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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5일 금요일

Homo swindler swindler (사기 사기 사람)과 불확실성


어떤 부자가 악어를 키우고 있는 연못이 있는 정원에서 파티를 하다가 손님들에게 연못을 헤엄쳐 건너는 사람에게 많은 재산을 줄것을 제의했다. (원래 딸을 줄 것을 제의했다는 우화인데, 불확실성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불쌍한 딸의 입장과 양성평등의 구현을 위해서 그냥 재산으로 바꿔봤다.)

순간 어떤 젊은이가 연못에 뛰어들어 헤엄을 쳐서 건너갔다. 사람들은 그 젊은이의 용기를 칭찬하며 부자는 자신의 약속을 지킬 것을 다짐하며 물었다.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올 수 있나?" 그러자 젊은이가 외쳤다. "누가 나를 밀었소?"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확실성을 포함시키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의 시조로 알려진 경제학자 나이트가  한 말이다. 나이트는 측정이 불가능한 불확실성(An unmeasurable uncertainty)의 위험은 이윤발생의 원천이며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불확실한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판단력이 있는 관리자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말한다. 물론 관리자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 누군가의 창의력을 필요로 하고, 그 창의력이 작게는 개인, 기업과 크게는 국가와 인류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불확실성이 큰 사회일수록 창의력과 판단력, 예측력을 더욱 필요로 하고,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놓인 기업일수록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가능한 상황으로 제압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듯 하다.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벌어 저축을 한다. 그리고 좋은 직장을 얻을려고 노력하고,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데, 역시 불확실성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전후(戰後)의 혼란속에서 재벌이 탄생할 수 있는 것도 불확실한 상황을 이겨나간 공로에 대한 댓가로 많은 사람들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인류역사에서 반드시 과학문명이나 물질문명의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불확실성을 타개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일 수록 정신적인 확실성을 지향하는 노력이 있게 마련인데, 춘추전국시대 혼란기에 발달한 중국의 여러가지 철학사상이나 불확실한 개인의 운명이나 사회적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등장하는 종교사상, 이데올로기 사상등도 모두 불확실성을 관리가능한 확실성으로 바꿀려는 노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불확실성을 이겨나갈려는 자세조차도 불확실할때는 문제가 되는듯 하다. 불확실한 상황은 실증(實證)과 비증(非證)의 틈새시장을 발달시키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듯 하다. 불확실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간절한 요구는 쓸모없는 창의력과 판단력, 직관력도 함께 불러들이는 문제도 생기는듯 하다. 불확실한 처지에 있는 개인은 사기범죄에 노출되기 쉽고,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국가는 이념이나 종교에 집착하기 쉬운 성향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듯 하다. 간절한 소망이 노력을 동반하지 않을때는 '보이지 않는 손들'의 '보이지 않는 투쟁'이 심각한듯 하다.

한국이 다른 범죄율은 낮은데, 사기나 횡령과 같은 범죄율은 세계최고라는 통계를 보고 생각해 보았다. 어느 날 '성공하는 법'에 관한 실용서적을 읽다가 어떤 창의적인 노력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서 있는 돈을 내놓게 할 수 있는지에 관한 기술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머나먼 미래를 예측해 보았다. 누구나가 그런 기술을 배워서 서로의 주머니를 노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만들어진다면 창의성은 누가 발휘하며 위험을 감수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머나먼 미래의 예측이 아닌 지금의 상황인듯 하다.내 자신은 이렇게 예측력이 없어서 초라하게 사는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 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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