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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6일 수요일

이념적 돌연변이 (Ideology mutation)

돌연변이란 유전적 형질의 변형이 자손에게까지 전달되는 현상을 말한다.

1930년대 말에 독일에서 탈출하여 당시에 에딘버러에서 일하던 유전학자 샤롯 오어바크(Charlotte Auerbach)는 독가스를 사용하여 화상을 발생시켰다. 독가스는 돌연변이의 빈도를 증가시켰으며 이 결과는 전쟁이 끝날때까지 비밀로 취급되었다.  

어제 대학교수이자 시사평론가들의 토론을 보았다. 토론의 궁극적 결말은 우파와 좌파라는 이념적 프레임속에 매몰되고 있었다.한국현실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토론의 지향점을 국민의 삶과 국가의 발전에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이념적 주관에서 시작하고 끝을 맺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 석학이라는 사람들이 이 정도면 국민들의 정신세계란 논할 필요도 없는듯 하다.

독가스에 의해서 손상이 된 유전인자처럼 한국인의 의식세계는 이념적 프레임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대대손손 유전될 것 같다.

다음의 핀란드와 북한의 어린이책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알려주는 유전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듯 하다.

2012년 12월 21일 금요일

대선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저팔계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한그릇을 아주 아주 맛있게 먹고, 두그릇도 아주 맛있게 먹고, 세그릇도 맛있게 먹고, 네그릇은 그럭저럭 맛있게 먹고, 다섯 그릇은 그냥 먹고, 여섯 그릇은 꾸역 꾸역 먹고, .................억지로 아홉 그릇을 먹었다. 돈을 지불하고 나가려고 하자 쥔장이 그냥 드릴테니까 열그릇을 채우라고 말하였다. 저팔계는 소리를 질렀다. "내가 돼진줄 아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란 재화의 소비가 늘어날수록 만족도가 점차로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물론 재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용역이라던가 학문과 이념 모든 부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선투표를 할려고 하는데 투표할만한 후보가 우파를 대표하는 후보와 좌파를 대표하는 후보 두사람만 달랑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정치인은 실증적 관점과 규범적 관점을 적절히 조화시켜가며 평가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나같은 미물은.......)개인적으로 두 후보가 모두 마음에 끌리는 면이 있긴한데 후보들이 발을 디디고 있는 정치적 배경이 저팔계처럼 소릴 지르고 싶게 만든다.

이념이 시민들에게 생명력을 가져다 주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그 시절엔 이념에 관한 모든 것이 감동이었고 웅장했다. 목숨을 바쳐도 될만큼 가치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자유를 위해 전장에서 피를 흘리거나 권력의 압제에 목숨을 바쳐 대항하면서도 역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죽음이기를 바랬는데 시간이 흘러도 변한게 없는것 같다. 습관처럼 고치기 힘든게 없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 이념적 분란은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영원할 것 같은 생각이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부분은 전체가 좋아지지 않으면 좋아질 수 없다."

2012년 12월 14일 금요일

회의제 정부형태

정부의 수장이 없고,인민들의 직접민주정치에 의해 정부가 운영되는 방식이 기본적 형태다.

루소가 제안한 인민주권정부형태와 관련있고, 국민주권주의는 국민이라는 통합체가 주권자이기 때문에 국민의사를 대표할 수 있는 대의제 정부형태를 선호하는 반면 인민주권주의는 개개인의 의사표현이 주권적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정치형태와 관련이 있다. 

사회주의 정부는 회의제로 많이 운영한다. 논리상 집권적인 수장을 인정하지 않기때문에 '주석'이란 명칭으로 수장의 존재를 인정한다.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단지 주된 자리에 있다는 의미다.

중국의 전인대방식이 대표적인 회의제방식이 되겠고,그외 변형된 형태로서 한국의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있다. 북한도 명목적으로는 회의제 방식의 정부지만 수장 1인의 강력한 집권체제로 운영되어왔다. 

북한은 김정일 사후에 김정은의 통치권을 보위하기 위해서 회의제정부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회의제는 권력분산이 아닌 권력집중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2012년 12월 13일 목요일

시민의 경제

어떤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가 재직기간내내 똑같은 시험문제만 출제하자 학생이 그 이유를 물었다. 교수는 문제는 같아도 답은 매년 바뀐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자유주의 경제이론의 창시자인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이 시장실패(불경기, 빈부격차, 공유지의 비극등)현상을 보이자 케인즈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대시켜 불경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시장실패를 치유했다. 그러나 정부실패(스태그플레이션, 거대정부의 관료주의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통화주의자 프리드먼은 정부지출의 승수효과는 민간소비와 투자를 몰아내는 구축효과(驅逐效果)에 의해서 상쇄되어 무용한 경제정책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내놓음으로써 노벨상을 받았다.

시대의 경제흐름을 뒤바꿔 놓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극단적으로 우파와 좌파의 대립과 투쟁으로 전환되어 받아들여지는 감이 있다. 

케인즈의 재정정책이 수정되지 않고 깊은 문제의 골을 만든 다음에야 통화주의자들에게 포착이 되고 적극적으로 케인즈의 정책을 뒤집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가장 경제현실에 민감했던 시민들이야 문제점을 포착해도 의사표현의 언로가 불충분하거나 정부선전의 착시효과에 의해서 현실은 어려워도 '이상과 기분'만으로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가다 보니 한평생이더라' 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는것 같다.

과연 시민들은 무한정한 번영과 안정중에서 안정을 중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번영이라는 것은 안정을 위한 현시적 투자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창업보다 공무원시험을 택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청춘들의 선택은 한국의 경제현실과 인간의 욕구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무역총액 1조달러를 달성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민들에게는 실업과 불황이 햇볕없는 겨울 정서와 합체해 짙은 우울함을 드리우고 있다. 수치적인 업적과 현실감의 괴리는 말기암 환자의 건강한 외모만큼이나 충격적인 날을 예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와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이념적 프레임을 벗어난 '시민들의 체감'을 기준으로 과거 경제정책의 성과를 측정하고, 미래경제정책의 계획을 입안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들어오고 나가는 돈 1조달러는 어디서 움직이는 것일까? 그 돈들은 산업공동화현상으로 인해서 해외에서만 돌고 있지 않을까? 복지정책은 좌파적인 정책이 아닌 내수를 부흥시켜서 투자와 생산을 확장시키는 가장 우파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케인즈의 시대는 모두가 케인지안이었고 프리드먼 시대에는 모두가 통화주의자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시민들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는것 만큼 공론화 되지 않는 말이기도 한 것이 '정부정책은 민생을 가장 중요한 목적과 평가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오빤 권위스타일

스스로 정치적 의식을 표현하지 못하는 한국청소년들의 문제점을 토로한 내용이 담겨있는 글이다.


정형적인 사회적 시스템안에서의 지위라든가 평범한 생활인의 모습을 희생시키는 반대급부로서 자율적이고 근본적인 생각을 미미하게나마 얻어내는 내 견해로서는 선거연령초반의 젊은이들이 제대로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젊은 유권자를 불신하는 견해는 아니고 젊은 유권자들이 현재의 정규적교육시스템안에서 올바른 정치적 견해를 가질 수 있는지, 정치적 교육 방식에 관해서 비관적인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일관되게 이념의 문제점을 토로하고 있는  견해로서도 이념이란 프레임은 단순한 지식 쌓기에 벅찬시간에  두루 두루 생각하지 않아도  내놓을 수 있는 인스턴트같은 정치적인 견해를 제공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많은 연령대의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정치에 관한 기성세대의 교육방식을 눈치채는 경우가 많은데, 한 예로 4050세대들의 비교적 공통된 스타일은 "오빤 권위스따일이다."라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장기적인 집권을 한 전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기도 하다,

그 당시 시대상황이라던가 국민교육수준등을 고려하여 부정과 긍정의 평가를 골고루 배치한다고 가정해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은 정치지도자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면면히 투영되어 오는 스타일이다. 4050오빠들의 기존 지도자의 스타일을 외형적으로 닮아간 모습이 노신의 소설에 나오는 '아큐'의 모습만큼이나 우스워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카리스마넘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남자라면 더구나 군복까지 입었으면 설상가상(내지는 금상첨화), 게다가 레이벤(나이방)까지, 한 술 더떠서 어떤 종류의 술까지 찾아 다니고,일터에서, 운동장에서, 놀이터에서 한 자리 꿰차고 싶은 권력의지가 면면히 내려오고 있고, 그것들이 교육시스템안에 투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한 의지가 있으면 강한 반대의지도 탄생한다. 마초적인 오빠들의 권위문화는 성차별의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언니들의 사회적 위치를 강화시킬려는 움직임은 당연히 생겨난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 여성부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청소년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스스로 가질 수 있는 여유를 준다면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회를 끌어갈 수 있는 지도적인 인물들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교육문제뿐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진보라고 말하고, 기존의 것을 보수라고 하는 프레임이 엉뚱한 '시청각교육'으로 부터 비롯되는 우매함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 우매함은 쓸데없는 분란을 증폭시켜서 그걸 '정치문화'라고 떡하니 내놓는 현실이 안타갑기도 하다.    

2012년 11월 30일 금요일

통일비용문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5964650&isYeonhapFlash=Y

통일이 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많아져서 정부지출이 10배가 는다는 제목이 자극적이다.통일이 되면 남한의 알바일자리까지 북한주민들에게 점령당한다는 댓글도 보인다.

통일이 된다고 해서 한꺼번에 모든 장벽을 없애는 것은 여러모로 충격이 클 것이다. 당분간 경제적으로는 북한과 남한을 이중구조로 통치해야 하며 '완충의 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 통일작업이 시작되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마련을 위해서 공공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먹고 사는데 모든 신경을 쓰는 남한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북한민들에게 주어지는 지출이 남한민들에게 빼앗아 가는 제로섬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통일이 되어 실제로 창출되는 국가적인 이익에 비해서 북한민들이 생활에 지출하는 비용은 적을 것이다.

더 좋은 자동차와 더 좋은 집등을 위한 욕망과 관련된 남한민들의 생활고에 비하면 기본적인 의식주만 충족되어도 인적자본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북한민들은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업과도 같다. 70년대에 남한의 농촌에서는 겨울에 공공사업을 일으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북한의 사회간접자본을 일으키는데는 북한현지인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검토해야 할 것이다.

북한도로망의 직선화와 시멘트포장, 철도망의 정비, 함경산맥과 강원도 북부의 수력발전소 건설, 두만강 근처의 갈탄 개발, 평안남도 근처의 석회석 개발, 희토류나 우라늄 같은 희귀광물 개발, 산림개발과 식목활동,농지의 정리와 객토활동, 북한현지인들을 위한 생필품생산, 중국과 동남아에 나가 있는 경공업제품 공장들의 북한 이주, 자동차나 기계공업의 단순부품제작공장의 설치등을 생각해 보면 2000만이 살고 있는 12만제곱킬로미터의 영토는 남한주민의 미래도 보장해 줄 것이다.

남한의 재정이 부족하면 차관을 들여서라도 북한사회간접자본을 개발할려는 노력은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사안으로서 세계적으로 환영을 받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남한의 언론이나 정치가 통일에 관하여 남한주민들의 여론과 상호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데 큰 문제가 있다.

2012년 11월 23일 금요일

Frame(틀)

자유주의 경제이론의 창시자인 아담스미스는 분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일관된 작업시스템은 한 가지만을 반복하면서 인간의 지능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아 두뇌가 퇴화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필수적인 기본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제 강원도 평창의 한 찻집에서 대통령후보에 대한 시민들의 견해를 비판하는 50대주민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한국인들은 대통령 후보가 인자(仁慈)하면 카리스마가 없다고 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 독재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념적 프레임이 문제되지 않으면 또 다른 프레임이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적용되는 현상이 신기한 면이 있다.

어차피 한국은 교육자체가 프레임을 강조한다. 가끔 또 다른 우민화(愚民化)의 방법일수도 있다는 것을 넌지시 토로한 적이 많은데, 내 자신이 개성이 뚜렷한 편이라서 동양적인 집단적사고가 아직도 많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는 개성을 감추기 위한 수고도 한다. 

2012년 11월 15일 목요일

북한의 스케이트


북한은 원래 스케이트에서 강했다. 남한보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자연빙이 많아 여건이 좋았다.일제시대에는 평양의 스케이트동호회원과 서울의 스케이트동호회원들이 서로 오가며 '경평대회'를 열기도 했다.남한에서는 '백구'라는 유서깊은 동호인팀이 있어서 경평대회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의 스케이트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60년대와 70년대의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대동강에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한때는 사격과 더불어 국방스포츠로도 권장했었고 국제대회도 많이 나갔다.

90년대말  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네덜란드선수가 처음 클랩스케이트를 신고나와 우승을 휩쓸고부터는 모든 선수들이 기존의 노멀 대신 클랩으로 갈아탔다. 이후 어느 대회에서 북한선수만 노멀을 신고 참가해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뒷굽이 떨어지는 클랩은 기존의 노멀에 비해서 걸리는 부분이 없고 동작이 유연해지는 면이 있다. 클랩스케이트는 가격도 만만치 않다. 최하 80만원대부터 있지만 선수들은 150만원대를 전후한 제품을 사용한다. 

