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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5일 금요일

국가의 행복과 다양한 쾌락

언젠가 객지에서 직장을 다닐때 숙소를 유흥가의 중심에 잡은 적이 있었다. 가보지도 않고 인터넷으로 주차장이 있는 숙소만 찾은 결과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숙소가 있는 빌딩의 엘리베이터는 유흥업소종업원들속에서 항상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내모습이 부조화했다. 때때로 내가 빌딩의 분위기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닌가 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반면에 나는 좀 '다른' 환경이 매우 즐거웠다. 소방시설점검을 위해 내 숙소를 출입한 빌딩관리소는 여러가지 스포츠용구, 간편한 웨이트기구, 책이 빼곡히 들어찬 숙소의 모습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업소용과 숙소용으로 구분해주기도 했는데, 좀 섭섭했다.

아마도 종교적인 부패에 대해서 아주 싫어하는 성향이 있는 이유는 '차라리 참을려면 적절히 개방하는 것이 좋다'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일어난 버닝썬클럽 사건등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클럽의 존재가 아닌 그 내부에서 일어난 권력,조직폭력과 연계된 마약이나 강간같은 범죄행위가 발생한것이 문제였다. '적정한 선'을 지키지 못하고 다양성의 명분으로 쾌락의 세계에 몰입해버린 결과는 결국 범죄행위로 끝을 보았다.

과거 이란의 팔레비왕조때 다양성의 선을 넘어버린 이란 정부를 응징한다는 이슬람 세력들이 종교지도자인 호메이니를 앞장세워 단조롭고 어두운 종교국가를 만들어서 이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모두 퇴보시킨 사건은 현대인류역사에서 종교의 부정적인 발자취 가운데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현대사에서 객관성과 개방성, 다양성을 잃어버린 이념의 폐해가 극심했지만 중동지방의 종교는 이란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갈등, 터키의 내부갈등, 특히 중동지역 주민들의 삶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사라진 이슬람국가(IS)는 인간의 행복과 다양성을 생각해보지 않은 종교적 완고함의 폐해였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저번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미국이나 서구유럽의 민주주의적인 사고는 인간의 행복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고, 도를 넘지 않는 다양성과 객관성이 제대로 반영된 결과, 지속적인 번영을 이룰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다양성'에서 행복과 쾌락을 얻는다. 다양성을 위한 '변화'에서도 행복감을 얻는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사람은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야 하며, 기업은 왜 이윤추구를 위하여 끊임없이 개혁을 해야 하며, 왜 국가는 역동적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이유를 살펴보면 끊임없이 다양성을 추구하여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얻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겠다. 검증되지 않는 결론에 과정을 묶어버린 이념이나 종교가 어둠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 것은 그런 만족감을 무시한 까닭이다.  

한때 이념때문에 발전의 가능성이 묶여버린 북한이나 종교적인 편향성이 사회일면에서 국가를 흔드는 한국이 서구유럽식 민주주의 발전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이유는 더 크고 영속적인 행복을 위해서 중요한 습관을 가져다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 길을 무시한 중국과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는 저번 글에서 서술한 바 있다.

듀크대 경제학과 교수이며 행동경제학자로 알려진 댄 애리얼리((Dan Ariely)는 [THE UPSIDE OF IRRATIONALITY]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Now that you, dear reader, have a general understanding of how physical adaptation works (as in your visual system) and how adaptation to pain operates, let's examine more general cases of hedonic adaptation - the process of getting used to the places we live, our homes, our romantic partners,and almost everything else.

When we move into a new house, we may be delighted with the gleaming hardwood floors or upset about the garish lime green kitchen cabinets. After a few weeks, those factors fade into the background. A few months later we aren't as annoyed by the color of the cabinets, but at the same time, we don't derive as much pleasure from the handsome floors. This type of emotional leveling out - when initial positive and negative perceptions fade - is a proces we call hedonic adaptation.

Just as our eyes adjust to changes in expectation and experience. For example, Andrew Clark showed that job satisfaction among British workers was strongly correlated with changes in workers'pay rather than the level of pay itself. In other words, people generally grow accustomed to their current pay level, however low or high. A raise is great and a pay cut is very upsetting, regardless of the actual amount of the base salary.

지금까지 눈의 기능을 통해 우리의 신체 적응력과 고통에 대한 적응력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쾌락에 대한 적응을 알아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우리 집, 배우자나 연인, 그밖에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새집을 사서 이사를 가면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는 거실의 마루를 보면서 기쁨에 젖기도 하고, 라임색으로 꾸며져 있는 주방가구가 마음에 안들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몇 주가 지나면 이러한 감정은 익숙함의 뒤편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나면 더 이상 주방가구의 색에 화가 나는 일도 없고, 마루의 색에 기뻐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감정의 평형화, 즉 처음에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인식과 부정적인 인식이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쾌락에 대한 적응'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눈이 빛이나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처럼 우리는 뭔가에 대한 기대치나 경험의 변화에도 바르게 적응할수 있다. 일례로 앤드류 클라크는 영국 근로자들의 직업만족도가 임금의 수준보다 임금의 변화에 더 강력한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임금 수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기존의 임금이 얼마인가는 상관없이 임금이 오르면 행복해하고 임금이 내리면 분노한다. 



- DAN ARIELY 의 [THE UPSIDE OF IRRATIONALITY]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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