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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9일 월요일

무신정변 / 안정성과 발전지향성의 대결


1170년 고려 의종때 일어났던 무신정변은 중국 송나라의 문치주의(文治主義)의 영향을 받은 고려 귀족사회의 문제점을 시정하려고 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을것 같다. 한국현대사에서도 비숫한 일이 발생했지만 문민사회가 장기화 되던지 무인집권이 장기화 되던지 편향적인 문제점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것이 옳다고 극단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문제인것 같다.

대체로 유목민족에게는 외부투쟁이 중요하기 때문에 문민사회라는것이 존재할수가 없었고, 문인들은 무인들이 국가를 건설하고 안정화 시키는 기간에 국치(國治) 의 보조자적인 역할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안정된 농경사회에서는 외부투쟁보다는 내부의 안정과 지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안정된 시스템속에서 문민이 우월한 상태를 약속할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듯 하다.

문민의 우월함을 표현하자면 지혜, 안정등을 말할 수 있겠고, 무인의 우월함을 표현하자면 개척, 변화등을 말할 수 있을것 같다. 문제점이라면 서로 우월함의 반대를 표현하면 될것 같은데, 어느 상황이던지 서로 양극적인 분류로 몰고가는 한국사회의 특성은 언제든지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올수 있는 열정을 내포하고 있는것 같다.

이념문제등도 깊게 생각해보면 문민적인 상상력이 내면의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고, 무인적인 성향들이 실천을 앞장서는 분업을 달성하고 있는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말과 글이 난무하여 현실을 왜곡시키는 현상을 무척 싫어하곤 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전에 무인적인 억압과 수직사회를 싫어했던적이 있어서 장기화된 사회흐름의 성향을 마음으로 담아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사회는 어떨까. 한국사회는 지정학적인 입지조건과 남북대치상황등이 문민정치의 잇점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태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지만 무인집권의 반민주성등을 역사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문민성향의 문제점을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문제의 근본을 살펴보면 문민우월이냐, 무인집권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그 이면에는 안정성과 발전지향성의 대결이 잠재해 있는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이념이나 종교의 번성,과학자나 기술자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 매스컴의 지나친 대중성, 직업선택에 있어서 지나친 안정화 경향등은 문민사회적 폐단을 보여주는것 같다.

냉전논리에 휘말려 분배의 문제를 주장하기 힘든것처럼 행복의 정의에 휘말려 사회가 정체되는 현상도 시정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무신정변의 이면에는 사회정체성(社會停滯性)에 대한 반란의 모습을 비중있게 내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아날로그적 선(善)과 디지털 악(惡)


지난 정부초기에 나의 디지털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가족의 입장에서 더 이상 이념의 피해자가 되지는 말아야한다는 생각에 이념문제의 근원을 추적해가는 모습이 새로 들어서는 정부를 반대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했던것 같다. 집권초부터 이념을 이용하고, 특수임무수행자를 최대한 이용을 해서 반대편에 위협감을 주는 '도구'로 이용했던 점은 지금도 마음을 안좋게 만든다.

이 문제에 대해서 특수임무수행자가족보다도 당사자분들이 더 느끼는 바가 많았으리라고 생각하며, 내 문제에만 국한해서 생각을 해봐도 내 전화나 컴퓨터가 패킷도청(스니핑 : sniffing)당하는 상황은 별천지를 느끼게 하였다. 하필이면 새벽에 사격훈련을 시작하면서 정상회담만 있으면 경기용공기총을 모두 영치시키는 정부의 포퍼먼스도 시간적으로 일치되어 나갔는데, 평범하고 선량한 개인이 시스템을 틀어쥔 악인앞에 얼마나 하잘것없이 무력한지를 느끼기도 하였다.

더 기가 막힌것은 정권의 정신적인 배후에 부패한 종교인사들이 자리잡고 있음을 보면서,'어디 한 번 비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기가 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결과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것 같다. 문제가 깊어질때가 되서야 블러그상으로나마 문제를 거론하는 무기력하고 왜소한 내 자신을 느끼기도 하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섭리를 확신하기도 한것 같다.