나는 장비에 신경쓰기가 싫어 노멀형태를 고집하고 있는데, 나처럼 더블푸쉬부터 시작해서 실내빙상장의 좁은 코너를 많이 비틀어대며 이용하는 스케이터는 클랩을 신으면 한 개 만원씩하는 스프링값을 감당하지 못한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끌어올린 운동이 스케이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어느 장소에서 운동을 해도 눈에 띄는 실력을 갖추었지만 무수한 고뇌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스케이트를 신었던 것이 나름 내 방식대로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평안하고, 모든 운동의 바탕으로서 큰 도움을 준다.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은이 스케이트나 인라인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인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금의 현실에서 인민들이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겠냐만은 통치자 본인도 스케이팅을 통해서 좀 넓은 애민(愛民)의 마음을 가져보길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변화는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부분으로 부터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다보면 고뇌와 증오의 감정들이 잊혀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평화스럽지 못한 기질은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과 기억에서 비롯됨을 알게 된다. 주체사상이나 혁명사상보다는  스포츠로 다져진 건강한 정신이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김구선생의 한인애국단과 일본의 첩보전

일본 첩보원학교인 나까노학교에 관한 넌픽션소설이 60년대에 일본에서 출판 되었는데 한국에서 번역본이 잠간 나왔다가 절판되어 어렵게 구한 끝에 김구선생에 관한 내용이 있어 올립니다.   호리라는 인물중심으로 씌어졌는데 일본의 입장에서 바라본 이봉창선생과 윤봉길선생의 의거도 나와 있고,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문치파(文治派)독립운동과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무단파(武斷派)독립운동의 갈등이 한반도 분단의 씨앗이 되었음도 잠깐 암시하고 있습니다. 신출귀몰했던 김구선생일행의 정보활동이나 일본인으로서 자각에 근거하여 행동하라는 핫도리의 지령등은 인상깊은 내용입니다.

워싱턴 군축 회의의 실패가 해군의 오오와다 통신대의 건설을 가져왔듯이, 육군도 나까노 학교 설립이 있기까지는, 첩보의 불비로 여러 번 실패를 했다. 중국어의 능숙함을 인정받고, 만주 건국후의 특무기관 요원으로 약속되면서, 헌병중사로 군적을 떠난 호리가 중앙과의 타협차 상경, 숙모가 경영하는 고이시가와의 하숙집에 묵게 된 것은 1932년 1월 9일이었다.

호리가 하숙집에 들어서는데 숙모가 한 손님을 배웅하고 있었다.그 얼굴을 본 순간 “어?”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틀림없이 6년 전, 조선 북방의 헌병대에 있을 때 본 얼굴인데......” 싶으면서도 분명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누구죠?” “와세다공과에 다니고 있는 하야시라는 하숙인 친구야. 하리라는 중국인인데, 지난 연말부터 묵었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거야.”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숙모의 말에 끌려 “중국인이라구? 중국인이라면 그 사람이 아니겠군” 하고, 그도 깊이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다음 하야시라는 학생이, 실은 한국인 최원영이며 하야시는 일본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국인 하리도 역시 한국인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다가 그는 “앗차”하고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조선 흥남에서 검거하려다 놓쳐버린 조선독립운동가인 유원보라는 것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닷새가 지나 있었다. 만사는 뒤늦은 때였다. “8일 날의 사건을 신문에서 보면서도 그것과 연관시켜 생각지 못했으니 나도 이젠 둔해졌군” 호리는 씁스레 고소를 지었던 것이다.

1932년 1월 8일

그 날은 요요끼의 연병장에서 육군 관병식이 있었다. 이 관병식에 참석하러 가는 천황의 행렬이 사꾸라다몽 시전(市電)정류장에 다다른 것은 오후 1시45분. 이날의 행차는 제 3공식으로, 선두의 마차가 의전차장, 두 번째는 궁내대신, 천황은 세 번째의 마차에 타고 있었다. 이 두 번째의 마차가 정류장의 안전 지대에 이르렀을 때 폭탄을 던진 자가 있었다. 폭탄은 안전지대의 남단에서 약 1미터 남짓 떨어진 전차 궤도 내에서 터져, 궁내 대신이 탄 마차의 하부를 때렸다. 말이 하늘로 뛰어오르며 요동을 쳤으나 궁내 대신도 마차를 부리는 사람도 무사했다. 뒤따르던 근위 기병의 말이며, 천황기잡이의 근위 사관이 탄 말들도 이리저리 날뛰었는데, 파편으로 다리를 다친 말도 있고 콧등에 파편이 박힌 말(천황의 마차를 끌던 말)도 있었다.

검은 복장의 범인은 폭파현장으로부터 서북쪽 약 18미터, 경시청 정문앞의 군중 뒤에 서서 제 2탄을 던지려고 하는 것을 경관이 달려들어 체포했다. 조선 경서부 금정118번지 이봉창으로서 “조선 독립을 위하여 조국을 뺏은 일본의 천황을 죽이려고 했다. 두 번째의 마차가 검은 색이고, 창에 금색 술이 달린 국화분장의 붉은 천이 내려져 있어 천황의 마차라고 생각하고 던졌는데 실패했다. 분하다.”하고 두려움 없이 진술했던 것이다. (이 봉창은 그 해 9월30일, 대심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조사가 진행됩에 따라 이 봉창의 배후 관계도 알게 되었는데 숙모의 하숙에 묵고 있던 호리는 신문을 통해 사건을 알았을 뿐이어서, 자세한 내용은 물론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조선독립운동의 유 원보가 국적까지 위장하고 일본에 잠입, 사건이 있던 다음 날인 9일에 부랴부랴 귀국한 사실로 미루어 “수상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 봉창이 실패했을 경우에 암살 2진으로서 유원보가 도일했었거나, 아니면 암살의 사명을 받은 이 봉창의 거사확인 역으로 도일했었거나 그 두가지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원형을 만나 보았던 것이다.

- 중략 -

한일 합방 조약이 조인되어 한국을 조선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10년이었다. 이 합방에 불만을 품은 조선의 독립운동에도, 미국에 매달려 국권을 회복하려 하는 문치파(文治派)와 소비에트의 힘으로 독립을 꾀하고자 하는 무단파(武斷派)가 있어서 남북 양단의 한국 비극의 불씨는 이미 이때부터 싹트고 있었는데, 그 독립을 원하는 조선사람이 일본의 경찰권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의 상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초대총리 이승만]의 간판을 간판을 내걸었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 때부터 프랑스조계는 독립운동자의 천국이 되었고, 후에는 소련 공산당도 극동 사무국을 두어, 말하자면 세계의 혁명가 소굴이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1932년은, 1월에 제 1차 상해 사변이 일어났고, 3월 1일에는 시라가와 대장이 상해 파견군 사령관으로 개입하여 3일 14시 일본군이 전투행위를 정지했기 때문에 일단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정식 정전협정이 성립된 것은 아니었다. 평상시에도 무정부주의자거나 공산당원이 아니고선 일본인은 출입할 수 없던 프랑스 조계에, 그것도 바람이 센 그 때에 “방까지 빌리고 있는 핫도리라는 자는 도대체 어떤 자일까?”하고 호리는 미심쩍어 했다. 미심쩍은 걸로 말한다면, 바로 그 핫도리의 명령도 지나치게 간단해서, “당신 방에서 마주 보이는 벽돌집에는, 이또오 암살의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종전이 임박해서 살해되었다)이 살고 있는데, 불온 조선인의 소굴이다. 당신은 그 집을 감시, 정보를 얻어내어 일본인으로서의 자각에 근거하여 행동하도록, 나는 당신을 일본인으로서 신뢰한다. 정보도 자금도 필요에 응해 여자가 연락을 할 것이다.”

- 중략 -

호리가 안 공근의 집의 감시를 계속하고 있을 때, 같은 상해에서 이 집의 수사를 펴나가고 있는 일본인 일단이 있었다. 사꾸라다몽 폭탄사건의 이 봉창의 배후에는 김구가 있어서 천황의 암살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검사국은, 후루다, 가메야마 양 검사와 오가와 서기, 경시처의 야마가다, 와까바야시 양 특고 형사를 김구 체포를 위해 상해로 파견했던 것이다.그들도, 김구가 프랑스조계에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공동조계뿐이었고 치외법권의 프랑스조계에서는 국제문제가 되기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분한 일이었지만 그들이 조계에서 나올때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는 사이에 또 다시 대 사건이 일어났다.

4월29일, 이날은 천장절(천황생일)이었으므로 일본측에서는, 제9, 제14, 양 사단에다 해군부대를 참가케 하여 상해 신공원에서 대 열병식을 거행했다. 시라가와 군사령관이 애마를 타고 열병을 마친 후, 관민 합동의 천장절 축하식이 있었기 때문에, 중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도 수만관중은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내 정오 무렵, 공원 광장의 단상에는, 무라이 총영사, 노무라 해군사령관, 우에다 9사단장, 시라가와 대장, 시게마쓰 공사, 도모노 민단장, 가와바따 행정위원장이 일렬로 늘어서서 축하식이 시작되었다. 국가제창의 제 1절이 끝나고 제 2절이 끝나려 할 때, 단상 좌후방에서 날아든 빨병이 시라가와 대장의 발께로 굴러왔다. 누가 장난을 쳤구나 생각하는 순간, 빨병 주둥이에서 연기가 일더니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졌던 것이다.

시라가와 대장은 전신에 백 여덟 군데나 상처를 입고 5월 26일 병참병원에서 죽고, 도모노 민단장도 죽었다. 시게미쓰 공사와 우에다 중장은 다리, 노무라 중장은 한 쪽 눈을 잃었는데, 범인인 윤봉길은 그 자리에서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날은 입장하는 사람의 복장검사를 헌병이 했는데도 윤이 맨, 폭탄이 장치된 빨병을 가려내지 못했던 것이다.체면이 땅에 떨어진 헌병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기를 쓰고 배후관계를 추궁한 탓에, 윤은 견디다 못해 김구의 이름을 뱉고 말았다.

호리가 이 사건을 안 것은 29일 오후였다. “역시”하면서 건너편의 감시를 엄중하게 하고 있는데, 그날 따라 저녁무렵부터 방문자가 끊기는게 아닌가. 보통 때는 밤에도 사람 출입이 있었는데 “이상한데”하고 한밤중까지 감시를 했지만 새벽 1시가 되어도 변화가 없기에 창에서 벗어나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데 그 주변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일본말의 “쏴라, 쏴”하는 외침이 길 쪽에서 들려와 호리는 튀어 일어났다.

그때, 조계의 정적을 찢으며 권총의 연사와 유리 깨지는 소리가 일었다. 이어서 아우성치는 일본말, 창으로 내다 본 밖의 광경에 호리도 놀라고 말았다. 어느 틈에 왔는지 길에 자동차가 수십대 늘어서 있고, 일본 헌병이며 영사관 경찰이, 권총으로 쳐부순 건너 편집의 2층 창에 사다리를 버티고 집안으로 넘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소동은 얼마간 계속되다가 가라앉았는데, 체면상으로라도 김구를 체포해야겠다고, 일본 헌병이며 영사관 경찰, 거기에 일본 검사국의 일대도 가담, 조계 경비의 안남인 순경의 제지를 밀어내고 프랑스 조계로 들어가 안 공근등을 덮쳤던 것이나 바람보다 빠른 정보망을 가진 그들은 그날 저녁 중국 오지로 달아나고 결국 일본 측에서는 소득없이 물러났다고 하는 정보를 호리가 들은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2012년 11월 8일 목요일

김구선생에 대한 일본의 암살공작

해주사람 황학선은 독립운동 이전에 상해에 온 청년으로, 우리 운동에 가장 열정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각처에서 상해로 온 지사들을 황의 집에 숙식케 했는데 이것을 기화로 하여 황은, 임시정부는 성립이 며칠도 안된 정부라며 악평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새로 온 청년 중에, 동농 선생과 같이 경성에서 열렬히 운동하던 나창헌등이 그의 독계에 걸려 정부에 대해 극단적인 악감정을 품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김기제, 김의한등 십수명이 임시정부 내무부를 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그러자 당시 정부를 옹호하던 청년들이 극도로 분격하여 서로간에 육박전이 벌어져, 나창헌, 김기제 두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중략 - 경무국에서는 이 분란의 원인을 깊이 조사해보았는데,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김등의 배후에는 황학선이 활동자금을 공급했고, 황의 배후에는 일본 영사관에서 자금과 계획을 제공한 것이었다.  

한번은 박모라는 우리 청년이 경무국장 면회를 청해 만나보았는데, 초면에 눈물을 흘리며 품속에서 단총 한 자루와 왜놈이 준 수첩 하나를 내어 놓으며,자기는 며칠 전에 본국에서 생계차 상해에 오게 되었다면서, [초두에 일본 영사관에서 내 체격이 튼튼한 것을 보더니, 김구를 살해하고 오면 돈도 많이 주고, 본국 가족들은 국가토지를 주어 경작케 하겠다, 그러나 만일 불응하면 '불령선인'으로 취체한다고 하기에 그러겠다 하고, 불조계에 와서 선생을 멀리서 보기도 하고, 독립을 위하여 애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렇지만 나도 한인의 한 분자로 어지 감히 선생을 살해할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으로 단총과 수첩을 선생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고 중국 어디 지방으로 가서 상업이나 경영코자 하나이다.]

- 백범일지 - 

임시정부는 내내 일본의 공작으로 시달렸고, 김구선생은 암살위협을 당하는 일이 많았다. 가장 측근에 동포들을 심어서 암살을 시도했는데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해방이 되어 동포로부터 암살당한 김구선생의 팔자도 기구하고 가슴아픈 일이다.    

김구선생과 안두희 그리고 백의사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국군소위다.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감형되어 가명으로 살다가 테러를 당한적도 있고,  강원도 양구에서 군납업체를 운영하기도 하였고 결국 인천에서 1996년 김구선생을 흠모하던 버스운전사 박기서씨에 의해서 타살 당한다.

안두희는 백색테러단체인 백의사요원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의사는 중국의 남의사를 모방한 단체로서 공산주의자를 색출하여 암살하는 역할을 했다. 백의사사령인 염동진(본명 염응택)이 개인적으로 독대하여 임무를 맡겼기 때문에 요원들끼리는 서로를 모르며 배신자는 내부 암살을 했다고 한다.

