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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9일 금요일

그로테스크(기괴함) 4 / 법조인의 철학

청년기에 잠시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합격 수기를 많이 읽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많았다. 지금까지 몇가지는 간접적으로 소개했는데, 좀 비약 해서 말하자면 법조망국론을 이야기 할 만큼 길을 잘못 간 법조인은 미래의 국가와 사회 공동체에 나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암시하는 합격 수기의 내용도 많았다. 특히 사법시험 합격자가 법조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법조인의 본질을 벗어나면(예를 들면 정치인이 된다거나 하면) 사회문제의 발단이 될 소지가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을 예정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중의 하나는 법조인이 되고 나서 전혀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인이 되어서 당연하게 보수적으로 안주하며 창조와 발전이 필요한 사회의 본질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 많은 시민들은 젊은 시절의 우수한 두뇌가 중년기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거나, 지난 날의 한국 교육 시스템은 그다지 미래 지향적이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많은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닌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특히 검찰 출신 정치인)은 자신과 검찰 내집단(inner circle)을 위해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당연하게도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민생, 경제, 역사, 지리, 과학등 다양한 분야에 관점을 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은 법적으로는 옳지만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행위를 하기 쉽다.

 

인간이 오랫동안 익혀온 관점이 얼마나 변하기 힘든 것인지 어느 사법시험 합격 수기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수험생이 사법시험 2차 논술 시험을 치렀는데, 국민 윤리(국민 철학)과목의 약술형 문제로 노장 사상에 대해서 약술 하라는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도가(道家)에 관해서 논하라는 문제였다. 당시 사법시험은 아무리 빨라야 2년 평균 4, 더욱 장기적으로는 10년씩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수험생들 사이에는 일찍 합격하는 사람들은 소장이라고 하고 장기적으로 수험 생활에 매달리는 사람들을 노장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의 수험생은 노장 사상에 관한 문제가 나오자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사상이라는 문제로 잘못 연상한 모양이었다. 그 수험생은 경노 사상(노인을 공경하자는 사상)에 대해서 서술하고 시험장을 나왔다고 한다. 다행히 다른 시험 문제를 제대로 답하여 합격은 했다고 한다.

 

어떤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관점이 경로 의존성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만약 내가 사법시험을 합격하지 못해서 길을 잘못 간 법조인에 대해서 비난한다고 할 사람이 있을 까봐 하는 말인데, 나는 한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집중하고 관점을 넓히기 위해 지리, 경제학, 철학, 공학, 기술, 사회학, 심리학등 많은 책을 읽었다. 노장 사상을 서술하라는 문제가 나오면 언제든지 A4 용지 몇 장은 서술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인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 동양 사상을 논하는 일은 삼가하고 있었다. 동양사상은 수직적 사회 관계가 지나치게 반영되어 있다. 때문에 사회가 발전하려면 어느 정도 가려서 듣는 예절이 필요하다.

 

과거에 사법시험 공부를 했던 수험생들은 장기 수험 생활의 고통에 관한 돌파구로서 동양 사상에 심취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동양 철학자나 종교인을 빙자한 그로테스크들이 근처에 꼬이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그런 사람들을 봤다. 그러나 철학은 구복 신앙이 아니다. 철학은 스스로 노력하여 생각하고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다. 오늘도 유령처럼 떠돌며 마음 약한 사람들을 가스라이팅 하는 그로테스크들은 철학자가 아닌 것이다.

 

부록으로 경로의존성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어머니가 누나와 남동생에게 케이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키가 큰 성장기의 누나에게 더 큰 몫을 주니까 남동생이 따졌다. “이런식으로 하면 누나와 나의 키는 격차가 점점 벌어질거란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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