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기사는 인류는 협동하여 사냥하고 분배하며 진화를 해왔다는 연구결과를 싣고 있다.
인간은 편안하게 존재하고 싶은 생물학적 본성에 기초하여 수렵보다는 채집이 훨씬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활동범위속에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고기를 먹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였을 것이다. 육식을 하는 인류조차도 수고를 덜 들여서 획득할 수 있는 애벌레나 곤충류로 영양분을 충족시키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수렵으로 충족시켰을 것이다.
라마피테쿠스(750만년전 영장류)와 같은 초기 호미니드(영장류)들은 송곳니가 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하게 송곳니를 육식을 위해 진화한것으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인류학의 명저인 <오리진>의 저자인 리처드리키박사는 인간과 아주 비숫한 영장류인 비비원숭이는 위협적인 송곳니를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사용하기는 매우 약하고 방어를 위한 보호색처럼 상대방을 위협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라고 한다.
수렵을 위한 협동행위와 농경을 위한 협동행위중 어느 것이 인간의 두뇌를 더 발달시킬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현존인류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이란 이름으로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일관된 진리이다. 초기 호미니드(영장류)들이 채집으로만 식량을 충족시킬 수 없자 사냥에 나서게 되고, 사냥으로도 식량을 충족시킬 수 없을 정도로 개체가 번성하자 농경활동을 시작했다는 생각은 보편적 사실이다.
농경을 하지 않았던 구석기시대의 인간은 무리를 짓고 살긴 하였지만 협동성이라든가 집단적인 협조가 신석기이후 농경사회처럼 결속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신석기시대 농경을 시작하면서 집단적 정착생활이 이루어지고 기본적인 사회제도가 갖추어졌으며 노동을 할 수 없는 피부양자에게도 수확물을 분배하는 원시공산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아프리카나 인도네시아의 문명의 변방에서 수렵을 하는 부족들과 기원전 3000년경 나일강의 범람을 계산하여 나일강의 충적지를 농경을 위한 비옥한 농토로 유용하게 개량을 시도하는 이집트인들중 누가 두뇌가 발달했을까 생각해볼만하다. 이집트인은 나일강의 범람을 계산하기 위해 기하학과 수학등을 발달시키고 지금도 불가사의하게 여겨지는 피라밋을 만든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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