임시정부는 주석제와 대통령제를 번갈아 가면서 체택했는데 회의제정부의 주석제를 선호한 김구선생이 미국식대통령제를 선택한 이승만 전 대통령측으로 부터 사회주의자라는 적대적 오해를 받은듯 하다.

오랫동안 백의사의 진실을 알고자 추적했지만 알 것 같은 사람들도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로 백의사의 존재는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져 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한국역사의 아주 어리석고 아픈 부분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있었던 독립운동의 결실이 이념대립으로 두고 두고 비극적이고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경험했다.  

경쟁과 비교 이야기

수능날 저녁이다. 경쟁에 찌들었던 대한의 청춘들이 한 번의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한 잘생긴 무사가 한 수 위의 검객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 그래서 열심히 검술을 연마하길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자신에게 모욕을 준 무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무사는 병이 깊어 가족도 모두 떠나 버리고 혼자 어두운 방에서 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잘 찾아왔네 이제 나를 죽여주게."복수를 할려던 마음은 어디가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약값에 보태라고 쥐어주고는 길을 떠났다.

글타 10년의 세월을 떡사먹었다.

언젠가 한국 최고의 학벌을 지닌 사람이 나를 모욕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나에게서 자신을 대접해주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알고 있던 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망언을 했다. "내가 더 잘생겼잖아."

경쟁적 지식만 심어주기에 바쁜 한국교육의 현주소만 느꼈을 뿐이다.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친구가 딸을 낳았다. "저런 딸을 낳았군."
딸을 갖고 싶어하는 친구가 아들을 낳았다. "저런 아들을 낳았군."

서로 바꿀것도 아니고 그 참.......... 

이념이나 종교적 관점을 가진자가 시민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이나 대립적인 관점보다 한 수 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범한 욕망을 버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결국에는 평범한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채 이념이나 종교를 욕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러나 이념이나 종교라는 도구는 경쟁과 비교 또는 소유욕망에 휘둘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공허한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좋은 도구가 될것같다. 더 고귀한 가치가 대신하기 전까지는........... 

2012년 10월 30일 화요일

골프에 관한 우스운 이야기

시각장애인으로서 역경을 딛고 골프를 치는 누군가에게 프로골프 선수가 악수를 청하고 으스대며 한마디 했다. "우리 언제 한 번 시합을 해 봅시다."

그러자 장님골퍼가 말했다. "좋소 도전을 받아들이겠소. 어느 날 밤이라도 좋소. 어느 날 밤이라도......."

기타노다케시/검도

오래전에 심신이 완전히 부실한 상태에서 깊은 산골 농가의 마당에서 딱 4개월동안 목검을 들고서 휘두르면서 생각하기를 반복한 적이 있다.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을 벗고 귀가했다. 그리고 나서 대립적인 관점조차도 지워 버리고자 무도(武道)류는 기피할려고 애썼다.   

검도를 했었다는 생각은 안들고 은은하고 처량했던 달빚만 기억난다. 세상을 등져가는  북향인(北鄕人)의 모습을 보고 다시 나가 목검을 휘두르곤 했다. 음력7월14일이었는데 달빛이 참 아름다웠다. 그 달빛이 북조선에서도 같은 달빛이란 생각을 하면서 치졸하고 편협한 인간사에 웃음만 나왔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1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허망함만이 마음을 어지럽히곤 한다. 

기타노다케시의 영화 '피와 뼈'를 대학로 소극장에서 보았다. 조총련의 선동에 속아 북송(北送)이 된 주인공이 북조선 정부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한 겨울의 초라한 오두막에서 죽어갈때, 어린 아들이 밥을 먹다가 아비를 묻고 와서 또 밥을 먹는 모습이 그 당시 내 모습과 묘하게 일치가 되어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기타노다케시의 영화 '자도이치'도 보았는데 검객이 장님처럼 눈을 감고 시각을 닫아야 제대로 된 검의 감각을 살릴 수 있다는 설정이 마음에 와 닿았다.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니체/본능

본능- 집이 불탈때는 사람들은 점심조차 잊어버린다. 그러나 잿더미 위에 앉아 다시 먹는다.

두가지 냉정 - 정신이 메말랐기 때문에 생기는 냉정과, 극기의 결과로 생기는 냉정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전자의 냉정이 기분 언짢은 것이고, 후자의 냉정은 쾌활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체념한 사람들의 위험 - 자기의 생활을 지나치게 간결한 욕망위에 세우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위나 명예, 동료들 간의 교제,육욕, 안락, 선물 같은 것을 가져다 주는 여러가지 기쁨을 단념해 버리면 그것이 여러 지혜로 발전하기 전에 삶에 대한 권태나 체념으로 나타나기 쉬운 까닭이다.

- 니체 -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보면  거짓된 사회적 평가에 우리의 인식이 길들여져 있음을 알게된다.결국에는 드러나게 되지만 사회악의 가장 추한 모습은 지위와 권력 명예등의 얇은 껍질속에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념이나 종교에 대한 맹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피부인 감정을 억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또 다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분출구를 찾기위해 인간을 자연스러운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로 변화시킬 수가 있다. 그러다가 그런 '더 나쁜 상태'가 일반화되면 더 나쁜 상태가 자연스러운 상태로 다시 자리잡는다. 그래서 독재자가 나타나며 광신의 종교적 횡포가 등장을 하게 된다.

고결한척 하는 또는 고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면에 더 무서운 추악함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과 불완전성을 이해할 수 있다면 당연한 것이다. 이념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던 정치가나 종교를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는 종교인이 추하다 못해 극악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감정을 잃어버린 메마른 냉정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념을 추구하고자 또는 어떤 종교를 추구하고자 집착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그 사람의 마음은 이미 스스로를 통제할 권한을 잃어버린 사람들일 것이다. 

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니체/동정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종교단체에서 나온 몇 사람이 P2P를 보여 주면서 소감을 써 달라고 했다. P2P에는 종교단체가 세계와 국내각지에서 선행을 한 일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유명 정치인들의 칭송(?)장면도 담겨져 있었다.

끝까지 보고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 결국에는 누군가 알아주지 않겠는가'라는 글을 남겼다. 선행이라는 것은 없는 것 보다 어떤 형태로든지 있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지만 선교의 목적으로 광고함은 희생하는 효과가 반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어려운 시절에 나를 도와 줄려고 애쓴 종교적이고 순박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뭐가 못마땅 했는지 인간은 도와줘봤자라고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다녔다. 어느 날 오래만에 만난 친구에게 내 차 옆에 서있는 고급차를 보여주며 물질적인 성공을 알렸고 그 친구의 얼굴은 낭패감으로 어두워졌음을 느끼면서 배시시 웃었다. 상호 어린 마음에 유치함의 풍작을 거두었다.

다음은 니체의 수상록의 일부이다.

'동정'이 미덕이라고 불리는 것은 퇴폐적인 자들에게만 통하는 말이다. 내가 동정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 그들이 자칫하면 수치심과 공경과, 타인과의 거리감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잃어버리고 마는 점 때문이다. 동정은 곧 천민의 악취를 풍기며 무례한 짓에 가까워진다.   동정의 손길은 사정에 따라서는 파괴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운명 속에, 치명적인 고독 속에, 무거운 죄책감을 지닌 특권 속에  파고둘어 갈 수가 있다. 동정의 극복을 나는 고귀한 덕의 하나로 보고 있다.

동정자- 동정심이 많고 남이 불행에 빠졌을 때에는 도와주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남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드믈다. 남이 행복할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잉여인간이며 자기들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곧 불만을 느낀다.

니체정도니 이런 미묘한 감정을 촌철하여 글로써 표현하지만 자신은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표현력이 없음이 문제일 것이다. 

2012년 10월 15일 월요일

집중의 원칙

우리의 군대가 적과 마주쳐서 반드시 패배하지 않는 것은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투가 전개되면 마치 돌로 달걀을 치듯이 적을 격파할 수 있는 것은 집중된 병력을 가지고 분산된 적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 손무 -

일본이 군국주의적 성향을 보이거나 극우파의 영토분쟁촉발행위는 집중의 힘을 끌어내기 위한 애국적(?)행위로 여겨질 수 있겠다. 반면에 이념적인 분란의 피해를 크게 입은 한국은 집중의 원칙을 잊은 결과다. 일본인들은 개인적인 성향에서도 집중의 원칙을 잊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장인정신이나 극도로 절제된 무사적 태도를 중시하는 것, 가업을 계승하여 기술을 축적 시키는 행위등이 집중의 원칙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장성급의 군인사나 고위층의 정책결정자들의 인사가 전적으로 엽관주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면 정치적 행위에만 관심을 집중시켜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목적전치현상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국익을 위한 자세가 아닌 라인을 신경써야 하는 자세나 정치적인 인사를 근절시키지 않고서는 국방부문등에서 목적한 바를 이루기 힘들다고 하겠다.

여러가지 인종들이 모인 미국은 집중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해서 애국을 강조하고 군인에 대한 처우를 높임으로서 나름 목적한 바를 달성한다. 유럽은 상호경쟁을 자제함으써 목적한 바에 에너지를 쏟도록 국민을 계몽하고 있다.  권력의 목적이 국민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집중의 원칙을 달성하지 못한다. 이념적 분란이나 지역적인 감정, 종교적 편향성, 성적경쟁등은 집중의 원칙을 어기는 현상이다.

정치행위는 집중의 원칙을 어떻게 실행하느냐에 따라서 애국적 행위와 매국적 행위로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통합의 책임이 그 만큼 크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10월 7일 일요일

귄터그라스

오래전 우울하던 시절에 군복을 입고 신촌거리를 배회하다가 이대옆의 대흥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양철북'이란 영화였는데 독일의 대문호인 귄터그라스의 노벨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헤르만헤세와 라마르크는 좋아했던 시절이지만 귄터그라스는 그 이후도 오랫동안 권터그라스라고 발음할 정도로 잘 모르던 작가였다.

그 시절에 힘들었고 양철북의 내용도 잘 이해를 못할 정도로 정신적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귄터그라스의 전집을 읽으며 양철북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때쯤은 내 정신도 현실에 집착을 하기보다는 한 발을 빼고 현실을 관조하는 태도와 어쩔 수 없이 각박하게 부딫혀야 하는  현실이 서로 충돌하는 경지쯤에는 왔던것 같다. 남보다 덜 떨어지기는 했지만 나이가 먹으니 달라지긴 하더이다........

양철북의 내용은 주인공이 육체적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어린이 취급을 받으며 어른들의 모순된 현실세계를 들여다본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식물인간이된 아버지의 병실에서 가족들이 별 말씀들을 다 나누고 있었는데 사실상 그 아버지는 정신은 온전하여 다 듣고 생각하고 있다는 상황을 비유하면 좋겠다.

귄터그라스가 32살에 쓴 책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작품은 사실상 자신의 생각과 고뇌가 무게있게 담겨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많지 않은 나이에 자기세계와 현실의 부조화때문에 고생을 많이한 면도 느껴진다. 작가가 현명하다면 진실과 거짓된 현실세계의 부조화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말도 되겠다. 다음은 귄터그라스의 '거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시 한편이다.


히틀러 시절의 유태인에 대한 '죄'로 금기가 된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인 불문율을 깬 시다.과거사와는 별개의 문제로 세계평화와 인류애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다시 봐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듯 하다. 문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오래전에 갖추어진 작가인 만큼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파격적이거나 본질적인' 시선을 갖춘 귄터그라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본질을 보는 능력은 현실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게 되고, 말을 하며, 현실을 바꿔놓게 마련이다.   

2012년 10월 5일 금요일

우리 옌벤에서는 이런 책을.......

아무 책이나 읽으면 안되던 시절 나를 포도청으로부터 봉변을 당하게 만든 책이 있었다. 20여년전 헌책방에서 철학책이라고 1000원을 주고 주워온 것이 연변 인민출판사에서 간행한 책이었다. 책의 제목은 [이야기 속의 철학]

이솝 우화처럼 아름다운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듯 하지만 연변의 교포들에게 마르크시즘을 철학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한 책이었다.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의 눈이 이 책을 보자마자 반짝였고 얼마후 봉변을 당했다. 책 껍데기에 '연변인민출판사 간'이라고 버젓이 써 있는 것을 가져온 내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막걸리값이 없어서 자취방의 모든 책을 정리한 주사파 운동권놈 죄도 크다.

각주구검(刻舟句劍)을 통하여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을 이해시키는 구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각주구검의 우화는 형이상학적 견해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현대의 형이상학은 자산계급의 세계관으로서 그 목적은 자본주의를 '영원한 정의'의 제도라고 선전함으로써 무산계급혁명을 반대하는 데 있다. 형이상학과는 반대로 맑스주의 변증법은 자연 및 사회의 모든 사물은 고유의 법칙에 따라 영원히 운동하고 변한다고 가정한다.  

기계적 유물론자는 물체의 간단한 위치 이동만을 운동이라고 보는 만큼 보이지 않는 것은 운동하지 않는 물질이라고 본다. -중략- 맑스주의철학은 또 세계에는 절대적으로 영원히 정지하고 있는 사물이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지상태는 다만 상대적이고 일시적인 것으로서...........  

그래서 공산혁명이 정당하다는 이론이다. 1958년 모택동 집권당시에 출판이 되어 30년 동안 7차례의 중판을 거듭한 스태디 셀러이다. 이 책을 보면 철학적 사고가 어떻게 이념을 이끌고 있으며 이념은 또 철학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세월이 흘러 등소평이 맑스 이론을 배척할때도(정치에서는 유지하고 경제에서는 버렸다고 하지만 맑시즘은 본질적으로 경제이론이다.) 줄기차게  옌벤에서는 읽히고 있었다.

