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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7일 토요일

독서와 마음의 여유

한 번은 12시간이나 일해야 하는 저녁이 없는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식과 생각은 휘발성이 있는지 다시 깜깜한 세상에서 헤맨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덜컥 병이 났다. 몸과 마음이 조화롭지 못했다. 독서는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인데, 여행을 가지 못하니 답답한거였다. 마음 한 구석으로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에 나오는 모택동의 회고가 생각났다. 이념이나 말년에 보여준 행태로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독서에 대한 열망만은 존경할만 하였다. 

나는 제 1중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교과목도 한정되어 있었고 교칙도 못마땅했지요. 나는 [어비통감]을 읽은 후 독서를 하면서 독학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나는 6달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후난 성립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읽는 독서계획을 짰지요. 나는 이 계획을 매우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지키면서 6달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도 이 6달은 나에게 대단히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중략 - 이 독학 기간 중에서 나는 많은 책을 읽었고 세계지리와 세계사를 공부했습니다. 

나는 이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세계지도를 구경하고 대단히 흥미를 느끼면서 공부했어요. 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다윈의 [종의 기원],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책을 읽었습니다. 또 루소의 저작과 스펜서의 논리학, 몽테스키외의 법에 관한 저술을 독파했어요. 나는 러시아, 미국,영국,프랑스, 그 밖에 다른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진지하게 공부하면서 아울러 시와 전기 소설, 고대 그리스의 신화도 읽었습니다.

 - EDGAR SNOW [RED STAR OVER CHINA] -


잠시 주입식 공부만한 적이 있었다. 그때 뭘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공부에 대한 흥미와 뚜렷한 목표의식이 결여된 상태에서 의지력과 서두르는 행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당연히 될 일이 없었고 나중에 사격등의 운동에도 그래봤는데, 당연히 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승부에 집착하여 이것만 달성하면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는 희망이나 비젼을 갖고자 해도 그것들이 성취욕으로 돌변하여 서두르게 만들곤 했다.그리고 처음 일을 갖게 되었을때 잠도 안자고 열심히 일을 했다. 성과가 안나오던 과거를 게을러서 그랬던 것으로 왜곡하여 해석했다. 그래서 더욱 부지런해졌다. 부지런한 것은 좋지만 마음의 여유가 너무 없었던 것은 큰 문제였다. 다른 생각을 갖거나 다른 세상을 엿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더불어 변화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내 주변이 전부 그랬다. 지위와 명예, 권력, 부를 위해서 쫓겨다녔다. 그러다가 약간이라도 그것이 주어지면 '행세'를 했다. 그러니 없던이가 갖게 되면 행세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그것때문에 시달렸으니 그것에서 어떤 이익이라고 챙겨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듯 했다. 그래서 권력에 집착하는 이를 보면 언젠가 핍박받은 과거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되고, 갑질이 만연하는 사회는 을의 역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북한은 강한 나라가 되고자 하는 의지와는 반대인 현실이 나타나는지, 왜 어떤 종교는 그 종교밖의 다른 사회와 섞이지 못하고 영역의 경계를 뚜렷이 하는지, 한국사회에서 왜 여가를 경시하고 부지런한 노동만을 요구하고 있는지, 비용편익계산보다 중요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모두 병리적이고 실패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지난 주 내 구글 블러그의 검색기록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의 검색기록이 떠서 좀 당황하였다. 지능과 사격에 관한 글이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아니면 난수방송에 관한 글을 통하여 내가 너무 깊고 깊은 곳을 치고 들어간게 문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내 고민 모두는 독서로 해결하여 온 듯 하다. 학생교습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과학이나 법률, 역사, 지리책을 100여권읽었고, 몸이 아프면 치료에 관한 서적을 100여권 읽었고, 운동실력이 필요하면 관련 책을 100여권을 읽었고, 정보전에 휘말리면 그에 관한 책을 100여권 읽었고, 심지어 일하다가 병이나면 Ernie J. Zelinski의 [적게 일하고 많이 놀아라]란 책을 읽을 정도였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의 관점은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넓고 객관적인듯 하다. 북한사회나 한국사회의 이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국민의 시간속에 독서가 차지할 곳을 이념이나 그것에서 비롯된 획일적인 관심사가 차지하고 있는 비극이 있는듯 하다. 국가의 미래는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독서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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