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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1일 금요일

복수와 신뢰의 경제


언젠가 일터에 심각한 위해를 입히는 무뢰배가 있었다. 권력적인 지위를 얻고자 수험생활을 병행하던 모습이나 독실한 종교적 믿음을 가질려고 애쓰던 모습등을 생각하며 성장과정에서의 좋지않은 경험등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마음의 점을 찍지 못하고 점점 비뚤어져 간듯 하다. 상처입은 마음을 직장동료들에게 전가시키며 복수가 가져다 주는 달콤할것 같은 과실을 혼자만이 챙길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일터는 비숫한 마음들에 의해 점점 피폐해져갔다.

시간이 흘러 비숫한 무뢰배를 보면 그 동료가 생각이 났는데, 종종 연락을 해서 근황을 물어보곤 하였다. 꽤 오랫동안 그러다가 어느 날 그 동료가 비명을 질렀다. "날 자꾸 괴롭히면 정말 가만히 안있을꺼야!" 한바탕 웃고나서 그 이후로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복수는 누구에게 앙갚음을 함으로써 억울함을 달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복수와 신뢰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러스트 게임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나타났듯이 사람들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 만날 일도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신뢰를 가지려는 경향을 보인다. 일반적인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맹목적인 신뢰는 비이성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된 사회계약이 깨어졌을 때, 우리가 크게 분노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경향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사회계약을 깨뜨린 사람들에 대해 시간과 돈을 소비하고, 심지어 신체적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복수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때의 분노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끼리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보다 엄청난 이점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서 높은 수준의 신뢰를 구축하려 노력한다.

- Dan Ariely의 [THE UPSIDE OF IRRATIONALITY]중에서 - 

가끔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하거나 삐라살포등으로 북한체제에 대해 자극을 하면 남북의 신뢰관계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복수를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곤한다. 물론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이나 북한체제에서 핍박받던 탈북자들을 생각하면 북한이 주장하는 논리의 정당성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듯 하다. 그런데 신뢰관계를 깬 문제의 중대성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래지향적인(?) 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누구나 추측하는 바가 있을것 같다.

한국인들은 한이 많다고 한다. 대게는 인간적이고 평화로운 삶을 파괴한 것들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 문제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인간관계를 피폐하게 하는 이들과 깊은 이야기를 해보면 상처받은 과거가 있음을 드러낸다. 국가적으로는 이념대립의 문제도 복수심이 이면에 아주 중대하게 내재해 있는것으로 생각된다. 더 본질적이거나 다른 문제에 대해서 관점을 돌려야 하는데도 이념문제가 개입하는 이유는 과거에 강한 자극을 주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자극이 바탕이 된 현실(남북관계같은)이 면면히 이어져 관점을 강하게 붙들어매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듯 하다. 다만 치유가 안될뿐이라는 생각이다.

대중은 권위적인것 보다 신뢰감을 무너뜨리는 것을 더 싫어하는듯 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감,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우려감이 더 큰 것으로 생각된다. 이념이나 종교적 일탈, 정치적 일탈, 사기등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만연할 수록 사회의 신뢰감은 깨지고 복수를 위해 칼을 가는 한많은 생각들이 많아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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