위의 철학이론대로라면 저자인 임창성씨는 맑스주의 철학조차도 버려질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학문이 현실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가 아직도 이념을 우려먹는 면접같은 상황은 되먹지 못한 인간의 품질에 책임을 두어야 할것 같다. 

2012년 10월 2일 화요일

쓰레기통속의 지도자 (Leader in trash can)

사람들의 감정이나 이해심은 참 중요하다.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결정도 제대로 설득이 되었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면이 있는 것이 시민의 속성이다. 그렇지 못하고 정책결정을 파워게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풍토를 스스로 일구어내는 것이 시민들의 힘이다.

편향된 이념적 마인드나 종교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 논쟁을 하게 되면 해결점 보다는 앙금만 남게되는 이유는 감정적인 문제로만 종결되기 때문이다. 패배했건 승리했건 분명히 앙심을 먹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시작은 장대했으되 끝이 미약한 이유는 이념적인 풍토의 비합리성이 정치인들 상호간이나 시민들간에 감정적인 앙금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정책결정은  미국의 정치학자 M. Cohen이 말하는 '조직화된 혼란상태'속에서 이루어진 것같다. 설득과 타협은 없다. 의사결정의 기회, 해결을 요하는 문제, 문제의 해결책, 참여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통속으로 들어와서 우연히 만날때 정책결정이 이루어지는 단기적이고 우발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 바탕에는 이념이 자리잡고 있고, 종교까지 자리잡을뻔 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풍토가 없는 것은 국민을 통합시키는 면에 있어서나 국가의 장기적 미래를 예측해볼때  비관적이다. 정치지도자에게도 비관적이다. 그러면서도 당장은 집권에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2012년 9월 27일 목요일

죽음과 친해지기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그의 안에 있는 이 이원적(二元的) 대립을 어떻게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 라는 것과 그리고 그가 죽음이 아닌 삶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어떻게 강하게 결정할 수 있는가라는 이 두가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믿는다. 나는 이것을 다만 그렇게 말할 뿐이다. 무엇 때문에 죽음보다도 삶 쪽이 좋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거기서 안식을 발견한 것처럼 보이는 바, 인간의 신조 중 제일 큰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은 죽음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 펄벅 -     

한국은 자살과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엄청 나다고 한다. 삶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날  이후는 너무도 당연히 맞이하는 자연법칙인데 아무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경쟁에 속고 나서 패배한 것을 느끼며 희망에 속고 나서 절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인과의 법칙인데  학교나 사회에서 그 날 이후를 말해주는 이가 없다.  고통이나 절망도 주체적으로 결단해서 맞이하면 삶의 힘이 되겠지만 타성적으로 맞이하면 단어 그대로 고통과 절망인것 같다. 


2012년 9월 16일 일요일

넬슨의 신호문구(Nelson's signal phrase)

대통령선거가 다가온다. 유력한 대선주자들은 절반의 극렬한 지지자와 절반의 극렬한 반대자가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정치에 극렬한 관심이 없고 각자의 의무를 하고 있는 시민들의 표가 당락을 좌우할 것이다. 

의도했던지 의도하지 않았던지 한국같은 이념적분란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정치풍토에서는 절반의 고정고객을 확보하고 나서 남아있는 파이를 나누기 위해서 애쓰는 게임은 대선주자에게 피해야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유혹이다.

트라팔가 해전에서 나플레옹의 침략을 막아내고 대영제국의 서막을 연것은 넬슨제독이 기함 빅토리아호의 마스트에 높이 건 신호문구이다. 

[영국은 각자가 그 의무를 다 할 것을 기대한다] 

넬슨은 적탄을 맞고 숨을 거두기 직전 함장 하디에게 애인 레이디 하밀턴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 뒤 한쪽 뺨에 하디의 키스를 받고 눈을 감으며 말하였다. "고맙다 ,나는 의무를 다 하였다." 

2012년 9월 15일 토요일

하이퍼범죄(Hyper-criminal)

오래전 어느 사법시험합격자의 합격기를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군대휴가를 다 모아서 말년휴가와 함께 한달을 넘게 모았다. 그 기간에 시험공부를 정리하여 사법시험을 합격하는 초인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합격기였는데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는것을 느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은 정치적인 협박범으로서 엉뚱하게 이름을 날리고 있다.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법적인 분쟁을 염두에 둔 직업이기 때문에 순탄한 마음을 지닐 수 없는 문제가 있긴하다. 직업적인 습관은 생활이나 다른 일에서 표현될 수 있다. 불법과 적법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별 지을수 있는 능력은 과도한 자신감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밑바닥 인생을 오래 살다보면 시민들의 우발적 범죄를 이해하는 마음이 들때가 많다. 인내심이 부족해 발생한 범죄는 계획된 민첩한 범죄의 위협에 비할 바 못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같은 범죄에너지에 근거하는 범죄인데 응징하는 잣대는 불공평한 면이 있다.


2012년 9월 8일 토요일

히두리아누스의 방벽안에서

로마는 정복전쟁으로 유입된 노예제를 바탕으로 중소농장을 대농장(라티푼디움)으로 통합이 되었으며 로마국방력의 바탕인 중장보병을 구성하는 중소지주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132군단 645,000명의 로마군은 게르만 용병대로 채워지게 되고 결국 게르만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서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당시 로마의 귀족은 비단외투에 동물수를 놓은 사치스런 내의를 입고 마차를 타고 달리면 50명의 하인이 뒤따랐다. 그러나 일반시민은 몰락하여 독립생계를 누리는 자가 로마안에 겨우 2000명에 불과했다. 빈민들은 더러운 고층아파트에 살았으며 날림공사로 희생되기도 하였다. 그들은 무료빵 배급과 공짜구경을 즐길 수 있는 빵과 서커스 정책에 농락되었으며 사회적불만은 공중목욕탕의 퇴폐적분위기속에 증발되었다.

- Gibbon -

로마의 황제 히드리아누스는 로마의 영토팽창야욕이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소모적인 결과를 낳는 사실을 알고 이방인(국경너머의 이민족)들과의 경계선에 방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 당시 로마의 국력은 자신감을 가질만 했으며 경제는 안정되고(나쁜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뜻) 로마시민은 팽창의지 보다는 각자의 이익과 쾌락으로 섬세해지기 시작했다.

방벽 덕분에 로마인들은 150년동안 하나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방벽너머의 세상이 로마를 따라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어느 정도는 로마인들이 자초한 면도 있었다. 로마에서 복무했던 이방인들은 로마인의 지식과 군사전략등을 자기나라로 가져갔다.    

- 마이클 마이어 -

다음은 토드부크홀쯔의 저서의 일부를 요약한 내용이다.

기업인들은 리노베이션보다 국회사무실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이득이며 시민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가 적다면 무시하는 편이 이익이다. 경제학자 올슨은 안정된 사회일수록 특수이익에 감염되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장기간 안정을 영위해온 국가들은 신개발국가보다 발전속도가 느리다고 한다.

올슨은 영국은 침체되고 일본은 경제적기적을 이룬 나라로 예시하고 있는데 세월이 흘러 일본역시 히두리아누스의 방벽안에 가둔 결과를 낳고 있다. 영국과 일본뿐만이 아니다. 역사순환법칙처럼 미국도 예외가 아니며 위기를 느낀 오바마 정부는 새롭고 강력한 복지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는데 자유주의 국가의 표상인 미국에서 생각보다 저항이 덜한 편이라고 한다. 이념보다 국가와 사회의 생존과 번영이 우선이라고 하겠다.

2012년 9월 2일 일요일

관점과 침묵에 관한 유머

어떤 외국잡지의 유머란에서 본 글이다.

동굴에서 은둔자 세사람이 수행을 시작한지 1년후에 얼룩말 한 마리가 들어왔다 나갔다. 그리고 1년후에 은둔자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때 그 얼룩말은 흰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었어."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났다. 다른 은둔자 한 사람이 말했다. "아니야 그 얼룩말은 검은 바탕에 흰 줄무늬가 있었어." 그리고 또  일년이 지나 나머지 한 사람이 말했다. "자네들 자꾸 싸우면 나가버리겠네." 

부질없는 논쟁거리로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음을 탓하는것 같다.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대치(displacement)

미국 서부시대 대평원 한 가운데 바(bar)가 있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술을 마시다가 웅성거렸다. "빅존(Big John)이 온데.......빅존이 온다고" 사람들은 모두 나가고 불쌍한 바텐더만 혼자 떨고 있었다. 잠시후 2미터가 넘는 수염이 덥수룩한 거인이 들어와서 의자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술 도!" "술!"
불쌍한 바텐더가 떨면서 술을 가져다 주자 몇 잔을 마시고 나가려고 했다. 바텐더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 드릴까요?"하자 "시간없어 빅존이 온단 말야!" 하고 나가 버렸다.

이념이나 종교 자체보다도 그것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무섭고, 작은 부자가 과시하며 제왕적 권위를 가진자 보다 그 밑에서 봉사하는 분이 무섭다.

국가의 국력이 주변국들보다 약할수록 권력적이고 군림할려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을 하기 쉬운데 억압받던 에너지가 약자에게 분출되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심리적 방어기제인 대치현상의 하나인듯 하다. 
 

displacement(대치)와 rationalization(합리화)

지난해 6월 이웃집에 침입해 여대생을 살해한 김군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김군은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고 12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군은 항소심 선고 당일에도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담담하게 “살인은 미안한 것도 잘못한 것도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자연의 이치입니다. 동물을 도축하는 것도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코리아타임즈기사 -

이 기사를 잃고 억장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내 자신이 좋지 않은 정신세계를 만드는 무지한 사람들과 격한 갈등을 많이 겪어 온 처지라서 더욱 그렇다.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않거나 접촉하지 않는 세계는 없는 세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미쳐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내 생각에는 김군의 마음은 대치의 마음이  합리화로 고착된것 같다. 이쯤 되면 정신적으로 빈곤한 가정교육이나 사회의 나쁜 분위기가 어린 사람들에게 얼마나 나쁜 유산을 남겨주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창조적인 생산자

공원의 벤치에 잠간 앉아있다가 노인분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참전용사들인것 같은데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하여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일본의 요구는 도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가장 원론적인 반론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열하고 있는 한국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정치문화를 겪어본 세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민들의 행복을 계획하는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마음속에는 당장 부당한 일본의 요구에 현실적으로 반응하고 싶지만 집중을 할 수 없는 심정을 화풀이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베블렌은 엔지니어들은 창조를 하고 비지니스맨들은 이윤을 위해서 조절을 하거나 억제를 한다고 하면서 둘사이의 조화될 수 없는 관계를 인정하고 비지니스맨을 비난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사상가인 러셀은 [미래의 행복]이라는 수필에서 서양인들 사이에 뛰어난 도덕가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스스로 보통 쾌락을 물리치고 그 보상으로 남들의 쾌락을 간섭하고 덤비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일터에서 묵묵히 생산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보다 기민하고 민첩하게 그들을 기획하고 조작하는 사람들이 우월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많고, 세상물정 모르는 퇴직군인이 부가가치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사기꾼의 표적이 되는 현상도 많이 보았다. 사회경제의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만들어진 수많은 직업들이 과연 효율성을 달성하였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베블렌의 말하는 '창조적인 생산자들'이 희귀해지는 국가가 과연 미래가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다른 나라는 모방하며 문명을 이끌고 있다. 중국도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전력을 쏟고 있으며 독일은 실업률이 높아도 발달한 과학기술이 국가경제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조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이 있었다. 훈련의 부족으로 인해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응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몇가지 일을 겪은 다음에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까지 생각이 크게 비약되기도 하였다. 교육도 사람사이를 조작하는 사람이 되거나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내 자신에게 얻어낼 것은 있어도 당신에게 얻어낼 것은 없다.' 라는 인식이 자연스러워야 국가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8월 16일 목요일

링컨과 아담스미스

지금 우리는 커다란 내란에 처하고 있습니다. 조상이 세운 이 나라, 또는 이렇듯이 자유의 사상과 평등에 이바지한 모든 나라가 과연 길이 유지될 것인지 시험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전쟁의 중요한 싸움터에 모여 있습니다. 나라의 삶을 위하여 자기 삶을 던진 분들의 최후의 안식처로서 우리는 이 터의 한 부분을 바치려고 왔습니다. 이런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은 옳고 동시에 바른 일일 것입니다. 


링컨의 게티스버그연설중의 일부이다. 우리가 겪은 내란보다 훨씬 앞서서 내란을 겪은 미국에서 전쟁의 아픈 상처보다도 영광이 압도하는 이유는 상대에 대한 증오심보다 '정의로운 목적'에 대한 마음이 링컨과 같은 지도자나 미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이유다.

남보다 재능이 뛰어난 면도 없고, 못생기고, 학벌도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링컨은 만민평등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정의심 하나로 삶을 영위해 나갔는데 신과 미국민이 그 마음을 알아준 까닭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이론의 선구자였던 아담스미스는 거대한 코와 개구리 눈, 돌출된 아래입술, 신경쇠약과 말더듬이 증새까지 보이는 요즘 말로 '루저'의 조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몽유병증세까지 있어서 잠옷 바람으로 30킬로미터를 걷다가 교회종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고 한다. 아담 스미스가 어린 시절에 떠돌이 집시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집시들은 몇시간을 데리고 다니다가 멍청한 스미스가 훌륭한 집시로 성장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길거리에 내팽개쳤다고 한다.

아담스미스는 종종 "나는 내 저서를 통해서만 아름다워질 수 있지"라고 말하곤 했다. 

