이유가 속속들이 생각났다.
레이건대통령은 냉전시대에 강력한 반공정책으로 소련과 체제경쟁을 해야하는 짐을 지고 있었으며 영국발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방지해야하는 강력한 시장경제정책을 시도해야했던 짐도 지고 있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정책'이 그 수명을 다해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획기적인 대안으로서 시도해봐야 하는 이유가 충분했다. 절충의 근거가 없이 반대방향의 길로 가야만 했던 인간사 사이클의 특성상 복지주의와 반대되거나 정부의 시장개입과 반대되는 자유주의 시장경제나 공급중시경제이론이 실천되야 하는 시대적요구는 부정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든다.
대통령의 주변에 포진해 있던 연구소조직들은 항상 가치중립적이었을까. 분명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에 필요한 자료들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연구수집해왔을 것이다. 방향과 지침을 정해놓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을 거라는 의미다. 연구소도 주군을 위해 봉사하는 가치형성기능을 한다.
한국정부도 김정은 위원장을 평화로운 협상가라고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의 통일문제나 경제협력문제에 가장 큰 이해관계가 엮여있는 두 국가의 정상들이 주변국에서 원하는 속도 이상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은 피치못할 이유로 생각된다. 랜드연구소는 한국과 북한이 미국이 원하는 이상으로 관계가 진행되는 것을 원치않는듯 하다. 한반도의 민중들에게는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지는 전쟁이야기가 나오고 북한에 김정은 위원장이상으로 개혁을 추구할만한 세력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랜드연구소의 공신력(public trust)을 구실삼아 미국정부가 원하는 정책을 형성해나가자는 의도가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호의적 감정은 전혀 아니고 냉정과 열정사이의 폭을 생각해볼때 비교적 영리하거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의 성향이 한반도 경제협력에 우려할만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정부 10년동안에 항상 나태하고 지엽적인 대통령들의 성향이 김위원장의 고집을 감당못핳까봐 걱정되었던 점이 있다. 말하자면 김정은 위원장을 경계하면서도 협력해야 할 대통령의 그릇이 필요했던 것 같다. 70년을 호전적인 전시국가로서 존재하는 북한의 지도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다만 믿는 척이라도 해야하는 짐이 지워진 것이 현재 한국 대통령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요약하면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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