이념과 종교의 부작용이 한반도의 고질적인 병폐라는 생각은 개인적으로나 거국적으로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문제인것 같다. 특히 북한의 비극은 역사적으로 최악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는데, 때로는 그 둘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을 벌여 사회전체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옳고 그른것을 판단하는 힘은 아날로그적이다. 인간의 본심에서 우러 나오는 힘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 디지털화 되다보니 악인의 역할도 디지털화되어간다. 가끔 북한 사이버부대의 관심을 유도해서 반주체사상과 같은 탈이데올로기의 씨앗을 뿌릴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인간성의 교류가 디지털세계를 통해서 얼마나 작용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거나 국가의 에너지가 꺾인것은 통탄할 일이지만 지난 정부가 실정(失政)을 안했으면 개인적으로 콩심은데 콩나지 않는다는 모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런지도 의문이다. 정치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정신의 실상이라는 말이 실감이 되기도 한다.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갈매기 날다

         갈매기 날다
                                        이형춘


  갈매기 두 마리가 파도위를 날았다
  태풍이 가고 태양이 타오르던 새벽
  음산한 바람소리 속으로 한 마리가 사라졌다

  날아도 날아도 끝없는 하늘
  날아도 날아도  망망한 바다

  뜨고지는 태양처럼 날아서
  바람처럼 날아서
  숙명처럼 날아서.........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선수용스케이트와 연습용스케이트


선수용클랩스케이트는 부츠를 카본 몰드로 떠서 바이킹사나 메이플사의 특수합금으로 만든 클랩날을 붙여서 한 세트에 200만원정도 한다. 달러로 환산해도 2000달러 가까이 하는 고가의 제품이다.

저번에 '북한의 스케이트'란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북한으로서는 한국인들에게 4000만원이라는 값어치에 버금가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되기때문에 북한의 스케이트선수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이 된다.

어제 선수들이 내놓은 내발에 딱 맞는 중고클랩을 빙상장 구내 스케이트샵에서 발견했다. 엣지가 90퍼센트 이상이 남아있는 바이킹블레이드를 부착한 카본부츠세트를 50만원에 내놓았다.신어보고 곰곰히 생각했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고, 그 중에서 스케이트인데 이 정도 호사는 부려도 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집에 오래된 바이킹클랩이 한 켤레 있는데, 워낙 오래 된거라서 스프링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전시만 해놓은 상태다. 샵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오래된 바이킹클랩이라도 네덜란드에서 스프링을 수입해 올 수 있다고 한다.


스프링이 끊어지면 고치기도 힘들고, 손질하기도 귀찮고, 장비에 지나치게 관심갖는게 싫어서 계속 연습용만 신었는데, 스프링을 구할 수 있다니 집에 묵혀놓은 클랩을 신고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샵 사장님에게 좋은 정보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샵 사장님은 80만원짜리 바이킹블레이드를 판매할 가능성과 선수가 맡겨놓은 50만원짜리 중고 클랩 스케이트를 판매할 가능성을 놓쳐버리고 만것 같다.

사실 연습용스케이트를 신고서도 펄펄 날아다니는 청춘이지만 모든 스포츠매니아들이 그렇듯이 장비에 대한 지름신이 강림해서 접신할뻔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혹 좋은 장비에 대한 주위분들의 권유가 있으면 스케이트장에서는 사격이 주 종목이라고 말하고, 사격장에서는 주로 스케이트를 탄다고 말하는 얕은 지혜도 부려본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선수가 아닌바에야 '빠르기'보다는 자세나 균형감각으로 '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연습용스케이트의 불편함이 모두 사라졌다. 혹시나 샵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 200만원짜리 선수용클랩과 15만원짜리 연습용스케이트의 판매수익성을 생각하신다면 장기적으로 연습용스케이트를 신고 부담없이 얼음판을 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선수용스케이트의 판매수익성도 창출되리라는 생각이다.