노자는 쓰임새없는 나무가 벌목을 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쓰임새가 없다는 것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와 시간과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또한 세사(世事)의 잡다한 번뇌에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는 힘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8월 15일 수요일

또 다른 욕망/할복(割腹)의 에너지

노벨상후보로 두 번이나 지명되었던 일본의 작가 미시마유키오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으나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하고 포기하였다. 노벨상후보로 지명되었으나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은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핵으로 군대를 가지않은 컴플렉스를 가진 전력이 있던 그는 지옥훈련의 극대판이라는 일본의 스파이학교인 나까노학교를 수료했다. 천황제부활을 주장하면서 쿠데타를 꿈꾸다가 총감실에서 할복자살을 하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유령처럼 상명하복의 위계를 따른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들은 축소지향적인 성향을 가졌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주군의 명령을 따르듯이 윗사람의 명령을 따라서 예의바르고 질서를 지킨다. 지진과 같은 재난이 일어나도 메뉴얼이나 명령이 없다는 이유로 쌓아놓은 구호품이 적절한 시기에 분배가 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무술인 유도나 검도는 뻗는 신근보다는 굽히는 굴근을 사용하므로서 상대를 자신의 질서의 영역내로 끌어들여 해결한다. 일본아이들은 넓고 개방된 공간에서 공포심을 느낀다.

일본인들에게는 지배가능한 질서가 평안함을 준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기 보다는 있는 세계에서 궁극적인 것을 해결할려고 한다. 창조성 보다는 모방이 더 친숙하며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검증된 것을 빼앗아야 한다. 그러나 목적이 달성되지 못하였을때 분출하는 에너지는 탐미적인 정신세계나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 비화된다.

쉽게 표현하면 계속 노력해서 치고 들어가야할 에너지가 자신으로 향한것 뿐이다. 세계화시대에 더욱 특별한 이웃이다.   

2012년 8월 2일 목요일

독일의 헌법학자/ 한스캘젠(Kelsen, Hans)

한스캘젠은 독일의 헌법학자이며 법실증주의(法實證主義)자다. 독일의 현대헌법이론은 한스켈젠과 옐리네크의 법실증주의에서 칼슈미트의 결단주의를 거쳐 루돌프 스멘트의 동화적통합론으로 발전을 했다.  법실증주의는 단어 그대로 법이 현실과 증명의 근본 판단력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도 경제생활은 법률의 창설 및 법률의 적용 과정에 의해서 규제된다. 사회주의의 경우에는 경제생활은 그 입장에 특유한 법률의 창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조직화된다. 그 규정이라 하는 것은 생산수단의 취급을 정부의 손에 보류시키려고 하는 것이며 또 '계획경제'의 확립에 의한 명령적 방법으로써 경제적 생산 및 분배의 과정을 지도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경우도 경제생활은 결코 법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으로는 소유의 획득을, 특수적으로 생산수단 및 생산물에 있어서의 소유의 획득을 자유경제의 본질인 계약에 맡기려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경제생활이 규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제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법률상의 자유이며 법률에 의해서 보증된 자유다.

한스켈젠[민주정치의 철학]

1955년 한스켈젠이 발표한 논문의 내용이다. 냉전의 절정기에 이념대립문제를 합법성으로수렴시키려는 의지가 보이는 내용이다. 즉 이념과 같은 관념적인 문제에 대응하여 법을 합리적인 영역에 놓은 점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한스켈젠의 법실증주의는 법은 정의 확립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이론으로 비판을 받았는데 일단 법으로 만들어진 '규율'은 악법으로 만들어졌어도 지켜야 한다는 이론적 모순이 생긴다.

어찌 하다가 한스켈젠까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념위에 법이 있고 법 위에 '정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다. 

Inferior(열등감)

No one can make you feel inferior without your consent.
 - Eleanor Roosevelt -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할 수 없다.

열등감은 인간을 고통과 파멸로 인도한다. 청년기에는 이상과 야망이 있다. 그래서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열등감과 우울함을 느낀다. 그런 일시적인 마음의 장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힘든 시간을 겪게된다. 청춘은 싱그러운 풀잎의 향기와도 같지만 심한 비바람에 누워야 하는 비극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중년기에 들면 '과일이 익고 술이 익듯이' 마음이 넓어지며 쿨해지고 인생을 따뜻한 마음으로 보게된다고 임어당선생은 말한다.

세상의 일들이 특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 단순하게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느낀다. 도올 선생은 열등감이 능력을 끌어낸다고 하지만 그런마음으로 끌어낸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최선을 다해서 자기가 가야할 길을 알고서 가는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는 없는것 같다. 

2012년 7월 26일 목요일

투사(projection)

학창시절 한 종교단체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목격했다. 그 당시( 항상 그렇지만) 어려운 환경에 있었는데 나를 평안한 구원의 길로 인도하겠다고 애쓰는 모습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내내 궁금했던 점은 그 가운데서 가장 평안했던 사람은 사실상 내 자신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속에서 그런 현상을 많이 목격하는데 이타적인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유형무형의 자기욕심을 채워가는 심리나 분명히 문제의 근원은 나에게 있으면서도 쉽게 적대세력을 창조해내는 민첩함도 느껴진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이 한 몸 다바쳐 결국은 이념적 분란을 일으키는 정치행위, 어둡고 황량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정치나 종교적으로 자극(선동)을 받는 대중들에게서 자기방어기제인 '투사'의 장(場)을 보는것 같다.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피히테

통계적으로나 느끼는 분위기나 한국적인 불안현상은 심해지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위정자의 탓도 아니다. 불안의 요인은 국민 모두가 만들어낸 것이고,위정자나 국민 각자는 희생자들중 한 명일 뿐이다.

고위층의 부패와 잔인하고 엽기적인 범죄의 빈번한 발생은 국민 모두를 천천히 길들여 간다. 행복하게 살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때 뿐이다. 혹자는 늘어가는 자살률과 출산률의 감소가 그 불안을 입증한다고 말한다.

행복한 미래가 비전으로 자리잡지 않으면 어떤 창조적인 결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피히테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통해 나플레옹전쟁의 패배로 위축된 독일민족의 정신을 결집시켰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감각세계가 참다운 실제 세계로 여겨져 그것이 우선 교육의 객체로서 학생들에게 제시되었다.새로운 교육은 이 순서를 확실히 역전시킨다. 새로운 교육에 있어서는 사유에 의해서 파악된 세계만이 참다운 실제이다. 새로운 교육은 모든 사람들 속에서 정신만이 살아 있어서 그것을 지도하도록 해야만 한다. 나는 먼저 견실한 정신을 가지고 정연한 국가의 유일한 기반이 된다고 했는데, 참으로 그 정신을 모든 사람들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생겨나는 정신이야말로 고매한 조국애를 직접 나 자신에게 지니게 한다. 그래서 그 사람들로부터 용감한 조국의 수호자로서 충실하게 법을 지키는 공민이 스스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 날 이후 독일의 국가주의 사상이 성장을 하게 되었지만 방황하는 독일 민족의 정신을 자리잡게 해 준것은 사실이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에서  국가주의 사상의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늦게까지 떠나가는 이념을 아쉬운 심정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현실등을 볼때 피히테의 노력은 관심을 가져 볼만도 할 것 같다.

다음 세대에 한국에서 자리잡아야 할 사상은 '공동체주의'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아주 조심스럽게........ 국가주의를 이야기 했으니 우파라고 매도 당할 것이고 공동체주의를 이야기 했으니 좌파라고 매도당할 어리석은 장소에서..........

2012년 7월 22일 일요일

무지(無知)는 성공의 어머니

역설적으로 표현을 해봤다. 인간은 모두 성공을 위해 달린다.돈을 위해 목숨 거는 사람, 돈에 눈이 먼 사람을 경멸 하면서 실상은 명예에 목숨을 건 사람, 명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을 경멸 하면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허덕이는 사람, 미래의 성공을 위해 성적향상에 바쁜 아이들.......

성공을 위한 역동적인 몸부림들을 하고 살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한다. 그리고 자신의 잣대는 보편적인 추세에 매몰되어 간다. 우리들이 매일 보는 사람들, 사실은 그들의 평가가 무서운 것이다. 가끔 제대로된 신념이나 종교를 가진 사람을 보면 존경스러운 이유는 타인의 잣대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범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들이 많은 분야의 사람들과 세상의 여러곳을 가능한 많이 알게 된다면 자신이 성공의 길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자신의 믿음이란게 얼마나 무지스러운 소행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배우면서 성장을 한다. 성장심에는 당연히 겸손함이 따른다. 내가 가진것을 저들은 못가졌지만 저들이 가진 것을 내가 못가졌음을 깨닫는 겸손함이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나도 사람들의 보편적인 잣대에 홀려 정신줄을 놓고 사는 일이 많은데 영국의 평론가인 토마스칼라힐의 '스핑크스'라는 수필의 한 구절을 보면서 잠시 정신을 차려 보기도 한다.


세상에는 정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정의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 이 사실을 잊어 버린다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성공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찾아오겠는가? 온 우주를 적대시 하고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더 있을 수 없고, 있다면 하루 이틀 동안의 거짓성공이 있을 것이다. 나날이 높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멸망의 정상을 향하여 오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마차를 타고는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나다니며 보는 눈을 속일지라도, 세속적철학과 방편을 가지고 사교계의 윤리를 지키며, 의회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어 마음의 눈을 속이며 호강스럽게 돌아다니더라도, 그대는 그대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안다. 종말을 향해 가는 것이다.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아테네의 헌정(憲政)과 그리스의 통일

원래 그리스는 신기조산대의 지진이 많은 지형이고 평지보다 산이 많은 이유로 일찌감치 폴리스단위의 정치가 발달한것 같다. 한국에서 소백산맥이란 지형적인 요소가 오랫동안 호남과 영남의 통합에 큰 방해요인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아테네는 초기에 왕정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전제군주로서의 왕정이 아닌 고대의 족장적인 성격의 왕정이었던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곧 왕정이 쇠퇴하고 토지귀족의 권한이 강력해져서 왕을 포함한 9명의 행정집행관이 회의제형식의 정부형태로 통치를 하게된다. 이러한 정치형태는 귀족들의 강력한 계층지배에 공헌하는 결과가 되어 화폐경제는 발달하지만 채무노예가 급증하는 부작용을 낳아 아테네의 미래를 어둡게 하였다.

이때 솔론이 등장하여(기원전594년) 고리채를 정리하여 채무노예를 금하고 빈자(貧者)에게 억압적인 드라콘의 형법을 폐지하였으며 귀족과 평민의 입장을 절충하여 재산소유에 따라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금권정치를 시행하게된다. 그러나 솔론의 정책은 평민과 귀족이 모두 반대하여 실패를 하게되고 아테네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솔론 사후 아테네의 혼란기에 페이시스트라투스라는 참주가 등장을 하고 기원전508년이 되어 클레이스테네스가 등장을 하여 참주의 등장을 막는 도편추방제를 실시하게 된다. 페이시스트라투스라는 참주가 등장을 하자 귀족세력은 참주에 의해 억압당하게 되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참주가 아테네 민주정의 기본을 닦아놓은 형국이 되었다. 하지만 클레이스테네스는 참주마져 소멸시키는 도편추방제를 통하여 아테네의 민주정을 완성시키게 된다.

도편추방제는 그리스어로 오스트라키자인이라고 하는데 도자기를 뜻하는 오스트라콘에서 파생되었다. 자유민은 도자기나 사기파편으로 참주가 될 우려가 있는 사람을 투표하여 추방하는 비밀투표를 행하였는데 도편추방제는 아테네 민주정치를 수호하는 방파제가 되었던것 같다.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중앙집권화 되지 못한 이유로 민주정치의 발달을 이유로 드는 몇 십년전 책자들이 자주 눈에 뜨이기도 한다. 몇 십년전 한국의 시대상황이 저자들의 관점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의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된 근본요인은 그리스의 지형적인 요인이다. 개방된 평야에 자리잡아 역참제등을 통해 거대제국을 운영했던 페르시아나 로마 또는 몽골과는 달리 산악지방에 자리잡아 좋은 제도나 물산등을 교류하기 힘들었던 그리스의 처지로 보면 올림푸스제전이나 대페르시아전쟁같은 사건들은 나름 선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2년 7월 10일 화요일

혁명의 성질

1688년 영국에서는 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안개가 많고 차분한 날씨 탓인지 영국인들은 선동이나 폭동의 분위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왕은 존재하되 의회정치를 하는 입헌군주국의 결론을 '명예롭고' 합리적으로 정착시켰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밝은 태양과 열정적인 프랑스의 국민성은 선동과 분노로 비약하며 루이16세를 단두대서 처형시키고 만다. 정치범이 있다고 착각했던 바스티유 감옥습격도 근거없는 소문과 선동으로 이루어진 쾌거(?)였다.

선동과 분란을 만드는 근원은 날씨탓일수도 있고, 가정교육이나 학교교육의 탓일수도 있고,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 탓일수도 있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꼴찌만세

미국의 어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성적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자 교수님이 말했다. 여러분들중 꼴찌한 사람은 졸업하면 뭐라고 불릴까요?

학생들은 할 말이 많은듯 한데 입을 다물고 잠시 침묵이 흐르고 교수님이 짧게 말했다.

"의사선생님"


2012년 7월 4일 수요일

럭스비누향기

고2때 선물로 받은 럭스비누를 2년내내 썼다.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이자 남녀합반이었다. 원래 실업계고등학교에 인문과가 한 반이있어서 남녀학생들이 3년내내 바뀌지 않고 함께 올라갔다.  나는 2년내내 럭스비누를 썼고, 여학생들은 나에게 항상 럭스비누향기가 난다고 했다. 어떤 여학생의 표현을 빌어 표현하자면, 봄이면 꽃의 향기로, 여름이면 신록의 향기로, 가을이면 낙엽의 향기로, 겨울이면 난로옆의 훈훈한 바람과 함께 럭스비누향기가 나의 상징이 되었던것 같다.

