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ed By Blogger

2014년 8월 2일 토요일

백년동안의 고답(古踏) / 제한된 합리성


어느 날 연로하신 분과 논쟁이 있었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직관에 승복하라는 주장이었는데, 세상은 변했으므로 경험으로 만들어진 직관도 수정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시는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드렸다.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다가 새로운 스타일로  운동을 하고 있으니 '우리사람'으로 여긴 누군가가 일일이 운동스타일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순간 젊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옛날 그 시절 그 스타일"의 연륜을 짐작하게 했다.

행태주의 이론을 내놓은 경영학자이며 심리학자인 사이먼(Herbert Simon 1916 ~ 2001)은 전통적 경제학의 핵심개념인 합리성과 비용편익분석등은 사람들의 주관적 가치관이나 심리적 요인같은 형 이상학적인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정보의 부족도 합리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고 하는데, 사이먼은 이것을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고 말한다.

사실상 완벽한 합리성이란 인간세계에서 존재할수 없는데, 합리성을 추구할려는 인간의 노력은 '현 상태의 개선을 위한 노력'임을 항상 주지(主知)해야 할 듯 하다. 개선의 의지가 망각된 합리성이란 과학적 합리성을 내세우면서도 퇴보해나가는 북한의 예에서도 보듯이 목적전치현상의 결과를 참혹하게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사회는 북한과는 반대로 합리성에 저항하는 스타일을 많이 보여주는듯 한데,대칭적 사회의 필연적인 모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성이란 추구하냐 추구하지 않느냐 문제도 아니고,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의 상반되고 양극적인 문제도 아닌듯 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움직여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으며 결과 보다는 노력과 개선의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개념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국사회의 비합리성의 역사적 뿌리는 참으로 깊은듯 하다. 조선왕조의 전근대적인 시기, 일제치하의 전체주의적인 억압, 이념대립등의 시기를 겪으면서 합리성을 계산하지 않는 습관조차 붙어버린 사회에서 비합리적인 분위기가 사회개선의 의지가 없이 불로소득처럼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기 좋은 조건을 갖추었음을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자주 인식하곤 한다.

사회문제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습관이나 타성 또는 대칭사회인 북한에 대한 부정과 결부되어 관심을 집중시키지 못하는듯 한데 북한사회처럼 여러가지 요인과 결부되어 장기적으로 정체된 사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보여지기도 하는듯 하다.

'합리성의 추구'란 한국사회가 노력해야 할 '끝나지 않는 길'인듯 하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