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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8일 월요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


한국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의 표어이다. 표어가 무색하게 음지에서 음지를 지향하다가 비판의 대상이 되곤한다. 국정원의 미숙하고 편협한 업무행태는 여러번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것 같다. 오랫동안 외부소통이 힘들었던 관료조직의 특성상, 정치현실이나 국민감정에 부응하지 못한 문제가 자주 논란거리가 된다.

대통령은 국정원이 자발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불통의 조직이 된 국정원이 이미 외부감독이 불가능한 정치적 태스크포스조직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섬찟한 느낌이 든다.  대북정보력이나 대외정보력이 손상되서는 절대 안되지만은 제한된 조직의 힘을 대내 정치공작에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업무능력을 상실하고 외부감독이 불가능할 정도로 독선적으로 운영되는 상태라는 생각이 든다.

잘은 모르지만 첩보와 공작의 기본은 소통에서 시작되는거라는 생각이드는데, 소통을 하면서 본연의 임무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조직의 능력문제지 현실적인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내 구성원들의 절반을 적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의 화살은 언제 누구에게 쏘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끔 지하철에서 국정원광고를 보면 섬찟한 생각이 들때가 있다. '좌익사범 신고'에 관한 광고인데 과연 국정원에 고발해야하는 '좌익'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내 스스로에게 질문했던적이 있다. 북유럽이나 캐나다식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북한정부의 이념적 국가관리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하고 근본적인 비판을 하는 내 자신은 '좌익'인지 '우익'인지 모를 일이다. 단지 국가나 정부가 지켜야 할 근본가치에 대해서 비판하는 문제는 적성행위(敵性行爲)가 아닌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 지향해야 할 양지는 어디에 있을까.

정부의 성실성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된다.현재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기만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볼테르보다도 집정관의 누구보다도 재능이 있는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민중이다. 민중, 모든 사람의 이해에 관련된 투쟁이다. 발을 들여놓고 또 적어도 그것을 고집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더우기 현재에는 모든 정치상의 과오는 위험한 것이다.

1821년 프랑스의 정치가 탈레랑이 귀족원에서 출판물 검열제도의 존속에 반대하는 연설을 한 내용의 일부이다. 그러나 탈레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검열법은 의회를 통과 하였다. 백성의 행복이 모든 진리의 궁극에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탈레랑은 '민중의 소리는 신(神)의 소리라고 한다.

국정원의 양지는 우파가 아니라 한국민인것 같다. 아주 작은 힘으로나마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할려는 개인도 있는데, 국록(國祿)을 받는 국정원은 왜 그리 어설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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