럭스비누가 얼마나 향기가 진했는지 육이오후에 지리산에서 빨치산토벌을 하던 국군이 영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럭스비누를 썼는데, 나중에 빨치산수기를보니 비누향기때문에 역추적을 받아서 거꾸로 기습당한 사례가 많았다.

똑같은 향기지만 상황에따라 사용하는 느낌이 다르다. 지금은 싱그러운 청춘의 럭스비누향기처럼 살아가고 있지 못하다. 어떤 상처받은 블러거의  "아이 귀엽고, 어른 드럽다."는 표현처럼 비누향기조차도 죽일상대를 찾아내는 도구처럼 사용되는 세상에서 살고있다. 

요즘은 럭스비누를 찾아도 없더니 얼마전 차를 몰고 지나가다 커피를 사려고 시골마트에 들렸는데, 뽀얗게 먼지를 묻힌 럭스비누가 있어 옛추억을 생각하며 몇개샀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무지개를 보며)

                                           William Wordsworth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
So was it when my life begain,
So is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i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늘의 무지개를 보며
내 마음도 뛴다.
나 어려서 그러했던것 처럼
늙어서 죽는날까지
그러하게 하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기도하건데 나의 하루 하루가
천생의 경건함으로
가슴뛰게 하소서

2012년 6월 25일 월요일

살아보고 싶은 나라

뉴질랜드

나이가 들면 성격이 보수적으로 변한다고들 한다. 문제거리는 피하는 성향이 생긴다. 더구나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느껴보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이민을 생각해 본적이 많다. 전쟁과 분단의 고통을 심하게 겪은 부모를 둔 2세로서 더욱 그렇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고 밀실은 혼자만의 광장이라는 말이 있다. 최인훈의 [광장]이라는 소설에 나오는 말이다. 주인공은 반공포로로서 남한도 아니고 북한도 아닌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목숨을 끊는다.

분단, 끓어 오르는 에너지, 경쟁적 교육과 삶속에서 나름 정신을 평온하게 하는 습관을 가질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밀실에서 광장을 찾을려고 노력하는 셈이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생각은 하고 살지만 불행한 과거는 행복한 미래를 의심케 하는 경우가 생긴다.

문제가 있는 곳에서 발을 딛고 사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잊으라는 요구는 기만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에너지는 항상 끓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는 6.25이기도 하고,힘든 삶속에서 종교속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린 친구의 생각도 나고, 연이어 발생하는 호러물 수준의 강력범죄 소식은 다시 한 번 문제의 근본을 생각하게 한다.

2012년 6월 17일 일요일

인간두뇌의 진화와 육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5591491&sid1=001

위의 기사는 인류는 협동하여 사냥하고 분배하며 진화를 해왔다는 연구결과를 싣고 있다.

인간은 편안하게 존재하고 싶은  생물학적 본성에 기초하여 수렵보다는 채집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범위속에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을 것이다. 육식을 하는 인류조차도 수고를 덜 들여서 획득할 수 있는 애벌레나 곤충류로 영양분을 충족시키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수렵으로 충족시켰을 것이다.

라마피테쿠스(750만년전 영장류)와 같은 초기 호미니드(영장류)들은 송곳니가 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하게 송곳니를 육식을 위해 진화한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인류학의 명저인 <오리진>의 저자인 리처드리키박사는 인간과 아주 비숫한 영장류인 비비원숭이는 위협적인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사용하기는 매우 약하고 방어를 위한 보호색처럼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수렵을 위한 협동행위와 농경을 위한 협동행위중 어느 것이 인간의 두뇌를 더 발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현존인류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이란 이름으로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일관된 진리이다. 초기 호미니드(영장류)들이 채집으로만 식량을 충족시킬 수 없자 사냥에 나서게 되고, 사냥으로도 식량을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개체가 번성하자 농경활동을 시작했다는 생각은 보편적 사실이다.

농경을 하지 않았던 구석기시대의 인간은 무리를 짓고 살긴 하였지만 협동성이라든가 집단적인 협조가 신석기이후 농경사회처럼 결속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신석기시대 농경을 시작하면서 집단적 정착생활이 이루어지고 기본적인 사회제도가 갖추어졌으며 노동을 할 수 없는 피부양자에게도 수확물을 분배하는 원시공산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의 문명의 변방에서 수렵을 하는 부족들과 기원전 3000년경 나일강의 범람을 계산하여 나일강의 충적지를 농경을 위한 비옥한 농토로 유용하게 개량을 시도하는 이집트인들중 누가 두뇌가 발달했을까 생각해볼만하다. 이집트인은 나일강의 범람을 계산하기 위해 기하학과 수학등을 발달시키고 지금도 불가사의하게 여겨지는 피라밋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2012년 6월 5일 화요일

직관적인 역사공부

1. 암기식 역사공부

정리된 수험서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나쁘다. 수험생 시절를 겪으며 공부한 암기식 역사공부는 두고 두고 나쁜 습관을 들여놓았다. 심지어 이렇게 역사에 대한 무비판적인 암기식 교육이 신민(臣民)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현실교육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2. 실증사학

역사시험은 준수한 성적을 받는 편이었는데도 생각나는게 없어서 고생을 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시대 정립이된 진단학회 계열의 실증사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표현대로 실증사학은 주관이나 직관이랑 친하지 않다. 하지만 없는 역사를 만들어내는 오류도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한국의 사학계는 오랫동안 실증사학의 독무대가 되어왔던것 같다. 직관을 요구하지 않는 수험서랑 실증사학은 궁합이 맞기도 하다.

일제시대 정립이된 한국실증사학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식민지치하의 실정이 '실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증거자료를 찾아 노력하였던 사학자들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직관이 반영된 의견들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도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랫동안 주류인 실증주의사학자들과 비주류학자들의 헤게모니대립이 있었던것 같다.

원래 일제시대 친일사학이 형성되면 민족사학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히 변증법적, 아니면 대칭적인 동향으로서 자연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민족주의 사학이 가져다 주는 현실개선의지의 효과를 보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3. 직관형성

실증주의 사학계열의 어느 학자분의 명저인 국사책을 꽤 읽었는데 부족한 마음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씌어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동국병감], [연려실기술], [열하일기], [징비록]등을 읽으며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픽션이 많이 섞였지만 사극을 자주 보면 책의 내용을 시각화 시킬수가 있어서 기억에 도움이 된다.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점을 항상 잊지 않으면 인물의 배후사건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왜 고려 광종과 조선의 태종은 왕권을 강화 시킬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면 고려나 조선의 건국군주들은 건국공신세력들을 무시할 수 없으니 3대 군주정도에 왕권을 강화시킬 힘과 명분이 생긴다는 결론을 볼 수가 있다.

"르네상스는 왜 발생하였을까?"하는 의문점은 신 중심의 중세크리스트교의 부패와 전횡에 염증을 느낀 중세말기 사람들의 집단의식이 작용한 결과라는 결론도 얻을 수 있다. 서양사에 대해서는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조셉캠벨의 [신화의 힘], 각종 서양 명언집,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각종 역사영화등을 보면서 생각해보곤 하는데 불가리아의 건국영화 [칸의 영광]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동로마 영토에 불가리아가 세워지는 과정이 역사책에 언급이 안되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약소국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방면에 주워들은 지식들은 직관형성에 꽤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의 명저인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관습과 전통이 어떤 이유로 형성이 되어 가는지 알게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4. 역사형성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역사공부는 개인이 스스로 역사형성작용을 하게 만들 것이다. 소수의 학자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역사형성작용으로 인류가 큰 피해를 입은 바가 있는데 역사를 제대로 교육 시키지 않은 탓이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노력 하였던 안창호선생이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형성의 힘은 개인들의 의식을 계몽시키는데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있었던것 같다.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아놀드 토인비 /지도자



1. 역사란

'천하의 대세는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통합되고, 통합이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한다.' [삼국지연의]속에 담겨 있던 통찰력 있는 한마디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역사를 보는 관점의 잣대가 되어주고 있다. 더구나 분단된 한국에서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에겐 신앙처럼 믿고 싶은 진리가 함축된 소중한 한마디 명언이다.

1975년 타개한 역사학자인 토인비는 역사, 철학,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에 있어서 다채로운 명저를 많이 남겼는데 그의 저서는 모두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예언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의 어떤 분야에 대한 연구는 다른 분야에 대한 종합적 통찰을 요구하며, 역사에 대한 학습은 한 국가와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방법이 되며, 시대적인 사상의 트렌드를 움직여 나가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한다.

2. 스테미너와 재산

토인비는 국가지도자의 조건으로서 스테미너와 재산을 들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장애로 보지 않는데,그 예로 육체적으로 병약했던 루즈벨트와 레닌을 들고 있다. 아데나워와 닉슨은 가난했지만 정치가로서 필요한 자금을 결국 손에 넣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는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을 예로 들고 있는데 보수당의 정치가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나 노동당의 정치가는 경제적유혹 때문에 정치적인 직업에 매달리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영국 속담 한마디를 의미있게 인용하고 있다. [피리 부는 사람에게 돈을 치르는 자가 지정곡을 청할 수 있다.]고 한다. 토인비는 정치란 또하나의 자본주의적 시장이란 것을 통찰하는 관점을 가진것 같다.

3. 용기와 자신감

지도자는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야 하며 민중에게도 용기와 자신감을 주어야 하며 지도자와 민중이 공통의 대의에 의하여 서로 맺어져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 예로 처어칠과 루즈벨트를 들고 있는데 민중은 가장 어려운 시절에 이 들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마침내 2차대전의 어려움을 영웅적으로 극복하게 만들었다. 그 용기에 카리스마가 수반하면 전염력이 훨씬 강해진다고 하였는데 히틀러와 뭇솔리니의 예로 보듯이 카리스마의 자질은 별로 믿을게 못되는 능력으로보고 있다. 또 우드로우 윌슨의 경우 인간미가 없고 쌀쌀함을 정치가로서 실패원인으로 들고 있다.

4. 간디는 빈틈없는 정치가

모든 정치가는 술책에 뛰어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간디에 대해서는 금욕주의자이고 성인인 것을 넘어서 그의 술책이 지저분하지 않고 자기의 시간이나 정력, 정신활동의 극히 일부분만 정치에 소모했기 때문에 빈틈없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탐심(貪心)이 없어야지 고결한 정치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듯 하다.

5.이상과 현실

진정한 정치가는 엄밀히 한정된 계획을 설정하고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선택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명함과 자제심으로 목표를 달성하였을때 거기서 멈추어 선다고 한다. 그 비유로서 스탈린과 트로츠키를 들고 있는데 스탈린은 현실주의자였고, 트로츠키는 세계적인 공산화라는 이상주의적 목표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민중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을 실패원인으로 들고 있다.

토인비는 정치가의 우수한 자질로서 신체적인 건강, 자신감, 경제적인 능력등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절제된 면모를 중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5월 26일 토요일

경제적 통일부터

http://media.daum.net/politics/newsview?newsid=20120527110308224

몇주전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하여 방황하는 새터민 이주자를 직접 만나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체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을뿐이지 경제적인 욕구는 한국사람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통일을 하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통일을 하면 서로 손잡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남북을 왕래하는 꿈같은 일은 당분간 꿈으로만 접어 두어야 한다. 통일은 시작은 갑자기 찾아오되 완성은 느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

중국의 높은 임금으로 인하여 중국으로 진출했던 경공업산업이 철수하고 있다. 동남아의 추세도 같을 것이다. 북한의 경공업산업을 일으켜 대체해야 한다.게다가 한국의 외국인이나 조선족들의 노동력을 새터민들이 대체할 수 있다. 북한의 자원이나 국토개발은 경제수요를 엄청나게 창출할 것이다. 감소하는 국방비는 통일자본으로 대체될 수 있을것이다.

알면서도 안되는 이유는 결국 사람에게 있다.   

2012년 5월 21일 월요일

대장정(大長征)



1985년 겨울에 사서 수십번도 더 읽은 책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미국의 언론인 해리슨솔즈베리가 이념을 넘어서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인 대장정의 루트를 답사하면서 쓴 책이다. 유태인들에게 출애굽기가 있다면 중국인들에게는 '대장정'이 있다고 할정도로 중국인들에게 신념의 통합을 이루게한 정신적자산이된 사건이다.

1934년 중국남부의 장시성근처에 웅거하던 홍군주력부대8만6천명은 국민당군의 포위를 벗어나기위해 중국서부 오지의 24개의 강과 천개이상의 산을 넘어 6천마일이상의 대장정을 하게된다. 그들은 내내 국민당군의 추격부대와 회족과 같은 지방이민족부대와도 전투를 벌이며 이동을 하였다.  혹독한 굶주림과 추위로 중국북부의 산시성에서 대장정을 완료할 무렵에는 4천명만이 남아 새로운 중공(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의 중국을 한국에서는 중공이라 불렀다.)을 건설하게되는 바탕이 된다.





 대장정내내 홍군의 우두머리였던 모택동은 위대한 '결론'을 살리지 못하고 말년에 광기의 '문화대혁명'으로 무너졌지만 홍군수뇌부였던 등소평은 문화대혁명때 숙청을 당하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념의 '고루함'을 벗어난 실용주의 노선을 걷게되며 대장정의 정신을 살린 증거를 남겨놓았다. 그 증거물은 지금의 '중국'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주관적으로  홍군에게 가장 고난으로 느껴졌던 사건은 같은 홍군인 장국도의 4방면군과의 충돌사건이었던것 같다. 대장정을 끝내가는 소수의 홍군주력부대와 그보다 10배 더 많은 장국도의 4방면군과의 만남은 모택동과 장국도의 헤게모니싸움으로까지 비화하게 된다. 결국 두 부대는 각자의 길을 가게되고 장국도의 부대는 국민당군에게 소멸되게된다. 한 가지 이념으로 뭉쳐진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해결되는지를 알게되는 사건이었던것 같다.   