샵에서 신어 본 선수용클랩의 발에 밀착하는 감각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가 선수용스케이트의 '유효수요'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국정원 / 이웃집 앨리스


국정원의 정치개입문제로 혼란한 시국에 기독교계가 국정원정치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대통령은 기독교계의 원로들을 초청하여 국민통합에 힘써줄것을 당부했다. 같은 정당에서 비롯된 지난정부와 현정부의 연계성을 인정하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국정원만 개혁했으면 좋겠는데, 좋지않은 상황으로 사태가 물려들어가는듯한 느낌이 든다.

국기문란으로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 지난 정부의 부정적인 분위기가 현정부까지 확대되어 한국경제나 사회분위기가 장기침체로 자리잡을까봐 우려되기도 한다. 사실 지난정부의 국기문란과 사회분열의 주범중의 하나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일부 인사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강하고 상식적인 신자들과 부패한 지도층의 대립적인 구도는 기독교계에서도 예외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은 개인적으로 뱀보다 싫어했던 지난 정부의 비릿한 사회분열적 행태에 대한 또 한번의 궁시렁거림이었고, 국정원의 경직된 정보활동과 관련해서 이웃나라 미국의 앨리스라는 해병대 소령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현대의 첩보기관들은 공통적으로 산업사회의 조직구조인 관료제의 영향을 받지 않을수가 없어서 관료주의의 경직된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국상원의원의 정보특위 위원장이었던 배리골드워터 상원의원은 "적어도 금세기의 가장 훌륭한 장기적인 판단은 개인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반면에 최악의 판단은 첩보관료기구를 기반으로 한 정치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져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 호머리라는 군사작가가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다리도 절고, 몸도 약했으며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한 불평등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중국혁명과정에서 손문의 측근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그가 쓴 [무지의 용기]와 [색슨의 시대]라는 작품은 일본의 육군이 필리핀 해안 어느곳을 선택해서 상륙할것인지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곧 잊혀졌다가 이름난 여성극작가였던 한 클레어 부스루스에 의해서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리말고도 영국의 풀러 육군소장과 리델하트대위, 프랑스의 드골같은 인물도 장래의 기계화전을 예측했는데 공통적으로 조직에서는 문제아로 낙인찍힌 '유연한'사고의 소유자라고 한다.

1921년 미국 해병대소령이었던 앨리스는 호머리의 상상력을 발전시켜 거대한 분량의 작전계획서를 해병대사령관인 레준소장에게 제출하였다, 이 계획서는 2차세계대전때 미국의 상륙작전에서 큰 가치를 발휘했다고 한다. 앨리스는 신경증과 알콜중독으로 고생하다 죽은 신경증환자였는데, 한 편으로는 천재의 자유분방한 사고력을 가진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 당시 해병대조직이 애드호크라시와 같이 수평화된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레준소장은 앨리스의 가치있는 정보를 쉽게 반영할 수 있었다는 평이다. 만약 지금처럼 거대화된 관료조직이었다면 비공식적인 정보로 폐기처분되었을지 모르는 사실이다.

호국과 안보를 위하여 애써주기를 기다렸지만 엉뚱한 일을 해버린 관료화된 국정원을 생각하는 국민의 모습이 24년동안이나 앨리스를 만날 기회를 기다렸는데, 리무진을 타고 떠나간 이웃집앨리스를 황당하게 바라본다는 스모키의 노래속의 주인공과 같다는 억지스러운 생각을 해보았다. 제목을 재미있게 만들려니.......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국정원 / 기계적 정보기관


국민의 기본권침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국정원의 정보활동방식에는 크게 개혁해야할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런 면은 한국의 국정원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CIA도 크게 지적당한 적이 있는 사실이다.

