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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7일 금요일

자폐적 세계(Autistic world)


서른 무렵에 초등학교때 친구 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20여년을 잊고 지냈던 친구였지만 단짝이었고 공부도 잘 하였으며 예방 주사맞는것을 무척 싫어했다는 기억이 남는 친구였다. 갑자기 내가 사는 지방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으니 한 번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20여년만에 만난 어린시절의 친구의 모습은 처참했다. 총명했던 모습은 없어지고 어린아이같은 정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형의 말로는 자폐증세가 있어서 나와 함께 자주 만나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면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내가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친구는 답을 하는 모양으로 대화를 해 나갔다. 어두운 거리에서 극장 간판의 무술 영화를 보며, 어릴때 무협만화를 좋아하던 친구가 생각나 친구에게 무술영화의 한 장면을 이야기 하는데, 친구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부르르 떠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인가 폭력과 억압에 쇼크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남의 집안 일에 유난히 앞장서서 참견하던 어머니와 막내인 친구에게 자율적인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세명의 형들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그 친구의 집 근처는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소리 대신 친구의 울음소리로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던 생각이 났다. 20여년만에 만난 친구의 어머니는 여전했다. 강하고, 오지랍이 넓었다. 어머니 자신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막내의 불운한 삶이 본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듯 했다. 어머니와 형들은 막내에게서 에너지를 얻어낼때는 좋았지만 그것때문에 평생을 책임져야할 짐이 생겼다는 해석이 되었다.

사람은 살면서 에너지 전쟁을 겪는다. 아주 나쁜 상황은 태어 날때부터 에너지를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자율과 책임이 없이 살아가는 상황인데, 이때 구성원의 절반이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랫동안 봉건적인 지배관계나 권위주의적인 권력관계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은 말이 시민이지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신민(臣民)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본다. 자율을 얻어내고자 하는 의지는 '저항'이라는 명분으로 족쇄가 채워지는 경우도 있는듯 하다. 어느 날 보편적인 삶(경제적 풍요, 가정같은)에 신경을 쓸려고 하면 불현듯 엄습하는 에너지지배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에 심취하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면 모든것을 잃어버렸다는 착각에 자살을 하기도 한다. 자율적인 의지를 가진 자신의 진행중인 삶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는다.

국가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지도자와 구성원이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존을 위해서 노력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며 세계인으로서의 자각에 임하여 생각하고 행동할때 자폐적 증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듯 하다. 이념문제도 자폐적 증세의 하나로 생각된다. 모든 자율적인 의식세계를 차단 시킨다. 그래서 자율적인 의식을 성장시키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영을 위한 의식도 스스로가 일깨워 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연령 이상의 한국의 시민들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 많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인 이익이나 이념적인 사고의 족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율적인 시민의식이 성장하지 못하던 역사적인 사실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국가의 짐이 될 가능성도 있고, 그 전조를 여기저기서 느끼기도 한다. 적시(適時)에 필요한 변화를 얻어내지 못하는 국가는 자폐적증세를 지고 가야한다. 한반도의 절반은 그렇게 되었고, 세계가 부담해야 할  짐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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