2012년 5월 20일 일요일

집단광기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0/2012052000220.html
집단밖에서 보기에는 광기(狂氣)로 보이는데 집단내부에서는 평범한 일들로 느껴지는것들이 많은것 같다. 이념과 세뇌등으로 연대(連帶)한 정신들은 서로를 보면서 평가하기때문에 광기를 느끼지 못한다. 서서히 덥혀지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익숙해지는것이 위험하다

위인전과 고전

내가 보고 들은 것이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때만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지않은 환경속에서 살아보았는데........ 세월은 가고 몸은 늙는다. 말과 행동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되돌아올 수 없는곳으로 가버렸다.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도 좋은것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위인전이나 고전을 탐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항상 주의깊게 경청했으며 일리아드를 항상 가지고 다녔다. 나플레옹도 다독가였고 고전을 다독한 처칠은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고전이 백성들에게 어떻게 정신적 구심체로 작용하는지는 구약을 읽으면서 살아온 이스라엘민족, 패관잡기를 많이 읽다가 망해버린 명나라, 읽을만한 고전이 없었던 청나라가 소멸한 역사들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인전이나 고전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할것 같다.  자신을 신뢰해야지 타인의 경험도 신뢰할 수 있는것 같다.

2012년 5월 12일 토요일

도해(渡海)

바다를 건널날을
생각치 말자

꽃피는 언덕위에
고즈넉히 기대앉아

물결의 멜러디를
들어보렴

어이없이 살아야
볼 수 있고

어이없이 살아야
들을 수 있는 것들.......

그런것을 모르고

모든 것이 허망한
꿈인줄만 알았다

 - 이형춘 -


2012년 5월 10일 목요일

구읍(舊邑)의 골목

읍내의 투명한 햇살 
시리고도 적막한데

잊혀진 기억은
어느 골목에서 길을 헤메는가.

상경한지 30년
보고 들은 많은 일들이

다시 이곳을 걷다보면
옛일이 되지 않겠는가.

- 이형춘 -


2012년 5월 8일 화요일

정세가 변하면 정책도 변한다

ㅡ자유민주주의 승리를 이야기했지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모델을 비판했다. 생각에 변화가 있었나?

"나는 미국식 모델을 역사의 종언 모델이라고 한 적이 없다. 1980년대 레이건 시기 이후 경제 자유화가 전개되면서 너무 나갔다. 특히 금융 부문에서 그랬다. 스스로 규제하도록 내버려뒀다. 내가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한 것은 미국의 특정 경제정책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시장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사회를 가리켰을 뿐이다."

ㅡ당신은 레이건 지지자로 알려졌는데.

"레이건은 당대에 중요한 일들을 했다. 1980년대 서구의 복지국가는 너무 비대해졌고 국가는 과대팽창했다. 시장과 정부간에 적정한 균형관계가 아니었다. 조정이 필요했다. 지금은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프리스턴대 교수인 프랜시스후쿠야마교수의 인터뷰내용중 일부이다. 정세가 변화하면 그에 대응하는 정책도 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중 하나인 레이거노믹스에 대해서는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상황이 변한 지금은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라는것도 이야기하고있다

오레스테스의 신화/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

오레스테스는 할아버지 아트레우스가 신에게 도전한 죄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가 남편인 아가멤논을 죽였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원수인 어머니를 죽여야하는 의무가 있었고, 어머니를 살해해서는 절대 안되는 의무도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를 살해했다.

두 의무 사이의 갈등은 신이 내린 저주였다. 오레스테스는 오랜 고통을 받고 자기반성을 하였다. 아폴로는 죄는 오레스테스의 탓이 아니므로 저주에서 해방시킬것을 주장했지만 오레스테스는 자기 어머니를 죽인 것은 자기자신이지 결코 신의 탓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이 때 신들은 놀라서 오레스테스에게서 저주를 벗게하였다.

   - 스코트팩 <끝나지 않은 길> - 

인간사는 오레스테스의 입장처럼 얽혀있는 것이다. 자신을 벗어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누구나 성장을 하며 자기 완성을 위해서 살아간다. 또한 누구나 성장통을 겪게된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일찌감치 겪지않으면 세월이 흘러서 언젠가는 겪게 된다. 쉽지 않지만 모든 문제와 해결책은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며 자신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012년 4월 21일 토요일

이반일리치의 죽음

러시아 문학작품은 사색적이고 무겁고 철학적이다. 톨스토이 문학작품의 등장인물 <이반일리치>는 죽음의 끝으로서 인생과 사람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 모든 것이 비어지는 순간이 새롭게 이해되는 순간이기도 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서양철학자 헤겔은 죽을때 죽지 않도록 죽기 전에 죽어 두라는 충고를 한다. 죽음앞에서 아쉽고 공포스러운 마음에 당황하지 말고 생전에 주체적으로 삶을 이해하는 수고를 미리 하라는 충고인듯 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작품<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가 나의 내면속에 이반, 드미뜨리, 알로샤의 모습이 모두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람의 내면과 인생을 통찰하고 있는 성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러시아민요 <나 홀로 길을 가네> <백학>등의 가사내용도 삶의 덧없음과 우울함을 암시하고 있다. 추운 겨울의 나라, 겨우내내 보드카를 마시며 페치카 앞에서 사색에 잠길 수밖에 없는 러시아인들의 정서가 엿보인다.
http://blog.naver.com/greenfeen/50104709864
http://blog.naver.com/greenfeen/50104618907

2012년 4월 18일 수요일

미완의 에너지

과거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본성은 착한데 성품이 불같은 친구가 있었다.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평정심을 갖추게 되는데 생활에 바쁘다보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지 못한듯 하여서 사람을 만나기 보다는 혼자있는 시간을 갖으라고 충고하였다. 내가 해보는 방식이기 때문에 함께 동참하자는 권유이기도 하였다.

개인이 모여서 사회와 국가를 이룬다는 점을 고려할때 폭발적인 기질을 가진 시민의 문제점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편치않은 과거역사와 끊임없이 경쟁과 발전동기에 시달려야하는 특성상 한국인의 불같은 근성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속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자신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잘 다스려 사회에 유익하게 사용하는 예가 많았다. 크롬웰은 젊은 시절 왕성한 에너지를 가지고 두려움을 모르는 방탕한 시절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초창기 칼비니즘의 금욕주의적이고 냉정한 규율의 도움을 받아서 파도같은 에너지를 잔잔하게 다스리는데 성공하였다.

워싱턴은 모든 일에 열중하기 쉽고 정열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엄격한 자제심과 자기수양으로 다시 태어난 면이 있다. 영국총리를 지닌 피트에게 총리로서 제일 중요한 재능이 무엇인지 질문하자 피트는 '인내심'이라고 대답하였다.

경쟁적 교육현장, 선동정치, 불안정한 대내외 정세등 아주 나쁜 여건하에서 에너지를 다스려야하는 한국인은 고충이 크다.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뉴우튼과 선거

나는 바닷가에서 뛰어놀며 매끄러운 자갈이며 깨끗한 조개를 찾고 기뻐하는 어린애와 같은 존재였다. 진리의 큰 바다가 미지의 세계로 눈앞에 펼쳐진것처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우튼의 회고다. 어린애처럼 솔직하고 편견이 없는 눈으로써만 진리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서에도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 번 4.11총선의 결과를 보면서 한국인이 넘을 수 없는 '고질벽'인 지역적 편견을 보았다. 순수하지 못한 한국적 분위기와 권력등을 얻기 위한 이해관계에 집중되는 현상을 일으키도록 만든 과거 역사가 순수하지 못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꼬리를 물고 있는 느낌이다.

뉴우튼과 총선결과의 상관관계가 전혀 맺어질 수 없는 먼 거리에 있는 것들처럼 보이지만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면서 상상력과 꿈을 키워가는 행복과 월간잡지속의 정치평론을 보면서 추한 이해관계속으로 내밀(內密)하게 집중되어가는 국내적 정치현상에 관한 분석을 보는 불쾌함을 비교해보면 오랫동안 시달려온 한국인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생기기기도 한다.

정치인들은 과학기술을 진흥시키고 '내성적인'정치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사회를 개선시켜 나갔으면 하는 기대도 한다. 마음이 아프고 복잡하다. 그래서 열심히 운동도 하고 그러지만 현실은 문(文)과 언(言)에 항상 굴복한다. 내탓이 아니고 한국의 분위기 탓이다. 

2012년 4월 4일 수요일

베트남의 지도자 도무오이

나는 가난해도 국민은 부자가 되어야 한다.

존경하는 지도자인 베트남 지도자 도무오이의 말이다. 최고권력자가 월급은 빈민구제에 쓰고 장식이 없는 초라한 관사에서 살며 두 아들은 말단공무원이나 쓰레기청소를 했었다.

호치민에 이어 이런 지도자를 갖은 베트남 국민들은 행복할 것 같다. 근데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 안알려졌던 인물인듯하다

이념과 종교는

모든 문제를 포식하는 괴물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만큼 다른 문제를 희석시키는 능력도 크다.  모든 사회문제들이 이들 때문에 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듯 하다.

역사적으로 영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이념과 종교를 적절히 이용해 왔다. 

Home too far (이역)

자유중국반체제작가였던 백양의 넌픽션소설제목이다.

중국이 공산화되자 항복을 안한 소수의 국민당군대가 가족과 함께 미얀마영토로 들어와 중국공산당군과 미얀마군을 상대로 처절하게 싸우며 생존해가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등극보란 하급장교가 인편으로 보낸 편지를 백양이 소설화시켜서 백양을 투옥되게하였다. 이유는 등극보의 소수부대가 생존을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동안 대만과 태국으로 피신한 국민당군간부들이 호의호식하며 등극보부대에게 대륙수복의 발판이 되어달라고 종용하는 모습이 나오기때문이다.

한국에서 복사본으로 돌아다니던 책을 구해 읽고, 나의 부친을 비롯한 어떤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을 생각나게 만든 책이다. 

평정심

나는 평정과는 거리가 먼 환경속에서  살아왔다. 성장과정에서도 그렇고 성장을 해서도.......그래서 평정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많았다. 요즘은 평정심을 얻기 위해 운동을 한다. 오랜 스케이팅은 평정심을 가져다 주고, 사격은 평정하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두 운동은 평정심을 얻기위한 적절한 이유가 된다.


다음은 아우렐리우스황제의 <명상록>에서 발췌한 평정심에 관한 내용들이다.

1. 주위 환경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신의 마음이 흐트러지면 재빨리 자신에게 돌아와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2. 의연하라 아니면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의연해져라.
3. 고통을 당할때는 그 고통이 참을 수 없거나 영속하는 고통은 없음을 명심하라.
4. 하루 하루를 임종의 날로 생각하고, 과도하게 흥분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고 위선자가 되지 않을때, 도덕적 인격이 완성된다.
5. 사물의 세계를 백년동안 검토 하거나 3년동안 검토 하거나 결과는 같다. 자신이 소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택동의 16자 전법

적이 공격하면 후퇴한다.
적이 후퇴하면 공격한다.

모택동은 유물론자의 탈을 쓴 도사였던 것이다. 얼핏보면 너무나 당연한듯 느껴지지만 상황을 거슬르지 않고 능동의 에너지로 보존했다가 목적만 달성하면 되게끔 하겠다는 무서운 전략이다. 아직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모택동평전을 즐겨있거나 등소평과 같은 지도자가 나오는것은 이유가 있는것이다. 

실탄권총 단상(斷想)

몇년전 한국의 특수부대와 프랑스의 외인부대를 제대한 준수한 젊은 분이 경찰특공대시험을 본다는 기사를 신동아에서 읽은적 있었다. 기사의 마지막에 사격연습을 위한 실탄값때문에 곤란을 겪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가끔 일반인사격장에서 권총사격을 하고나면 경찰특공대의 사격부문 합격커트라인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사실 경특대의 사격커트라인은 왠만해서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임무의 중요성 만큼이나 높은 실력을 요구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총기자유화가안되는 한국에서 그 실력을 갖추기란 참 힘들것 같다. 군대에서 권총을 많이 쏘아 보았거나 사격선수를 해본 경험이 있거나 아니면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발당 2000원이 넘는 실탄을 임계량이 넘는 훈련으로 대량으로 낭비하거나 해야 한다.

2년전 사격을 시작할때  스포츠를 위해서 사격을 하기때문에 많지않은 시간이지만 아주 합리적인 프로그램을 짜서 훈련을 했다. 오죽하면 사격을 위해서 스케이팅을 시작한게 이제는 선수생활을 했다고 해도 안믿을 사람이 없으니 그 정성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썼으면 위인전 쓸 뻔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후회스러운 날들과 좋지 않은 어떤 현실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정신을 갖춘다는 목표로 시작했으니 비난 받을 일은 아닌것 같다.

가끔 2년전 사격을 배울 무렵 블러그에 올려놓은 실탄권총표적지를 본 분들이 가끔 권총을 쏘는 방법에 대하여 문의를 하시는 경우가 있다. 그럴땐 전문적으로 사격을 하시는 분들이나 공권(公權)을 위해서 실력을 갖춰야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울 뿐이다.

무술이나 사격같이 전투적이고 대립적인 상황을 내면에 깔고 그런 나쁜 상황들이 표면화되는 것을 억제하며 훈련을 해야 하는 스포츠종목들은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선한 자'거나 '악한 자'거나 둘중의 하나 편에 서야 되는 상황을 강요받는 일도 있다. 만약 한국이 총기자유화가 되어 있다면  그런 현실은 더 극명해 질 것이다.

