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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일 토요일

북한의 체제유지노력의 전말


2차대전때 프랑스가 독일에 패전한 날, 프랑스의 수상 폴 레노는 처칠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를 했습니다." 처칠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 50기~60기에 달하는 구축함을 조달하도록 차관을 승인해 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때가 5월 15일이었는데, 루즈벨트는 차관을 빌려주기 위해서 하원의 승인이 필요하고, 몇 주일이 걸릴것이라고 거절했다. 

몇일후에 처칠은 루즈벨트에게 다시 연락을 해서 처칠 자신이 이끄는 영국은 끝까지 싸울것이지만 차기 정부의 수상은 영국이 패한다면 협상카드로 영국함대를 독일에 넘겨줄 것이며, 독일은 그 함대를 이용해 미국까지 위협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프랑크왕국시절부터 이합집산에 능한 유럽에서의 전쟁이란 승자와 패자의 사정이 그렇게 냉혹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프랑스를 패배시키고도 독일의 식민정권을 세우지 않고 프랑스의 괴로정부인 비씨정부를 세운 독일의 선택이나 영국이 독일에 패배하고도 영국정부는 독일과 '협상'해서 독일에 이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비교적 '관대한' 전쟁문화는 존재냐 소멸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인 오리엔탈적 전쟁문화를 무색하게 하는듯 하다.

특히 민족적인 결집성이 강한 동양의 국가, 그 중에서도 근대이후 약소국으로 존재했던 한반도에서는 침략에 대해서 패배를 인정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냉혹한 댓가를 치루는지 일본통치하 36년을 거치면서 온 몸으로 익힌 절망적인 경험이었던듯 싶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으로 갈라진 북한정부와 한국정부는 각자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데, 아마 그 차이는 외세(外勢)나 외침(外侵)에 대해서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하는 문제로 더욱 큰 성향 차이를 나타낸듯 하다.

북한의 건국정부는 이념적인 성향과 더불어 민족적인 고립성이 한국정부보다 한층 강화된 모습을 보이는데, 북한 건국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공산주의자이면서 일본의 침략에 맞서서 중국정부나 소련정부에 공헌하던 인사들로 이루어졌고, 특히 그 인사들 대부분은 정치적 또는 외교적인 소양이 없는 군인출신들이었던 것을 생각해볼 수 있을것 같다. 

북한이 그렇게 문제삼았던 한국의 친미정부는 2차대전의 승전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46퍼센트를 차지한 막강한 세계국가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비교적 자유주의적인 분위기에서 협상이나 변화에 능한 인사들이 건국에 참여를 했고,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을 받게 되었던것 같다.

그러니까 북한과 한국의 차이는 엄밀하게 따지면 이념이외의 더 큰 변수가 개입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나 국제정세의 분위기를 읽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던것 같기도 하고, 북한의 호전적이거나 전투적이고 군사적인 건국인사들의 분위기가 건국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도 있을것 같다.

더 나쁜것은 '외세'에 대해서 민감하고 과장되며 부정적인 관점이 북한에서 형성되어 지금까지도 주체사상을 거쳐서 '우리민족끼리'라던가 '체제유지'라는 구호에 오랫동안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변하지 않는 정신문화인듯 하다. 그 이면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대등할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한 약소국의 비극, 그리고 열세를 인식했을때 종속으로 직결된다는 외세에 대한 민감한 공포감등이 북한체제를 끊임없이 수렁속으로 밀어넣고 있는듯 하다.

사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특성상, 변화와 통일이 과거의 나쁜 경험과 습관을 일시에 사라지게 만드는 명약처방이라는 것을 인지하기도 힘든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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