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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8일 월요일

한국형 노인과 젊은이를 보는 애상(哀想)


어느 집에 키다리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마당에는 과일나무에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있고, 꽃나무에는 꽃이 피어있으며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와 새소리에 묻혀서 함께 재잘거리고, 꽃더미에 묻혀서 웃고 있었다. 어느 날 키다리 할아버지는 심술이 나서 아이들을 쫓아버렸다. 그러자 꽃도 지고, 과일은 떨어졌으며, 새는 떠나고, 쓸쓸한 바람만 불었다. 키다리 할아버지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때 국어교재에 나온 이야기였는데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연세 있으신 지인이 오랫동안 같은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데,방음도 제대로 안되는 연립주택에서 어린아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들 웃음소리가 그치고 적막함만 감돈다고 한다.  그 시절에 비해 먹어버린 나이와 더불어 스러져가는 인생과 쇠락해 가는 시간의 여운도 함께 느낀다고 말한다.

어느 날 유명 정치인이 요즘 젊은이들이 아무 일이나 하지 않을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아무일이나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꿈이나 희망을 포기하고 '연명'을 위해서 근로현장에 선다면 모를까 한국에서 삼년 돈을 모아 고향에 가면 여기서부터 저기 지평선까지 땅을 살 수 있다는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희망에 비하면 한국 젊은이들의 자화상은 초라하기 이를바 없는듯 하다.

젊은 사람과 노인을 비교해보면, 노인과 젊은이가 많이 다르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인듯 하다. 기력(氣力)과 패기(覇氣)의 있고 없음은 사려(思慮)와 심지(心智)의 있고 없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과 발전에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이끌어 온 공과(供誇)를 생각하면 갖은 시련을 겪은 세대들의 어려움은 보상받지 못하는 슬픈 전설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것도 아닌듯 하다.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경제적인 것과 정신적인 정성의 모든 것을 바친 노인들의 완고한 고집, 그래서 변할 수 없는 습관, 쇠락해 가는 심신(心身)은 이해하면서도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면 암울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듯 하다.

일찌기 한국이 북유럽형 복지국가로 변신하기 위한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근본적으로 국정(國政)과 관련된 논의에서 이념논리를 일찌감치 지워버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한 편으로는 경쟁과 이익, 감각적인 현실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통일이란' 나눠줘야 하는 부담'으로 보수적인 인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어른들이 극복하지 못한 단기적인 사고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해 나가는 비극을 보는듯 하다.

백년대계가 서 있으면 희망이 생기는데, 그 희망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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