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된 수험서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나쁘다. 수험생 시절를 겪으며 공부한 암기식 역사공부는 두고 두고 나쁜 습관을 들여놓았다. 심지어 이렇게 역사에 대한 무비판적인 암기식 교육이 신민(臣民)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현실교육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2. 실증사학
역사시험은 준수한 성적을 받는 편이었는데도 생각나는게 없어서 고생을 했다. 한국 사학계는 일제시대 정립이된 진단학회 계열의 실증사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표현대로 실증사학은 주관이나 직관이랑 친하지 않다. 하지만 없는 역사를 만들어내는 오류도 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한국의 사학계는 오랫동안 실증사학의 독무대가 되어왔던것 같다. 직관을 요구하지 않는 수험서랑 실증사학은 궁합이 맞기도 하다.
일제시대 정립이된 한국실증사학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식민지치하의 실정이 '실증'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증거자료를 찾아 노력하였던 사학자들의 노고는 인정하지만 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직관이 반영된 의견들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도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꽤 오랫동안 주류인 실증주의사학자들과 비주류학자들의 헤게모니대립이 있었던것 같다.
원래 일제시대 친일사학이 형성되면 민족사학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히 변증법적, 아니면 대칭적인 동향으로서 자연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민족주의 사학이 가져다 주는 현실개선의지의 효과를 보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고 하겠다.
3. 직관형성
실증주의 사학계열의 어느 학자분의 명저인 국사책을 꽤 읽었는데 부족한 마음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씌어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동국병감], [연려실기술], [열하일기], [징비록]등을 읽으며 어느 정도 충족이 되는 기분을 느꼈다. 픽션이 많이 섞였지만 사극을 자주 보면 책의 내용을 시각화 시킬수가 있어서 기억에 도움이 된다.
인물중심으로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왜 그랬을까?"하는 의문점을 항상 잊지 않으면 인물의 배후사건이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왜 고려 광종과 조선의 태종은 왕권을 강화 시킬려고 했을까?" 하는 의문점을 가지게 되면 고려나 조선의 건국군주들은 건국공신세력들을 무시할 수 없으니 3대 군주정도에 왕권을 강화시킬 힘과 명분이 생긴다는 결론을 볼 수가 있다.
"르네상스는 왜 발생하였을까?"하는 의문점은 신 중심의 중세크리스트교의 부패와 전횡에 염증을 느낀 중세말기 사람들의 집단의식이 작용한 결과라는 결론도 얻을 수 있다. 서양사에 대해서는 앙드레 모로아의 [프랑스사], 조셉캠벨의 [신화의 힘], 각종 서양 명언집,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각종 역사영화등을 보면서 생각해보곤 하는데 불가리아의 건국영화 [칸의 영광]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동로마 영토에 불가리아가 세워지는 과정이 역사책에 언급이 안되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약소국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다방면에 주워들은 지식들은 직관형성에 꽤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문화인류학의 명저인 마빈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는 관습과 전통이 어떤 이유로 형성이 되어 가는지 알게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4. 역사형성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역사공부는 개인이 스스로 역사형성작용을 하게 만들 것이다. 소수의 학자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의 역사형성작용으로 인류가 큰 피해를 입은 바가 있는데 역사를 제대로 교육 시키지 않은 탓이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을 계몽하기 위해서 노력 하였던 안창호선생이나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역사형성의 힘은 개인들의 의식을 계몽시키는데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닫고 있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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