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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25일 토요일

의식이 고립된 세계

언젠가 박수길 전 유엔대사의 자서전 읽다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국내정치의 생리와 맞지않기 때문에 국내정치계에서 소모되기보다 세계평화와 번영이라는 더 높은 가치에 헌신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년후에 박수길 대사의 우려는 현실화 되었다. 한 편으로는 젊었을때 멋지고 정의로운 법조인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정치인이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와 점점 멀어지는 행동을 하며, 거미줄처럼 위태롭고 끈적끈적한 정치적 인연을 보전할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박수칠때 떠나는 지혜로움'을 한 번 생각해보곤 한다.

가끔 일터에서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거나 정서가 불안정한 사람들을 볼때면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어떤 노폭같은 노인 근로자는 좀 센 군인시절에 기관총자루로 심각한 폭행을 당한적이 있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심각하게 권위적인 관리자가 과거에 강한 권위에 종속당하면서 스스로를 그 세계에 일체화시킨 사실도 알게 된다. 정신이 사회의식이나 종교적인 억압을 당하면 억눌린 의식은 변성이 되어 이상한 방법으로 발산하게 되는데, 일본인들의 좀 '특별한'의식세계나 이념화된 정치인들이나 국민들이 돌발적이고 격렬하게 처신하는 이유도 해석이 된다. 이슬람세계가 다소 폭력적인 이유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계율같은 종교적 억압이 강력한데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다.

무지하거나 의식이 약한 사람들을 휘어잡고 있는 카리스마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사태나 환경의 피해자와 피의자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많은 세상'을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국제정치에 익숙한 인물이 국내정치의 생리를 알지 못하며, 정의를 위하여 애쓰는 전력을 가진 인물이 자신이 그 정의로움을 평가받는 대상이 되었을때 자아상(自我狀)에 어떤 혼란이 오지 않았을까도 생각해본다.  

지난 10여년간 정치지도자(편의상 그냥 지도자라고 표현함)의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인 정신바탕에 대한 우려와 참견을 많이 하였던 것 같다. 블러그에 올려왔던 대중적이지 않은 특별한 글들의 중심내용에는 그런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음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문제냐하면, 국가정책의 근본문제를 바라보는 시발점이 이념적이거나 종교적이라는 사실은 증거를 내 놓으라면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포괄적이고 근본적이지만, 세월호사건이나 최순실사건의 배후에 어떤 종교적인 인연이 실마리가 되었음이 입증된 사실만 봐도 의식을 억압하고 다양성을 흐트리는 정신세계에 대해서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듯 하다. 그래서 항상 인문철학이나 역사의식등의 교육, 그리고 자율적인 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역설하는 중이다.

형법에는 피의자가 사건을 일으키게 된 동기와 인연을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 문제삼는 이론이 있다. 예를들면 범죄자를 낳은 부모, 그 부모를 낳은 부모, 그리고 그 조부모를 낳은 증조부모까지 피의혐의와 인관관계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상당인과관계설'이 등장을 하게 된다. 피의자의 범죄와 상당한 인과관계에 있는 문제만 심판의 자료에 개입시키자는 이론이다.

종교나 이념적 억압이 어떤 실체를 드러내거나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서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는듯 하다. 법을 잘 아는 지인이 깐죽거리고 나서 증거 있으면 이야기해보고 돈 벌어놓았으면 자기를 치라고 한 일이 있었는데, 이념과 종교에 고립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것 같다.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교육적인 문제로 좀 더 생각하는 사람으로 교육시킬 일이다. 나도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이념이나 종교는 불완전한 사람을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잊게하여 완전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데 문제가 있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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