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루소의 역사공부


나는 언제부터인가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 누군가 싸움을 걸어오면 그 싸움에 응대하기보다는 그 누군가가 왜 싸움을 걸었는지, 배경에는 어떤 생각이 있는지, 나아가서는 저런 기질을 만든 것은 가정사탓인지, 아니면 동류집단에서 유행하고 있는 분위기의 탓인지를 생각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으며, 반대로 결과를 보며 원인을 유추할 수도 있고, 어떤 열악한 지위나 장소에서도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무한한 생각의 꺼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 인간사(人間事)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으며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배움이란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존재하며, 사회는 내속에 있는  다른 욕망들이 배움의 열망으로 대체될때는 비싼 학비를 내는 어떤 학교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가르쳐주는듯 하다.

루소는 특히 인간을 읽는 방법으로 역사의 도움을 강조하고 있는데,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오밀조밀한 피조물들의 세계를  형성해나가는지를 한 눈에 통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역사공부를 권하고 있다. 방금 '피조물'이란 창조주의 관점에서 표현한 종교적인 단어를 인용한 까닭은 역사공부는 관점을 그만큼 넓혀줄 수 있다는 과장된 표현으로 인용해 본 것인데, 그만큼 넓은 관점을 약속해준다는 확신이 떠오를때가 종종 있는듯 하다.

역사의 도움을 얻으면 철학의 교훈 없이도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 도움을 얻으면 그는 냉정하고 편견없는 방청자로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원조자나 그들의 비난자로서가 아닌 그들의 비판자로서 말이다.

- 중략 - 

더구나 역사에 그려진 사실은 진실로 있었던 것의 정확한 기술이기는 커녕 역사가의 머릿속에서 변형되어 그의 이해에 따라 빚어지고 그의 편견에 물들여진다. 청년에 대해서 가장 나쁜 역사가는 그에게 자신의 의견을 가르치는 역사가이다. 사실 그 다음은 만사를 그 자신에게 판단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배우는 것이다. 만일 그가 항상 작가의 입장에서만 지도하게 된다면 결국 그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서 보는 셈이되어 눈이 없어지게 되면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 

- 중략 -

역사에는 결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 때와 장소에 따라 확정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저한 사실만을 기록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완만하고 점진적인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으므로 언제나 모르고 있다. 역사가는 한 정치가를 그리는데 있어서 그가 보아도 좋도록 그린다. 역사가가 그리는 것은 그 자신보다도 그의 의상을 그릴 뿐이다. 나는 차라리 개인의 전기를 읽어서 인간 마음의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 루소[에밀]-

제도권 밖에서 인간과 사회를 공부하여 한때 에밀을 저술하고 나서 수배자 신세가 되었던 루소의 자율적인 학습관이 잘 나타나 있는듯 하다. 자연으로 돌아가길 강조했던 루소는 구속받지 않는 생각의 가치를 말하고 있으며 본인이 그 가치를 실증하여 인류역사상 사상의 발전에 가장 큰 변화와 공헌을 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듯 하다.

루소의 생각이 현재 내가 속한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좀 더 가치있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괜한 마음이 아닌것 같다. 이곳은 세뇌 시킬려는 마음과 세뇌 당하는 마음만 만연하고 있는듯 하다. 루소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