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우울하던 시절에 군복을 입고 신촌거리를 배회하다가 이대옆의 대흥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양철북'이란 영화였는데 독일의 대문호인 귄터그라스의 노벨상 수상작을 영화화한 것이었다. 헤르만헤세와 라마르크는 좋아했던 시절이지만 귄터그라스는 그 이후도 오랫동안 권터그라스라고 발음할 정도로 잘 모르던 작가였다.
그 시절에 힘들었고 양철북의 내용도 잘 이해를 못할 정도로 정신적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다. 오랜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귄터그라스의 전집을 읽으며 양철북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때쯤은 내 정신도 현실에 집착을 하기보다는 한 발을 빼고 현실을 관조하는 태도와 어쩔 수 없이 각박하게 부딫혀야 하는 현실이 서로 충돌하는 경지쯤에는 왔던것 같다. 남보다 덜 떨어지기는 했지만 나이가 먹으니 달라지긴 하더이다........
양철북의 내용은 주인공이 육체적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어린이 취급을 받으며 어른들의 모순된 현실세계를 들여다본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식물인간이된 아버지의 병실에서 가족들이 별 말씀들을 다 나누고 있었는데 사실상 그 아버지는 정신은 온전하여 다 듣고 생각하고 있다는 상황을 비유하면 좋겠다.
귄터그라스가 32살에 쓴 책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작품은 사실상 자신의 생각과 고뇌가 무게있게 담겨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많지 않은 나이에 자기세계와 현실의 부조화때문에 고생을 많이한 면도 느껴진다. 작가가 현명하다면 진실과 거짓된 현실세계의 부조화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말도 되겠다. 다음은 귄터그라스의 '거론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시 한편이다.
히틀러 시절의 유태인에 대한 '죄'로 금기가 된 이스라엘에 대한 정치적인 불문율을 깬 시다.과거사와는 별개의 문제로 세계평화와 인류애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다시 봐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듯 하다. 문제의 본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오래전에 갖추어진 작가인 만큼 보통사람들과는 다르게 '파격적이거나 본질적인' 시선을 갖춘 귄터그라스의 생각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하겠다.
본질을 보는 능력은 현실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알게 되고, 말을 하며, 현실을 바꿔놓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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