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벤치에 잠간 앉아있다가 노인분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참전용사들인것 같은데 일본의 독도영유권주장에 대하여 매우 분개하고 있었다. "일본의 요구는 도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가장 원론적인 반론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열하고 있는 한국정치인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정치문화를 겪어본 세대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민들의 행복을 계획하는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마음속에는 당장 부당한 일본의 요구에 현실적으로 반응하고 싶지만 집중을 할 수 없는 심정을 화풀이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학자 베블렌은 엔지니어들은 창조를 하고 비지니스맨들은 이윤을 위해서 조절을 하거나 억제를 한다고 하면서 둘사이의 조화될 수 없는 관계를 인정하고 비지니스맨을 비난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사상가인 러셀은 [미래의 행복]이라는 수필에서 서양인들 사이에 뛰어난 도덕가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스스로 보통 쾌락을 물리치고 그 보상으로 남들의 쾌락을 간섭하고 덤비는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일터에서 묵묵히 생산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보다 기민하고 민첩하게 그들을 기획하고 조작하는 사람들이 우월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많고, 세상물정 모르는 퇴직군인이 부가가치를 생산해내지 못하는 사기꾼의 표적이 되는 현상도 많이 보았다. 사회경제의 효율성이라는 명분하에 만들어진 수많은 직업들이 과연 효율성을 달성하였는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베블렌의 말하는 '창조적인 생산자들'이 희귀해지는 국가가 과연 미래가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이란 나라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다른 나라는 모방하며 문명을 이끌고 있다. 중국도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전력을 쏟고 있으며 독일은 실업률이 높아도 발달한 과학기술이 국가경제를 튼튼하게 지탱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조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이 있었다. 훈련의 부족으로 인해 그런 사람들에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대응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몇가지 일을 겪은 다음에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까지 생각이 크게 비약되기도 하였다. 교육도 사람사이를 조작하는 사람이 되거나 남보다 우월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있다.
'내 자신에게 얻어낼 것은 있어도 당신에게 얻어낼 것은 없다.' 라는 인식이 자연스러워야 국가가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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