이란의 팔레비왕정의 붕괴때 프랑스정보부가 예측된 정보를 CIA에 제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정보부의 분석을 받아들인다는것은 1954년에 CIA작전국의 공작으로 모사테크를 몰아내고 팔레비를 왕정에 복귀시킨 비밀공작을 뿌리채 부정해야하는 상황이 된다. 결국 이런 선례와 연결된 '정치적'고려를 하다가 팔레비왕정의 붕괴를 못막은 것은 물론이며, 테해란주재 미국대사관이 점령당하고 대사관원이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당한 사실이 있다.

한국의 국정원의 '이념적인 정치적 고려'는 유연한 소통과 정보수집에 많은 방해가 되고 있는것 같다. 미리 설정한 사고의 영역속에서 정보를 분석하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 구속을 받고 있는것 같다. 국정원의 관료조직적인 성격 또한 유연한 정보활동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것 같다.  정치공작에 관해서는 국정원보다는 민간 조직을 사용했던 전 정부가 한 수 위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콩심은데 콩나는 결과를 보는게 순리지만 의도했던 성과는 챙긴것으로 생각된다.

생각을 해보건데 좀 힘들기는 하지만 중립지대에서 사태를 파악하고 분석하면 훨씬 좋은 결론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냉전시대 미국의 CIA와 소련의 KGB가 냉전논리와 비밀주의에 빠져서 기계적인 기술분야를 제외하고는 존재의 가치를 못얻었다고 하는데, 한국의 국정원이 그 덫에 걸려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는 시오니즘을 파괴할려고 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정보기관이 되었지만, 한국의 국정원은 대북정보력이나 대공정보력으로 입지를 좁힌것도 모자라 다수의 국민을 상대로 정치공작을 하고 있는 자세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기계적 정보활동으로 인해 수집한 정보는 별로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2차세계대전중에  루즈벨트대통령은 정보부의 보고는 때때로 모순을 일으키기 때문에 대통령은 모순되는 추측은 무시하고 직감에 따라 업무를 보아야 했다고 한다. 처칠 수상도 1941년에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것이라는 정보부의 일관된 견해를 반대로 해석해서 스탈린에게 경고했지만 스탈린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기계적인 영국정보기관의 능력과 처칠의 열려있는 형이상학적 센스의 능력이 잘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어느 조직인지는 모르지만 어느 공공기관의 민원컴퓨터에 내 블러그를 막아놓은 행태를 보고 궁시렁거려봤다. 한국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목표를 확실히하고 세계를 상대로 해야할 날을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귀태 / 이쁘게 말하고 이쁘게 듣기


언젠가 지난 정부의 배경을 합쳐서 '요물'이라고 표현했다가 지운적이 있다. 문제는 '요물'이 틀림없어도 그 말을 뱉으므로서 그들과 같은 세계속에 편입이 되는, 환언해서 말하면 같은 '요물'의 세계에 편입이 되어버려 '요물'의 이미지를 나도 뒤집어쓰는  불상사가 생길것 같아서였다.

때로는 주장하는 말이 맞아도 듣는 사람들의 감성을 어떻게 자극하느냐에 따라서 말을 하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작용을 하는 일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귀태'라는 단어가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단어 자체가 주는 어감이 좀 자극적인 면이 있는것 같다.

대선전에 박근혜후보와 이정희후보의 공방전에서 설령 이정희후보의 말이 진실이라고 해도 국민들의 감정적 호응을 못얻었던 이치와 비숫한 경우라는 생각이든다. 아직 젊은 이정희후보로서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유교적 보수성이 강한 중년이상의 세대들에게 삭막한 자극을 준것 같다.

'귀태'라는 발언 문제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단어선택과 감성의 문제,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바탕에 깔려있는 스스로를 향한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서 자신들을 향한 질타적인 단어인줄 미리 설정하고 받아들인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양편이 다 잘못한것 같다. 이쁜 말을 사용하지 못한 쪽과 미리 겁먹은 쪽이 모두 잘못이다. 요즘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버렸는데, 저런 상황들을 많이 본 탓도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