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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7일 금요일

한국에서 이념의 양극화 / 그 곳엔 섬이 있다.


노조도 없고, 기업도 어려운 곳에서 고용주와 종업원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면서 한국경제 안에는 '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것 같다. 국가의 제도적 지원도 없고, 이념적인 지주도 없고, 소수의 그들만이 옹기종기 모여서 꾸려가는 한국경제의 '섬'이 있는것 같다.

한국에서는 매스컴이나 사회과학의 학리적(學理的)인 해석이 적용되기 힘든 곳이 있는데,소외된 제3의 노동시장을 형성하는 제3의 기업영역(소기업등)들이 그런것 같다.

철도 민영화문제로 한참 소란스러운데, 나름 정부와 철도노조와의 대결은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대처의 정책(대처리즘)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언젠가는 정치적인 주도권을 얻을 수 있는 야당의 이념적인 바탕이 될 수 있는 국가사회주의 이념의 대결로 비화되는것 같다.

영국의 대처수상은 복지과잉으로 침체된 영국경제를 자유경쟁시장 정책의 부활로 되살려놓고,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을 승리로 이끈 업적으로 영국인들의 존경을 받기도 하였다.  영국이 가장 필요로 하던 시절에 근면이 최고의 가치였던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전성기의 영국으로 돌아가자던 대처수상의 호소는 옛 영화를 꿈꾸는 영국인들의 자발적인 동조를 이끌어내는데 부족함이 없었던듯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건데, 아직은 한국인의 근면성이 문제가 된다거나 과잉복지의 문제를 안고 있는것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수당의 거물이었던 이노크 파월이 진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 "건설적이 되시오 이노크 건설적으로 .........."라고 외친 대처수상의 심중에는 시급한 현실개선의 의중이 담겨 있었던듯 하다.    

철도의 민영화가 가져다주는 의미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안정된 고용환경과 작지않다고 느끼는 급여수준을 가진 철도노조원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 마음속에는 비판이 아니라 시민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것 같다.

이념적인 프레임은 중요하지 않은것 같다. 이념에 대한 반론을 학리적으로 풀어내는 여유도 없는것 같다.추운 겨울날 폐지가 잔뜩 담긴 수레를 끌고 교차로를 가로질러 가면서 교통순환을 막는 노인의 얼굴에서,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젊은 날의 패기가 일찌감치 고개숙인 심리적 안정감(?)으로 자리잡는 젊은이들의 고민어린 얼굴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는것 같다.

한국에는 정치가도 모르고 학자들도 모르는 '섬'이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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