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저녁이다. 경쟁에 찌들었던 대한의 청춘들이 한 번의 해방감을 느끼는 시간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한 잘생긴 무사가 한 수 위의 검객에게 심한 모욕을 당했다. 그래서 열심히 검술을 연마하길 10년의 세월이 지나서 자신에게 모욕을 준 무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무사는 병이 깊어 가족도 모두 떠나 버리고 혼자 어두운 방에서 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잘 찾아왔네 이제 나를 죽여주게."복수를 할려던 마음은 어디가고 가진 돈을 모두 털어서 약값에 보태라고 쥐어주고는 길을 떠났다.
글타 10년의 세월을 떡사먹었다.
언젠가 한국 최고의 학벌을 지닌 사람이 나를 모욕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나에게서 자신을 대접해주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마음을 알고 있던 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중에 누군가가 나에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망언을 했다. "내가 더 잘생겼잖아."
경쟁적 지식만 심어주기에 바쁜 한국교육의 현주소만 느꼈을 뿐이다.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친구가 딸을 낳았다. "저런 딸을 낳았군."
딸을 갖고 싶어하는 친구가 아들을 낳았다. "저런 아들을 낳았군."
서로 바꿀것도 아니고 그 참..........
이념이나 종교적 관점을 가진자가 시민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경쟁이나 대립적인 관점보다 한 수 위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범한 욕망을 버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결국에는 평범한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채 이념이나 종교를 욕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그러나 이념이나 종교라는 도구는 경쟁과 비교 또는 소유욕망에 휘둘리는 평범한 시민들의 공허한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좋은 도구가 될것같다. 더 고귀한 가치가 대신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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