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이론의 창시자인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이 시장실패(불경기, 빈부격차, 공유지의 비극등)현상을 보이자 케인즈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대시켜 불경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시장실패를 치유했다. 그러나 정부실패(스태그플레이션, 거대정부의 관료주의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 통화주의자 프리드먼은 정부지출의 승수효과는 민간소비와 투자를 몰아내는 구축효과(驅逐效果)에 의해서 상쇄되어 무용한 경제정책이 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을 내놓음으로써 노벨상을 받았다.
시대의 경제흐름을 뒤바꿔 놓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극단적으로 우파와 좌파의 대립과 투쟁으로 전환되어 받아들여지는 감이 있다.
케인즈의 재정정책이 수정되지 않고 깊은 문제의 골을 만든 다음에야 통화주의자들에게 포착이 되고 적극적으로 케인즈의 정책을 뒤집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가장 경제현실에 민감했던 시민들이야 문제점을 포착해도 의사표현의 언로가 불충분하거나 정부선전의 착시효과에 의해서 현실은 어려워도 '이상과 기분'만으로 '그럭저럭 삶을 꾸려나가다 보니 한평생이더라' 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는것 같다.
과연 시민들은 무한정한 번영과 안정중에서 안정을 중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번영이라는 것은 안정을 위한 현시적 투자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창업보다 공무원시험을 택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청춘들의 선택은 한국의 경제현실과 인간의 욕구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무역총액 1조달러를 달성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하지만 한국민들에게는 실업과 불황이 햇볕없는 겨울 정서와 합체해 짙은 우울함을 드리우고 있다. 수치적인 업적과 현실감의 괴리는 말기암 환자의 건강한 외모만큼이나 충격적인 날을 예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와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다. 이념적 프레임을 벗어난 '시민들의 체감'을 기준으로 과거 경제정책의 성과를 측정하고, 미래경제정책의 계획을 입안해야 할 것 같다.
도대체 들어오고 나가는 돈 1조달러는 어디서 움직이는 것일까? 그 돈들은 산업공동화현상으로 인해서 해외에서만 돌고 있지 않을까? 복지정책은 좌파적인 정책이 아닌 내수를 부흥시켜서 투자와 생산을 확장시키는 가장 우파적인 정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케인즈의 시대는 모두가 케인지안이었고 프리드먼 시대에는 모두가 통화주의자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시민들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는것 만큼 공론화 되지 않는 말이기도 한 것이 '정부정책은 민생을 가장 중요한 목적과 평가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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