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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31일 목요일

반증과 발전, 그리고 통신의 자유

몇 번 서술한바가 있지만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강한 사람이 된 이면에는 나름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던거 같다. 원래 그 분들의 의도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았는데,결과적으로 내가 가장 싫어했던 모습을 내 자신에게서 지워버리는 훌륭한 습관을 가져다 준 듯 하다.그 분들은 음성적인 성향의 정치현실이나 종교 아니면 음성적인 지인들이었는데, 그런 모습에서 내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영국의 철학자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는 과학이론이 객관적이라는 것은 환상이며 가설일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반증에 열려있어야 하며,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는 스스로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반증하는 과학자이기때문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내 뜻대로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끊임없이 다른 의견들을 억누르는 정치권력이나 종교권력, 경제권력 작게는 패거리문화까지 합의를 도출하는것보다 지배와 복종관계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이 병든 것과 과학적이지 못한 것이 분명히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국가 정보기관같은 곳에서 누군가의 통신의 자유를 간섭했을때 나타나는 문제점은  여러가지인듯 하다. 첫째, 사회발전의 기반이 되는 다양한 의견들을 음성적으로 숨게 만든다. 둘째, 국가에너지와 공권력의 낭비가 생긴다. 내 자신의 경험으로는 누군가가 어떤 음성적 간섭을 하면 그 간섭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심하거나 음성적으로 숨기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내 자신이 상황을 유도해 나가는 실질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웃기는 생각까지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통신의 자유를 침해해서 얻은 실익이 별로 없을 수가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셋째, 내밀한 정신적 에너지 싸움에 몰입하게 됨으로써 외부로 향해야 할 발전지향적인 가치를 뭉개버리는 폐단이 생길 수 있는듯 하다. 마치 외부침략에 대응못하고 내분으로 망해버리는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권력이나 영향력등에 지나치게 집착을 하게 되면 상황판단이 객관적으로 인지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기묘한 일에만 신경쓰다가 자신도 망가지고, 공동체도 망가뜨리고 하는 불상사는 이제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열심히 뭔가를 해 볼려고 해 봐서 아는데, 음성적인 환경은 정신을 많이 어지럽히는 경험을 했던것 같다. 이런 환경에서 창의성이 어떻게 발현될 것이며, 문제가 표면화되는 것을 막아버리는데, 어떻게 발전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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