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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6일 토요일

열정의 리더쉽 / 롬멜

어제 저우언라이에 대한 글을 썼는데, 저우언라이는 대단히 이성적이고 냉철했다고 한다. 마오쩌뚱은 대단히 격정적이고 충동적이며 투쟁을 좋아했다고 한다. 저우언라이는 그 반대로 질서있고 이지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며 마오를 보완했는데, 사실상 중국혁명의 성공과 그 이후의 변화에 있어 마오쩌뚱보다 저우언라이에 대한 평가가 우월한듯 하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협소한 중국의 평범한 인민들중에는 선동이 잘 되는 무지한 인민들의 특성상 마오를 그리워하는 인민들이 많겠지만 뭔가를 알고 있는 인민들이나 서방의 지식인들에게는 중국은 사실상 저우언라이가 움직여나가고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것 같다. 결국 4인방의 전횡을 막지 못한 것은 마오였고, 막은 것은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이었다는 사실도 실질적인 힘은 저우언라이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듯 하다.

냉정하고 침착하며 융통성있고 이지적인 방법들이 때로는 열정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지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표현대로 '조용한 열정'이라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모아서 일을 처리하는 최선의 방법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듯이 들뛰는 자는 극단주의적 결말의 비극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반기문 사무총장의 생각과 같다. 꽤 오랫동안 북한에서는 '속도전'같은 구호로 인민들의 에너지를 끌어낼려고 노력했는데, 일상적인 구호는 어떤 자극도 주지 않았으며, 목적을 잃어버린 자아도취적인 상상은 상상에만 그친다는 사실을 입증했던것 같다. 뇌성벽력도 반복되면 자장가로 들리는 이치는 당연한듯 하다.

하지만 냉정하고 이지적인듯 하다가 망한 사람도 있는데, 2차대전때 젊은 장교인 롬멜의 기동전에 휘말려 프랑스를 패배하게 한 패탱원수가 그런 사람인듯 하다.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패탱을 비롯한 프랑스지휘부는 열정을 잃어버리자 매우 안일해졌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영국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다행히 영국은 처칠이라는 그다지 인습적이지 않는 지도자의 도움을 받아서 독일과 맞섰지만 프랑스는 독일에 패하여 점령지의 신세로 전락하는 치욕을 보여주었다. 롬멜이 프랑스를 점령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기갑전력에 대해서는 영국에서도 존 풀러 대령이나 퍼시 호바트 대령이 견해를 피력했으나 군 내부의 보수주의자들의 횡포에 의해서 군을 떠나거나 한지(閑地)로 밀려나가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1937년 후반에는 유명한 독일의 수투카급강하폭격기를 구경한 영국항공기제조사인 비커스의 수석 시험비행사가 영국도 그런 비행기를 생산해야 한다는 열정적인 보고를 하자 영국공군은 "귀관의 일에나 신경을 써라"라는 퇴행적인 답변으로 수모를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롬멜평전을 쓴 스웨덴의 군사학자 크리스터 요르젠센에 따르면 2차대전 전의 프랑스군에는 '장비도 넘쳐나고 덜 떨어진 개념도 넘쳐났다'는 표현으로 독일에 대한 안일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동부에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마지노선을 만들어놓고 프랑스를 수호해줄 신앙처럼 여기며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에게 패탱이 전차로 아르덴숲을 돌파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아르덴숲을 전차로 밀고 들어오는 롬멜은 '열정의 수준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듯 하다. 독일은 1차대전의 패전원인을 되짚으면서 과거의 낡은 방식에 매달릴 이유가 없으니 기동전을 선택해야 한다고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와 같은 선견지명이 있는 장군들을 중심으로 프랑스의 패탱장군등의 견해와 대조된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는 것이 크리스티 요르젠센의 말이다.

젊은 롬멜은 전투중에 상부의 명령도 가끔 무시하는 융통성있는 태도를 취했는데, 결론은 구속받지 않는 융통성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히틀러가 롬멜의 열정을 믿고 기갑부대지휘관으로 채택하자 많은 기존 지휘관들이 롬멜을 낙하산을 탄 것으로 여기고 시기하고 질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독일도 안일한 태도를 취했던 적이 있는데, 1939년 후반 독일이 프랑스점령계획을 모의하며 슐리펜계획의 복사판인 구태의연한 황색작전(Operation Yellow)을 계획했다고 한다, 반면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라는 젊은 장교는 낫질작전이라는 것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존 장성들의 반대로 만슈타인은 폴란드의 야전으로 쫒겨나고 황색작전이 채택이 되었는데, 황색작전에 관한 정보를 실은 비행기가 연합군의 수중에 불시착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낫질작전으로 변경되었고, 아르덴 숲을 통과한 독일의 전차부대가 프랑스북부로 진격해서 마지노선의 배후를 공격한 낫질형태의 작전은 이런 우연한 상황이 조력하기도 헸다고 한다.

가끔 롬멜은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서 측면을 방치하는 배짱도 보여줬는데, 방어에도 자신없는 쪽은 적의 허점도 보지 못한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 같다. 프랑스의 군사력을 신뢰했던 처어칠은 프랑스내각과 회의를 하면서 이미 패배주의적 마인드에 빠진 프랑스인사들에 대해서 경악을 했다고 요르젠센은 표현을 하고 있다. 한참 열정으로 가득차 있던 전쟁의 초창기에 롬멜이 말한 명언을 몇 가지 살펴보면 좋은 지휘관의 열정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듯 하다.

너 자신이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부탁하지 마라
장비부족으로 부대원들이 고통을 받자 지휘관은 부대원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한 말이다.

전장에서의 승리는 먼저 공격하는 편의 것이며, 납작 엎드려서 상황을 지켜보는 자는 기껏해야 2등에 그치게 된다.

이번 전쟁에서 지휘관의 자리는 바로 이곳 전선입니다! 저는 탁상위의 전략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참모본부에 맡겨둡시다.
1만명의 프랑스포로를 잡고나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결국 망해가는 제 3제국의 운명에 따라 먼저 능동적으로 히틀러의 암살계획으로 먼저 망해버린 열정까지 보여줄 정도로 능동적인 군인이었던 롬멜은 열정의 화신인듯 하다. 맞서고 있던 영국군이 식수가 떨어지자 롬멜이 손수 백기를 들고 영국군진지로 가서 식수를 전달해주고 영국군은 백기를 들고 와 와인으로 보답했다는 여유로운 일화도 있다. 반면에 패탱은 전쟁에서 패배하자 좌파의 난동때문에 패배했다고 푸념했다는 여유없는 일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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