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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30일 금요일

말을 다 못한 아담스미스, 말을 다 못들은 마르크스


갑자기 크게 발전해 나가는 전망있는 회사에서 일하던 정직하고 순박하기만한 가장이 '융통성이 없음으로 인한 회사와 동료들과의 부조화'란 이유로 제대로 일을 해 보지도 못하고 강제 퇴직당하는 일을 목격하였다. 비숫한 경험을 딛고 일어선 그 회사 사주(社主)의 집념과 속속들이 능률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회사의 메커니즘을 보며 경제적인 효율성과 도덕적인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적이 있다.

동시에 당장 현실적으로 한국의 사회보장 장치가 일을 할려고 하는곳 마다 비숫한 이유로 쫒겨나오는, 아이 둘을 둔 저 둔한 가장을 구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모진 결심으로 사주와 같은 성공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아니면 가진것은 없지만 선하게 살았다는 세간의 지나가는 바람소리 같은 한 마디를 가치있은 삶으로 착각하며 별이 될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아이 둘을 둔 중년의 독신 여성이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 곳에서 기회를 활용하라는 의도로 만들어진 성공학 책의 주인공으로 년년세세 등장할 법하다. 마치 미국의 메리케이 화장품 회사의 사주처럼......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로서 대칭사상인 마르크시즘까지 유발시킨 아담스미스의 경제이론은 순기능과 역기능을 확대시키면서 인류 경제사를 200년이나 주도해왔다. 프랑스의 마르크스 철학자 알튀세르( Louis Althuser 1918 ~ 1990 )는 경제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지만 경제구조보다 위의 상부구조인 국가나 법률적, 이념적, 정치적 영역에도 상대적인 자율성과 독자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담스미스 이후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물질적인 성공과 시장실패, 그리고 시장실패가 낳은 과학적 사회주의(마르크시즘)의 팽창,그 이후에 나타난 두 경제 이론의 대립은 인류 역사상(특히 타고르가 극찬했던 동방의 등불인 어느 나라에서)다른 영역으로의 관심을 모두 흡수하는 블랙홀이었던듯 싶다.

원래 아담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이론은 당시 청교도적인 도덕적 가치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이론이다. 아담스미스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 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 조건이란 바로 '도덕감정'이라고 말한다.

아담스미스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만 살 수 있으며,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은 사랑과 호의라는 도덕적인 감정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도덕적인 감정은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정의'와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인애'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데, 이런 도덕적인 감정이 시장경제의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아담스미스는 경제적인 능률성만 강조하는 분업시스템이 노동자를 우둔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초 학문을 익혀서 창조적인 두뇌활용도 병행 할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공공교육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좀 찌질하기도 한 개인적인 말이지만 단순한 기계적인 암기에 익숙치 못한체로 방황했던 내 젊은 날을 자책했던 적이 많았는데, 아담스미스의 생각을 알고는 아담스미스경제이론이 복음처럼 여겨질것을 걱정해야 할 일도 우려가 되는듯 하다.

경제학에 대한 논쟁이 아담스미스와 마르크스가 만든 이데올로기장치를 벗어나지 못하는것 같은데, 알튀세르는 학교, 종교, 매스미디어등 모든 사회제도가 이데올로기장치속에 갇혀 있다고 말한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각성함으로써 이데올로기의 형성과정을 분석하고, 행위적 수준에서 사회관계들을 변화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말이 어려운데 미국 철학자이며 교육학자인 존 듀이( John Dewey 1859 ~ 1952 )의 말처럼 '사고는 실천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을 염두에 두면 좋을 듯 하다.

만약 자유주의 시장경제이론은 도덕적 감정이 전제되어야 하며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아담스미스의 주장이 경제이론의 전제조건으로서 많이 알려졌다면, 물질적이고 기계적인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이 등장하지 못했을 법하다. 결국 인간의 도덕적인 감정을 불신하는 마르크스는 해답을 '시스템(장치)' 으로 해결할려고 했고, 그 두 이념내지는 경제이론이 인간의 도덕적인 감정을 배제 시키고 인류 역사상 엄청난 재난을 가져 올 줄은 아무도 몰랐던것 같다.

한국에서는 두 이념의 기계적인 대립이 계속되는동안 인간적인 도덕감정을 찾는 시도가 종교심을 구하는 민중의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듯 한데, 오늘도 회사에서 쫒겨나고 사회보장시스템에서도 배제된 어느 아이들의 어머니가 냉엄한 현실을 기도와 눈물로써 위안을 받고 있는줄 모를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는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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