총은 세 부류가 있는것 같다. 공권력을 위한 총, 살생을 위한 총, 극기를 위한 총이다. 극기를 위한 총은 순수하게 스포츠를 위한 총이다. 사격장에서 절대로 '기분'내지 않고 냉정해질려고 노력하는데 기분내기 시작하면 총의 성질이 나빠진다. 나에게 총은 멋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적절하게 선택한 명상의 방법이기도 하다.

어떤 경찰특공대 수험생분에게 실탄권총 쏘는 법을 조언하였다. 주제파악을 못하는거 같지만 질문하신 분이 초보일것을 기대하며 답변을 하였다. "방아쇠는 냉정하고 부드럽게 당기십시오. 방아쇠가 턱소리가 나며 걸리는 그 순간도 최대한 부드럽게 넘어 가십시오." 

화진포의 성

마음이 편치않을때면 습관처럼 다녀가는 곳이다.어떤 분이 그리워하던 고향과 지척의 거리에 있어서이기도 하고 사람이 많지 않은 북단이라서 어떨때는  해변에 덩그렇게 홀로 앉아있는 경우가 있다.

몇일전 화진포의 성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다. 김일성과 리승만 전대통령이 별장으로 삼기도 했었다고 한다. 분단의 아픔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다 눈을 감은 실향민과 이념이란 명분으로 작은 나라를 분단으로 만들었던 사람이 함께 마음의 점을 찍은 곳이다. 어떤 사람은 고향을 그리는 통한의 마음으로, 어떤 사람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리고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곳에 서있다.

한국정치에서 그래샴의 법칙

어떤 정치인이 썩은내가 진동한다고 소속정당을 탈당할 의사를 밝혔다. 그래샴은 '악화는 양화를 구축(驅逐)한다.'고 했다. 바른 사람들이 정치판이 썩었다고 뛰쳐 나오면 '국민은 누가 키우나?'


2012년 3월 31일 토요일

이상한 나라의 민간인 사찰

근처에 간계가 발달한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왈가불가 한 적이 없다.  그 친구의 가족환경이라든가  직장의 환경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길래 마음가는대로 이해하고 넘어간지 몇년만에 딱 한 번 "그만 좀 해라."하는 말로 둘 사이를 정리하곤 했다.

사실 믿고 의지하고 싶었던 기대가 있는 친구에게 그런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더하기 마련이다. 한 편으로는 초라하게 무너져버린 친구의 내면세계에 대한 측은함이 생길정도로 원래 내마음 한 구석에 내재해 있는 찌질함이 우월감으로 대변신을 하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같은 나라에 비해서 공동체주의가 발달한 유럽은 치사스러운 정치적행위에 대한 나쁜 소문이 덜 한 편이다. 국가와 사회의 분위기가 개인의 의식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증거도 되겠다. 민간인 사찰에 포착된 피해자의 불륜과 같은 찌질함도 문제지만 그런 문제들에 거대한 공권력을 찌질하게 사용하는 왜소한 의식도 문제다.

나같은 하찮은 시민은 국가나 사회의 분위기로부터 비공식적이지만 깔끔하고 거국적인 의식을 갖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보수정부나 진보정부나 민간인 사찰의 혐의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는데 시민은 그들만의 정치적 간계에 위협을 느끼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이런 문제는 미시적인 사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 리더쉽이 무너지므로 국가와 사회의 도덕적인 구심점 자체를 무너뜨린 일이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곳도 없을 뿐더러 배울곳이 없는 시민들은 외롭다. 

2012년 3월 17일 토요일

FAIRY TALE(동화)

There once was a child
living every day
expecting tomorrow
to be different from today.

- G.Vanderbilt -

옛날 한 어린이가
오늘과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 글로리아 밴더빌트 -


즐거운 주말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데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이 짧은 시가 생각나더이다.

2012년 3월 14일 수요일

중국의 정치개혁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20314142817359

윈자바오는 중국의 정치가 개혁을 하지 않으면 문화대혁명과 같은 일이 일어날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중국내의 개혁을 원하는 진보적 인사들과 공산당일당독재를 계속 지속시키고자 하는 보수적 인사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고 있는듯 하다.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일당독재,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의 모습이 융합되어 '개발독재'의 모습으로 경제를 팽창시켜 왔지만 커지는 빈부격차와 그로 인한 내수시장의 위축이 중국의 미래를 막을것이고 근본적으로는 공산당의 이념적인 정치성향이 정부와 국민의 쌍방향소통을 계속 막을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듯 하다.

윈자바오는 서구식 발전과정이 중국이 따라야할 교범같은거라는 진화론적 사고를 가지고 있고, 정치는 폐쇄적이고 경제는 개방된 중국특유의 불균형적인 발전모델이 실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2012년 3월 13일 화요일

일본인의 수치심과 전체주의

http://media.daum.net/foreign/newsview?newsid=20120314135625107

경제대국 일본에서 여러사람이 굶어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것이 수치스러워 그대로 앉아서 굶어죽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생존보다 수치심을 중히 여기는 일본의 문화가 일본군국주의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예가 있지만 어려운 상황을 극단적인 '축소지향적 결단'으로 끝장을 내는 일본문화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공감대를 가질 수 없는 감정인것 같다.

오래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주 어려운 상황을 겪은적 있다. 물론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을 참 많이 겪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이나 자존감의 상실을 맛보기 보다는 "세상은 넓고 별일도 많고 별 사람도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다른 사람 특히 일본인들과는 다른 기질 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어려움을 겪은 부모를 보며 성장한 배짱이기도 한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느낀것은 큰 도움이 된것 같다.

일본인들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항상 자중하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하는데 베네딕트여사는 자신의 저서인 [국화와 칼]에서 "부모가 자식을 향하여 [너는 자중하는 인간으로 행동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식이 예법대로 행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이며 자식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하여 일어설 용기를 잃은 것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자기의 행동방침을 정한다."고 베네딕트여사는 일본인의 수치심을 이야기 하는데 아마도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으로 다양성을 인정받기 보다 서로 엮여 있는 타인의 판단기준들이 일본인들을 쉽게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엮어놓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대국적으로 생각하면 수치심이라는 것은 좀 더 긍정적인 상황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댓가없는 타인의 도움은 '약진의 발판'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호방함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대지진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도움을 주었을때 그들의 자존심이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도 추측을 해볼 수 있다고 하겠다.    

2012년 3월 9일 금요일

추악한 동맹

런던 정경대학 유럽사상교수였던 John N.Gray의 저서제목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또 하나의 신념체계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를 확산 시키겠다는 미국의 신념이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같은 것을 모두 기독교적 종말론에서 비롯된 망상으로 보고 있다.

저자는 이세상에 완전한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으며 세계를 뒤흔드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성취되는 선(善)이 지배하는 완전무결한 세상은 있을 수 없는 꿈이라고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향의 존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은 그냥 그렇게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동태적(動態的)인 노력을 해야하는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간파한 책인것 같다. 인간이란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밀어 올리고 또 굴러 내려오면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스와 같은 존재임을 인정한듯 하다.

기독교의 종말론을 비롯한 서양사상들의 기본 바탕은 정지된 시작과 끝이라는 결단론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존재에서 창조되며 결국에는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사고이다. 반대로 동양사상의 근원에는 인간을 시작과 끝의 존재로 보지않고 우주속에 생성되어가거나 소멸되어가는 그리고 다시 태어나는 연속성상의 한 작은 개체로 보고 있다. 저자는 그런 차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듯 하다. 

2012년 3월 1일 목요일

에너지 전쟁

눈에 보이지 않아서 중요하지 않게 여기지만 에너지전쟁은 인간의 삶에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빈번하고 중요한 사건이다. 기분나쁜 모욕으로 상대의 에너지를 붕괴시키면 끝내 복수라는 반응으로 돌아오고, 국가간의 전쟁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에너지가 저하되어 있는 사람은 그걸 보충하기 위해 타인을 공격한다. 타인을 시기, 또는 질투하거나 이죽거리며 타인의 에너지를 붕괴 시킬려고 한다. 물론 붕괴된 타인의 에너지는 승리감이란 이름으로 공격한 쪽으로 옮겨온다. 혹시 에너지공격자가 있거나 내 자신이 그런 공격자라면 한 번 더 깊게 생각해본다. 지금 무척 힘든 시기가 아닌지........희망없고 불안한 삶을 살고있지 않은지........

긍정심이나 회피등으로 방어하긴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자주 치룰수 밖에 없는 전쟁이다. 싸워야할 상대는 결국 자기자신이란 메뉴얼은 가장 훌륭한 전투교범이다. 

2012년 2월 29일 수요일

내성적인 성격과 집중력

http://media.daum.net/digital/newsview?newsid=20120301005103197

산만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이 집중력을 흐트리는 경험을 한 적이 많다. 창조적인 생각은 홀로 있는 시간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면 해결책이나 마음의 정리는 혼자 있는 시간에 만들어지는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부럽다.

정약용선생의 훌륭한 저서들은 고독한 유배생활중 만들어진 것이며 박지원선생은 생각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벼슬자리를 회피하기도 했다.

유명해진 경험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유명해지면 반드시 고독이 더할 것 같다. 참 자신과 대면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와 함께 하는 충만을 누리게 될것이라는 어떤 책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이현상

공산주의 운동가이며 지리산에서 활약하던 빨치산부대 남부군의 사령관이다. 공산주의 이념과 인민해방을 위해서 희생한 면은 한 인간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하나 정치와 인간 그리고 이념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면이 있다.

다수의 북조선인민들과 접촉하지 못해 다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김일성에게 이용당한점, 이념의 최종적인 목적은 인민의 행복이란 사실을 망각한 문제가 있다. 남보다 앞서간 멋쟁이 선구자이지만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허망한지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요즘 북한의 실상과 공산혁명을 위해서 노력하다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2012년 2월 28일 화요일

파랑새

벨기에의 극작가 메테를링크의 아동극 제목이다. 가난한 나무군의 아들 치루치루와 미첼이 크리스마스이브에 같은 꿈을 꾼다. 꿈에 나타난 선녀는 둘에게 병든 선녀의 딸을 위하여 파랑새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둘은 선녀가 빌려준 마술모자의 힘으로 많은 신비한 나라를 찾아다니며 파랑새를 찾지만 결국 못찾고 만다.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파랑새는 자기집 새장에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파랑새는 행복을 상징한다.행복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욕심을 버리면 욕심 가진이보다 행복하고, 건강하면 아픈이 보다 행복하고, 조금 가지고 있으면 안 가진 이 보다 행복하다. 남과 비교해도 행복의 꺼리가 '프랑크소시지'처럼 줄줄 엮여 나오는데 비교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행복이 쏟아지는지 모른다.

아주 가끔 느껴 보건데(그래서 더 가치있는 생각이 되곤한다) 적어도 불행을 느끼지만 않아도 최선의 행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든다.

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지혜는 시간과 더불어서 오다)

Though leaves are many, the root is one;
Through all the lying days of my youth
I swayed my leaves and fowers in the sun:
Now I may wither into the truth.

-  William Butler Yeats -

잎은 많지만 뿌리는 하나,
내 청춘의 거짓된 나날을
햇살 아래서 잎과 꽃들을 찰랑거렸지만
이제는 시들어 진실속에 묻어버리고.......

- 예이츠 -

2012년 2월 24일 금요일

자동차사고

3개월전 친구부친상을 다녀오다 밤중에 로드킬을 겪었다. 강원도의 국도중간에 어린 노루가 서 있는것을 치었다. 운전을 빨리하는 습관이 아니지만 자동차헤드라이트가 좀 흐린데다가 차고가 높은 지프라서 뒤집어질까봐 핸들을 많이 꺾지를 못한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놈은 자동차 불빛에 놀라 뒤로 돌고 나는 그 놈이 앞으로 갈줄 알고 뒤로 간것이 만났다.둘 중의 하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겪은것이다. 차밑에서 어린노루가 발버둥치면서 발로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지나갔다. 길옆에 차를 세워놓고 어둠속에서 한참 지켜보면서 이미 살릴 수 없음을 깨닫고 길을 떠났다. 10년이상 육식도 안하면서 엄청난 사고를 친것 때문에 내내 다리가 후들 거렸다.

사실 자동차사고라면 일찌감치 이력이 나도록 겪었다. 어릴때 집에 군용트럭(제무시)이 있었는데 강원도산길에서 걸핏하면 굴렀다.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수감된 운전수를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로 면회갔던 기억도 난다. 걸핏하면 사고나는 자동차때문에 속을썩는 우리부모님과는 달리 자동차가 드믈던 시골에서 밭을 팔아 자동차를 마련한 어느 차주의 자동차에 15명정도 타고 소풍을 갔는데 그 차가 낮은 절벽으로 뒤집어졌다. 탑승자중 절반이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신이 되고. 살아서 피를 흘리는 부상자가 경련을 일으키면서 자동차덤프바닥을 발로 치는 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공포에 떨어야했다.

어느 날 트럭이 굴렀는데 운전기사가 사망하여 가마니로 덮어놓은 시신에 검은 농구화만 밖으로 보이는것이 굉장히 자극적이었다. 요즘도 사고다발지역을 지나면서 출퇴근하는데 1년에 두어번은 사고를 뒷수습하는 장면을 보곤한다. 나도 안전운전을 할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 장소에서 빙판위를 한 바퀴 돈적이 있기 때문에 생사의 기로를 한 번 겪었다. 산자에게는 '경험'이지만 죽은 자에게는 '궁극의 결론'이 되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대부분 사고이거나 질병인데 죽음이 아름다울 수는 없는것 같다.  세월이 가는 속도를 보면 지나가는 시간과 다가올 죽음앞에 내 자신이 왜소함을 느낀다. 구태여 철학적인 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삶은 계란보다 허망하다. 온몸으로 살다 온몸으로 죽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어제 미시령에서 사고당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