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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9일 금요일

니체/동정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종교단체에서 나온 몇 사람이 P2P를 보여 주면서 소감을 써 달라고 했다. P2P에는 종교단체가 세계와 국내각지에서 선행을 한 일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유명 정치인들의 칭송(?)장면도 담겨져 있었다.

끝까지 보고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면 결국에는 누군가 알아주지 않겠는가'라는 글을 남겼다. 선행이라는 것은 없는 것 보다 어떤 형태로든지 있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지만 선교의 목적으로 광고함은 희생하는 효과가 반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어려운 시절에 나를 도와 줄려고 애쓴 종교적이고 순박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뭐가 못마땅 했는지 인간은 도와줘봤자라고 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다녔다. 어느 날 오래만에 만난 친구에게 내 차 옆에 서있는 고급차를 보여주며 물질적인 성공을 알렸고 그 친구의 얼굴은 낭패감으로 어두워졌음을 느끼면서 배시시 웃었다. 상호 어린 마음에 유치함의 풍작을 거두었다.

다음은 니체의 수상록의 일부이다.

'동정'이 미덕이라고 불리는 것은 퇴폐적인 자들에게만 통하는 말이다. 내가 동정론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 그들이 자칫하면 수치심과 공경과, 타인과의 거리감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잃어버리고 마는 점 때문이다. 동정은 곧 천민의 악취를 풍기며 무례한 짓에 가까워진다.   동정의 손길은 사정에 따라서는 파괴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하나의 커다란 운명 속에, 치명적인 고독 속에, 무거운 죄책감을 지닌 특권 속에  파고둘어 갈 수가 있다. 동정의 극복을 나는 고귀한 덕의 하나로 보고 있다.

동정자- 동정심이 많고 남이 불행에 빠졌을 때에는 도와주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남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드믈다. 남이 행복할 때 그들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잉여인간이며 자기들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수 없으므로 곧 불만을 느낀다.

니체정도니 이런 미묘한 감정을 촌철하여 글로써 표현하지만 자신은  선행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표현력이 없음이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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